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4화 > 1724. 아카데미의 구원자
카넥스를 죽이고 던전을 클리어하며 손에 넣은 검은색 보석을 감정하기로 했다.
따로 감정사를 찾아가지 않고 헌터샵에서 구입한 감정서를 이용했다. 감정서가 더 비싸도 혼자서 물건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감정서는 진짜지.’
다른 유희 세계의 물건은 물론이고 랜덤 뽑기에서 나온 물건들도 감정해낸다.
정식 명칭은 감정 스크롤. 가격은 하나당 2,000만 원이 넘는다.
나는 감정서 위에 검은색 보석을 올려두었다. 그리고 감정서 귀퉁이 일부를 찢는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감정서에 물건의 능력이 적혀 나온다.
‘어디 보자.’
감정서에 적힌 글들을 읽고 휘파람을 불었다.
‘10분 동안 일정 공간을 폐쇄할 수 있다라? 쓸만한데.’
나는 이 보석을 공간폐쇄석이라 부르기로 했다.
***
[유희를 시작합니다.]
아카데미의 구원자 세계로 들어왔다. 낯선 느낌을 받은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 맞다. 여긴 일본이었지.’
일본 도쿄에 있는 아라시 아카데미.
나는 한국 대표로서 교류전을 위해 아라시 아카데미에 머물고 있었다.
교류전은 총 3번 이루어지고, 첫 번째 교류전은 한국이 졌다. 그리고 내일이 두 번째 교류전이다. 마지막 세 번째 교류전은 아라시 아카데미 문화제 날에 열린다.
솔직히 나는 교류전에 별 관심 없다. 한국이 이기든, 지든 내가 얻는 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국 대표들은 아니었다. 일본 대표들을 이기기 위해 이를 갈며 훈련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개인 수련을 한다는 핑계로 땡땡이치고 있었다.
‘남들 좆뱅이 칠 때 쉬는 게 꿀이지.’
그러나 세상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이었다.
전화가 왔다. 무시하기에는 전화 건 상대가 아라시 아카데미의 학장인 텐라이 나기사였다.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안 받으면 그만이지. 자기가 어쩔 건대.’
나 성유진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라는 놈이 아니었다. 미녀의 호출이면 모를까. 피도 안 마른 애새끼의 외형을 한 텐라이 나기사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벨 소리가 끊어지고 조용해졌다. 나는 낮잠이라도 잘 생각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거, 이거 보통 놈이 아니구만. 감히 내 전화를 무시하고 태연하게 낮잠을 자? 너 같은 불량아는 또 처음 보는구나.”
머리 위, 높은 뜀틀에 화려한 붉은색 기모노를 입은 여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긴 검은 머리는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보라색 눈동자는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입가에는 어딘가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다.
텐라이 나기사. 일본의 S급 히어로이자, 아라시 아카데미의 학장. 수월(水月)의 공희(空?). 공간의 공주라는 이름답게 그녀는 공간을 조작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나는 텐라이 나기사가 껄끄러웠다. 외형의 문제가 아니다. 그녀의 성격이다. 강력한 힘을 가졌음에도 본인이 직접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어딘가 흑막 같은 분위기를 흘리는 게 껄끄럽다. 지금도 아마 내게 무언가를 시키려는 것일 터다.
“내 전화를 무시하는 건방진 녀석이 뭘 하는지 궁금해서 찾아와 봤지. 땡땡이치지 말고 학장실로 오너라. 너와 성하리에게 시킬 일이 있다.”
“엄마는 그렇다 쳐도… 전 학생인데요.”
“알고 있다. 사실 목적은 네가 아니라 성하리다. 그 녀석은 내 말을 잘 안 듣거든.”
“엄마를 움직이려고 날 이용하겠다는 거군요.”
성하리와 나를 대놓고 이용하려 한다.
“성하리 같은 좋은 인재가 내 밑에 있는데 가만히 썩혀 두면 너무 아깝지 않느냐.”
“엄마는 그렇게 생각 안 할 텐데요.”
“그래서 널 찾아왔지.”
“어쨌든 싫습니다. 전 바쁩니다.”
“대의를 위한 일이다. 일본인들을 위한 일이지. 너와 성하리가 나서주지 않는다면… 일본이 위험해진다.”
“저랑 엄마는 한국인입니다.”
“정 없는 소리 하는구나. 아니면 설마 일본 따위는 멸망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냐?”
“하기 싫은 건 하기 싫은 겁니다.”
단호하게 말했다. 여지를 주면 가차 없이 나를 부려 먹을 것이다.
“그거 아느냐? 풍기 문란은 퇴학감이다.”
“…아라시 아카데미에 연애 금지 교칙은 없는 걸로 압니다.”
“풍기 문란과 연애 금지는 엄연히 다르지. 설마 그토록 많은 여자와 관계를 맺을 줄은… 나도 몰랐다. 선생, 친구 엄마, 친엄마까지. 네 일상은 AV 그 자체더구나.”
“…절 감시했습니까?”
몸을 일으킨다. 나도 모르게 살기가 일어났다. 지금까지 감시당했다는 데 기분 좋을 리가 없었다. 특히나 성하리와 내가 주기적으로 섹스하는 건 알려져선 안 될 비밀이다.
“내 부탁을 들어주면 비밀은 지켜주마. 너희 모자가 무슨 관계든 내 알 바 아니다. 그 앞에 파멸이 있다고 하더라도 감당해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너희 모자지.”
“엄마도 이런 식으로 협박했습니까?”
텐라이 나기사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는 이내 키득키득 웃는다.
“오래 살다 보면 어떤 재주가 생기지. 나 같은 경우는 사람을 볼 줄 아는 재주라고 할까. 그 재주로 보자면 넌 천하에 다시 없을 난봉꾼이지.”
“아, 그렇습니까.”
시큰둥하게 말했다. 내 행보를 봤다면 누구나가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성하리에겐 너는… 전부다. 역린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성하리에게 지금처럼 협박을 한다? 성하리는 바로 날 죽이려 할 것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위해서. 네 앞길을 막지 않으려고 날 죽이겠지. …솔직히 지금의 나는 죽음을 작정한 성하리를 이길 자신이 없다.”
“…엄마는 약해져 있는데요.”
“호랑이가 병에 걸렸다고 해서 호랑이가 아니게 되느냐?”
“엄마는 모른다는 얘기라는 건 알겠습니다. 그래도 제가 거절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세상에 성하리와 그 아들이 천륜을 져버렸다고 소문이라도 낼 겁니까?”
“그건 최후의 수단이지.”
“최선은 절 협박하는 거였다면… 차선은 뭡니까?”
“여자를 밝히는 널 유혹하는 것?”
텐라이 나기사가 요염한 미소를 짓는다.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어린아이가 지을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기모노 끈을 슬쩍 풀었다. 기모노가 살짝 흘러내리며 새하얀 어깨와 허벅지, 껌딱지 같은 가슴 일부가 드러난다.
나는 무심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안 꼴립니다.”
“예상은 했다만 이토록 반응이 처참할 줄이야…. 취향 참 확고하구먼.”
“그게 정말 차선책입니까? 용의주도하신 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아직 안 끝났다, 녀석아.”
변화는 그녀의 손끝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어린아이 특유의 작은 손가락이 길쭉하게 늘어난 것이다. 손가락에 이어 손목과 팔목, 발과 다리가 늘어난다. 허벅지와 둔부가 커지고 껌딱지 같던 가슴이 천천히 부풀어 오른다.
그 모든 변화는 3초도 되지 않아 끝났다.
뜀틀 위에는 젖비린내 나는 어린아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쭉쭉빵빵한 검은색 미녀가 앉아있다. 몸은 커져도 옷은 그대로인지라 사타구니와 가슴의 중요한 부위만 아슬아슬하게 가려진 상태였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가슴. H컵은 될 것 같은 커다란 가슴은 터질 것 같고 엉덩이는 크고 탱탱했다. 그녀가 풍기는 색기에 자지가 반응한다.
텐라이 나기사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깔깔 웃었다. 그녀가 웃을 때마다 커다란 가슴이 흔들린다. 젖꼭지는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었는데, 그 옆으로 삐져나온 분홍색 유륜이 보였다.
“시선이 뜨겁구나. 젊은 남자에게 그런 시선을 받아보는 게 얼마 만인지…. 흐음. 나쁘지 않구나. 어떠냐, 이제 내 부탁을 들어줄 기분이 들었느냐?”
“네, 뭐. 들어주고 싶은 것 같기도….”
나는 대충 대답했다. 뜀틀 위에서 장난스럽게 흔들리는 두 다리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텐라이 나기사는 피식 웃더니 몸을 비틀어 고양이 같은 자세를 취했다.
“아직 부족하느냐? 자아, 보거라. 내가 남자에게 이런 아양을 떠는 건 처음이니라. 그만큼 내가 급하다는 걸 알아주거라.”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몸을 가리던 기모노가 완전히 풀어져 간신히 허리에 걸쳐졌다. 문제는 가슴과 엉덩이를 전혀 가리지 못했다는 거다. 커다란 가슴이 출렁이며 아래로 향한다. 중력에 붙잡혀서일까. 젖꼭지가 반쯤 서 있었다.
또 그녀의 새하얀 궁둥이 사이로 엉덩이 구멍과 보지가 훤히 보였다. 꽉 닫혀 있는 항문과 털 한 올 나지 않아 매끈하고 통통한 분홍색 보지. 보지는 일자로 꽉 닫혀 있어서 안쪽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처녀 보지?!”
처녀막은 확인하지 못했어도 풀풀 풍기는 처녀의 냄새를 못 맡을 리 없었다.
“으음. 이거 참 너무 들떠서 속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는 걸 깜빡했구나.”
텐라이 나기사는 똑바로 앉으며 작은 기모노로 중요한 곳을 가렸다. 그녀의 얼굴은 복숭앗빛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나는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내가 처녀라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내가 살아온 세월이 있거늘….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남자 경험이 많단다. 닳고 닳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나기사 님. 한 번만 대주면 무슨 부탁이든 다 들어주겠습니다.”
“멋대로 이름으로 부르지 말거라. 네가 내 부탁을 들어주고 잘 마무리해준다면… 뭐, 생각해 보겠노라.”
생각만 해보겠다고? 날 이용하고 버릴 생각인가? 텐라이 나기사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다른 보상을 내게 줄 가능성이 크다.
“그런 모습을 할 수 있는데 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지내는 겁니까?”
“으음. 성장을 조절할 수 있게 된 건 10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 이전에는 성장이 강제로 멈춰진 상태였던지라…. 어린아이의 모습이 더 편했다고 할 수 있지. 솔직히 지금도 이 가슴이라던가, 엉덩이라던가 너무 크고 무거워서 어린아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으니라.”
“…한 번만. 한 번만 대주면 무슨 부탁이든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후후. 생각해 보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학장실에서 기다릴 테니 오거라. 발기한 채로 오지 말고.”
텐라이 나기사가 사라졌다.
나는 멍하니 그녀가 사라진 뜀틀 위를 바라봤다. 유령에 홀린 느낌이었다. 설마 텐라이 나기사에게 그런 설정이 있었을 줄이야…!
아직도 그녀의 향취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처녀가 아닌가? …근데 처녀 같은데. 갑자기 몸이 성장하면서 처녀막도 재생하는 건가? 아니지. 아직 처녀막이 있는지도 확인하지 못했으니까….’
텐라이 나기사는 처녀다. 처녀가 아니다. 머릿속에서 끝없는 논쟁이 이어지려는 찰나, 뜀틀 위에 묻어 있는 작은 얼룩이 눈에 들어왔다. 방금 묻은 얼룩이다. 새끼손가락 굵기보다 더 작은 얼룩.
‘보지즙인가? 땀인가? 침인가?’
새로운 논쟁거리가 머릿속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