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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730화 (1,510/2,000)

< 1730화 > 1730. 아카데미의 구원자

환경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나는 도시의 분수대 앞에 서 있었다. 도시는 게임에서 나올법한 중세 판타지와 비슷했다. 그냥 중세 시대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깨끗했으니까.

“유… 소타! 왔구나!”

성하리가 먼저와 있었다. 현실에서 봤던 것처럼 교복 차림이었다. 아주 잘 어울린다.

“아야 누나. 먼저 와 있었네.”

아야 누나. 그 단어가 익숙하지 않은 듯 성하리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응. 튜토리얼이라고 했었나? 그게 빨리 끝났거든.”

“누나라면 별로 어렵지도 않았겠지.”

말을 잇던 나는 무언가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성하리의 허리춤에 검집이 걸려 있는 것이다. 성하리의 주 무기는 누가 뭐라 해도 창이었다. 나는 그녀가 다른 무기를 다루는 걸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누나. 그 칼은…? 창을 선택한 게 아니었어?”

“유진이 네가 칼을 쓰잖아.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서 한 번 골라봤어. 창이나 꽤 달라서 다루기 쉽지 않더라고.”

성하리가 웃으며 말했다. 물론 그 말을 100% 믿지 않았다. 성하리의 전투 센스라면 칼이라 하더라도 상당한 실력을 보여줄 것이다. 만류귀종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직업은 뭐야?”

“사무라이야.”

“…사무라이? 검사가 아니라?”

“내가 정한 게 아니라서 잘 몰라. 누구라고 해야 하지? 그 알림창이 멋대로 직업을 정하더라.”

“난 그냥 AI라 부르고 있어. 그럼 보조직업은? 보조직업은 선택할 수 있잖아.”

“마법사야.”

생각지도 못한 단어에 입을 벌렸다. 마법사. 성하리와는 아주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내 반응에 성하리는 멋쩍은 듯 뺨을 긁적였다.

“옛날에는 정령사랑 마법사가 되고 싶었거든. 정령사를 하려다가… 여기서도 정령들이 날 싫어할 수 있으니 마법사로 정했어. 소타. 너는?”

딱히 그녀를 탓할 생각은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남 말할 처지가 아니기도 하고.

“직업은 정령사에 보조직업은 프리스트야.”

“…프리스트? 혹시 믿는 종교가 있었던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그냥 한번 해보고 싶어서. 보니까 보조 직업은 하고 싶은 걸 하면 되는 것 같더라.”

그게 아니라면 굳이 선택권을 줄 이유가 없었다.

“으음. 그렇구나. 근데 마법은 어떻게 쓰는지 아니?”

“모르겠네. 파이어볼이라고 외쳐봐.”

“파이어볼!”

성하리가 망설임 없이 외쳤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민망한 상황에서도 성하리는 담담했다. 교복을 입는 건 부끄러우면서 이런 건 또 별로 안 부끄러운 모양이다.

“으음. 안 되네. 뭔가 조건이 있는 건가…? 유진아 너도 한 번 해봐.”

“힐!”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이런저런 것들을 실험하고 있을 때였다. 한 건장한 남성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의 머리 위에는 「전투 교관 하라다 준」이라는 녹색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

“전학생들이 떠들썩하군. 뭐라고 하는 건 아니다. 우울한 것보다는 훨씬 낫지. 내 머리 위의 이름을 보면 알겠지. 전투 교관인 하라다 준이다. 너희에게 규칙을 알려주마. 그 전에 테라 시뮬레이터는 얼마나 알고 있지?”

“가상현실이란 건 압니다. 이게 정말 과학적 기술만으로 만들 수 있는 건가요?”

내가 그에게 물었다. 하라다 준은 고개를 저었다.

“과학적 기술만이 아니다. 마법, 음양술, 초능력 등등 온갖 기술과 능력을 이용해 만든 것이 테라 시뮬레이터다. 무엇보다 텐라이 나기사 님의 능력과 슈퍼 인공지능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

“인공지능만으로도 엄청난 기술인 것 같던데요.”

“인공지능은 협회가 제공했다. 직접 만든 게 아니라 던전에서 인공지능의 핵을 얻었다고 하더군. 우리는 인공지능의 핵을 테라 시뮬레이터에 적용한 것뿐이지.”

“근데 이건 교육용이 맞나요? 이 가상현실은 마치….”

“마치 게임 같다고? 의도한 바다. 일반인들의 접근성을 고려해서 일부러 게임처럼 만들었다.”

“일반인들도 테라 시뮬레이터를 사용할 수 있나요?”

“물론 가능하다. 정부나 협회는 테라 시뮬레이터를 게임으로 상용화할 목적도 가지고 있다. 질문은 그게 다 인가? 기술 쪽 질문은 내가 아닌 쿠로사와 선생님에게 물어봐라.”

“저희가 뭘 하면 되죠?”

성하리가 그에게 물었다. 아무 말도 없이 여기에 내버려 두면 곤란할 뿐이다.

“이 세계, 테라는 너희 아카데미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세계다. 사회 교육도 포함되고 있지. 이 세계를 탐험해라. 게임을 하듯이 하면 레벨이 오를 거다. 직업 레벨과 보조 직업 레벨의 합이 너희의 성적이 된다. 뒤늦게 시작하는 전학생인 너희에겐 불리하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 감수해라. 시간 차이는 1대5. 현실의 1초가 이곳에선 5초다. 그래도 시간이 부족할 테니 열심히 하도록.”

“레벨이 있다면 스킬 같은 것도 있나요?”

내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히 있다. 지금 너희는 레벨 1일 테니 쓸 수 없는 스킬이 없겠지. 레벨을 올리면 자연스레 스킬을 배울 수 있다. 그 이전에는… 저기 커다란 비석 보이나? 저기서 보조 직업을 바꾸거나 기본 스킬을 배울 수 있다.”

진짜 가상현실 게임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

성하리는 어느 순간부터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듣기만 했다. 성하리는 게임 쪽으로 문외한이다. 그녀에게 있어 게임이란 테트리스 같은 캐주얼적인 것뿐이다. RPG 게임? 단어의 뜻도 모를 것이다.

‘저번에 같이 게임하자고 했을 때 고스톱을 말하는 걸 보면….’

RPG게임 같은 것엔 별 관심도 없었다.

“참고로 머리 위의 일므을 잘 봐라. 녹색 이름은 너나 나와 같은 진짜 사람을 뜻한다. 붉은색은 적대 대상. 하얀색 이름은 중립 NPC다.”

“중립 NPC를 죽이고 가진 걸 빼앗을 수 있나요?”

“빌런 같은 발상을 하는군. 중립 NPC를 죽여도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퀘스트를 통해 정당하게 얻어라. 그리고 그런 일을 저질렀다간 벌점을 받게 된다. 벌점이 쌓이면 아카데미에서 징계받으니 조심해라.”

“설명 감사드립니다.”

“아주 급한 일이 생기면 ‘아카데미 도와주세요!’라고 외쳐라. 한번 외치면 AI가 도와줄 테고, 세 번 연속 외치면 테라에서 강제로 접속 종료될 거다.”

“만약… 여기서 죽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레벨이 하락한다. 직업과 보조직업의 레벨이 1씩. 총 레벨 2개가 떨어지는 거지. 그리고 레벨은 말했다시피 너희의 성적이다.”

“아카데미는 1위는 레벨이 몇 입니까?”

“130이다.”

하라다 준은 모든 질문에 대답한 뒤에 접속을 종료했다. 그는 가상현실에 별 관심 없는 것 같았다.

“소타. 그 사람이 뭐라고 말했는지 이해했어?”

“누나는?”

“…중간에 뭐라고 말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 레벨이니 퀘스트니….”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돼.”

나는 손등을 쳐다봤다. 학장이 준 코코드를 떠올리자 손등에 마름모 문양이 나타난다. 마름모의 꼭짓점 하나가 빛나더니 문양이 빙글빙글 돌았다. 문양이 멈추고 어느 한쪽을 가리킨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이 정해졌다. 이 끝에는 스사노오의 곡옥이 있을 것이다.

“가기 전에 전투 교관이 말한 비석에 가서 기초 스킬부터 배우자.”

“그게 꼭 필요하니?”

“마법 쓰고 싶다며. 거기서 마법을 배울 수 있어.”

“빨리 가자. 유…. 소타.”

“자꾸 내 이름을 이상하게 부르네.”

“입에 안 붙으니 어쩔 수 없는걸.”

비석의 앞으로 걸어갔다. 정령사의 기초 스킬과 프리스트의 기초 스킬을 배울 수 있었다.

「정령 강화

레벨: 1

정령의 힘을 1% 강화한다.」

「힐

레벨: 1

마나를 소모해 대상의 생명력 10%를 회복한다.」

예상했던 대로의 스킬을 배울 수 있었다.

성하리도 마찬가지로 기초 스킬을 배웠다.

「칼의 집중

레벨: 1

칼을 사용할 시 공격력이 5% 상승한다.」

「라이트

레벨: 1

마나를 소모해 빛을 일으킨다.」

“라이트! 소타! 이것 좀 봐봐!”

성하리는 손바닥을 펼쳐 라이트 마법을 사용했다. 빛의 구체가 나타나자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좋아했다.

“엄마는 벼락도 떨어뜨릴 수 있잖아. 근데 그걸로 좋아하는 거야?”

“벼락은 떨어뜨려도 이렇게 빛의 구체는 못 만드니까.”

우리는 마름모 문양이 가리키는 대로 움직였다.

광장이 나왔다. 광장에는 나와 성하리처럼 교복을 입은 자들이 돌아다녔다. 머리 위에는 녹색 글씨로 그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웃고 떠들고 있군. 교실에 있을 때는 그렇게 조용하고 삭막하더니…. 완전 딴판이잖아.’

일단의 무리가 우리에게 다가온다. 남자 셋. 여자 둘로 구성된 무리였다. 나는 그들의 복장을 살폈다. 교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 위에 걸치고 있는 장비는 조금씩 달랐다.

‘로브를 입고 있는 놈은 마법사이고… 교복 위에 경갑을 입은 놈은 검사…. 여자는 활과 장갑을 꼈군.’

그들이 입은 장비로 직업을 유추할 수 있었다.

“전학생들.”

가장 키가 큰 남자가 입을 열었다. 턱은 뾰족하고 눈매는 가늘었으며 입술은 얇았다. 비수처럼 날카로운 인상이다. 머리 위에 있는 이름은 키쿠가와 케이이치.

“우린 너희와 하하호호 웃으며 지낼 생각이 없다. 이건 경쟁이다. 우린 이미 팀을 이뤘고, 너희를 받아들일 여유는 없다.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지.”

“아. 그러셔?”

“너희는 너희끼리 알아서 해라. 우리를 방해하면 죽이겠다.”

그들은 나와 성하리를 험악하게 노려보고는 몸을 돌려 사라졌다.

“우린 환영받지 못하는 모양이네.”

성하리가 씁쓸하게 웃었다.

“여긴 경쟁이 꽤 심한 것 같으니까. 어쩔 수 없지. 조금 달리 생각하면 오히려 잘 됐어. 우린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잖아.”

마름모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도시 밖으로 나온 우리는 몬스터과 마주했다.

고블린이었다.

“내가 처리할게.”

성하리가 가볍게 움직였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린 순간 고블린의 목이 베여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테라의 레벨은 육체에 영향을 주지 않아.’

아까 하라다 준에게 들은 말에 의하면 육체의 능력은 현실과 똑같다. 레벨이 올라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현실의 육체 단련을 꾸준히 해야 테라의 육체도 강해진다.

반대로 현실의 육체가 규격 외로 강하면 테라의 육체도 규격 외로 강해진다.

‘스사노오의 곡옥을 찾는 일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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