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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726화 (1,506/2,000)

< 1726화 > 1726. 아카데미의 구원자

나와 성하리는 텐라이 나기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양손으로 우리의 손을 붙잡았다. 그녀의 손이 푸른색으로 빛나며 무언가가 우리 손등에 새겨진다.

“다 됐다.”

텐라이 나기사가 손을 떼니 손등에 새겨진 파란색 마름모 문양이 보인다. 마름모 문양은 피부 아래로 스며들 듯이 사라졌다.

“술식 인증 코드는 열흘 동안 유지될 거다. 그 후에는 자연 소멸하지. 그러니… 열흘. 아니, 일주일 안에 일을 처리하고 스사노오의 곡옥을 가져오너라.”

자신의 손등을 살펴보던 성하리는 툭 내뱉듯이 텐라이 나기사에게 물었다.

“그렇게 중요한 물건이면 직접 가져오면 되잖아?”

“나는 약해졌다. 그나마 츠쿠요미 신사가 있는 아카데미 내에서만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지. 그 사실을 마도정도 안다. 내가 아카데미를 나가자마자 놈들은 나를 죽이려 할 것이다. 놈들의 가장 큰 방해자는 나니까.”

“자기 안위를 그렇게 챙기는 줄 몰랐네.”

“무엇보다 내가 아카데미를 나선다면… 아카데미 자체가 위험하다. 아카데미를 지키는 결계가 약해지니까. 요컨대 나는 움직일 수 없다는 거다. 알겠느냐?”

“가져오기만 하면 되는 거지?”

“안전하게. 사고는 치지 마라. 참고로 술식 인증 코드에 인식 방해 술식도 넣어놨다. 너희가 구태여 자신의 정체를 직접 밝히지 않는 한… 너희를 처음 보는 이들은 정체를 알지 못할 거다.”

“조용히 잠입하라는 거군요.”

“카소 아카데미의 학장과는 이야기는 이미 끝냈다. 너희는 전학생으로 가서 자연스럽게 가상현실에 접속한 뒤에 스사노오의 곡옥을 찾아 돌아오면 된다. 내가 다 계획을 짜 놓았으니 안심하거라.”

“잠깐. 설마 나도 전학생으로 잠입하라는 건 아니지?”

“왜. 무슨 문제 있나?”

“내 나이가 몇인데 학생이야?! 아카데미에 들어가자마자 애들이 눈치챌 거야! 차라리 교사로 해!”

“무리다. 이미 이야기는 끝났다. 임무를 위한 카소 아카데미의 교복도 준비해 뒀지. 이참에 한 번 입어 보거라. 저기서 입으면 된다.”

텐라이 나기사가 교복이 담긴 봉투를 건넨다.

“뭐?”

성하리는 기가 찬 듯 텐라이 나기사를 쏘아보았다. 성하리의 나이를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갑자기 교복을 입어보라 하면 짜증 날 만하지.

나는 그녀가 건네는 교복 봉투를 조용히 받았다.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기도 했기에 입어 보기로 했다.

“유진아. 진짜 이 할망구가 시키는 대로 할 거야?!”

“엄마. 가서 물건만 가져오면 되는 임무잖아. 그냥 좀 복잡한 심부름이라고 심부름.”

“그렇긴 한데… 이 할망구가 시키는 거라 믿을 수가 없어.”

“할망구라. 너무하구만. 그리고 일에는 언제나 변수가 있기 마련이다. 그 변수 때문에 네게 부탁하는 걸 잊지 마라.”

“변수라는 이름으로 만일의 사태를 넘어가려는 걸 모를 줄 알아? 뭐가 더 있는 거면 지금 확실히 말해!”

“카소 아카데미에도 마도정의 입김이 들어갔을 확률이 높다는 거? 그러니 최대한 스사노오의 곡옥을 찾아서 가져오면….”

그녀들이 목소리를 뒤로 하고 방에 들어가서 교복을 입어봤다. 검은색 교복에 붉은색으로 포인트를 준 교복이었다.

‘제법 괜찮네.’

갈아입고 방 밖으로 나오자 말싸움을 벌이고 있던 성하리가 날 쳐다봤다.

“와! 유진아! 잘 어울려! 역시 유진이야. 이런 옷도 멋지네.”

“엄마도 입어 봐.”

“나, 나도? 나는 나중에 입으면 돼.”

“난 지금 보고 싶어.”

“…방에 가서 입으면 안 될까?”

“지금 보고 싶다니까.”

“…알았어.”

성하리가 쭈뼛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기대해도 좋을 거다.”

갑자기 텐라이 나기사가 내게 말했다. 나는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무슨 뜻이야?”

“성하리의 건 실수로 치수가 작은 걸 가져온 것 같아서 말이다.”

“실수 맞아?”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잠깐만! 이거 크기가 왜 이래? 작잖아?!”

“아예 입을 수 없을 수준인가?”

“그, 그건 아닌데 좀 많이 작은 거 같은데?!”

“그거밖에 없으니 감안해라.”

나도 한마디 했다.

“엄마! 입었지? 빨리 나와!”

“아으… 진짜….”

문이 열리고 성하리가 나왔다.

나는 성하리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검은색 세일러 교복이었다. 내가 입은 것과 마찬가지로 붉은색으로 포인트를 줬다. 치마 끝이나, 소매 끝, 넥타이 등이 붉은색이다. 문제는 아까 텐라이 나기사가 말했던 대로 치수가 작다는 거다.

짧은 치마는 미니스커트 수준이다. 허벅지 절반을 아슬아슬하게 가린다. 조금만 움직여도 치마 안쪽이 보일 것 같다. 주름치마라 위험해 보인다.

불라우스의 경우 배꼽을 가리지 못했다. 안 그래도 옷이 작은 편인데 커다란 가슴 탓에 위로 올라간 것이다. 성하리의 매끈하고 탄탄한 복근이 드러났다.

“아, 진짜! 옷이 너무 작잖아!”

성하리가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그녀는 허벅지를 딱 붙이고 양손으로 치마와 블라우스 끝을 잡고 어떻게든 면적을 늘리려 한다.

텐라이 나기사가 슬쩍 나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운다. 나 또한 그녀에게 엄지를 세워줬다.

“대단하구만, 성하리. 누가 봐도 널 학생으로 생각할 거다. 좀 노는… 학생 말이다. 그 나이에 그 복장을 소화하는 건 쉽지 않은데…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구나. 감탄했다.”

“시끄러워, 할망구!”

감탄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성하리가 나이 치곤 굉장히 젊은 건 사실인데… 이렇게 교복을 입혀 놓으니 아예 내 또래처럼 보였다.

“엄마. 이 상태로 밖으로 나갈까? 학생 데이트라는 걸 해보자.”

“데이트…는 싫지 않은데… 아무리 그래도 이런 복장으로 나갈 수는 없잖아?!”

텐라이 나기사가 끼어들었다.

“아까 말하지 않았더냐. 인식 방해 술식도 코드에 넣어놨다고. 밖에 나가도 네가 성하리라는 걸 알아보는 이는 없을 거다.”

“그래도 안 돼!”

성하리는 단호했다. 결국 갈아입은 뒤에 아카데미 밖으로 나갔다. 나는 교복 코스플레이를 할 수 있는 러브호텔로 성하리를 데려갔다.

교복을 입고 내 위에서 허리를 흔드는 성하리의 모습은 배덕감을 사정없이 자극했다.

***

다음날.

한국과 일본의 교류전.

나는 교류전 마지막 경기에 나섰다.

내 상대는 신보 레이카였다.

녹색 머리에 에멜라드 눈동자를 가진 여자다. 엘프의 피를 이은 그녀의 귀 끝은 뾰족했다. 이그드라실 기사단의 최연소 단원이며 가슴은 E컵이다.

1학년 4반으로 나와 같은 반이며 입학 순위는 1위다. 그녀는 아라시 아카데미에서 손에 꼽히는 강자다. 아마 2~3학년 중에서도 그녀를 상대할 수 있는 자는 적을 것이다.

‘진심으로 싸우는 효도 유우키보다는 약하겠지만….’

그래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현재 교류전은 5대5로 동점…. 내가 이기면 마루한 아카데미가 이기고, 지면 아라시 아카데미가 이긴다.’

지켜보고 있는 한국인들의 눈이 살벌하다. 지면 욕먹는 거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귀찮다고 대충하는 건 더 최악이지.’

신보 레이카. 그녀는 대충 하는 인간을 싫어한다. 신보 레이카를 공략하려면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더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오로라 시뮬레이터를 발동합니다.

설치된 기계에서 마나가 쏟아져 나왔다. 공간이 늘어나고 현실에 가상이 덧입혀진다.

-배틀 카운트 다운을 시작합니다.

-5

-4

신보 레이카가 레이피어를 손에 들었다. 그녀의 주위로 바람이 몰아쳤다. 정령의 힘이 느껴진다. 자연스럽게 정령안(S)이 발동한다.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물들며 신보 레이카의 옆에 있는 바람의 중급 정령인 에이리스를 발견했다. 에이리스는 여성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모카.”

쿠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허공에 천둥 부엉이 모카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카는 허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신보 레이카와 에이리스의 시선이 모카에게 향한다. 무려 상급 정령이다.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나는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3

-2

-1

카운트 다운이 끝나자마자 질주했다. 모카는 단순히 시선 끌기용일 뿐이다. 진짜는 나다.

[가속을 사용합니다. 10분 동안 유지됩니다. 남은 스택: 6]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5]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4]

연속 2번의 찰나는 거리를 좁히는 데 사용했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3]

신보 레이카의 두 눈은 커져 있었다. 눈동자는 정확히 내게 향하고 있다. 찰나를 사용한 내게 반응했다는 뜻이다. 그것만으로 어중이떠중이들과 비교도 안 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지.’

뇌천류(雷天流) 뇌광(雷光).

최속의 검을 그녀의 목을 목표로 휘두른다. 오로라 시뮬레이터가 있기에 막지 못하고 당해도 죽을 일은 없다. 관객들이 보기엔 다소 심심한 전투가 될 것이다.

빛살처럼 뻗어간 검격은 신보 레이카의 바로 앞에서 멈췄다. 바람의 장벽이 검을 멈춰 세운 것이다.

‘이런. 마주했을 때부터 보이지 않는 바람의 장벽을 휘감고 있었나.’

정령안이 있다고 해도 바람의 움직임은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느껴지는 정령의 힘은 바로 옆에 있는 에이리스의 존재감으로 착각했다.

‘너무 얕잡아봤나.’

신보 레이카의 레이피어가 움직인다. 그녀의 긴 녹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낀다. 바람이 사방으로 퍼진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2]

심장을 찔러오는 레이피어를 피하며 모카에게 지시한다.

‘모카. 떨어뜨려.’

콰콰쾅!

신보 레이카의 정수리로 벼락이 떨어졌다. 에이리스가 허공을 헤엄치듯 움직이며 몸으로 번개를 막아섰다. 바람이 퍼지며 번개가 흩어진다. 에이리스가 비틀거렸다.

그 틈을 타서 신보 레이카가 움직인다.

‘빠르다!’

나도 반응하기 힘들 정도의 속도였다. 정령안으로 그 원리가 뭔지 바로 알아차렸다. 이 공간 전체에 흐르는 바람. 바람이 그녀를 밀어주며 가속화 시키고 있다.

빠르지만 단점이 있었다. 바람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전철처럼 정해진 길로만 움직일 수 있다는 거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1]

‘한 번 깔아둔 길은 에이리스가 없어도 어느 정도 유지되는 것 같고… 꽤 머리를 썼어.’

그녀에겐 운이 안 좋았다고 할 수 있다. 하필이면 상대가 정령력을 볼 수 있는 나라고 할 수 있으니까.

‘길에 남아 있는 정령력으로 바람의 방향을 유출할 수 있으니 이런 것도 가능하지.’

바람의 길에 올라탔다. 불어오는 바람이 뒤에서 나를 밀어준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0]

찰나를 사용해 그녀의 몸을 베고 지나간다. 그녀는 목이 베인 뒤에야 뒤늦게 자신이 베인 걸 알아차렸다.

“큭….”

레이카는 비틀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전투 종료.

-오로라 시뮬레이터를 종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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