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작물 속으로-1723화 (1,503/2,000)

< 1723화 > 1723. 암상인

[완전 회복을 사용합니다.]

바닥에서 일어난 나는 신경질적으로 카넥스의 시체를 발로 찼다.

놈의 시체 안쪽에서 마석을 발견했다. 이 마석이야말로 놈이 몬스터라는 증거였다.

자기는 신이라고 지껄였던가?

‘신은 지랄. 몬스터 주제에.’

몸에 묻은 카넥스의 피와 내장을 털어내며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였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검은색 원형 보석이 눈에 들어온다. 아까까지만 해도 없었던 것이 카넥스가 죽자마자 나타났다?

‘던전 클리어 보상이겠군.’

감정서는 집에 있으니 당장 이게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다. 나는 마석과 함께 보석을 챙기고 사원 밖으로 나왔다. 저 멀리 게이트가 열려 있는 게 보였다.

나는 던전을 나가기 전에 도해영이 있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카넥스가 한 짓거리는 나를 동요시키기 위한 속임수일지도 모른다. 라는 희망을 멋대로 품고 도해영을 확인해 볼 생각이다.

결과. 도해영은 죽어 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발걸음을 돌렸다. 이 던전이 곧 그녀의 묘지가 될 것이다. 영영 찾을 수 없는 묘지가 되겠지.

던전 밖으로 나오기 전에 일루시터를 사용해 몸을 투명하게 만들었다.

게이트를 앞에 두고 협회 직원들이 당황하고 있었다.

‘오픈형이 폐쇄형이 됐으니 당연하지. 원래라면 상부에 바로 보고했겠지만, 협회가 제대로 조사하면 비리를 저지른 게 걸릴 테니 어쩌지도 못하고 베르타가 해결해주길 기다리는 거지.’

그러나 베르타는 전멸했다. 공략 완료된 폐쇄형 던전은 곧 사라질 것이다.

‘우왕좌왕 거리는 걸 보니 베르타 뒤에 이화 길드가 있다는 걸 몰랐나 보군. 단순히 베르타에게 매수된 건가.’

폭탄이라도 하나 선물로 던져주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다. 하지만 참는다. 여긴 던전 내부가 아니라 밖이었다. 폭탄으로 협회 직원을 쓸어버리면 일이 커진다.

아무리 내가 일루시터로 몸을 투명화시키고 인피면구로 정체를 숨겼다고 해도 기상천외한 능력을 가진 헌터는 세상에 넘쳐나니 조심하는 게 좋다.

나는 유유히 그곳을 빠져나갔다.

***

암상인 박정구를 만났다. 박정구는 나를 보자마자 인상을 팍 쓰며 노발대발 소리쳤다. 이곳으로 돌아오면서 전화로 사정을 전부 설명했기 때문이다.

“이 미친 자식아! 다른 던전에 가서 일하면 되는 일이잖아! 500억이 우습냐?!”

“시끄럽다. 손해는 안 봤다.”

나는 바닐라의 마나 씨앗이 들어있는 열매 3개와 HB-1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HB-1은 한 방울밖에 안 썼다.”

손해가 아닌 이득이었다. 박정구의 표정도 순식간에 누그러진다. 그는 HB-1을 챙기려다가 멈칫한다.

“그래. 이득을 봤네. 한 번 더 하자고. 어때? 이번에는 좀 더 안전한 던전에서 하면….”

“안 한다.”

“뭐?”

“안 한다고 했다. 귀찮아.”

박정구의 태도가 일변했다. 그는 나를 달래듯이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야, 야. 이번에 네가 고생한 건 알겠어. 근데 500억이야. 이 계획이 마냥 허무맹랑하기만 한 건 아니라는 걸 너도 경험했잖아. 무려 500억! 5대5로 나누면 네 몫은 250억!”

“안 한다면 안 한다. 다른 사람 알아봐라.”

“이런 젠장! 엄청 단호하시구만!”

나는 테이블에 노트북을 올렸다. 의자 팔걸이를 짜증스레 두들기던 박정구가 눈을 빛내며 노트북을 바라본다.

“군용 노트북이군. 이 정도면 꽤 비싼 모델인데…. 던전에서 얻은 게 이거냐?”

“재밌는 영상도 찍었지.”

베르타와 카넥스에게 인간을 공양하고 강화제라는 물건을 얻는 영상이었다. 영상을 본 박정구는 헛웃음을 흘렸다.

“인신 공양? 그걸 내 두 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베르타를 고용한 건 이화 길드다. 노트북 자료 중에 그 증거가 있다.”

“호오. 그런데? 나보고 어쩌라고?”

“이화 길드를 적대하는 대형 길드에 강화제와 함께 자료를 팔아라.”

“야, 야. 이게 판다고 쉽게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이화 길드가 알아차리면? 내 인생은 끝장나는 거야.”

“암상인 주제에 뭔 지랄이지.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자료란 걸 알 텐데.”

“마약을 파는 거랑 10대 길드가 엮인 일의 리스크가 같을 수 있겠냐? 내게 의뢰할 거면 의뢰비를 내.”

“이건 판매 대행이다. 의뢰비가 필요하나? 수수료는 알아서 떼가라.”

“네가 하기 싫은 일은 안 하듯, 나도 하기 싫은 일은 안 해.”

나는 혀를 찼다.

그의 태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내 몫의 마나 씨앗 열매를 포기하겠다. 노트북과 강화제를 판매해서 얻는 돈도 전부 네가 가져라. 대신 이화 길드가 확실하게 타격을 입어야 한다는 게 조건이다.”

박정구가 씩 웃는다. 이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노트북과 강화제를 챙긴다.

“그럼 이야기가 달라지지. 근데 이화 길드에 원한이라도 있나?”

“딱히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해서 이화 길드에 엿을 먹이려는 거냐?”

“이화 길드가 얼마나 흔들리는지 보려고.”

내 목표는 10대 길드 중 2위인 수월 길드다. 그놈들 때문에 한하린이 죽었었다. 다시 생각해도 도저히 용서되지 않는다. 이화 길드를 공격하는 건 일종의 실험이기도 했다. 대형 비리가 터졌을 때 10대 길드가 얼마나 흔들리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

‘10대 길드 끝자락에 있는 이화 길드와 한국 2위인 수월 길드는 체격이 다르겠지만.’

이화 길드가 흔들린다면, 수월 길드도 어느 정도 흔들리겠지.

“보니까 너도 성격이 안 좋단 말이지. 이 일은 확실히 처리해두마. 10대 길드를 고꾸라뜨리고 싶어 하는 대형 길드는 넘쳤으니… 그중에서도 이화 길드와 사이가 좋지 않은 대형 길드가 몇 있지.”

“10대 길드와 사이가 좋지 않은 대형 길드가 많나?”

“10대 길드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는 대형 길드가 많으니까. 그리고 지금 한국에 있는 대형 길드 중에 10대 길드에게 당한 경험이 없는 길드는 없을걸? 10대 길드가 유명하다고 해서 착한 건 절대 아니거든.”

‘수월 길드를 적대하는 대형 길드도 있겠군. 어쩌면 10대 길드 중 하나가 수월 길드를 적대할지도 모르지.’

박정구에게 직접 물어보기에는 리스크가 크다. 박정구는 결국 이득에 따라 움직이는 암상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간다.”

“어, 그래. 이쪽에서 연락할 때까지 당분간 여긴 오지 마라. 와도 내가 없을 테니까.”

***

일주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뉴스를 챙겨봤다.

그러나 이화 길드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방송국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인터넷 기사도 마찬가지다. 잠잠하다.

‘박정구가 실패했나? 하지 않은 건가?’

인신 공양이다.

그것도 몬스터에게 인신 공양을 하는 영상이 고스란히 찍혀 있다.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영상이다.

‘지금이라도 해킹을 사용해 인터넷에 퍼트릴까? 조작이니 뭐니 소리가 나돌아도 이화 길드에 타격은 입힐 수 있겠지.’

출처를 알 수 없는 영상은 신뢰도가 떨어진다.

영상을 확인하려고 해도 카넥스는 죽었고, 던전은 사라졌다. 이화 길드가 여론전을 펼치면 당할 수밖에 없다.

‘박정구를 믿고 기다려야 하나.’

저녁쯤에 박정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물론 대포폰이었다.

-어, 난데.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뉴스나 인터넷 기사를 봐도 베르타와 관련된 건 하나도 없더군.”

-거래는 완료했어. 이화 길드라면 이를 빡빡 갈고 있는 대형 길드에 자료를 팔았어. 대형 길드는 바로 행동에 착수했어. 협회에 찔러서 이화 길드에 불이익을 주려고 했지. 문제는 협회였어. 협회가 그 일을 묻어버렸어. 대형 길드는 협회를 적으로 돌릴 수 없으니 협회로부터 뭔가를 제공받고 손을 뗀 거지.

“협회가? 협회와 이화 길드가 그렇게 친밀한 사이였나?”

-그건 아니야. 정보원의 말로는 협회가 따로 이화 길드에 제재를 가했다더라. 이번 일이 이화 길드만이 아니라 10대 길드 전부, 더 나아가서 헌터의 위상을 떨어뜨린다고 판단해서 묻어 버린 거지. 강화제도 협회에 있어.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말이야.

“대한민국의 헌터 협회가 이렇게 썩어 있는 줄은 몰랐군.”

-이런 건 썩은 것도, 뭣도 아니야. 협회는 자기방어를 위해 움직인 것뿐이지. 솔직히 이게 퍼졌으면 헌터계 전체가 발칵 뒤집혔을걸. 협회가 헌터 이미지에 집착하는 이유는 너도 알지?

“헌터는 힘을 가졌으니까.”

일반인들의 시선에서 헌터는 걸어 다니는 폭탄이었다.

수류탄에 안전핀이 수류탄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헌터 또한 자신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으니 두려워한다. 수류탄 중에는 아주 가끔 불량도 있으니까.

“내가 그 자료를 인터넷에 뿌리면?”

-씨발. 날 죽일 셈이냐?!

“만약의 이야기다. 인터넷에 뿌렸을 경우에는… 이화 길드가 흔들렸을까?”

-욕 좀 먹고 끝났을걸. 협회가 바로 움직일 테니까. 그리고 너도 협회에 붙잡혀 갔겠지. 아무튼 이화 길드를 엿 먹이는 건 실패했어. 수수료나 의뢰비를 돌려줄 생각 없으니 포기하고.

소득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적어도 이런 방식으로 10대 길드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리고 이화 길드도 협회로부터 제재를 먹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박정구. 만약 너라면 어떻게 10대 길드를 조질 거지?”

-미쳤냐. 내가 왜 10대 길드를 조져?

“만약이다. 만약.”

-후. 10대 길드 전체를 조지는 건 불가능해. 10대 길드가 전부 망한다? 그건 대한민국이 망한다는 뜻이지. 정부고, 협회고 가만히 있을 리 없어.

“10대 길드 중 하나만 조진다면?”

-그거라면… 음. 뭐,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야겠지. 이 새끼… 이제 보니 10대 길드에 원한이라도 있나 보네? 그 일에 날 끌어들일 생각은 하지 마라. 뭐, 돈이 충분히 있다면 도와주지 못할 것도 없지만.

나는 박정구를 완전히 믿지 않는다. 이놈도 중요한 순간에 내 뒤통수를 후려칠 가능성이 있으니까.

-아무튼 당분간 연락하지 마라. 당분간 잠적해야 하니까. 아, 너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이화 길드가 널 찾고 있다는 말이 있거든. 참고로 던전 게이트 지키던 놈들은 전부 징계 먹고 퇴사 처리됐다고 하더라.

뚝.

전화는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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