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형! 정령옥 몇 개 더 있다고 했죠?! 제가 구입할 수 있을까요?!”
눈앞에서 정령이 강해지는 걸 목격했으니 눈이 돌아갈 만했다. 계약한 정령이 강해진다는 건 자기 자신이 강해진다는 말과 똑같으니까.
“몇 개 더 줄까?”
“아무리 그래도 공짜로 받을 수 없어요. 구입할게요.”
“7개 더 있어. 넌 돈은 있고?”
정령옥은 수십 개 있다. 랜덤 뽑기에서 자주 나오는 물건이라 쌓인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너무 많으면 이상한 오해를 살 수 있으니 줄여 말했다.
“7개나요?”
박수호가 힐끗 정령을 바라봤다. 정령은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정령옥을 기다리고 있다.
“…마야가 그거 전부 먹으면 지금보다 더 강해지겠죠?”
“봤으니 알겠지. 정령옥은 정령에게 있어 영약이나 다를 바 없어.”
정령이 강해질수록 정령옥의 효과는 줄어든다. [아카데미 구원자]의 최상급 정령들에겐 정령옥은 맛있는 음식 수준에 불과해진다. 지금 박수호의 정령에겐 크게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가격도 영약 수준이겠네요.”
“그래. 그냥 받을 생각 없으면… 빌려줄까?”
“유진 형에겐 받은 게 많아서 또 받긴 좀 그러네요. 그렇다고 가진 돈은 많이 부족하고….”
박수호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가 말한다.
“유진 형. 필요한 물건 없으세요?”
“딱히 없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형은 물욕이 별로 없으니까요.”
박수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물욕이 없다? 확실히 성욕에 비하면 물욕은 좀 떨어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지고 싶은 건 가지는 성격이다.
‘그러고 보니 박수호한테 준 게 좀 많네.’
박수호에게 빚을 지게 한다고 공짜로 준 물건들이 몇 있었다. 내 입장에선 정말 별거 아닌 것들이지만, 박수호가 구하기 힘든 물건들. 어떻게 보면 박수호가 나에 대해 멋대로 착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유진 형. 저랑 같이 문신 세계로 가시지 않을래요? 거기에 마나 수련장이 있어요. 정령옥의 대가로는 부족하지만… 마나 수련장을 사용하게 해드릴게요. 제가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마나 수련장 덕분이에요.”
“문신 세계에는 그런 것도 있어?”
“원리는 모르겠는데 마석을 사용하는 시설이에요. 고대 유적지에서 발견했어요.”
어떤 수련장인지 궁금하긴 했다. 게다가 오랜만에 문신 세계에 들어가는 게 아닌가.
“이용하게 해주면 나야 고맙지.”
“일단 던전 밖으로 나가서 우리 집으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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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호는 여전히 옥탑방에서 살고 있었다.
“C급 헌터면 돈 좀 벌지 않아? 옥탑방보다 더 좋은 곳에서 살 수 있을 텐데.”
“아. 그렇긴 한데… 개인적으로 이 집이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요. 아랫집에 사는 주인 세대도 친절해요. 가끔 음식을 나눠줘요.”
옥탑방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계단 쪽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파자마를 입은 귀여운 얼굴의 여자였다.
‘대학생이라고 하기엔 너무 풋풋하네. 고등학생인가.’
미래가 보장된 얼굴이긴 한데 가슴이 너무 작았다. 대한민국 평균인 A컵. 내 안목으로 보자면 이 녀석의 가슴이 커질 가능성은 0% 수렴에 한다. 안타깝도다.
“수호 오빠! 엄마가 김치찌개 갖다주래요!”
“어, 정말? 수정아, 고마워. 어머니에게도 감사하다고 전해드려.”
박수호는 웃으며 김치찌개 냄비를 받아들였다.
“옆에 분은 친구예요?”
“대학교 선배이자, 친한 형이야.”
“성유진이야.”
“한수정이에요. 이만 가볼게요.”
한수정은 인사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떠나기 전에 아쉽다는 듯이 박수호를 보는 걸 놓치지 않았다.
‘박수호에게 마음 있군.’
정작 박수호는 아예 관심 없는 듯한 눈치다.
“저 애, 자주 올라와?”
“네. 일주일에 한 번은 먹을 걸 갖다줘요. 그 외에도 대화도 자주 해줘서 항상 너무 고맙죠. 동생 같다고 해야 할까요. 아, 형도 김치찌개 좀 나눠드릴까요?”
“됐어. 내가 입맛이 까다로워서 많이 못 먹을 거야.”
방 안에 들어간 우리는 바로 문신 세계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들어온 문신 세계, 박수호의 영지인 베로프린은 전에 왔을 때보다 훨씬 더 발전해 있었다.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활기찼다.
겉보기엔 중세에 있을 법한 평범한 도시 같지만, 자세히 보면 현대적인 요소들이 있었다. 하수구라던가, 유리 창문이라던가. 도로 한복판에 대놓고 놓여 있는 트럭이라던가.
“트럭? 포크레인?”
“사람의 힘으로 공사하는 건 한계가 있더라고요.”
“마법사가 있잖아.”
“대부분의 마법사는 천한 일이라고 안 하려 해요. 억지로 시키면 하긴 하는 데 불만을 가지더라고요. 그렇다고 용병 마법사를 고용하자니 수지타산이 안 맞고…. 중고로 싸게 사서 가져왔어요.”
“취득세 같은 게 있을 텐데?”
“…이거 비밀인데 괜찮은 브로커를 통해 구했어요. 어차피 지구에서 사용할 건 아니라서요.”
설마 그 성실한 박수호가 불법을 저질렀을 줄이야. 의외라 좀 놀랐다.
‘음. 이 녀석도 마냥 성실한 건 아니지.’
박수호와 함께 걸으며 발전한 도시를 구경했다.
“저 집들 콘크리트로 만들었어?”
“네. 의외로 재료가 간단해서 이 세계에서도 만들기 쉽더라고요.”
“발전기도 있네. 마석 발전기인가.”
“네. 발전기가 있으면 여러 가지로 편리하거든요. 뭐, 마법이 있는 세계다 보니 크게 센세이션을 일으키진 못했지만요.”
벽에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극장 포스터였다.
“로미오와 줄리엣?”
“아. 이 세계는 문화생활이 많이 발달 안 했더라고요. 그래서 음유시인들을 불러 모아 연극을 알려줬는데… 이게 입소문을 타더니 다른 도시 사람들이 연극을 보려고 찾아올 정도더라고요. 덕분에 도시 수익이 많이 늘었어요.”
“이상하네. 이 도시도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야. 낯설지 않다고 해야 할까.”
“마초 소울 게임 해보셨어요?”
“아! 마초 소울에 나오는 도시랑 판박이구나!”
“네. 이전에 저택을 습격당한 적 있는데 그때 저택을 포함해 도시 일부가 반파돼서 아예 갈아엎고 도시를 만들었어요.”
“돈과 시간이 장난 아니게 들었을 텐데.”
“습격한 놈들의 뒤에 귀족들이 있었거든요. 절 견제하려고 보낸 습격이었어요. 공화재판부에 재판 신청하는 대신 돈으로 합의 봤어요. 제겐 더 이득이었어요. 도시가 완성되고 나서 신체 능력이 더 강해졌거든요.”
신난 박수호가 자랑하듯 떠벌렸다. 도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작은 마을을 어엿한 도시로 키워가는 재미를 나도 아니까.
‘옛날 생각나네. 백환 세계의 내 도시도 이렇게 쑥쑥 발전했는데.’
웃으며 돌아다니는 시민들이 보였다. 시민들은 모두 즐거워 보였다. 박수호를 보면 고개 숙여 인사했다.
꺄하하하하! 어디서 애새끼들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영주님이 행차하시는데 애새끼들이 경박하게 웃음을 터트리다니. [백환] 세계의 내 도시에선 상상도 못 할 짓이다.
‘박수호. 이 새낀 좀 멍청한 것 같네.’
도시에 미녀가 많았다. 나라면 이 미녀들을 은밀히 부르거나, 세금을 건수로 잡아 협박한 뒤에 따먹어서 임신시킬 것이다. 내가 즐겁고, 미녀들도 즐겁고, 도시의 인구까지 늘어나니 일석삼조 아닌가.
저기 주점에는 웃고 떠드는 드워프들이 보인다.
세상에 맙소사. 드워프가 대낮부터 술을 처먹고 있다니? 저 최상급 노예 종족은 최소 하루 16시간을 부려 먹어야 본전을 뽑을 수 있다. 술은 작업 끝난 뒤나, 가끔 내가 기분이 좋을 때 하사하면 된다.
‘영지물 선배로서 조언 좀 해줘야겠어.’
대놓고 말할 수는 없었다. 훈수는 짜증 나는 법이고, 박수호의 성격상 내 방식을 꺼릴 테니까.
하지만 엉망진창인 영지를 보니 훈수를 참기 힘들었다.
“수호야. 여기 세금은 얼마냐?”
“세금이요? 이전에는 40%였는데 지금은 20%에요.”
“20%? 아! 나머지 80%가 세금이구나.”
“하하. 형. 80%면 사람들이 도시를 탈주했을 거요.”
“…진짜 80%가 아니라 20%라고? 그걸로 도시가 돌아가?”
박수호. 그는 미친 새끼인가. 어떻게 20% 세금으로 도시를 운영하지? 미녀 노예만 사도 예산의 40%는 그냥 증발할 텐데.
“당연히 돌아가요. 뭐, 바로 도시로 재투자해서 얻는 건 별로 없지만요.”
“후우. 돈은 많으면 좋아. 내가 돈 버는 방법 좀 가르쳐 줄까?”
“오. 뭔데요?”
“카지노. 카지노를 여는 거야.”
도박.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고리대금업. 개돼지를 쪽쪽 빨아먹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나는 이걸로 꽤 재미를 봤다.
박수호는 머리가 나쁘지 않으니 바로 고리대금업도 떠올리겠지. 유대인이 돈이 많은 이유도 고리대금업자라서 그렇다.
“네? 아. 라스베가스같은 카지노요? 초호화 호텔까지 지으면 귀족들한테서 돈을 뜯어낼 수 있을 테니….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요. 문제는 예산이라 지금 당장 카지노를 지을 순 없어요.”
똑똑하다는 말 취소다. 이 새낀 좀 많이 모자란 것 같다. 최고의 사업 아이템을 하나 흘려줘도 이딴 식으로밖에 생각을 못 하다니….
“저 드워프들 말이야. 대낮부터 술을 빠는 건 좀 그렇지 않냐?”
“드워프들은 술이 연료예요. 연료. 술을 먹으면 일을 더 잘하더라고요.”
병신인가. 술이 어떻게 연료일 수 있나.
노예의 연료라고 하면 당연히 채찍질이지. 채찍이 부족하면 독방 감금도 괜찮다. 3일 정도 독방에 넣어두면 제발 일 시켜달라고 빈다. 작업 효율이 50%는 올라가는 것이다. 그리고 틈틈이 드워프를 교미시켜 임신시켜야 한다. 그래야 드워프 노예가 늘어날 테니. 정기적으로 돼지 발정제를 타 주는 것도 좋다.
마침 엘프 무리가 지나간다. 엘프는 예쁘다는 상식이 이곳에도 존재하는 듯 하나같이 미모가 뛰어났다.
“엘프네. 남녀 할 것 없이 몸이 좋아.”
“맞아요. 태어날 때부터 인간보다 힘이 좋더라고요. 귀까지 좋아서 엘프는 천부적으로 뛰어난 사냥꾼이에요.”
머저리인가? 엘프가 천부적인 사냥꾼? 그거 또 신박한 개소리군. 엘프는 천부적인 매춘부다.
‘여자 엘프는 내 개인용 창부, 남자 엘프는 남창.’
엘프는 남창으로 굴려도 돈을 벌 수 있다. 중세 시대는 기본적으로 남성우월주의가 깔려 있어서 게이가 많으니까. 종교적인 이유로 게이짓이 금지되지 않은 상태면 돈을 존나 많이 벌 수 있다.
‘어우, 머저리 새끼. 내가 너였으면 베로프린은 이미 대도시가 되고도 남았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