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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719화 (1,499/2,000)

< 1719화 > 1719. 암상인

파티 일행은 놈들에게 사원으로 질질 끌려간다.

나는 조용히 그 뒤를 미행했다. 미행에서 중요한 건 거리 조절이었다. 너무 가까우면 들키고, 너무 멀면 뭐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죽일 거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죽이면 그만이지. 사원으로 끌고 갈 이유가 없어.’

단순히 죽이기 위해 사원으로 끌고 가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뭘 숨기고 있을지 더 궁금해진다.

‘혼자서 다 쓸어버리고 느긋하게 사원을 조사하는 건… 불가능하겠네. 이 새끼들 보통이 아니야.’

따로따로 싸우면 내가 이긴다. 반대로 정면에서 놈들 전체와 싸우면 위험하다. 정확히 뭐 하는 놈들인지 몰라도 어느 정도의 실력은 갖추고 있으니까.

‘사원에 들어가면 더 조심해야겠어.’

일루시터를 준비했다. 위험할 땐 망설임 없이 써야 한다. 배터리를 아끼는 순간 일을 최악으로 치달을 것이다.

“우, 우릴 어디로 데려가는 겁니까?!”

“닥치고 걸어라.”

수염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원 밖에서 여유 넘치던 그의 모습은 없다. 그는 명백하게 긴장하고 있었다.

사원 내부는 거대하고 웅장한 외형과 달리 심플했다. 안쪽으로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는 구조. 그냥 앞으로 걸어가면 자연스럽게 사원 중심으로 향하게 된다. 나는 여기가 사람이 살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 아님을 알았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바닥에 얼룩진 피와 기둥에 튄 핏자국이 보였다. 이곳에서 끌려온 자들이 제법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던전 입구에 있던 직원들의 반응을 봤을 때… 들어온 헌터 일행만 잡아 죽인 건 아니겠지.’

헌터를 상대로 하는 건 변수가 너무 크다. 이곳에서 사람을 죽일 필요가 있다면… 바깥에서 사람을 납치해와서 죽이는 편이 훨씬 낫다. 불법체류자의 경우 갑자기 사라져도 아무도 신경 안 쓰니까.

‘이런 길이 좁아지잖아.’

미행이 어렵다.

이럴 땐 미행을 포기하는 게 낫다. 놈들이 용무를 끝마치고 난 뒤에 들어가서 확인하는 편이 훨씬 안전하니까.

‘그럼 놈들이 정확히 뭘 하는지 알 수 없잖아. 일루시터를 쓰고 들어가 보자.’

놈들의 수준을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작정하고 도망치면 놈들은 나를 잡지 못할 것이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사원 안쪽 벽에는 횃불이 걸려 있었다. 길은 안쪽까지 계속 이어졌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핏자국은 더 많아졌다.

그리고 가장 끝에 나왔다. 넓은 공간이 나왔다. 중심에 있는 계단과 침대 같은 탁자. 저건 분명 제단이었다.

‘시발. 또 브라마센과 관계된 일인가? 사이비라면 지긋지긋한데.’

파티 일행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인지 격렬히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미, 미친 새끼들! 이 새끼들 사이비였어?!”

“우릴 제물로 바칠 생각이야!”

“사, 살려줘! 살려주세요!!”

아무리 버둥거려도 그들은 구속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베르타라 자신들을 소개한 놈들은 아까와 달리 파티 일행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윽박지르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서 침묵했다. 그 태도에서 엄숙함과 이질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파티 일행도 그걸 느꼈는지 발악이 줄어들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숨이 막힐듯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조용하다. 너무 조용해서 압력이 높아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카넥스 님. 제물을 데려왔습니다.”

시야가 흔들린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본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 시야가 아니라 공간이 흔들리고 있었다. 공간은 계속 흔들리며 제단 위에 균열이 일어났다.

균열 속에서 머리가 나온다. 크기가 3m가 넘는 머리는 인간의 것과 비슷했다. 피부는 빨갛고 부패하고 찢어진 입술 사이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반쯤 박살 나 있다. 광대 쪽에는 피부가 벗겨져 뼈가 보였고, 왼쪽 눈은 파여 있으며 오른쪽 눈동자는 황금색으로 빛났다. 이마에는 역삼각형의 문신이 새겨져 있다. 두피는 벗겨지고 두개골은 일부 박살 나서 분홍색의 뇌가 훤히 보였다.

외형만 놓고 보자면 결코 선한 존재로 보이지 않았다.

“예정에 없던 제물이군.”

카넥스가 입을 열었다. 목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목소리는 사원 내부에 울렸다.

“제 발로 찾아온 놈들입니다. 저희 나라의 속담으로는 호박이 덩굴째로 굴러들어왔다고 하죠.”

베르타의 대장, 수염 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무례를 저지르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너희 나라의 속담에는 관심 없다.”

“제물에도 관심 없으십니까?”

“그건 아니지. 제물은 언제나 환영하는 바이다.”

카넥스가 섬뜩하게 웃는다. 그의 부서진 두개골 사이의 뇌에서 분홍색 촉수 10개가 튀어나왔다. 뇌주름을 촉수로 만든 듯한 그 모양새는 상당히 역겨웠다. 촉수는 순식간에 움직여 파티 일행을 낚아챘다. 집중하지 않으면 나도 반응하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으아아아아아악!”

“살려주세요, 제발!”

베르타는 비명을 지르거나 말거나 침묵했다.

카넥스는 촉수로 붙잡은 파티 일행을 한 명씩 씹어 삼켰다. 그의 커다란 입안에서 인간은 한낱 고깃덩어리가 되어 사라진다. 머리밖에 없는데 삼킨 것은 바닥으로 흘러내리지 않고 증발했다.

“오오…. 평소에 받는 제물들보다 훨씬 만족스럽군. 나는 이런 제물을 원했다.”

으적으적.

놈은 만족하며 인간을 씹었다.

“만족하셔서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인간들을 바쳐라. 제물의 대가는 확실하게 챙겨주지. 너희도 그걸 원하지 않나.”

“죄송합니다만, 오늘 제물들은 특별합니다. 운이 좋지 않았다면 카넥스 님께 바칠 수도 없었을 겁니다.”

“흐음. 그래.”

으적으적.

카넥스는 파티 일행 전원을 먹어치웠다. 그럼에도 만족하지 못한 듯 두 눈을 데굴데굴 굴린다. 수염 남자를 보는 눈에 탐욕이 서렸다가 사라진다.

“오늘 제물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추가로 하나 더 주지.”

퉷!

카넥스가 무언가를 뱉어냈다.

붉은색 호두 두 개. 아니, 작은 뇌처럼 생겼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수염 남자는 허리를 숙여 작은 뇌를 주웠다.

“감사합니다. 카넥스 님.”

“보면 알겠지만, 평소에 줬던 강화제보다 더 진한 것들이다. 효과도 더 좋지. 이런 것들을 알고 싶으면… 질이 좋은 제물을 바쳐라. 알겠나?”

“위에 연락해서 카넥스 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제게 선택권은 없어서요.”

“기대하지.”

강화제를 챙긴 수염 남자가 카넥스를 바라봤다.

“상태는 어떻습니까?”

“처음 봤을 때보단 나아졌다. 하지만 이대로는 몇십 년이 걸려도 원래의 내 힘을 복구할 수 없을 것이다. 좀 더 많은 제물이 필요하다.”

“저희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하나 알려주마. 나는 나를 따르는 자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내린다. 내가 힘을 되찾는다면… 강화제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보상을 내려주겠다.”

“…그 말씀도 위에 전하겠습니다.”

수염 남자가 정중하게 인사하고 몸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끝인가?”

“제물은 이게 전부입니다. 다음 제물은 내일 들어옵니다. 그때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저 뒤에 있는 건 제물이 아니라 너희 동료였나. 제법 맛있어 보였는데… 아쉽군.”

“네?”

카넥스가 내 쪽으로 눈짓한다.

‘시발. 카넥스 인가 뭔가 하는 저 괴물 새끼는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나?’

수염 남자가 뒤돌아본다. 일루시터를 사용하고 있었기에 수염 남자는 바로 날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다 마나를 사용한다. 마나의 파동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다. 검은 수염의 얼굴이 단숨에 일그러졌다.

“뭐 하는 놈이냐?!”

척척척!

수염 남자와 그 동료들이 일제히 무기를 들었다. 적의가 내게 쏟아진다. 저들 또한 마나를 이용해 감각을 증폭시켜 날 감지한 것이다. 일루시터는 의미 없어졌다. 배터리도 아낄 겸 일루시터를 해제했다.

내 모습이 드러난다. 인피면구를 쓰고 있기에 날 알아볼 가능성은 없다.

“누구냐? 아까 놈들의 일행이 아닌 건 안다. 정체를 밝혀라.”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몬스터 따위에게 인간을 바치고 뇌조각을 얻는 너희는 정체가 뭐냐? 듣자 하니 하청받는 쪽인 것 같은데… 니들 주인은 누구냐?”

수염 남자가 입을 열기 전에 먼저 카넥트가 존재감을 내뿜었다.

“감히… 나를 몬스터 따위라고 했나?”

“던전에 있으면 몬스터지. 그리고 지금 네놈 꼴을 봐라. 몬스터가 아니면 뭐지?”

“나는 신이다. 내가 비록 패배하여 영락하여 이런 꼴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인간 따위에게 모독받을 이유는 없다. 신을 모독한 죄는 결코 가볍지 않으니…. 너는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신? 브라마센 같은 놈인가.”

“브라마센! 이놈! 브라마센과 무슨 관계냐!”

카넥트가 소리쳤다. 브라마센의 이름을 듣자마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분노를 표출한다. 그 여파에 공기가 덜덜 떨린다. 결코 가볍게 볼 놈은 아니었다.

놈 중 하나가 활을 들더니 화살을 쏘았다. 너무 대놓고 쏜다. 이건 시선을 끌기 위함이다.

‘역시….’

은밀하면서도 신속하게 접근하는 놈이 있었다. 자세를 낮추고 뱀처럼 달려든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5]

화살을 피하며 찰나를 사용했다. 내 정체가 특정될 수 있는 화련비도 대신 평범해 보이는 검을 꺼내 접근하는 놈에게 휘두른다. 놈이 방향을 틀었다. 검은 놈의 오른팔을 베었다. 아쉽다. 놈의 반응이 조금만 늦었어도 머리를 반으로 쪼갤 수 있었는데.

나이프 3개가 날아온다. 도해영이란 이름의 여자였다. 짧은 머리의 여자. 자세히 보니 제법 예쁘다. 그녀의 표정은 군인처럼 딱딱했다.

팅! 팅팅!

검을 옆으로 세워 조금씩 움직이며 나이프 3개를 튕겨냈다. 튕긴 나이프는 허공을 빙글빙글 돌다가 멈췄다. 그 칼날이 내게 향하며 쇄도한다.

‘염동력.’

다시 검으로 나이프를 쳐내려는 순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힘이 내 몸을 꽉 옥죈다. 땅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이것도 염동력이군.’

천심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마나의 출력을 높여 한순간에 터트린다. 몸을 옥죄던 염동력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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