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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814화 (1,594/2,000)

< 1814화 > 1814. 광명승천도

나는 일단 홍강후를 따라 걸었다. 천안(天眼)을 이용해 백란과 홍제유는 추격할 수 없었다. 윤공석을 죽이는 사이에 그들의 행방이 묘연해졌기 때문이다.

가만히 걷지 않았다. 이 기회에 유운상회에 대해 그에게 물었다.

"유운상회는 뭐 하는 것들이지?"

"상인을 표방한 도적들일세."

"개소리 마라. 단순한 도적들 따위가 이런 식으로 움직일 리 없어."

"상인이기도 하네. 영약, 법기, 무공 등을 거래하지. 단, 거래하는 상대는 자네 같은 떠돌이가 아닐세. 거물. 이 도시에선 윤가가 거래 상대지."

"떠돌이들은 뭐지? 털어먹으려고 유인한 거다?"

"맞네. 거래하는 척하며 독을 뿌리거나, 무력을 찍어 눌러서 소지품을 터는 거네. 결과적으로 유운상회의 손해는 없는 거지. 눈치 빠른 자네와 백란 때문에 일이 어그러졌지만 말일세."

"지랄 마라. 단순히 그딴 식으로 할 거면 나와 그녀를 여기로 데려올 필요가 있나?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재산과 힘은 비례하는 법이네. 재산이 많으면 강하고, 힘이 강할수록 재산도 많지. 그리고… 이유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회주는 강자를 원하네. 되도록 생포하기를 원하고, 그게 아니어도 시체를 원하더군."

"왜지?"

"모르네. 우리는 대가를 받고 일하는 하청일 뿐일세. 하청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주겠나? 그저 강한 무인을 잡아 시장으로 이끌어라. 그게 우리의 일 중 하나일세."

"그리고 시장에 들어온 떠돌이들을 죽여라?"

"맞네. 자네와 백란의 경우 불구로 만들라고 하더군."

"왜 직접 나서지 않았지?"

"자네와 백란은 이상하게 꺼림칙해서 한발 물러나 있었네. 회주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자기 휘하의 부하들을 시켜 일을 진행했고… 틀어졌지."

회주는 일을 확실히 끝내기 위해 윤가를 끌어들였다. 그리고 또 일이 틀어졌다. 홍강후의 아들에 의해서.

"그 폭발은 뭐지? 벽력탄을 썼나?"

"……."

"아는 대로 말해라. 설마 자기 아들이 한 짓도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홍강후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광력포(光力包)라는 법기를 사용한 걸세. 내가 제유에게 준 법기일세."

"그게 고작 법기 따위의 위력이라고?"

내 왼팔이 날아가고, 윤공석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다. 오기경의 고수가 그 모양 그 꼴이 됐는데 고작 법기의 힘이라고 하니 납득하기 힘들었다. 아무리 법기라고 하더라도 그 정도의 힘을 쓸 수 있나? 법기가 그렇게 강하면 무인이 왜 있겠나. 죄다 법기 들고 설치지.

"광력포는 영기로 충전되는 특수한 법기일세. 충전된 영기에 따라 위력이 달라지네. 천옥으로 충전할 수 있고, 쓸모없는 법기를 소모해 충전시킬 수도 있네. 영기가 충만한 영약도 가능하지."

"그 귀한 영기를 법기에 쓴다고?"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영기는 여러 가지로 쓸모가 많았다. 천옥이나 법기의 영기는 직접 추출하고 사용하는 건 힘들어도 새로운 법기를 만드는 데 사용하거나 술법 수련에 이용할 수 있다. 영약의 영기는 말할 것도 없다. 무인들의 희망 그 자체가 영약이니까.

"그 귀한 영기이기 때문에 그 정도 위력을 쓸 수 있는 걸세."

"반대로 그 귀한 여기가 없다면 아무것도 아닌 법기라는 거군."

홍강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광력포라고 했나? 한계는 어디까지지?"

"한계?"

"영기를 소모한다며. 영기를 최대한으로 꽉꽉 채웠을 때의 한계."

"모르겠군. 영기를 꽉꽉 채우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아까 그 폭발은? 영기를 어느 정도 쓴 거지? 천옥으로 따지면 말이야."

"아마 10개 정도 될 걸세."

10개.

그 폭발에 직격하면 오기경의 고수도 죽을 수밖에 없는 위력이 천옥 10개.

만약 천옥 100개를 담을 수 있다면? 그 한계가 100개가 끝이 아니라면?

탐욕이 고개를 치켜든다.

‘광력포. 내가 가져야겠어.’

치밀어 오르는 탐욕을 숨긴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내비치기에는 홍강후의 눈치가 보였다. 내가 뒤통수치려는 것을 알아차릴지 모른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되면 언제 통수를 치냐는 거다. 일이 끝나고 통수를 치면 늦다. 역으로 내 통수에 불이 붙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너무 빠르게 통수를 치면 이용해 먹을 수가 없다.

"어디로 가는 거지?"

"시장의 중심으로 가고 있네. 그곳에 회주가 있을 걸세. 유운상회는 회주가 중심이고, 회주가 시작이며, 회주가 끝이네. 회주만 죽이면 유운상회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질 걸세."

"뒤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냐?"

"유운상회는 기본적으로 떠돌이 상회일세. 거점 같은 건 딱히 없네. 잠시 윤가와 손을 잡긴 했어도 끈끈한 사이는 아니지."

"윤가의 가주가 죽었다. 윤가가 가만히 있진 않을 텐데."

"회주가 죽는다면 서로 상잔했다고 생각할 걸세. 뒤처리는 내가 할 테니 걱정말게. 이런 일을 한두 번 한 게 아니니."

"……."

그렇기에 더 믿을 수 없었다. 뒤처리를 한다는 건 조작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통수쳐서 죽일 테니 입 아프게 따질 이유는 없었다. 앞서 걸어가는 홍강후의 뒤통수가 굉장히 탐스럽다.

시장 중앙에 도착했다. 백란과 함께 와본 적 있는 장소. 그곳에 백란과 홍제유가 있었다.

아들을 본 홍강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비를 본 홍제유는 숨을 삼키더니 떨리는 눈을 아래로 깔았다.

홍강후는 아들을 큰소리로 꾸짖지 않았다. 대신에 피로가 쌓인 목소리로 말했다.

"도망치지 않고 여기서 뭐 하느냐. 이 결계에서 도망칠 방법은 저번에 알려줬을 텐데."

"그, 그게 아버지…."

홍제유는 백란의 눈치를 봤다.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알겠다. 백란이 홍제유를 꼬드긴 모양이다. 황실의 일급금위인 백란으로선 사태를 파악하고 싶을 테니까.

홍강후의 시선이 백란에게 향했다.

"내 아들을 앞세워 뭘 하려는 거지?"

"그 질문은 내가 아니라 자네 아들에게 해야 하지 않나? 일이 이렇게 된 원인은 자네들에게 있을 터."

"…후우. 아들 녀석의 일은 내가 사과하지. 차라리 잘된 것 같기도 하군. 자네가 도와준다면 확실하게 회주를 죽일 수 있겠어."

"도와주겠네. 이 일은 나도 끝을 보고 싶으니."

백란이 웃으며 말했다. 홍제유는 정신 못 차리고 그 미소를 멍하니 바라본다. 그 한심한 아들의 모습에 홍강후의 한숨은 더욱 무거워졌다.

"일단 물러서게. 이 앞엔 결계가 있네. 회주만이 들어가고 해제할 수 있는 결계지. 회주는 이 안에 있을 것이 분명하네."

"결계는 어떻게 해제할 거지?"

내가 홍강후에게 물었다. 그는 검을 뽑아 들었다.

"해제할 방법은 모르네. 그러나 파괴하는 방법은 알지."

그의 높이 치켜든 검이 웅웅 울기 시작했다.

떨리는 검.

그 떨림이야말로 홍강후가 익힌 무공의 핵심이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백란을 쳐다봤다. 마침 그녀도 나를 봤다. 우리는 시선을 교환했다. 어떻게 하든 내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뜻이 느껴졌다. 왜 그렇게까지 날 밀어주는지는 둘째치고….

‘지금 통수 칠까? 지금 칼을 휘두르면 못 막고, 못 피해. 확실히 죽일 수 있어.’

회주가 문제였다. 분명 회주가 숨겨둔 무언가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니 홍강후를 좀 더 이용해 먹자. 결론을 내린 나는 조용히 지켜봤다.

검을 감싼 강기가 진동한다. 강기를 진동시키며 그 절삭력을 극대화시킨거다. 일종의 전기톱이라 할까.

‘저런 방식이 전투에 도움이 되나?’

극한의 절삭력. 굉장한 힘인 건 확실했다. 하지만 전투에서 보자면 좀 미묘하다.

‘맞기 전에 죽인다.’

그게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었다.

‘뭐, 서로 추구하는 건 다른 법이니…. 일단 홍강후와 싸우게 되면 막기보다는 회피하는 것에 중점을 둬야겠군.’

홍강후가 검을 휘둘렀다. 강기가 앞으로 날아가 결계와 부딪혔다. 강기의 진동이 결계 전체로 퍼진다. 결계가 미친 듯이 흔들리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재밌는 검술이군."

"역시 아버지…."

백란과 홍제유의 반응을 뒤로하고 홍강후와 나는 드러난 건물을 노려봤다.

끼이이익.

문이 열리고 회주가 나타났다. 멀쩡한 얼굴의 회주의 텅 빈 눈동자가 우리를 훑고 지나갔다.

"멍청한 것들. 너희는 차라리 도망쳤어야 했다."

갈라진 목소리에선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그걸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닌 듯 홍강후는 미간을 좁혔고, 홍제유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검자루에 손을 올린 백란의 얼굴엔 미소가 사라졌다.

회주는 단검을 들었다. 묵빛의 검은색 단검. 그 표면에 새겨진 알수 없는 문자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회주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가슴팍에 단검을 꽂아 넣었다.

"이런 미친놈이…!"

작은 욕설과 함께 백란이 급하게 움직였다. 쏜살같이 접근해 누가 봐도 감탄할 정도로 깔끔히 검을 휘두른다. 노리는 것은 회주의 머리였다. 그러나 회주의 가슴팍에서 폭발한 거대한 기운이 백란을 밀쳐냈다.

"아으, 아아아아아!"

회주가 환희하듯이 소리친다.

백란은 바닥에 쓰러지기 직전에 검으로 땅을 긁으며 중심을 잡아 벌떡 일어났다.

"자네들은 뭐하고 있는 겐가?! 당장 놈을 죽이게! 명인이! 명인이 놈의 몸을 빌려 강림하기 전에!"

백란의 다급한 목소리. 그리고 경고하는 본능.

나와 홍강후는 동시에 회주에게 달려들었다.

뇌천류(雷天流) 비호(飛虎).

나는 호랑이처럼, 홍강후는 독수리처럼. 그러나 소용없었다. 회주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검은 기운이 공격을 막았다. 놈의 호신강기가 우리의 강기를 막아냈다. 아예 효과가 없는 건 아니다. 조금씩이지만 강기가 파고든다.

놈이 진각을 밟았다. 폭발하듯 터지는 기운에 나와 홍강후가 뒤로 날아갔다.

균형을 잡은 나와 달리 홍강후는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다 피를 토했다.

‘피를 토할 정도의 충격파는 아니었을 텐데? 처음부터 정상인 상태가 아니었나.’

자기 아들이 터트린 폭발의 피해가 그 몸에 축적되어 있는 것이다.

회주의 몸에서 무한히 쏟아져 나올 것 같던 기운이 뚝 멈췄다. 그 기운들은 회주의 몸으로 다시 흡수되었다. 회주의 두 눈에서 금빛 안광이 번뜩인다.

"크크크크."

놈이 웃기 시작했다. 놈의 등 뒤로 독사 다섯 마리가 튀어나와 꿈틀거렸다.

"사복(蛇福)…!"

금빛 안광이 백란에게 향했다. 사복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내 이름을 알고 있는 여자가 있군. 어떻게 날 알고 있는 거지?"

백란은 입을 다물었다. 대신의 그녀에게서 증오와 살의가 주변을 잠식한다. 등골이 절로 오싹해진다. 나는 슬쩍 그녀에게서 물러났다.

‘살기가 왜 이렇게 심해?’

최소 수십 만 명은 죽여본 듯한 살기였다.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것도 그렇고… 보통 년이 아니었구나! 네년의 영혼을 찢어 핥아 먹어주마! 크크크!"

섬뜩한 말과 달리 사복은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힘을 갈무리하고 있다. 아직 완벽하게 현현한 건 아니다.

-들리는가?

백란의 전음이 고막에 박힌다. 살기를 줄기차게 뻗어대고 있는 그녀였으나, 전음에 실린 목소리는 한없이 차분했다.

-자네에게 제안할 것이 있네. 일종의 계약이지.

전음은 나도 사용할 수 있다.

-말해.

-자네가 천마가 될 수 있도록 돕도록 하지.

-…대가는?

-날 도와주게. 죽이고 싶은 자들이 몇 있네.

-눈앞에 있는 놈 말인가?

-눈앞에 없는 놈도 죽이고 싶네. 천유운.

-소천마를? …유운상회를 조사한 것도 천유운 때문인가?

-그것도 있네.

-이 제안을 하는 건 내게 천유운을 배신하라는 것과 똑같다.

-자네는 염구석이 아니지 않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자네는 천유운을 속이고 있지.

-…….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5]

느려진 시간속에서 생각했다.

백란이 소천마 천유운을 죽이고 싶어 한다. 왜? 황제의 뜻인가? 그럴 리가. 황제는 천마도 손쉽게 죽일 수 있다. 그런데 소천마 천유운? 황제의 뜻은 절대 아닐 것이다.

‘개인적인 원한인가. 그 원한은 왜? 천유운은 천마신교를 벗어난 적이 별로 없다. 황실 쪽과 연을 맺을 이유도 없고… 대놓고 움직이는 스타일이 아니니 원한 관리도 철저하게….’

쾅.

망치로 머리를 치는 충격이 뇌에 퍼진다.

백란은 한눈에 내가 염구석이 아닌 걸 알았다. 그렇다고 바로 내 정체를 알아봤냐? 그것도 아니다. 진짜 염구석이 아니다라는 걸 알뿐이다. 다시 말해 진짜 염구석을 알고 있다는 뜻.

‘천유운에 대한 원한, 눈앞의 명인(冥人)을 알고 증오한다. 정작 저놈은 백란을 처음 보는 눈치다.’

백란이 일방적으로 알고 있었다.

명인의 정체를 알고 있는 건 이해할 수 있다. 백란은 일급금위니까. 최상위 일급 기밀 정보 같은 걸 접할 수 있는 권한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염구석은?

염구석은 사복처럼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황실이 구태여 작은 마을 난도(暖挑) 출신의  인간을 조사할까? 그럴 리가. 아무리 황실이라도 그렇게 여유로울 리 없다.

생각을 좀 더 유연하게 하자. 모든 가능성을 열자. 나는 이 세계인들이 모르는 정보를 알고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이 세계는 6개의 세계가 뒤섞여 있다.

‘…답은 하나군.’

백란은 만나지도 않은 천유운과 사복에게 증오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진짜 염구석의 정보와 얼굴을 알고 있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백란은 염구석을 직접 본 거야.’

언제?

아마 내가 모르는 시간대.

‘백란은 천마복수전의 주인공인 회귀천마다.’

그럼 모든 게 설명된다.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강함도, 사복과 천유운을 향한 적의도, 염구석의 정체를 알고 있는 이유도.

모든 것이 그녀가 회귀천마임을 가리킨다. 일반인이면 회귀따윈 말도 안 된다고 부정했겠지만… 나는 이 세계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설마 회귀천마가 여자일 줄이야. 천마복수전의 주인공은 남자일 텐데?’

오류. 모순.

여자인 척하는 남자? 아니다. 백란은 태생이 여자였다. 내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설정이 바뀌었나?’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당장 나만 해도 주인공의 자리를 꿰차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천강성 시스템까지 내게 깃들었다.

‘무왕 온라인이 천마복수전과 뒤섞인 거라면… 말이 되는군. 무왕 온라인의 천마가 여자일 수 있으니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 또한 설정이 뒤섞인 것.

결론을 내린 나는 입가를 비틀었다.

-좋아. 받아들이지.

음흉한 빙의자와 미래를 알고 있는 미녀 회귀자. 후자를 택하는 건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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