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작물 속으로-1779화 (1,559/2,000)

나는 집에서 나와 가까운 던전으로 향했다.

이번에 얻은 것들을 시험하기 위해서다.

‘수련장도 나쁘지 않지만, 실전에서 사용하는 게 가장 좋지.’

협회 사이트에 들어가 경기도에 있는 던전들을 훑어봤다.

‘A급이나 B급은 혼자 가면 힘들고 귀찮아. 스킬을 시험해볼 목적이니 C급이 적당하지. D급 몬스터는 너무 약해서 제대로 된 시험이 안 될 테니까.’

베스트는 C급 폐쇄형 던전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 있는 모든 C급 폐쇄형 던전은 공략 중이었다.

‘길드놈들이 죄다 선점했군.’

C급 폐쇄형 던전은 마나를 각성한 헌터의 실전훈련으로 적합해서 인기가 많았다.

‘새로운 C급 폐쇄형 던전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건 에바지. 오픈형으로 가야겠다.’

다른 헌터들이 신경 쓰이긴 해도 계속 붙어 다닐 것도 아니니 조심하면 된다.

나는 C급 오픈형 던전을 스윽 훑었다.

인천 쪽에 괜찮은 C급 오픈형 던전이 있다. ‘정령 오크 군단.’ 이란 던전이다. 이름답게 C급 몬스터인 정령 오크가 나온다.

‘정령의 힘을 가진 오크라 C급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몬스터지. C급 헌터들이 꺼려하고, B급 헌터들은 B급 던전이 있는데 굳이 정령 오크를 잡을 이유가 없지.’

벌이는 나쁘지 않아서 돈이 급한 B급 헌터들이 자주 찾는 던전이다.

결정을 내린 나는 바로 차를 끌고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쿠이이이익!”

정령 오크를 만났다. 피부가 노란색이다. 빛의 정령 오크다. 이 오크의 특성은 속도.

노란 오크가 나를 보자마자 괴성을 지르며 달려든다. 평범한 C급 헌터가 집중하지 않으면 움직임을 놓칠 정도로 빠르다.

‘내 눈에서 벗어나기엔 이 속도론 어림도 없지.’

그냥 빠른 정도다.

눈으로 좇을 수 있고, 천천히 반응해도 늦지 않는다.

나는 멀뚱히 지켜보다가 놈이 지근거리에 도착했을 때 화련비도를 소환해 손에 쥐며 휘둘렀다. 빛의 정령 오크의 몸이 양단되어 쓰러진다. 나는 시체에서 마석을 챙기고 다른 정령 오크를 찾아 움직였다.

‘정령 오크의 수준은 대충 이 정도인가. 다음에 마주치는 놈에겐 유성검을 써봐야겠군.’

파란색 피부를 가진 얼음의 정령 오크와 마주했다.

“쿠익, 쿠이이이익!”

정령 오크는 손에 얼음 몽둥이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내게 살의를 내비치며 천천히 다가온다.

‘유성검.’

[유성검을 발동합니다.]

마나와 체력이 빠지더니 하늘에 검 한 자루가 소환된다. 내 얼굴은 안 좋았다. 생각보다 많은 마나가 소모되었기 때문이다.

유성검은 정확히 정령 오크의 머리로 낙하했다.

“쿠익?”

떨어지는 속도도 느렸다. 정령 오크가 아무렇지 않게 반응할 정도로.

정령 오크는 홈런 치듯이 머리 위에 낙하하는 유성검을 몽둥이로 쳐냈다. 유성검이 저 멀리 날아가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숨이 나오는 위력이었다.

뇌천류(雷天流) 만뢰(卍雷).

손바닥에서 쏜 만뢰가 정령 오크의 몸을 꿰뚫었다. 정령 오크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죽었다. 나는 복잡한 표정으로 정령 오크의 마석을 갈무리했다.

‘유성검의 위력이 생각보다 훨씬 별로야.’

법기로 사용할 때보다 위력이 떨어졌고, 마나 효율도 별로였다. C급 몬스터 하나 제대로 죽이지 못할 정도다. 이대로는 전투에 써먹기 힘들었다.

‘스킬 레벨이 낮아서일지도 몰라. 레벨을 올려봐야겠어.’

[유성검 Lv. 1

마나와 활력을 소모해 유성검을 만들어 지상으로 낙하시킵니다.

소모된 마나와 활력에 따라 유성검의 내구성, 크기, 개수가 정해집니다.]

[500포인트를 사용해 유성검 Lv.1의 레벨을 상승시키겠습니까?]

나는 아낌없이 포인트를 투자했다. 포인트는 또 벌면 된다.

새로 얻은 스킬을 약해서 이용할 수 없다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유성검 Lv. 6

마나와 활력을 소모해 유성검을 만들어 지상으로 낙하시킵니다.

소모된 마나와 활력에 따라 유성검의 내구성, 크기, 개수가 정해집니다.

‣속성부여

마나 속성에 따라 유성검에 속성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궤도제어

유성검의 방향을 일부 제어할 수 있습니다.]

[10,000포인트를 사용해 유성검 Lv.6의 레벨을 상승시키겠습니까?]

[포인트가 부족합니다.]

‘여기까지네.’

유성검을 레벨 6까지 올리는데 들어간 포인트는 총 17,000 포인트. 남은 건 8,771 포인트였다.

레벨 7까지 올리고 싶어도 포인트가 부족했다.

‘정령 오크 한 마리 안 나타나나?’

10분 정도 돌아다닌 끝에 얼음의 정령 오크를 발견했다. 놈은 나를 보더니 냉기를 내뿜었다. 냉기에 닿은 풀과 나무는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유성검.’

마나가 빠져나간다. 아까 사용했을 때와 비슷한 양의 마나다. 하지만 그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하늘에서 만들어진 유성검이 지상으로 낙하했다. 정령 오크는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콰콰쾅! 위력은 어찌나 강력한지 정령 오크의 몸을 박살 내고 작은 크리에이터를 만들었다. 바닥에 꽂힌 유성검은 사방에 벼락을 한번 내뿜고는 그대로 사라졌다.

“씨발. 이거지!”

정령 오크 따위가 감히 저항할 수 없는 힘!

나는 몇 번 더 유성검을 사용해보며 이것저것 실험해봤다. 가장 적게 마나를 사용한 경우 유성검은 단검처럼 작은 상태로 소환되었다. 크기뿐만이 아니라 위력과 속도도 크게 줄어들었다.

‘차라리 내가 직접 단검을 투척하는 게 더 강력할 지경이야.’

유성검이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하려면 어느 정도의 마나가 필요한지 대충 감이 잡혔다.

‘유성검의 장점은 마나와 활력, 그리고 집중력만 있으면 준비 동작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거야. 이거 전투 때 상당한 도움이 되겠어.’

이제 다음이다.

운명.

[운명

인연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인연이 있는 대상을 포인트를 소모해 소환합니다.

가격: 1,000 포인트

※주의

소환된 대상은 24시간마다 일정 포인트를 소모합니다.

한번 소환된 대상은 300일이 지난 후에 소환할 수 있습니다.

대상이 소환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1,000 포인트도 하지 않는 가격이야. 지금 써보자.’

소환 대상은 누구로 할까.

미령이 떠올랐다. 기회만 되면 현실에 오고 싶어 하는 그녀.

[운명을 사용해 미령을 소환하시겠습니까?]

가능했다!

미령은 인연 레벨 10도 아니다.

‘그게 아니어도 확정 소환으로 부를 수 있어. 포인트 1,000을 소모해야하지만… 이러면 굳이 운명을 쓸 필요가 없잖아.’

운명은 인연 소환, 랜덤 소환, 확정 소환과 다르다. 그 점을 잊어선 안 된다.

‘미령이 아닌 다른 사람….’

문득, 최근에 본 AV배우가 떠올랐다. 짧은 단발머리에 H컵을 가진 여배우였다. 똥구멍 오른쪽에 점이 있었다.

‘이름은 니가무라 니나’

[대상과의 인연이 없습니다. 소환할 수 없습니다.]

‘내가 일방적으로 그녀를 알고 있는 건 인연이 아니라는 건가. 아니, 잠깐. 현실 세계 인물이라 그런가?’

나는 운명의 정보를 읽어봤다. 현실 세계라거나 유희 세계 등의 제한은 없었다.

[운명을 사용해 한하린을 소환하시겠습니까?]

“……!!”

한하린을 소환할 수 있었다. 정말로 깜짝 놀랐다.

‘운명은 현실 세계든, 유희 세계든 상관없는 건가? 조건은 인연.’

나는 다른 여자들을 떠올렸다.

[운명을 사용해 유리아를 소환하시겠습니까?]

[운명을 사용해 멜리사를 소환하시겠습니까?]

[운명을 사용해 주서현을 소환하시겠습니까?]

[운명을 사용해 바알을 소환하시겠습니까?]

모두 소환할 수 있었다. 정확하게는 소환을 시도할 수 있었다. 대상이 거부할 수 있다고 하니까. 대상이 거부하면 포인트만 날리는 꼴이다.

‘이거 혹시….’

[운명을 사용해 김하정을 소환하시겠습니까?]

“…….”

김하정.

[뱀파이어 형사] 세계의 김 비서.

엔딩을 진행 중인 그녀도 소환이 가능 했다.

‘엔딩을 진행 중이기 때문에 소환이 가능한 건가? 그럼… 엔딩이 완전히 끝난 세계의 인물은?’

[운명을 사용해 모르가나를 소환하시겠습니까?]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모르가나는 [그대를 위한 폭군] 세계의 내 여자다. 그 세계는 내 손에 멸망하는 것으로 끝장났고, 모르가나는 멸망 전에 사망했다.

‘그런 모르가나를 소환할 수 있다는 건… 일시적으로 되살린다는 뜻인가.’

죽었을 뿐만이 아니라 끝나 버린 세계의 여자.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녀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되기 시작했다.

‘모르가나를 소환한다.’

[운명을 사용해 모르가나를 소환합니다.]

[모르가나의 24시간 소환 비용은 11,550 포인트입니다.]

[포인트가 부족합니다. 모르가나를 소환할 수 없습니다.]

기대가 크니 실망도 컸다.

‘24시간 소환 비용이 11,550 포인트? 장난하냐!’

짜증이 났다. 왜 이렇게 비싼지 알 수 없었다.

‘이유를 알아야겠어. 한 번 시험해보자.’

[운명을 사용해 미령을 소환합니다.]

[미령의 24시간 소환 비용은 9,735 포인트입니다.]

[포인트가 부족합니다. 미령을 소환할 수 없습니다.]

미령은 모르가나보다 더 싸다. 이유가 뭘까.

‘…강함 때문인가? 모르가나랑 미령이 싸우면… 미령이 더 강할 텐데. 강함 때문이 아닌가?’

[운명을 사용해 위유를 소환합니다.]

[위유의 24시간 소환 비용은 131,510 포인트입니다.]

[포인트가 부족합니다. 위유를 소환할 수 없습니다.]

위유는 포인트가 자릿수부터 달랐다. 아무래도 24시간 소환 비용의 가치는 강함이 맞는 것 같았다.

‘아니지. 혹시 모르니 한 번 더 테스트해보자.’

[운명을 사용해 게인 케이지를 소환합니다.]

[게인 케이지의 24시간 소환 비용은 65 포인트입니다.]

[게인 케이지가 소환에 응합니다.]

눈앞에 금발의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

“소환? 이게 무슨 일이… 헉! 퍽킹 쉣! 네놈은 성유진?!!”

게인 케이지. [뱀파이어 형사] 세계의 미국 대통령. 내 손으로 직접 죽이지 못한 놈이었다.

“네놈은 내 손으로 죽이고 싶었다! 죽어라, 이 새끼야!”

놈에게 칼을 휘두른다. 놈은 기겁하며 뒤로 뛰었다.

“어떻게 된 건지 몰라도 내가 순순히 당할 것 같나?! 나도 뱀파이어 진조다! 내가 가진 초능력으로 네놈을.”

[시간 가속을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0]

세계가 느려진다. 뒤로 물러나는 케인 또한 예외는 아니다. 나는 케인에게 접근해 칼을 휘둘렀다. 놈의 허리를 베었다. 그러나 세계는 여전히 느리게 흘러간다.

‘뱀파이어가 되면 뭐 해. 내 칼에 반응도 못 하는데. 아니, 눈동자가 움직이는 걸 봐선 조금 반응은 하나?’

그 눈동자도 내 잔상을 쫓는 것 같다. 나는 남은 시간 동안 칼을 계속 휘둘렀다. 놈의 목을 제외한 몸통을 조각조각 낸다.

그리고 시간은 원래대로 돌아온다.

[시간 가속이 끝났습니다.]

놈이 몸이 피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머리만 남은 놈은 의문과 함께 경악했다. 머리만 남아도 살아 있는 건 뱀파이어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잠깐이다. 목이 없는 이상 뱀파이어 진조라도 죽는다.

“지금 그 머리도 쪼개주마. 씨발. 그 세계가 핵전쟁으로 멸망한 건 전부 네놈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짜증 나는군!”

칼을 휘둘러 게인의 머리를 반으로 갈랐다.

[게인 케이지가 사망합니다.]

[앞으로 300일 동안 게인 케이지를 운명으로 소환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은 300일 뒤에 또 죽일 수 있다는 건가.’

참고로 성수운을 소환하지 않은 건 포인트를 많이 소모할 것 같아서다. 놈은 좀 강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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