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형사]는 자동 진행을 시작했다.
이미 세계는 내가 제압한 시점에서 내가 주도적으로 뭔가를 할 필요는 없었다. 서울이 날아갔다고 해도 지방에는 대천 그룹의 기반이 되는 공장들이 즐비했기에 그것들만 갈무리해도 기반은 충분히 만들어진다.
필요한 건 사건이 수습될 시간이었다. 나머지는 김 비서가 잘 일해줄 것이다. 그녀의 수완이야 대천 그룹을 운영하며 이미 증명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하지만 일은 생각보다 잘 풀리지 않았다. 옆나라 일본이 성수운을 죽이려고 도쿄에 핵폭탄을 사용했다. 그리고 총리를 비롯한 권력자들이 전부 뱀파이어가 됐다.
여기까지면 괜찮다. 근데 이놈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성수운의 잔해, 괴물 고깃덩어리를 전염병 퍼뜨리는 것처럼 전 세계에 퍼뜨렸다. 일본 국민을 뱀파이어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시발. 이 새끼들이….’
뱀파이어가 되면 내가 퍼뜨린 전염병이 통하지 않는다. 그걸 노린 것이다. 많은 인간은 의외로 거부감 없이 뱀파이어가 되기를 희망했다.
‘인간을 포기하는 것보다 전염병에 머리가 터져 죽는 게 더 무서운 거지.’
일본 정부는 인간을 선별하기 시작했다. 뱀파이어가 될 인간과 인간으로 남을 인간. 뱀파이어의 주식은 인간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을 뱀파이어로 만들 수는 없다. 그 때문에 일본 국민들은 아우성치고 다른 국가들은 일본에 비난을 퍼붓고 있다.
허나 전 세계가 일본을 따라가고 있었다. 돈 좀 있다는 놈들부터 시작으로 자진해서 뱀파이어가 된 것이다. 그 속도가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다.
‘마음에 안 드는군.’
이래서는 내가 지배하기 힘든 세상이 온다. 인간들 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진 뱀파이어는 말을 안 들을 게 분명했다.
“회장님. 중국에서 핵미사일이 발사되었습니다.”
“미친 새끼들이. 돌았나. 봐줬더니 끝없이 기어오르는군.”
“타겟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입니다.”
공간 이동 주문서를 꺼내려던 나는 멈칫했다.
“중국이 일본을 공격해? 왜?”
“방금 중국 주석에게 연락했는데… 중국 주석은 자살했다고 합니다.”
“진짜 자살이야? 아니면 자살 당한 거야?”
“증거는 없습니다만, 자살 당한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뱀파이어 진조의 능력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습니다.”
“초능력 중에는 사람을 조종하는 능력도 있으니… 말이 아예 안 되는 건 아니군. 핵미사일은 어떻게 됐지?”
김 비서는 곧장 태블릿을 확인했다.
“…지금 막 일본으로 날아가던 핵미사일은 격추되었습니다.”
“미국은?”
“반응이 늦었습니다. 미국에 쏘아진 3,000개의 핵미사일 중 최소 70개 이상의 핵미사일이 미국에 떨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 지금 막 일본에서 중국을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쪽바리 새끼들. 이젠 핵미사일을 숨길 생각도 안 하는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배경에 일본이 있든, 중국의 독단적인 판단이든 핵미사일이 발사됐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핵전쟁이 시작되겠군.”
막을 수 없다. 내가 핵폭탄을 터트린 것과도 다르다. 개인 대 국가가 아닌 국가 대 국가. 그리고 내가 상대가 아니면 머리가 터질 일도 없으니까.
한국에 핵을 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날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다. 놈들은 내게 공간 이동 능력이 있다는 걸 확신했을 테니 내가 껄끄러울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에 있는 대천 그룹의 기반이 그냥 날려버리기엔 아까울 테지.
‘자위대 병사를 뱀파이어로 만들었다면… 가장 가까운 한국을 점령하고 싶을 테니까.’
내가 지금 여기서 평화를 주장해도 전 세계는 듣지도 않을 테고, 믿지도 않을 것이다.
“김 비서. 어떻게 해야 할까?”
“핵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이라고 해도 끝까지 핵에서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일반 부산에 있는 쉘터로 들어가시지요. 식량과 여자, 기타 분야 전문가를 선별해서 쉘터에 넣고 있으니 불편함을 없을 겁니다.”
“음. 역시 김 비서야. 일도 잘하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 넘어가기엔 빡치네. 한국이 가진 핵미사일은 몇 개야?”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건 약 2,500발입니다.”
“그래? 전부 쏴서 일본을 초토화시켜. 하나도 남김없이 없애버리자고.”
김 비서는 멈칫했다.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였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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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전쟁은 오래 가지 않았다. 시작의 중국. 그리고 일본, 한국과 미국, 러시아를 이어 핵미사일이 발사되었다. 전 세계는 패닉에 빠졌다. 제대로 된 사고를 하기엔 이미 말도 안 되는 전염병과 사람을 먹는 괴수,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뱀파이어 등의 문제가 너무 심각했다.
동아시아부터 시작된 핵전쟁은 전 세계로 퍼졌다. 전 세계가 황폐해지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쉘터에 앉아서 인공위성으로 바깥을 확인했다. 마의 도시 부산은 없다. 흙먼지만 가득하다. 전 세계에 떨어진 핵미사일은 한국에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솔직히 누가 쏜 건지 모르겠다. 중국에게 핵미사일을 처맞은 미국이 닥치는 대로 핵미사일을 쏴대고, 그에 러시아에서 쏴대고, 그에 유럽에서 쏴대고, 아프리카에서도 쏴대고… 아무튼 존나 많은 핵미사일이 지구에 떨어졌으니까.
“김 비서. 전 세계에 남은 인구는 몇이라고 생각하나?”
“핵방공호에 성공적으로 대피한 사람들이 있을 걸 감안해도… 100만 명 채 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미녀 100명이 알몸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마치 마약 중독자들 같았다. 세계가 이 꼴이 되다 보니 삶의 의욕이고 뭐고 다 사라진 것이다. 그나마 나랑 섹스할 땐 쾌락에 빠져 앙앙거리지만…, 그 이후에는 실 끊어진 인형처럼 뻗어 있다.
[30일이 지났습니다. 전염병이 사라집니다.]
‘전염병이 사라져도 감염된 몸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아. 뭐, 원래대로 돌아오더라도 세상이 끝장났는데.’
[뱀파이어 형사] 세계는 끝났다. 지금까지 이 세계에서 잔뜩 꿀을 빨아왔는데… 이젠 빨 꿀도 없다. 다른 세계에서 식량이나 기계를 가져와야 할 판이다.
“음.”
[뱀파이어 형사]는 끝이다. 이대로 머리에 총을 박든, 뇌전을 이용해 자기 뇌를 구워버리든 자살하고 엔딩을 보면 된다.
‘하지만 김 비서는?’
김 비서에게 정이 들었다. 나와 그녀는 100년 넘게 함께했다. 그녀는 내 아이만 72명 남았다. 이 세계에 미련은 없으나, 그녀에겐 미련이 넘쳤다. 그녀는 끝장난 세계에 유기하고 싶지 않았다.
“회장님. 저는 회장님과 함께할 것입니다. 그게 설령 끝이라고 하더라도요.”
김 비서가 말했다. 차분한 눈동자에서 거짓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는 진심으로 나와 끝을 함께할 생각이다.
“김 비서. 나는.”
콰아아앙!
갑자기 천장이 부서졌다. 쉘터는 지하 깊은 곳에 있다. 천장이 부서지면 당연히 흙이 떨어져야 정상이다. 그러나 천장 밖에는 선명한 밤하늘이 보였다.
“하하하! 여기에 숨어 있었나! 쿠소야로!!”
하늘에서 누군가가 툭툭툭 떨어진다. 대략 30명으로 보였다. 그 중심에 있는 놈은 아는 얼굴이다.
“…일본 총리. 살아 있었나?”
“네놈이 핵미사일로 일본을 초토화하기 전에 한국으로 넘어왔다. 섬보다는 반도가 더 나을 것 같더군. 그리고 그건 정답이었지. 문제는 식량이 없어서 동족을 포식해왔었는데… 여기 싱싱한 식량이 많군.”
총리는 널브러져 있는 여자들을 보며 히죽 웃는다. 성욕이 아니라 식욕이다.
나는 손에 슈퍼블레이드를 쥐었고, 김 비서는 품에서 특수 개조 권총을 꺼냈다.
“총리. 왜 그딴 병신같은 짓을 했지? 네 그 병신 같은 짓 때문에 세계가 망했다.”
“네가 날 비난하나? 세계 멸망의 원인은 너한테 있다. 너 때문에 일본이 망했고, 세계의 중심인 일본이 망해야 한다면 전 세계도 같이 망해야 한다. 그게 당연한 일이다.”
“지랄하네. 사실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잖아. 안 그래?”
“…그래. 이렇게 철저하게 망하게 될 줄은 몰랐지. 허나 아직 희망은 있다. 이 쉘터에 300명이 넘는 인간이 있다는 걸 이미 확인했다. 이곳을 거점으로 인류를 다시 부흥시킨다. 내가 세계의 시초로서 말이다! 신일본은 여기에 있다!”
타앙!
김 비서의 권총이 불을 뿜었다. 특수 탄환이 총리의 미간을 노린다. 총리는 여유롭게 고개를 까딱여 총알을 피했다. 총알은 허공에서 선회하며 총리의 뒤통수를 관통했다.
“유도 총알이라고…?!”
“대천 그룹의 기술력입니다. 지금에선 잃어버린 기술이지만요.”
“저 년, 저 년을 죽여라…!”
머리가 관통당한 총리는 비틀거리면서도 죽지 않고 손가락으로 김 비서를 가리켰다.
널브러져 있던 여자들이 벌떡 일어나더니 김 비서를 노린다. 자신 몸마저 돌보지 않는 광기가 느껴졌다. 군데군데 총리의 부하들이 섞여서 나를 노린다.
‘사람을 조종하는 초능력인가. 총리만 죽이면….’
총리가 일어난다. 분위기가 바뀌었다.
“성유진. 여기 있었군.”
놈이 조소를 짓는다.
“…성수운이냐?”
“찾는 데 제법 애를 먹었지. 아, 다른 인간을 찾고 있다면 포기해라. 이 세상에 다른 인간은 없다. 내가 다 죽였거든.”
나와 김 비서에게 달려들던 여자들이 갑자기 멈춘다. 그리고는 일제히 머리가 터졌다.
“네가 만든 전염병. 뇌파를 이용하더군. 다시 말해 뇌파만 조종할 수 있다면… 이렇게 인간들의 머리를 터트리는 건 식은 죽 먹기지.”
내 옆에 있던 뱀파이어가 말했다.
나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너. 대체 뭐냐?”
“뱀파이어. 난 뱀파이어 그 자체다. 어차피 이 세상은 끝났으니 내 손으로 직접 끝맺겠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내 근처에 있는 뱀파이어를 일격에 허리를 베었다. 그들은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어 바닥에 떨어지더니 고깃덩어리가 되어 녹아 사라졌다.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뱀파이어가 내 등 뒤를 노렸다.
“회장님!!”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5]
뒤에 있는 놈을 목을 베고 총리를 향해 달렸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그 목에 칼을 박아넣는다.
“소용없다.”
총리의 몸이 고깃덩어리로 변해 녹아내린다.
쿵!
위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너덜너덜한 옷을 입은 뱀파이어였다. 그 뒤를 따라 하늘에서 뱀파이어가 계속 떨어진다. 하늘을 보니 공간 일부가 일그러져 있다. 그곳에서 뱀파이어가 계속 튀어나오고 있다.
10마리. 30마리. 100마리.
“이제 좌절해도….”
말하는 놈의 머리를 반으로 쪼갰다.
파지지지직!
손에 뇌전을 모은다. 뇌전은 구체로 뭉쳐졌다.
뇌천류(雷天流) 뇌구(雷球).
뇌구를 정면에 던졌다. 뇌구가 터지며 번개가 사방팔방으로 휘몰아친다. 나는 번개가 김 비서에게 닿지 않게 집중하면서 말했다.
“김 비서. 공간 이동 주문서를 찢어. 나도 따라갈게.”
김 비서를 노리는 뱀파이어를 쫓아가 베어 죽인다.
“…예. 회장님.”
찌익.
김 비서가 공간 이동 주문서를 찢었다. 그녀의 몸이 사라졌다. 나 또한 품에서 공간 이동 주문서를 꺼내 찢었다.
우리는 하와이에 나타났다. 핵무기로 인해 엉망진창인 하와이는 그래도 아름다웠다.
“소용없다고 했을 텐데.”
공간이 일렁거리더니 그곳으로부터 뱀파이어가 튀어나왔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4]
나는 달려가 뱀파이어의 머리를 베었다.
바로 옆에 새로운 뱀파이어가 나왔다. 놈의 길어진 손톱이 내 팔뚝을 할퀸다. 나는 놈의 손톱과 함께 그 몸을 베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 끝은 정해져 있다.”
나는 혀를 찼다.
“쯧. 지긋지긋한 새끼. 바퀴벌레처럼 기어 나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