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작물 속으로-1782화 (1,562/2,000)

곧 박수호의 저택에 도착했다.

저택을 본 난 내 눈을 의심했다.

“이게 저택?”

“네. 끝내주죠?”

“어, 어어. 시, 실용적이고 좋네.”

3층짜리 저택. 평수로 따지면 200평은 될까 말까.

‘이런 쥐좆만한 저택이면 영지민들이 개무시할 텐데. 박수호 이 새끼는 지가 쥐좆이라 쥐좆만한 저택을 지었나.’

영주의 권위가 심히 의심스럽다. 다른 귀족들이 이 저택을 본다면 대놓고 무시할 것이다.

‘…일부러 무시하게 유도하는 건가? 귀족 돈 뜯어먹으려고?’

그러다 저택을 둘러싼 벽이 없는 것도 보였다.

“벽은 안 세워?”

“울타리가 있잖아요. 예쁘지 않아요?”

개돼지들이 반란을 일으키면 어쩌려고 이러는 거지. 자고로 높고 단단한 벽을 세워 개돼지와 귀족의 경계를 확실히 해야 권위가 사는 법인데….

“경비병은 저기 있는 5명이 끝이고?”

“아뇨. 저택 옆 건물이 병사들이 쓰는 건물이에요. 거기에 병사와 기사들이 모여있어요. 여차할 일이 있으면 귀족들이 움직이죠.”

“후. 문화 충격을 여기서 받는군. 넌 정말 대단한 영주야.”

“하하. 요즘 빈말로 많이 듣는 말이긴 한데… 형에게서 들으니 새삼스럽네요.”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박수호의 저택에 들어가자마자 우리를 반긴 것은 하얀 로브를 입은 금발 미녀와 메이드, 집사를 비롯한 고용인들이었다. 그들은 박수호를 보자마자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어서 오셨습니까, 시장님.”

“엘리샤. 이러지 않아도 된다고 했잖아.”

“오랜만에 돌아온 시장님을 마중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엘리샤.

베로프린의 시장대리로 마법사다. 박수호가 문신 세계를 막 각성했을 때부터 함께했다.

“오늘은 친구분과 같이 오셨군요.”

그리고 엘리샤는 내 좆집이었다.

오랜만에 나와 만난 엘리샤는 나와 두 눈이 마주치자 얼굴을 살짝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나는 저택에서 일하는 고용인들을 둘러봤다. 자유로운 저택 바깥과 달리 그들에겐 규율이 있어 보였다.

‘나쁘지 않군. 고용인들은 이래야지.’

박수호는 고용인들의 깍듯한 예우가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박수호는 정말 머저리가 틀림없었다. 바깥 시민들이 박수호를 무시한다? 박수호가 자유를 표방에 내세우는 그건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집안의 고용인들에게 무시당한다? 그건 권위가 없는 거였다. 박수호가 정식 귀족이 아니라 해도 중립 도시를 가진 주인이다. 거기다 지금은 공화국을 뒷배로 둔 상태가 아닌가.

‘다행히 엘리샤가 고용인들을 꽉 잡고 있는 모양이군.’

박수호가 시민들에게 내미는 자유.

듣기에는 좋았다.

하지만 이 세계에, 이 시대에 정말 자유가 중요하고 좋은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저택에 오래 머무시나요?”

엘리샤의 물음에 박수호는 날 바라봤다.

“형. 마나 수련장을 이용하려면 며칠 머무는 게 좋아요. 혹시 지구에 급한 일 있어요? 없으면 2주 정도 머무르면서 마나 수련장을 이용해요.”

“2주 동안 계속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

“지구로 돌아가고 싶을 때 말하세요. 바로 돌려보내 드릴게요.”

“그럼 됐어. 오랜만에 수련에 집중해볼까.”

나도 물론 현실에서 꾸준히 수련하고 있다. 하루 1~2시간 정도. 그러나 진지한 마음으로 하는 수련은 아니다. 전투 감각을 유지하기 위한 수련이라 할 수 있다. 유희 세계마다 강함이 다르다 보니 현실의 강함에 익숙해지기 위함이다.

‘난 내 재능을 잘 알고 있어. 현실에서 아무리 수련해도 별로 안 강해질 거야.’

차라리 그 시간에 유희 세계에 들어가 노는 편이 더 낫다. 효율적인 문제였다.

그래서 박수호가 말한 마나 수련장도 별로 기대하고 있지 않다.

엘리샤와 헤어지고 박수호를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저택 내부의 경우 이미 외부를 봐서 그런지 별로 놀랍지 않았다.

지하 수련장에 도착했다. 제법 넓긴 했으나 특별함은 못 느꼈다.

“평범한 수련장 같은데?”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죠. 진짜 마나 수련장을 이용하려면 마석을 사용해 활성화해야 해요.”

박수호는 수련장 한쪽에 있는 서랍장에서 마석을 꺼냈다. 6cm 정도 되는 것으로 보아 C급 마석이다. 마석을 수련장 가장자리에 있는 구덩이에 집어넣는다. 마석이 빛난다. 마석에 담긴 에너지가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다.

위이이이이잉.

마나 수련장이 가동한다.

마나의 농도가 빠른 속도로 짙어지기 시작했다. 가볍게 호흡했을 뿐인데 몸 안으로 들어오는 마나가 느껴진다. 나는 이 느낌을 알았다. [아카데미의 구원자] 세계에서 마나 큐브를 사용했을 때의 느낌이다.

‘마나 큐브와 비교하면 모자란 감이 있긴 해.’

그래도 대단하다. 마나 수련을 하기엔 최적인 장소다. 마나를 느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육체 수련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마나를 각성할 확률도 올라가겠지.

“엄청나네.”

“하하. 그렇죠? 마석 소모가 엄청나다는 게 문제지만 수련 효과는 진짜 좋아요. 여기에 마석을 모아뒀으니 원하는 만큼 수련하면 돼요. 전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가볼게요. 필요한 게 있으면 고용인이나 엘리샤에게 말하면 될 거예요.”

박수호가 마나 수련장을 나갔다. 홀로 남은 나는 인벤토리에서 화련비도를 꺼내 들었다.

‘수련 효과는 별로 기대되지 않지만… 일단 수련해 보기는 하자.’

우선 자세를 잡고 칼을 휘두른다.

뇌천류의 초식으로 여러 기술을 사용한다. 뇌기(雷氣)를 사용하지 않는 반쪽짜리. 다르게 말하면 뇌천류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기본은 어떤 창작물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지.’

현실이라고 해서 다를 것 없었다. 기본은 땅이었다. 무언가를 쌓으려면 땅이 튼튼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어도 땅이 병신이라면 쌓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까.

나는 10분 동안 뇌천류의 기본을 수련했다.

왜 10분이냐고? 10분이 지나자 마나 수련장이 꺼졌기 때문이다. 마석을 넣자 다시 마나 수련장이 가동했다.

‘기본 다음은….’

뇌기를 이용한 전투 응용. 본격적으로 마나를 사용하는 것이다. 여긴 마나가 충만하기에 마나를 펑펑 써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 소모된 체력이나 정신력까지 회복되지는 않을 테지만.

파지지직.

뇌기가 몸을 타고 흐른다. 마나를 본격적으로 사용하니 육체의 능력이 상승했다. 나는 화련비도를 들고 이리저리 칼을 휘둘렀다.

오랜만에 진지하게 수련하려 하니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억지로 정신을 집중하고 칼을 휘둘러본다.

뇌천류(雷天流) 뇌광(雷光).

붉은 섬광이 허공에 새겨진다.

뇌광은 뇌천류의 기술 중 내가 가장 애용하는 기술이다. 뇌광은 빠르다. 그리고 간결했다. 게다가 찰나와 연계해서 사용하기 쉬웠다. 찰나와 연계된 뇌광은 어지간한 실력자가 아니고선 막기 힘들다.

뇌천류(雷天流) 만뢰(卍雷).

칼끝에서 뇌전이 회전하며 모여들어 압축한다. 만뢰는 뇌전을 압축시켜 방전하듯 터트릴 수 있고, 번개로 만들어 쏘아낼 수 있다. 칼끝으로도, 손끝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뇌천류에 얼마 없는 원거리 기술이다.

나는 칼끝으로 바닥을 가리키며 압축된 만뢰를 터트렸다. 보기만 해도 오싹한 시퍼런 번개만 만(卍)자 형태로 사방을 휩쓸었다.

뇌천류(雷天流) 허도(虛道).

발을 들어 올렸다. 허공에 뜬 발이 떨어지기 직전에 뇌기를 이용해 발판을 만든다. 파지직. 발판이 된 전류는 물결처럼 요동치다가 사라졌다.

[아카데미의 구원자] 세계의 성하리가 역장을 이용해 공중을 달리는 걸 보며 만든 기술이다.

‘아직 능숙하게 사용하긴 힘들지만… 이게 숙달되면 땅에 구애받지 않고도 기술을 쓸 수 있어.’

뇌천류(雷天流) 뇌명(雷鳴).

오른손, 왼손. 양손에서 뇌전을 일으킨다. 뇌전은 서로 공명하며 천둥소리를 냈다. 공명한 뇌전을 한곳으로 집중해 모았다. 보다 강력한 뇌전이 모여든다.

콰아앙!

잠깐 집중력이 끊어진 사이에 코앞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나는 뒤로 날아가 수련장 바닥을 몇 번 구른 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 씨, 코피.”

폭발이 일으키는 순간 일어난 충격파 때문에 코가 망가진 것 같았다. 코피는 계속해서 나왔다. 코뼈가 부러진 건지 몰라도 코도 계속 아팠다.

[완전 회복을 사용합니다.]

아픔이 사라졌다.

‘완전 회복을 사용했으니 수련은 여기까지만 하자.’

완전 회복 수련하다가 반병신이 될 수도 있었다. 최악의 경우 죽을 수도 있다. 굳이 현실에서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수련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여기서 수련한다고 해서 바로 강해지는 것도 아니니.

나는 마나 수련장 바닥에 드러누워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했다. 마나가 풍부한 것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2시간 정도 자고 몸을 일으켰다. 서랍에 있는 마나석 몇 개를 챙겼다. 그래야 내가 수련햇다는 사실을 박수호가 알 테니까.

수련장 위로 올라갔다.

‘여기 메이드들은 요리를 얼마나 잘하는지 볼까.’

저택 복도로 올라온 나는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여자를 보고 멈칫했다.

걸을 때마다 부드럽게 흔들리는 황금빛 금발, 만지면 바로 때가 탈것 같은 새하얀 피부, 깔끔한 녹색 계열의 천과 갈색 가죽옷을 섞어 만든 상의와 치마.

등에는 활을, 허리춤에는 화살통을 메고 있다. 무엇보다 시선을 끄는 건 그녀의 귀였다. 하얗고 길쭉한 귀. 인간이 아닌 엘프다.

‘미모가 뛰어난 엘프 중에서도 최상의 미모를 가졌군. 딱 봐도 평범한 엘프가 아닌데.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그녀가 걸을 때마다 흔들리는 건 머리카락뿐만이 아니다. 녹색 옷에 감싸인 거대한 산봉우리. 정통파 엘프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큰 젖가슴이 남자를 유혹하듯 흔들리고 있다. 더 놀라운 건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듯 가슴 중심에 무언가가 살짝 튀어나와 있다는 점이었다.

‘이 음탕한 엘프년은 일부러 날 유혹하는 건가?’

걸어오던 엘프는 갑자기 내 앞에서 멈췄다. 그녀의 눈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그 눈에 담긴 것은 경멸과 무시였다.

“네가 베로프린 시장의 친구? 흠, 뭐, 강하긴 한 것 같네.”

엘프는 곧바로 날 지나쳤다. 나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이 건방진 엘프년은 뭐지?’

자기 할 말만 하고 지나친다니. 내가 박수호의 친구란 걸 알면서도 이런 태도를 보인다고?

“잠깐.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정중하게 물었다. 싸가지가 없긴 했으나 일단 예뻤으니 한 번은 참기로 한 것이다.

엘프가 뒤를 돌아본다. 찌푸린 얼굴에는 짜증이 담겨 있었다.

“네가 알 필요는 없어.”

또각또각.

그녀는 그대로 복도를 걸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강력한 강간 충동과 싸우느라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참아, 내 안의 강간마! 여기서 대놓고 일을 저지를 순 없어. 박수호의 눈이 닿는 곳이라고!’

적어도 박수호의 눈을 속인 뒤에 일을 저질러야 한다.

무엇보다 태도를 보면 알겠지만, 일단 나보다 약한 건 절대 아니었다. 나랑 비슷하거나 강하다. S급 수준은 결코 아니다. 제대로 제압하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손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지나가던 집사가 내게 말을 걸었다.

“잠시 생각할 게 있어서 멍 좀 때렸지. 근데 성격 안 좋은 엘프가 저택 내에 있는 것 같던데. 누군지 아나?”

“아. 하넬 님 말이군요. 시장님을 뵙기 위해 찾아오신 손님입니다. 베로프린에서 조금 떨어진 숲에 있는 사이코트 엘프령의 차기 후계자이십니다.”

“……사이코트 엘프령?”

그렇게 말해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