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작물 속으로-1728화 (1,508/2,000)

< 1728화 > 1728. 아카데미의 구원자

쿠로사와 유이를 따라 3학년 A반에 들어갔다.

학생들의 시선이 나와 성하리에게 꽂혔다.

뭔가 이상했다. 보통 학생들은 떠들썩하기 마련이다. 선생이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그 이전까지 떠들어댄다. 그러나 이 교실은 들어오기 전부터 조용했다. 자리에서 벗어나 있다가 황급히 자리에 앉은 기색도 없었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학생들은 제 자리에서 착석해서 조용히 침묵하고 있다. 공부 중인 것도 아니다. 그들의 책상에는 아무것도 올라가 있지 않았다.

쿠로사와 유이는 이 반응이 당연하다는 듯이 교탁으로 향했다.

“갑작스럽지만 전학생이 왔어. 나도 방금에서야 학장님에게 들은 거니까 물어보지 마. 전학생은 하세가와 소타와 하세가와 아야. 쌍둥이는 아니고 이복… 남매라더라.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하세가와 학장님의 친척이야.”

“…….”

조용했다. 박수 소리 하나 없었다. 그렇다고 학생들의 반응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경계심 어린 눈으로 나와 성하리를 쳐다봤다.

“전학생 둘은 자기소개.”

쿠로사와 유이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하세가와 소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세가와 아야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성하리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예상한 반응이었다. 애초에 교복을 입는 것부터가 부끄러워했었으니까.

‘뭐랄까. 목소리와 표정이 딱딱해서 진짜 양아치 같네.’

오해받기 딱 좋다고 해야 하나.

나는 조용히 학생들의 반응을 살폈다. 나보다 성하리에게 더 많은 시선이 간다. 이해한다. 워낙 튀는 외모니까.

‘특히 남자 새끼들이 많이 쳐다보네.’

처음에는 기계 같은 놈들이라 생각했는데, 그건 또 아닌 모양이다.

“좋아. 소개 끝. 너희 둘은… 자리가 없네. 뭐, 책상과 의자는 나중에 갖다 놓으면 되지. 자, 수업 시작하자.”

드르륵!

쿠로사와 유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학생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가 두 줄로 섰다.

“너희도 애들 뒤에 줄 서서 따라와.”

“수업은 교실에서 하는 거 아닌가요? 혹시 실기 수업입니까?”

“아, 우리는… 설명하기 귀찮네. 따라 와. 알게 될 테니까.”

쿠로사와 유이의 태도는 교사로서 좀 그랬다. 하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듯이 그녀에게 불만을 터트릴 순 없었다. 괜히 대립했다가 정체가 탄로 나면 우리만 손해다.

우리는 줄을 서서 아카데미 학생들과 함께 움직였다. 물론 그중에서도 떠드는 소리는 하나도 없었다.

‘쿠로사와 유이가 강제로 통제하는 건 같진 않고…. 분위기가 왜 이래. 좀 넋이 나간 것 같잖아.’

이상함을 느낀 건 성하리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시종일관 주위를 살피고 있다.

쿠로사와가 우리를 끌고 간 곳은 지하였다.

차갑다.

냉장고에 들어온 것 같았다. 사방에서 냉기가 흘러나온다.

‘여긴….’

넓은 방에 동그란 무언가가 서 있었다. SF영화를 보면 나오는 캡슐 같은 물건이었다. 앞쪽은 활짝 열려 있다. 캡슐 옆 중간 부위에는 번호가 적혀 있었다. 학생들은 익숙하게 번호를 보고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 캡슐 안으로 들어간다.

“하세가와 소타는 17번, 하세가와 아야는 18번이야. 너희도 들어가.”

“…이것들은 뭐죠?”

성하리가 꺼림칙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카소 아카데미의 교육 방식에 대해서는 학장님에게 들었지? 이 캡슐들은 테라 시뮬레이터 접속기야. 가상현실 접속기라 보면 돼. 동시에 안전장치지. 가상 현실에서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도 캡슐이 너희의 몸을 보호할 거야. 자, 빨리 들어가. 수업은 가상현실에서 이뤄지니까.”

이번엔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선생님도 가상현실에 들어갑니까?”

“아니. 난 여기서 너희를 지켜볼 거야. 신호가 불안정해지면 긴급 정지하는 게 내 역할이야.”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가끔 가상현실에 지나치게 몰입해서 육체가 반응하는 경우가 있거든. 그런 경우를 대비하는 거야. 차를 운전하면 교통사고의 위험이 생기듯이, 테라 시뮬레이터에 들어가면 생길 수 있는 사고 중 하나야. 그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내가 있는 거니 걱정하지 말고 캡슐 안으로 들어가.”

쿠로사와 유리는 책상이 있는 쪽으로 가서 앉았다. 이런 일을 하는 건 한두 번이 아닌지 능숙하게 노트북을 두들긴다.

“엄… 아니, 누나. 캡슐로 들어가자.”

“누나?! 그, 그래. 유진… 아니, 소타!”

성하리는 입술을 실룩이더니 캡슐에 들어갔다. 나도 캡슐에 들어간다. 캡슐 문이 저절로 닫힌다.

나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다가 마키나를 소환했다.

‘마키나.’

영체 상태의 마키나가 뿅하고 나타났다. 잠이라도 자고 있었는지 작은 얼굴에는 졸음이 가득했다.

-무슨 일이야?

‘정신 차려. 정령 주제에 잠이나 자냐?’

나는 짧게 혀를 찼다. 마키나때문이 아니다. 마키나가 아무 저항 없이 소환된 것에 혀를 찬 것이다. 제대로 된 결계가 설치되어 있다면 마키나도 영향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런 기색이 전혀 없다. 카소 아카데미의 결계는 제대로 가동하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쩌면 이 장소만 특별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거 정령 차별이야! 이 퍼킹 레이시스트!

‘됐고. 주변이나 확인해 봐.’

-응? 아, 기계들이 많네. 우와. 인간들에게 너무 과분한 기계들이잖아.

마키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연신 감탄했다. 나는 눈앞에 뜬 알림창을 바라봤다.

「테라 시뮬레이터와 연결 중입니다.」

캡슐 표면에 뜬 알림창을 봤으나, 내가 뭔가를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담담히 기다렸다. 기다리는 시간은 어느새 30초가 넘어갔다. 마키나가 감탄할 정도의 최신 기술이라면 순식간에 끝나야 정상이 아닌가?

「연결에 실패했습니다.」

「테라 시뮬레이터와 연결 중입니다.」

「연결에 실패했습니다.」

「테라 시뮬레이터와 연결 중입니다.」

‘야, 마키나. 이거 왜 이러는 줄 알아?’

-응? 네가 거부하니까 그렇지.

‘내가 거부한다고?’

-보아하니 이 캡슐은 육체에서 정신을 꺼내 서버로 데려가는 기술이야. 창작물 속에서나 나오는 가상현실게임이랑 비슷한 기능이야! 아! 나도 하고 싶다!

‘정신? 절대 정신이 문제였나. 내가 허락하면 되는 건가?’

「연결이 확인됐습니다.」

「프로필 작성을 위해 육체 데이터를 수집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마키나. 넌 가상현실로 들어가지 못하는 거냐?’

-이건 인간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물건이야. 정령인 내가 억지로 들어가려 하면 오류가 뜰걸?

‘혹시 이 기계를 해킹해서 지배할 수 있냐?’

-그건 좀 힘들어. 아래쪽에 인공지능이 있어서. 관리자 권한을 탈취해서 인공지능에 명령은 할 수 있지만… 지배는 불가능해. 워낙 섬세한 인공지능이라 섣불리 개입하면 오류가 터질 거야.

해킹 스킬을 직접 써볼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미뤄두기로 했다. 마키나의 말대로라면 섣불리 해킹했다가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 해킹을 쓰더라도 캡슐 밖에서 쓰는 게 더 낫다.

‘이 테라 시뮬레이터는 오버 테크놀로지야. 해킹을 써도 지배할 수 있는 시간은 짧겠지.’

지금 당장은 정공법으로 간다. 가상현실이란 게 뭔지 궁금하기도 했다.

「육체 데이터 확인 중 특수 인증 코드를 발견했습니다.」

「프로필 권한을 학생에서 관리자로 변경합니다.」

「교육용 프로필을 삭제합니다.」

「프로필을 다시 작성합니다.」

-와! 아줌마도 옆에 있었잖아. 둘이 가상현실 게임 하는 거야? 저기 있는 사람들이랑 같이? 너무해! 나도 가상현실 게임 하고 싶은데!

‘이건 게임이 아니라 교육이야.’

-응? 잠깐 살펴본 거에 따르면 게임에 가까운데? 아, 이거 시간도 조작할 수 있네?

‘시간 조작?’

-사고를 가속해서 시간을 늘리는 거야. 네가 사용하는 찰나? 비슷한 기술이야. 뭐, 그 정도로 느리게 사고를 가속할 수는 없지만.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 그거 괜찮은 거 맞나? 부작용이 있을 텐데.’

-괜찮아. 정신과 육체가 분리된 상태니까. 괴리가 없으니 가상현실 내에서는 실제 시간이 느려졌다는 것도 느끼지 못할걸?

‘그렇군. 마키나 무슨 일이 생기지 않는지 지켜봐라.’

-싫어. 왜 그런 귀찮은 일을 내게 시키는 거야? 나 돌아가서 게임 할래.

‘하라면 해. 네가 게임을 하는 것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전부 내 덕분인 거 몰라?’

-쳇. 너 때문에 하는 거 아니니 착각하지 마! 아줌마가 걱정돼서 하는 거야!

마키나는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렇다고 멀리 간 건 아니다. 성하리의 캡슐 안으로 쓱 들어가 버린 것이다.

성하리가 무섭다고 질질 짤 때는 언제고, 이제는 나보다 성하리를 더 잘 따른다.

「프로필 작성이 완료됐습니다.」

「테라 시뮬레이터에 접속합니다.」

파앗.

거대한 빛이 나를 덮쳤다. 나는 빛과 함께 정신이 어딘가로 빨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이름: 하세가와 소타

소속: 카소 아카데미 3학년 A반

레벨: 1」

가장 먼저 눈앞에 보인 것은 알림창이었다. 3줄로 이루어진 상태창.

‘게임이라고 하기엔 너무 부실한데.’

그리고 주변은 탁 트인 초원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최초 접속을 확인했습니다. 튜토리얼을 시작합니다.」

「원하는 장비를 선택하십시오. 장비는 후에 바꿀 수 있습니다.」

장비 목록이 떠오른다.

검, 창, 칼, 활, 철퇴, 너클, 몽둥이 등등. 사슬낫같이 마이너한 것도 있었고, 최신 총기 종류도 있었다.

나는 가장 익숙한 칼을 선택해 손에 쥐었다.

힐끗.

손등을 확인했다. 가상현실에 들어오면 텐라이 나기사가 손등에 심은 인증 코드가 발동할 줄 알았는데, 아무 반응 없이 잠잠했다.

‘일단 시키는 대로 해볼까.’

「학생의 전투력을 확인합니다. 커리큘럼을 위한 일이니 성실히 협조 부탁드립니다.」

「모든 능력을 사용해 적을 상대하십시오.」

“적?”

눈앞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비열한 웃음을 짓고 있는 중년 남자였다. 중년 남자의 손에는 일본도가 들려 있었다.

중년 남자의 머리 위로 「C급 빌런 카즈히로」라고 적혀 있다.

‘몬스터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진짜 같은데. 혹시 진짜 빌런을 가상현실에 구현한 건가?’

놈은 나를 보며 천천히 칼을 뽑았다.

“이딴 애새끼가 내 상대라고? 써는 맛이 좀 떨어지겠는데….”

“지랄하네. 단숨에 썰어 죽여 주마.”

나는 칼을 휘둘러 돌진하려는 척하며 뇌전을 사용했다. 벼락이 떨어뜨려 놈을 죽일 생각이었다. 내 안의 마나가 요동치며 움직인다. 그러나 벼락은 일어나지 않았다.

‘뭐?’

당황하는 사이 놈이 먼저 움직여 내게 달려든다.

‘찰나!’

찰나가 발동되지 않았다.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