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한 심정과 달리 내 눈과 머리는 냉정하게 김 비서의 상태를 살폈다.
복부에는 성인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려 있다. 당연히 내장들도 정상은 아니다. 이건 최상급 포션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
심각한 건 목도 마찬가지다. 보이는 것과 달리 상처가 깊다. 끊임없이 피가 새어 나오고 있다.
“회장님….”
“김 비서!”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즉사했을 것이다. 그녀가 아직 살아 있는 건 생명의 구슬로 인해 강화된 육체 덕분이다. 허나 아주 약간의 시간만 더 줄 뿐이다.
그녀를 구할 방법이 있었다.
‘엘릭서. 만일을 대비해 가지고 있던 엘릭서를 쓰면 돼.’
그러나 망설이고 있었다. 이미 이 세상은 끝났다. 다른 인간이 살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설령 살아 있더라도 핵전쟁의 여파로 방사능에 찌든 이 빌어먹을 세계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간다는 말인가?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회장님. 전 괜찮습니다. 제겐 끝이지만, 회장님껜 끝이 아니겠지요. 저를 버려두고 가십시오. 원망은 하지 않습니다.”
“…김 비서. 역시 알고 있었나.”
내가 다른 세계에 갈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김 비서는 항상 내 옆에 있었고, 그녀의 머리는 비상했으니까.
“그동안 함께해서 즐거웠습니다.”
창백한 얼굴의 김 비서가 미소 짓는다. 나는 그녀의 미소를 보며 추억을 떠올렸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어땠더라?
김 비서를 처음 만난 건 자동진행 중인 아바타였다. 심지어 아바타는 생명의 구슬을 김 비서에게 건넸다. 그리 후회하진 않았다. 김 비서는 내 취향이었으니까.
김 비서는 아름다웠고 능력도 있었다. 대천 그룹이 유지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녀 덕분이다.
‘…근데 김 비서의 이름이 뭐였지?’
식은땀이 흐른다. 김 비서의 이름을 들었던 것 같은데 떠오르지 않는다.
“김 비서. 김 비서의 이름이 뭐였지?”
김 비서가 눈이 커졌다. 솔직히 나라도 어이가 없을 것이다. 100년 넘게 함께했는데 이름을 묻다니? 물어보는 나도 약간 쪽팔렸다.
“김하정입니다. 회장님. 저의 마지막 부탁은… 이름을 잊지 말아 주세요.”
점점 그녀의 의식이 사라지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결론을 내렸다.
“미안한데, 또 잊을 것 같아. 김 비서의 이름이 묘하게 입에 안 달라붙네. 뭐, 잊어먹을 때마다 물어보면 되니 상관없어.”
“회장님….”
인벤토리에서 엘릭서를 꺼냈다.
[엘릭서
모든 상처를 회복하고, 모든 상태이상에서 회복됩니다. 선천적인 장애와 질병 역시 모두 회복됩니다.
가격: 15,000 포인트
※주의
병에 담긴 엘릭서가 정량입니다. 정량을 한 번에 복용해야 제대로 효과를 발휘합니다.]
붉은 액체가 담긴 작은 병. 나는 뚜껑을 열고 그녀의 입에 흘려보냈다. 그녀는 액체를 삼킬 힘도 없었으나, 액체는 저절로 그녀에게 흡수되었다.
상처가 사라진다. 목에서 흘러나오던 피가 멈췄고, 구멍 뚫린 복부는 완벽히 회복되었다. 몸에 묻은 피만이 상처가 있었다는 증거가 되어줬다. 나는 그녀의 복부에 손을 올렸다. 매끈매끈하다.
김 비서가 상체를 일으켰다. 그녀는 어색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곤란하네요. 깨끗하게 포기하고 있었는데….”
“그냥 내 꼴리는 대로 했어. 죽고 싶었다면 미안하고.”
“죽고 싶다. 정도는 아니지만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죽음을 앞에 두니 마음 한편으로는 살고 싶더군요.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제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거지.”
“한국에 있는 쉘터를 돌아보면 남아있는 자원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자원도 자원이지만 기술도 문제야. 어느 세월에 발전하겠어.”
“기술이라면 괜찮습니다. 부산 쉘터에 있는 제 태블릿에 대천 그룹의 모든 기술 데이터가 들어가 있습니다. 기반만 갖춰진다면… 훨씬 빠르게 발전할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역시 노동력입니다.”
“노가다 일은 내 취향이 아니지만…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지. 내가 힘 좀 써야겠군. 그리고 노동력도 생산하면 돼.”
내가 김 비서를 보며 씩 웃었다. 나도 나지만 김 비서의 역할도 중요했다. 김 비서는 살짝 곤란하다는 듯이 웃었다.
“어쩔 수 없군요.”
“음. 생각해 봤는데 미국에 거점을 잡는 게 어때?”
“미국에 있는 쉘터에 대한 정보가 없습니다. 반면 한국에 있는 쉘터에 대한 정보가 있으니, 오히려 한국 쪽이 더 편리합니다.”
“한국으로 가자.”
우리는 공간 이동 주문서를 찢어 부산 쉘터로 돌아왔다. 부서진 쉘터와 시체들. 그중에서 쓸만한 것만 챙기고 인벤토리에서 자동차를 꺼냈다.
“우선 강원도로 가시죠. 강원도에 있는 쉘터 중에 쓸만한 기계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요.”
근처에 있는 쉘터에 들리면서 강원도로 향했다. 쉘터에는 사람이 없었다. 시체뿐이다. 모두 뱀파이어에게 당한 것이다.
강원도에 있는 쉘터를 확인했다. 꽤 쓸만한 기계 장비들이 있었다. 내친김에 서울 쪽 쉘터도 훑었다.
“다행히 방사능 정화기를 가동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전력은 내가 있으니 문제없어.”
내가 바로 걸어 다니는 인간 발전기다.
우리는 서울에 자리 잡았다. 서울 쉘터가 가장 컸기 때문이다. 그만큼 청소가 좀 힘들었지만.
밤이 되었다.
나와 그녀는 쉘터 밖으로 나와 황폐한 땅에 누웠다. 세계가 핵전쟁으로 망했는데도 밤하늘에는 별이 안 보이고 달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좀 미안하네.”
“네?”
“내가 성질 좀 참았으면 세계는 멸망하지 않았을 거 아니야. 그럼 김 비서랑도 지금쯤 따뜻한 침대에 누워 있었겠지?”
“아닙니다, 회장님. 성수운과 각국의 수장들은 욕심이 너무 많았습니다. 회장님이 양보하셨더라도 그들은 만족하지 않았을 겁니다.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을 테지요. 그거 아십니까? 회장님이 계셨기에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회장님은, 대천 그룹은 세계의 억제기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미국과 러시아가 충돌하는 걸 몇 번 막았던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내게 손해가 되니 전쟁을 막았을 뿐이다. 노동 기계인 중국도 얌전했고, 일본은 내 눈치만 살폈었다. 유럽의 경우 어느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은 완벽한 균형을 유지했다.
“김 비서가 그렇게 말해주니 좋은데.”
“아부가 아닙니다.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나는 김 비서의 손을 잡았다. 부드럽고 따뜻했다. 주위는 조용했다. 벌레 소리하나 들리지 않는다. 들리는 거라곤 그녀의 숨소리가 전부다.
“…회장님. 슬슬 일하시지요.”
“일?”
“네. 가장 중요한 일…. 노동력 생산 일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김 비서가 옷을 벗었다. 쉘터 밖인데도 불구하고 거리낌이 없었다. 뭐, 이 세계엔 우리 말고 아무도 없으니 당연했다.
언제봐도 그녀의 몸은 아름다웠다. 커다란 유방과 가느다란 허리와 순산형의 엉덩이까지. 알몸이 된 그녀는 한 손으로 자기 가슴을 주무르며, 다른 한 손으로는 게 다리를 한 상태로 사타구니 중심의 보지를 만졌다. 클리토리스를 짓누르고, 조금 젖다 싶으면 손가락을 보지에 거칠게 쑤셔댔다.
“흐응, 으응…. 준비 끝났습니다.”
그녀의 보지에서 끈적한 애액이 후두둑 떨어졌다.
“이제 회장님의 씨를 받아 여자아이를 출산하면 됩니다.”
“여자아이? 남자가 아니라?”
“힘든 노동은 기계가 대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노동자가 꼭 남자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원시시대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인구를 빠르게 늘리려면 여자가 많아야 합니다.”
“여자가 태어날지 모르잖아.”
“네. 그러니 태아성별확정기를 가장 최우선으로 만들어야지요. 3주 내로 만들 수 있을 테니 문제없습니다.”
“근친은 유전병이 문제라던데.”
“회장님의 정액은 특별해서 괜찮습니다.”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다.
[황금 정액 Lv. Master
‣감미로운 정액
정액의 맛과 향이 감미롭게 느껴집니다.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는 대상에게만 적용됩니다.
ON/OFF가 가능합니다. 현재 ON 상태입니다.
‣백발백중 정액
여성을 100% 임신시킬 수 있습니다. 그 반대도 가능합니다.
‣몸에 좋은 정액
정액은 보약과 같습니다.
‣황금 정액
태아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태아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효과. 이거 덕분에 기형아를 낳을 확률은 없다.
‘이 스킬을 얻고 난 뒤에 예쁘고 재능있는 애를 많이 낳았지.’
72번이나 임신한 김 비서는 말하지 않았음에도 내 정액의 특별함을 알고 있었다.
김 비서가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내 옷을 벗기고 거침없이 내려앉았다.
“아아아아아앙!”
우리는 아침 해가 떠오를 때까지 몸을 섞었다.
[특수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엔딩 업적, ‘아담과 이브’를 달성했습니다.]
[이제부터 죽지 않더라도 조건을 만족 시 해당 유희 세계의 엔딩을 결정 할 수 있습니다.]
[네버 엔딩 스토리를 획득합니다.]
[네버 엔딩 스토리
엔딩 세계에 다시 들어갈 수 있다.
가격: 10,000 포인트
※주의
한 번만 들어갔다 나올 수 있다. 다시 들어가려면 네버 엔딩 스토리를 다시 사용해야 한다.]
[뱀파이어 형사 유희 세계의 엔딩을 결정하시겠습니까?]
나는 알림창을 멍하니 바라봤다. 생각지도 못한 것을 얻었다.
‘특수 조건이 뭔지 알겠군. 아담과 이브이니… 둘이서 세계를 살아가는 거겠지. 어쨌든 엔딩을 결정할 수 있다라….’
본래 유희 세계의 엔딩을 보려면 내가 죽어야 한다. 하지만 이제부터 내가 죽지 않더라도 조건을 만족하면 엔딩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조건도 뭔지 짐작간다.
‘이야기. 이야기가 끝나면 엔딩을 결정할 수 있게 되는 거지.’
나는 고민했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뱀파이어 형사는 엔딩을 내자. 김 비서가 마음에 걸리지만… 이게 영영 끝이 아니니까. 네버 엔딩 스토리가 있으니 나중에 또 들어올 수 있어.’
김 비서의 입장에선 내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세계의 나는 아바타로서 행동하게 되겠지만.
‘지금 바로 엔딩을 내면 김 비서가 고생하겠지. 다른 세계의 물건들을 가져와야겠어. 특히 식물을 순식간에 성장시킬 수 있는 헤빌의 촉진제가 많은 도움이 될 거야.’
그 외에도 기계나 자동차 같은 게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돈 좀 깨지겠지만… 그동안 [뱀파이어 형사] 세계에서 얻었던 것들은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2주 동안 김 비서를 원 없이 따먹은 뒤에 [뱀파이어 형사]의 엔딩을 결정했다.
[뱀파이여 형사의 엔딩을 결정했습니다.]
[뱀파이어 형사 세계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엔딩은 저장되며 이후의 이야기는 자동진행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엔딩 보너스 4,100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경험치 정산을 시작합니다.]
[김하정의 인연 레벨은 7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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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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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90달성으로 모든 능력치가 3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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