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의 말에 따르면, 사이코트 엘프령은 공화국 소속의 엘프 도시라 할 수 있었다. 다만, 도시라 하기엔 그 규모가 작고, 마을이라 하기엔 좀 큰 편인 듯하다.
하넬 사이코트.
날 개무시한 젖탱이 엘프년은 사이코트 엘프령의 정식 후계자다.
“그런 여자가 왜 박수호를 찾아온 거지?”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시장님께서 사이코트 엘프령을 도와주셨다고 들었습니다. 동맹을 맺기 위해 찾아온 게 아닐지 추측됩니다.”
“동맹이라. 정식 후계자면 그럴 권한을 위임받을 수도 있겠군. 근데 박수호는 어딨지?”
“시장님은 현재 동쪽 개발 구역에 있습니다.”
“개발 구역?”
“예. 상업지구를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그걸 왜 시장인 박수호가 직접 나서서 하는 거지? 아랫놈들이 그렇게 못 미덥나?”
“못 믿어서 그렇다기보다는 시장님께서 함께하시는 걸 좋아합니다.”
그냥 심심해서 그런 게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박수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심심했던 나는 박수호가 있는 동쪽 개발 구역이란 곳에 가봤다. 깔끔하게 정리된 도로와 좌우로 펼쳐진 건물들. 도로 끝에는 광장 입구와 이어져 있다.
박수호는 드워프 인부들 사이에 있어서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는 놀랍게도 안전모를 쓰고 삽을 쥐고 있었다.
“하하하. 영주님. 이제 삽질도 잘하시는군요! 드워프 혼혈이라 해도 믿겠습니다.”
“옛날에 공사판에서 알바한 적 있거든. 삽질 정도야 기본이지.”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드워프와 일한다.
가관이었다.
‘쯧쯧쯧. 영주는 사람을 부리는 자다. 노동자가 아니라고. 이 병신아.’
영주가 저딴 식으로 나오니 드워프들이 하하거리며 비웃는 게 아닌가.
나는 그 꼴을 도저히 보기 힘들어 큰 목소리로 박수호를 불렀다. 나를 발견한 박수호가 그 모습 그대로 달려왔다.
“유진 형! 어쩐 일이세요? 수련은요?”
“잠시 쉴 겸 수련장 밖으로 나왔어. 넌 시장인데 왜 인부들과 같이 일하는 거냐? 인부가 부족해?”
“인부는 충분한데… 저도 같이 일하고 싶어서요. 제가 시장이라고 해서 위대해진 건 아니거든요. 그리고 예전에 결심했어요. 아무리 상황이 좋아져도 초심은 잃지 말자고요.”
“초심이라….”
나는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박수호는 내 상태를 보더니 씩 웃고는 다시 삽질하러 떠났다.
‘맞아. 초심이야. 난 여기까지 오면서 초심을 너무 잊어버렸어.’
설마 박수호의 말에 이런 충격을 받을 줄은 몰랐다.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유희 생활 어플을 켰다. 근처에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으나 상관없었다. 대놓고 유희 생활 어플을 써도 저들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일 테니까.
‘초심. 나의 초심은 야동이지. 초심에 답이 있다!’
나는 선택 가능한 창작물 목록을 훑어봤다.
‘예전에 분명 봤던 것 같은데. …여기 있다!’
찾았다.
[이세계 엘프 지배 조교 어플]이란 이름의 창작물이다. 이건 야동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본의 성인 망가가 원작인 야동.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본에는 성인 망가를 실사화한 야동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이세계 엘프 지배 조교 어플]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 퀄리티는 최하 수준이다. AV 배우는 가슴이 크지만 얼굴 수준은 떨어졌다. 그리고 가슴이 크다고 몸매가 좋은 건 아니었다.
‘원작과 달리 육덕 엘프물이 되어버렸지.’
이 창작물의 장점은 [이세계 엘프 지배 조교 어플]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세계로 간 주인공이 엘프 조교 어플을 얻어서 끝내주는 몸매의 엘프들을 따먹는 내용이지.’
내 목적은 주인공 새끼로부터 어플을 빼앗는 거다.
‘스마트폰을 뺏으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스마트폰을 뺏어도 사용할 수 없을 수도 있었다.
‘이런 성인 만화는 대개 설정이 부실하지. 정확히 어떤 방식의 능력인지 알 수 없어. 아마 작가 새끼 본인도 모를걸.’
유희 생활 어플처럼 주인에게 귀속된 능력인가. 아니면 주인은 별 볼 일 없는데 스마트폰이 특별한 경우인가. 어느 쪽인지는 들어가 봐야 안다.
‘엘프 조교 어플만 손에 넣으면 돼. 그 어플만 있으면… 그 건방진 엘프년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지.’
[이세계 엘프 지배 조교 어플을 선택했습니다.]
[선택 가능한 아바타의 설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원작 시작 지점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페널티와 어드밴티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제약이 많았따.
그래도 페널티와 어드밴티즈는 선택할 수 있었다. 나는 고민하다가 페널티와 어드밴티지를 선택하지 않기로 했다. 내 목적은 엘프 조교 어플이었다. 이 세계를 즐기려고 하는 게 아니다.
[유희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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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엘프 지배 조교 어플] 세계에 들어온 나는 우선 주위를 살펴봤다.
‘원작에 따르면 이 세계의 엘프는 숲속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종족이야. 설마 지금 내가 인간 도시에 있는 건 아니지?’
그건 정말 안 좋았다. 아무리 나라도 단시간 내로 [이세계 엘프 지배 조교 어플]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직접 찾아갈 수 있을 리 없었다.
‘숲속인 건 맞는데…. 제발 좀 도와줘라, 유희 생할 어플!’
고개를 두리번거릴 때였다.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바로 일루시터를 소환해 몸을 투명하게 만들며 기척을 죽였다.
나무 사이로 엘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천 옷으로 짧은 상의와 하의를 입었다. 엘프였다. 문제는 현실보정 받은 엘프라는 거다.
육덕…. 아니, 육덕이란 말도 아까운 뚱땡이 엘프다.
‘시발.’
이류도 되지 못하는 AV 배우다.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보게 되니 멘탈이 흔들린다. 엘프 조교 어플이고 나발이고 그냥 이 세계에서 나가고 싶어졌다….
‘참아라, 성유진! 현실에 있는 건방진 엘프 년을 생각하라고!’
뚱땡이 엘프와의 거리가 좁혀지면서 그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야동에서 본 그 배우의 얼굴이었다.
‘옛날 생각나네. 야동 표지는 그래도 봐줄만 했는데… 실제로 본 야동 속 배우들은 개판이었지.’
일본 AV에는 흔히 있는 표지 사기였다. 표지는 존나 꼴리는 년이 떡하니 박혀 있는데, 정작 내용물을 보면 웬 오크 년이 있는 경우.
어느 정도의 포샵은 인정할 수 있다. 그래야 AV가 팔릴 테니까.
‘근데 표지에는 끝내주는 미시였는데 내용물 까보니 할망구인 경우가 있단 말이지. 그건 너무 악질이잖아.’
[이세계 엘프 지배 조교 어플]은 후자 쪽에 속했다. 그래서 대충 넘기면서 30초 만에 봤던 것 같다.
뚱땡이 엘프는 몸을 돌려가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엘프의 등에는 여드름 자국이 있었다.
“이런. 내가 잘못 봤나.”
“로라 님!”
새로운 엘프가 나타났다. 뚱땡이 정도는 아니어도 육덕진 엘프였다. 얼굴은 고블린에 더 가깝다. 꼴에 엘프랍시고 노출도 높은 옷을 입고 있다.
“카카라! 동쪽 숲은 어쩌고 여긴 웬일이냐?”
“로라 님! 특이한 옷을 입은 인간 남자가 나타났어요! 라리가 붙잡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에요. 죽일까요?”
“함부로 인간을 죽였다간 골치 아파진다. 특이한 옷을 입고 있다고 했지? 귀족이나, 마법사일 수도 있다. 알아보고 결정해야 해!”
엘프 둘이 숲을 내달렸다. 5분도 못 달릴 것 같은 몸뚱이와 달리 상당히 민첩했다.
‘엘프는 엘프라는 건가.’
나는 기척을 죽이며 그들의 뒤를 따랐다. 다행히 엘프들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C급 정도.
도착한 곳에는 뚱땡이 엘프 1명이 더 있었다. 빨간색 머리가 무척 안 어울렸다. 피부는 태닝한 갈색이다. 아마 다크 엘프라는 설정일 것이다.
그녀의 앞에 밧줄로 묶인 남자가 있었다.
비쩍 마르고 안경을 낀 남자였다. 삐죽한 머리카락 때문에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 어설프게 주인공을 코스프레해서 반감만 더 느껴지는 모습이다. 물론 나와는 달리 엘프들은 이질감을 느끼지도 않는지 자연스럽게 인간에게 접근했다.
“인간. 넌 누구지?”
뚱땡이 엘프 로라가 족발을 움직이며 주인공에게 다가갔다.
“나, 나는 일본에서 온 귀족이다!”
주인공의 임기응변!
“귀족? 귀족이란 증거는 있나?”
“내가 그걸 왜 알려 줘야 하지? 당장 이 밧줄부터 풀어라!”
“…이놈이 되지도 않는 거짓말을!”
다크 엘프가 역정을 내며 창을 들어 올렸다. 주인공을 몸을 덜덜 떨면서도 물러나지 않았다. 로라가 끼어들었다.
“그만. 저 남자는 진짜 귀족일지도 모른다.”
“네? 로라 님! 귀족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벙합니다! 게다가 자기 정체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저 남자를 좀 더 자세히 봐라. 저 칠흑 같은 검은색 머리카락과 깨끗한 피부. 무엇보다 특이한 옷과 고생 한 번 하지 않은 부드러운 손. 귀족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다. 즉결 처형하기엔 걸리는 게 너무 많아. 족장님과 회의를 통해 이 남자의 처우를 결정하겠다. 그때까지 감옥에 가두도록. 라리. 네가 직접 감시해라.”
“…네. 알겠습니다.”
다크 엘프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일단 죽음을 피한 주인공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엘프들에게 감옥으로 끌려갔다.
감옥의 위치를 확인한 나는 기척을 숨기고 마을을 둘러보았다. 미녀 엘프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틀렸다. 이 세계의 미녀 엘프 따윈 없어…. 어떻게 죄다 뚱땡이에 얼굴은 오크인거지? 이건 엘프에 대한 모욕이다.’
이 세계에 절망하며 주인공이 갇힌 감옥으로 향했다. 감옥이 있는 집의 문을 열고 조용히 들어가자마자 신음소리가 들렸다.
“하악! 헉! 이, 이놈 내 몸에 대체 무슨 짓을! 끄으으으으으으악!”
뚱땡이 다크 엘프가 바닥에 누워 자기 발목을 잡고 한껏 벌리며 주인공에게 박히고 있었다.
“헉, 헉헉! 내가 네 주인이다! 이 세상 모든 초미녀 엘프는 내 거라고!”
주인공은 흥분하며 허리를 흔든다. AV 배우라 그런지 좆은 꽤 튼실했다. 팡! 파앙! 팡! 몸이 부딪칠 때마다 다크 엘프의 젖가슴과 엉덩이가 물결친다.
나는 감옥 안에 있는 그들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일루시터를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섹스에 빠져있었으니까.
주인공은 근접거리에서 나를 발견하고 두 눈을 부릅떴다.
“너, 너는 누… 커억!”
주인공의 스마트폰을 빼앗으며 주인공의 배를 발로 찼다. 주인공이 뒤로 날아갔다. 주인공은 일부러 죽이지 않았다. 괜히 죽였다가 엘프 조교 어플이 사라졌다가 곤란해지는 건 나였으니까.
“초미녀 엘프는 지랄.”
바닥에 쓰러진 주인공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주인공을 봤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 새끼. 사정하고 있었다.
“어우 씨발. 오늘 못 볼 꼴 여러 번 보네.”
서둘러 빼앗은 폰으로 시선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