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중국이 동맹을 깼다.
좋지 않았다. 모두 한국과 가까운 곳이었고, 손가락에 꼽히는 강대국이었다.
게인은 이를 악물며 다른 국가 수장들을 쳐다봤다. 다행히 일본이나 유럽 쪽 국가들은 동맹을 깰 생각이 없어 보였다. 유럽은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었고, 한국과 사이가 안 좋은 일본은 어떻게 해서든 미국에 들러붙을 속셈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어쩔 것이오? 그들도 적으로 간주할 것이오?”
프랑스 대통령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암울했다. 세계 대전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뜻을 모르겠소? 자기들에게 관여하지 말고 진행하라는 뜻이오. 즉, 한 발짝 떨어져 있겠다는 뜻이지. 특히 러시아는 외부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것이오.”
세계 대전.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대도시에 핵폭탄이 터지고, 전염병까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세계 대전이 일어날 여력이 없었다. 모두가 상멸하는 핵전쟁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게인은 목을 가다듬었다. 그는 침착함을 가장하며 목소리에 힘을 담아 말한다.
“우리 목표는 성유진이오. 성유진만 죽이면 세계의 평화와 질서를 손에 넣을 수 있소.”
“그 성유진을 죽이는 게 문제지요. 성유진은 초인입니다.”
성유진은 인간을 벗어났다. 수명을 제외하고서도 전투 능력이 괴물 수준이다. 특수부대 하나로는 성유진을 잡을 수 없다.
“핵폭탄! 핵미사일로 부산과 성유진을 싹 쓸어버리는 겁니다데스!”
일본 총리가 말했다. 그의 눈에선 살기가 번들거린다.
일본의 상황은 다른 어떤 국가보다 최악이었다. 교토에 떨어진 핵폭탄은 일본인의 트라우마 발작 버튼을 제대로 눌렀고, 그 상태에서 전염병까지 퍼졌다. 최소 일본인 3천만 명 이상의 일본인이 머리가 터져 죽었다.
“진정하시오. 한반도로 핵미사일을 쏘는 순간 중국과 러시아가 가만히 안 있을 것이오. 자기 집 근처에 핵미사일이 떨어졌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겠소? 무엇보다 핵미사일로 성유진을 죽일 수 있다는 보장이 없소.”
성유진이 가진 초능력으로 의심되는 공간 이동. 설령 공간 이동이 아니더라도 부산에 핵 방공호가 없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성유진 정도 되는 재산가라면 핵 방공호를 부산에 만들어뒀을 수도 있소.”
“그럼 어쩌자는 거요?”
영국 총리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꾹 참고 있던 게인 또한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답을 찾아야지! 우리가 모였는데 답이 나오지 않겠소? 자, 머리를 굴려보시오! 성유진을 막을 방법을 떠올려보란 말이오!”
“…….”
모두가 미간을 찌푸렸다. 성유진을 죽일 방법. 아니, 생포할 방법이 있었다면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다.
‘성유진을 죽이는 것도 힘든데 생포라니…. 하지만 성유진을 죽일 수는 없다. 반드시 생포해야 한다.’
성유진이 가진 힘과 불로의 비밀을 파헤쳐야 한다. 특히 불로는 반드시.
침묵은 10분 이상 이어졌다.
게인이 한숨을 푹 내쉴 때였다. 구석에서 조용히 침묵을 유지하던 부회장 중 한 명, 성수운 부회장이 입을 열었다.
“성유진을 잡을 방법이 있소.”
이 일의 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성수운 부회장의 발언. 게인을 비롯한 각국의 수장들은 성수운 부회장을 곱게 보지 않았다.
“아, 그렇소? 근데 그거 아시오? 그대의 말을 믿고 움직였다가 이 지경까지 온 것이오. 핵폭탄은 그렇다 치고 전염병까지 예상하지 못했지. 성수운 부회장. 발언을 책임질 각오는 되어 있소?”
“그가 이런 전염병을 만들었을 줄 전혀 몰랐소. …이렇게 말해도 믿지 않겠지. 나도 내 발언에 책임지겠소.”
“그럼 성유진을 처리할 방법을 말해보시오.”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선 괴물이 되어야 하오. 다시 말해서 괴물은 괴물만이 상대할 수 있다는 거지.”
“그대가 괴물이 되겠다는 뜻이오? 성유진처럼 강력한 능력이라도 가지고 있소?”
“하하하. 이 늙은이는 평범하오. 아버지의 능력을 조금도 물려받지 못했지. 하지만 여러분은 모두 괴물을 가지고 있지 않소. 뱀파이어.”
“……뱀파이어는 멸종했소.”
뱀파이어는 인간에게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존재였다. 인간을 잡아먹는 천적. 인간이 그 천적을 내버려 둘 리 없었다. 150년 전부터 시작된 뱀파이어 박해는 수십 년 전에 뱀파이어 멸종으로 끝났다.
이 세상에 뱀파이어는 없다. 역사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하하하! 우리 솔직해집시다! 여러분이 비밀리에 뱀파이어를 사육하고 실험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소! 그 강력한 뱀파이어의 힘을 쉽게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나 또한 마찬가지요. 뱀파이어들을 잡아다 늘리고 실험하기를 반복했지. 완전히 통제 가능한 뱀파이어! 그것들로 하여금 성유진을 죽이는 것이오!”
“…….”
뱀파이어에 관한 주제는 민감했다.
뱀파이어는 인류의 적. 여차하면 인류의 공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대로 있다면 자신들에게 답이 없었다.
“뱀파이어는 지존 성유진 병에 감염되지 않소.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요. 지존 성유진 병은 오직 사람만 감염되오.”
게인은 결심을 굳혔다.
“뱀파이어. 그냥 뱀파이어로는 성유진의 상대가 되지 않지. 미국이 은밀하게 육성 중인 뱀파이어 부대가 있소. 모두 진조로 만들었지.”
뱀파이어 진조.
뱀파이어가 같은 뱀파이어 5명의 피를 빨면 진조가 될 수 있다. 진조가 되면 초능력을 가지게 되고 수명도 늘어나며 일반 뱀파이어보다 신체 능력도 상승한다.
뱀파이어 진조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인간을 뱀파이어로 만들어 피를 빨게 하면 되니까. 미국의 경우 범죄자들을 뱀파이어로 만들어 실험했다.
“뱀파이어 전투 부대. 미국에는 총 6부대. 각각 20명씩 해서 총 120명의 뱀파이어 진조가 존재하오. 모두 우리의 통제하에 있지. 성수운 부회장의 의견대로 그들을 이용해 성유진을 공격하겠소.”
게인이 나서자 다른 이들도 말했다.
“…사실 우리 독일도 뱀파이어를 잡고 연구하고 있었소. 진조. 그들의 초능력은 뛰어나더군. 통제하에 있는 23명의 진조를 보내겠소.”
독일을 시작으로 영국, 프랑스, 일본 등등 대부분의 국가들이 뱀파이어를 잡아 연구하고 있음을 실토하며 지원을 약속했다.
그렇게 총 314명의 뱀파이어 진조가 파견되기로 정해졌다.
게인은 정수운 부회장을 노려봤다.
“그대의 뜻대로 되어가고 있군. 이 일의 책임은 그대가 져야 할 것이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오.”
“어떻게 말이오?”
“이렇게.”
성수운이 카메라 아래로 손을 내렸다가 들었다. 그의 손에는 붉은색 액체가 든 주사기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팔뚝에 주사기를 꽂고 밀어 넣었다.
“…그 주사기는 뭐요?”
“뱀파이어 혈청이오.”
성수운의 늙은 몸이 활력을 되찾는다. 흰 머리들이 검게 변하고, 자글자글한 주름 일부가 펴진다. 굽었던 그의 등이 뻣뻣하게 섰다. 노인이 중년인이 되었다. 길쭉한 송곳니가 그의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지금 뱀파이어가 된 것이오?”
게인은 어이가 없었다. 설마하니 인간을 포기할 줄이야.
“내 각오를 보여주기 위해서요. 내가 뱀파이어 전투 부대를 이끌고 성유진을 잡아서 그대들에게 바치지. 단, 대모는 넘길 수 없소.”
“대모라면… 김 비서를 말하는군. 김 비서도 불로자가 아니오?”
“대천 그룹의 대모이오. 그분은 우리가 모시겠소.”
모신다? 웃기고 있네. 붙잡아서 연구하려는 걸 누가 모를까.
하지만 게인은 말꼬리를 잡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성수운을 치워버릴 계획을 짜고 있었다. 성수운은 사냥개일 뿐이다.
“이게 마지막이오. 확실하게 마무리 지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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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이 퍼진 지 일주일이 지났다.
러시아는 내전이 터졌고, 중국은 내 밑으로 들어왔다. 그 외의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든 전염병을 통제하려 들고 있다. 세계 각국의 수장들은 모두 멸균실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감염되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 이 전염병의 최대 단점이지.’
하지만 전염병에서 안전할 수 있는 건 소수뿐이다. 전염병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빠르게 퍼졌고, 이미 전 세계의 인구 70% 이상이 감염된 상태다.
‘놈들은 군대를 이용할 수 없다.’
군인들도 감염됐다. 나를 적대하는 순간 머리가 터져 죽는다. 일반 시민들도 내게 반항하지 못한다. 내가 패악질을 부려도 공포에 떨면서 받아들인다. 머리가 터져 죽기 싫으니 어쩔 수 없다.
‘덕분에 부산에서 대천 그룹이 일하기 시작했지.’
모든 것이 정상화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시간 따위야 자동 진행으로 몇 번 돌려주면 그만이다.
‘일단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내게 반역한 국가 수장들의 모가지는 반드시 따야 해. 내 위엄을 위해서라도.’
똑똑똑.
“회장님. 김 비서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김 비서가 침실로 들어왔다. 나는 침대에 자빠져있는 부산 미녀들을 두고 일어났다
“김 비서가 심심했나 봐?”
은근한 목소리와 함께 김 비서에게 다가갔다. 부산 미녀들은 화끈했지만, 역시 김 비서에 비하면 부족한 감이 있었다.
“회장님. 성수운 부회장의 통신입니다.”
“…그 패륜아 새끼가 아직 살아 있었나? 연결해 봐.”
김 비서의 태블릿 PC 화면에 성수운이 나타났다.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했다.
“네가 성수운이라고?”
당장 내일 뒤져도 이상하지 않을 노인 대신 정정한 중년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유진. 나의 아버지. 이제 끝을 볼 때가 왔다.”
목소리도 변했다. 위협적이다. 동시에 기품 같은 게 느껴졌다. 그가 말할 때 입술 안쪽의 길쭉한 송곳니를 보았다.
“뱀파이어가 됐냐?”
“그냥 뱀파이어가 아니다. 진조지.”
아직 이 세상에 뱀파이어가 남아 있었나 보다.
별로 상관없다. 라고 생각하려다가 문득 전염병이 뱀파이어를 감염시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유진. 나는 일본 도쿄에 있다. 나를 죽이고 싶다면 도쿄로 와라.”
그는 NEW 도쿄 타워를 배경으로 서 있었다. 저렇게 대놓고 도쿄 중심에 있다고? 뱀파이어라 전염병에 감염되지 않은 게 확실했다. 인간이었다면 이미 머리가 터졌을 것이다.
“하하. 멍청한 새끼. 도쿄에는 핵폭탄이 있다. 잘 됐군. 도쿄랑 같이 뒈져라.”
주머니에서 기폭제를 꺼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버튼을 눌렀다.
놀랍게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지하에 있던 핵폭탄이라면 이미 제거했다. 다시 말하지. 나를 죽이고 싶다면 도쿄로 와라.”
나는 기폭제를 내다 버리고 슈퍼 블레이드를 손에 쥐었다.
“오냐. 지금 가서 죽여주마. 모가지 닦고 기다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