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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736화 (1,516/2,000)

< 1736화 > 1736. 아카데미의 구원자

“으응?”

던전에 들어온 성하리는 당황했다.

던전에 들어오자마자 사라진 입구는 그러려니 했다. 던전을 클리어하면 자연스레 나갈 수 있게 될 테니까. 그녀를 당혹하게 만든 것은 던전의 넓이였다.

지금껏 수많은 던전에 들어온 그녀였으나, 이처럼 넓은 던전은 처음이었다. 하늘은 드높고, 눈앞에 있는 땅과 산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B급 던전이라고 들었는데… 속은 걸까?”

그녀는 골치 아프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이렇게 속는 경우가 드물지만 있었다. 그녀가 현재 처한 입장을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려는 자들의 수작이다.

“요즘 조용했더니 날 아주 만만히 본 모양이야. 던전 밖으로 나가면 한바탕해야겠어.”

그녀는 창대를 어깨에 걸치고 앞으로 걸어갔다. 몬스터를 보이는 대로 족족 죽이다 보면 던전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녀가 마주친 건 몬스터가 아니었다.

사람들.

검은색 교복을 맞춰 입은 듯한 5명의 남녀가 성하리를 순식간에 에워쌌다. 성하리는 당황스러웠다. 검은색 교복을 보면 학생 같았는데 모두 장비를 들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썩 낯설지 않았다.

‘아카데미? 마루한 아카데미의 교복은 아닌데….’

그들의 중심에 있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유감스럽게도 성하리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였기 때문이다. 일 때문에 일본에 몇 번 가본 적 있긴 해도 일본어를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은 없었다.

‘…목소리가 날카로운 걸 보니 썩 좋은 내용은 아니네.’

남자들은 자신을 음흉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여자들은 경멸이 담긴 눈으로 쳐다본다. 뭐, 그 정도는 익숙했다. 지금 자신의 복장은 청바지에 탱크탑, 그리고 코트를 입고 있으니까. 복근이라던가 노출되는 부분이 남자의 시선을 끄는 것이다.

물론 익숙하다고 기분 나쁘지 않다는 건 아니다.

“미안한데, 내가 일본어를 못하거든? 너희들이 이 던전에 왜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난 내 일을 해야하니 비켜줄래?”

성하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딱 봐도 이들은 자신보다 어려 보였다. 교복을 입은 걸 보면 일본 쪽 아카데미 학생일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상대방이 한국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 것이다.

“영어로 할까? …영어로 뭐라고 해야 하지? 아. 번역기가 있으면 좋았을 텐데.”

정말 난처한 상황이었다. 그녀가 깊은 한숨을 내쉴 때였다. 남자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진다. 동시에 사방에서 적의와 살기가 터져 나온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바로 공격하는 건 아니잖아?!’

성하리가 지면을 발로 차며 위로 뛰어올랐다. 그녀가 있던 장소에 검이 떨어진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올가미처럼 생긴 불꽃 마법이 그녀의 뒤를 바짝 쫓는다. 성하리는 허공에 역장을 생성해 거리를 벌리며 창을 휘둘러 마법을 없앴다.

‘사람을 공격하는데 망설임이 전혀 없구나. 못된 녀석들이네.’

어쩌면 교복을 입은 것도 방심하게 만들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손에 힘을 주어 창을 꽉 쥐었다. 먼저 공격받았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창을 한 차례 휘두른다. 바람은 참격이 되어 주변을 휩쓸었다. 단 일격에 주위가 초토화되고, 근처에 있던 2명의 남녀가 그대로 베여 사망한다.

“뭐, 뭐야?”

공격한 성하리가 당황했다. 그녀는 그저 견제를 목적으로 창을 휘둘렀을 뿐이다. 그런데 2명이 죽었다.

“너희 너무 약하잖아.”

근데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더군다나 이해가 안 가는 것은 또 있었다. 자신의 힘을 봤음에도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동료의 죽음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냉철하게 자신을 공격한다.

죽음의 각오를 끝마쳤다? 아니,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아예 죽음 자체를 신경 쓰지 않는 느낌이다.

‘이상한 것들.’

성하리는 높이 뛰어올라 지상으로 창을 투척했다. 창은 유성처럼 떨어지며 충격파를 일으켰다. 뇌전이 담긴 충격파에 맞아 감전당한 적들은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전멸했다. 그리고 그들의 시체는 잿빛이 되어 사라졌다.

‘…대체 뭐야?’

승리했으나 찝찝했다. 상대가 너무 약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상한 던전으로 들어온 것 같은데….’

묘하게 불안했다.

***

이 세계에 온 지도 벌써 50일이 지났다.

현실 시간으로 하루가 지났다는 말이었다. 나와 성하리는 꽤 익숙해졌다. 다만, 스사노오의 곡옥은 아직 찾지 못했다. 손등의 문양이 가리키는 곳으로 나아가고 있긴 한데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 와서는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었기에 할 수 있는 건 없었지만.

‘앞으로 나아가려고 해도 제한이 생겼어.’

문양이 가리키는 곳은 미혹의 숲이라는 구역 너머다. 문제는 이 미혹의 숲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이 레벨 70 이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덕분에 나와 성하리는 몬스터 사냥과 퀘스트를 반복하며 레벨 올리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름: 하세가와 소타

소속: 카소 아카데미 3학년 A반

레벨: 68

직업: 정령사

보조직업 레벨: 41

보조직업: 프리스트」

‘2레벨만 올리면 돼.’

2~3일이면 오를 것이다.

나와 성하리는 카페에 들어와 항상 앉던 구석진 곳에 앉았다. 평소에 먹던 커피와 디저트를 시키며 대화를 나눈다.

「종말의 시간이 늦춰졌습니다.」

「남은 종말의 시간 94일.」

“누가 또 종말 퀘스트를 깬 모양이네.”

성하리가 알림창을 보며 말했다.

가상현실에 갇힌 건 나와 성하리뿐만이 아니었다. 가상현실에 접속해 있던 학생들. 대략 200명 정도가 함께 갇혀 있다. 가상현실 경력만 따지면 우리보다 더 전문가라 할 수 있는 그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니며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캡슐에 갇힌 채로 죽음을 맞이하고 싶진 않을 테니 열심히 하는 거겠지.”

“우리도 도와야 하는 거 아니니?”

“걔들이 우리를 받아 주겠어?”

학생들은 자기들만의 커뮤니티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 커뮤니티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들 입장에서 우리는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하필이면 우리가 온 날 테라 시뮬레이터가 이상해져서 이상한 의심까지 받고 있었다.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 우리라는 의심.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지메였다.

일본의 전통.

거기다 나와 성하리가 한국말로 대화하는 걸 들었는지, 우리가 재일교포라는 소문이 쫙 퍼져 있었다. 이지메 대상이 되기 좋은 요소들이 모인 것이다.

“하세가와!!”

누군가가 카페에 들어오자마자 소리쳤다. 나와 성하리는 입구를 쳐다봤다.

턱이 뾰족하고 가는 눈매를 가진 키쿠가와 케이이치가 우리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의 두 눈에는 우리를 향한 분노가 가득했다. 특히 성하리를 보는 눈이 심상치 않았다.

“저번에 말했을 터다. 우리 사냥터로 오지 말라고! 그런데 사냥터로 온 것뿐만이 아니라 우리를 공격해?!”

놈들이 씩씩거리며 다가온다. 적의와 살의가 가득하다. 나와 성하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전투를 준비했다.

일본어를 모르는 성하리는 뒤로 두고 내가 그들에게 말했다.

“뭔 헛소리야? 우린 니들 구역으로 간 적 없어.”

“저 여자! 네 누나가 우리를 죽였다! 아주 힘을 과시하더군? 그 아이템을 어디서 얻었는지 몰라도 먼저 규칙을 어긴 건 네놈들이다!”

그들이 무기를 뽑는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며 그들에게 으르렁거렸다.

“뭘 봤는지 몰라도 우린 퀘스트를 했어. 너희를 죽인 건 우리가 아니야. 그리고 우리가 너흴 죽였으면 이 카페에 우리가 너희보다 먼저 와 있을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포탈 스크롤이라도 썼겠지!”

“그딴 아이템은 들어본 적도 없어! 괜한 사람 잡지 말고 꺼져!”

놈에게 칼을 겨눈다. 성하리까지 칼을 뽑아 들자 놈들이 움찔거렸다. 성하리를 향한 경계심이 남달랐다.

“빌어먹을 조선놈! 이렇게 뻔뻔히 나올 거냐?!”

“우리가 아니라고 했다. 누구한테 당했는지 몰라도 좆같은 선동질은 하지 말아야지. 얌전히 있어 주니 병신으로 보이지?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니들 따윈 아무것도 아니야.”

“지금 네 태도는 우릴 모욕하는 거나 다름없다. 도게자를 박아도 부족한데 감히 우릴 협박해? 이러고도 너희가 무사할 것 같나?!”

“뭐, 공격이라도 하게? 덤빌 거면 빨리 덤벼.”

칼을 까딱거리며 놈을 도발한다. 하지만 그들은 바로 달려들지 않았다. 성하리의 눈치를 보며 싸울지 말지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뒤로 물러난다.

“…이 일은 기억해두겠다. 지금 물러난다고 해서 끝이 아님을 잊지 마라.”

놈은 한차례 으르렁거리며 일행과 함께 사라졌다.

나와 성하리는 무기를 갈무리했다.

“쟤들 왜 저러니?”

“몰라. 우리한테 당했다고 하잖아. 아까 엄마 눈치 보는 거 봤지? 엄마한테 제대로 당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던데. 혹시 뭔가 했어?”

“너랑 계속 같이 있었잖아. 내가 뭘 하겠니.”

성하리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해할 수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시비를 걸려고 거짓말을 하는 거면 이해할 수 있었다. 단순히 평소처럼 이지메를 하는 거니까. 하지만 이번은 좀 달랐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어.’

그래서 더 이상했다.

‘성질 같아선 다 죽여버리고 싶은데….’

성하리가 허락할 리 없었다. 그리고 죽여도 큰 의미가 없다. 마을에서 또 부활할 테니까. 죽인 놈들을 계속 죽인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 나와 성하리는 스사노오의 곡옥을 찾아야 했다.

“엄마. 당분간 저놈들을 조심하는 게 좋겠어.”

“응. 엄마도 같은 생각이야. 애들이 이곳에 갇혀 있어서 그런지 신경이 좀 날카로운 것 같네.”

그렇게 이틀 후.

우리는 레벨 70을 달성했고, 마을 꽃집 NPC로부터 퀘스트를 받았다.

“최근 미혹의 숲에 이변이 일어난 것 같아요. 몬스터들이 갑자기 안 보여요. 이유를 알아봐 주셨으면 해요.”

「미혹의 숲을 조사하라.

최근 미혹의 숲의 몬스터가 급감했다. 아린나는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 미혹의 숲을 조사해서 몬스터가 급감한 이유를 아린나에게 알려주자.

보상: 경험치, 아린나의 꽃.」

“갔다 와서 바로 알려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퀘스트를 수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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