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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815화 (1,595/2,000)

< 1815화 > 1815. 광명승천도

-사복을 죽여야 하네.

백란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목소리로 전음을 보냈다.

사복. 저건 회주의 몸에 현현한 명인이다. 만무탑에서 마주한 명계의 기운을 뿜어대고 있으니까.

-어떻게? 딱 봐도 보통 놈이 아니다. 우리끼리 처리할 수 있나?

-아직은 가능성이 있네. 놈은 아직 완벽하게 현현하게 아니네. 움직이지 않고 있지 않나. 힘을 모으고 있는 걸세. 완벽하게 현현한다면… 한 달 동안은 활동할 수 있을 테지.

-한 달이 지나면 돌아간다고?

-하늘이 열리지 않았으니… 이 세계에 오랫동안 있을 수 없네.

-그럼 굳이 지금 상대할 필요는 없지 않나?

-그 한 달 동안 놈이 이 세계에 어떤 수작을 부릴지 알 수 없네. 아마 이 주변에 있는 인간들은 모조리 놈에게 먹히겠지. 그리고 점점 더 강해질 테고…. 최악의 경우 천마신교가 사라질 수도 있겠군.

-천마신교가 사라진다?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이냐?

-말했지 않나. 최악의 경우라고. 놈은 인간을. 정확히는 인간의 영혼을 먹고 본래 자신의 힘을 되찾을 것이네. 그 이상의 영혼을 먹으면 더 강해질 테지. 그러니 여기서 놈을 죽여야 하네.

-저걸 어떻게 죽이려고? 강기가 안 먹히는 걸 너도 봤을 텐데.

-놈의 약점은 등 뒤에서 요란스레 꾸물거리는 뱀일세. 저 뱀들을 전부 죽이면 사복을 죽일 수 있네. 이건 위기인 동시에 기회일세. 명계에 있을 때보다 훨씬 약해진 놈을 죽일 수 있는 기회!

백란의 눈빛은 살기로 표표히 빛난다. 그녀는 저 뱀 새끼를 죽일 기회를 절대 놓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떻게 할 거지?

-틈을 만들어주게. 내가 놈을 죽이겠네.

-그러지.

짧게 대답한 나는 사복을 향해 뛰었다. 시간은 이미 충분히 줬다. 더 이상 놈에게 시간을 주는 건 좋지 않았다.

‘등 뒤의 뱀들이 약점이라.’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4]

정면으로 달려드는 척하다가 찰나를 이용해 방향을 확 틀었다. 목표는 사복의 뒤쪽. 여유롭게 서 있던 사복이 급히 나를 따라 몸을 돌렸다.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 보니 백란의 말대로 등 뒤의 뱀들이 약점이군.’

사복이 손을 뻗는다. 그의 손톱은 검게 변하며 칼처럼 날카로워졌다.

나는 호흡을 삼키는 동시에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순간적으로 시간이 길어진다. 찰나를 사용할 때와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시간이 느려진 것은 확실하다.

뇌천류(雷天流) 심즉검(心卽劍).

느려진 시간 속에서 오직 내가 휘두른 칼만이 빠르게 움직였다. 칼은 사복의 뻗은 손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며 어깨를 베고 등에 달린 5마리의 뱀 중 한 마리를 베었다.

서걱.

잘린 뱀이 아래로 떨어진다.

"크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건 사복뿐만이 아니었다. 나머지 4마리의 뱀도 입을 크게 벌리고 비명을 지른다. 뱀들의 독니에서 뿌연 보라색의 안개가 피어난다.

‘독연(毒煙)이다.’

안 봐도 뻔했다. 나는 뒤로 물러났다.

쯧.

짧게 혀를 찼다. 공격에 비해 물러나는 속도가 느렸다.

‘뇌천류의 단점은 보법이군. 쓸만한 보법이 없어.’

뇌천류에는 기은보(欺隱步)와 뇌음보(雷音步)라는 두 개의 보법이 있었다. 뇌음보는 속도만을 중시한 돌진에 가까운 보법이고, 기은보는 은밀함을 위한 보법이었다. 지금처럼 전투 중에 쓸만한 보법들이 아니었다.

"사복의 뱀을 베어버릴 줄이야! 대단하군!"

백란이 나를 보며 감탄했다.

"틈을 만들었는데 왜 달려들지 않았지?"

"끼어들 틈이 없었네. 자네가 다 하지 않았나. 저기 보게. 저놈은 지금 잔뜩 독이 올랐네. 아무리 나라도 저기로 달려드는 건 힘드네."

"…저렇게 독 연기를 뿜어대면 접근할 수도 없잖아."

"아무리 놈이라도 힘이 무한한 건 아닐세. 기다리면 독 연기가 줄어들겠지. 아까 그 일격은 또 사용할 수 있나? 내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일격이더군."

"연속으로 사용하긴 힘들어."

"그런가."

대화하는 사이 독 연기가 훅 날아온다. 나는 몸을 움찔거렸다. 무의식적으로 피할 뻔했는데 백란이 먼저 움직였다. 검 끝을 살짝 내리며 가로로 휘두른다. 바람이 일어난다. 바람은 검막이되어 독 연기를 막아냈다.

백란의 대처는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검을 뒤로 빼며 자세를 약간 낮췄다. 독 연기를 겨눈 검 끝에 검은색 기운이 꽃처럼 피어난다.

‘저건… 마기(魔氣).’

평범한 마기가 아니다. 다른 무언가가 섞여 있다. 회귀천마인 백란이 가진 천마신공의 특성인가?

‘그럴 수도 있고. 섞여 있는 뭔가는….’

어쩐지 명계의 기운과 닮아 있는 것 같다.

백란이 검을 찌른다.

핑!

검끝에서 쏘아진 마기는 독 연기를 관통하며 사복의 명치를 꿰뚫었다.

"이 힘은…! 빌어먹을 년이! 어떤 놈이 네년에게 힘을 준 거냐?!"

사복이 소리친다. 등 뒤에서 꿈틀거리던 4마리의 뱀이 입을 벌리며 독액을 내뱉었다. 나와 백란은 독액이 닿기 전에 피했다.

"으아아아악!"

"피해라! 피하는 데 집중해라!"

홍제유와 홍강후 부자는 일찌감치 뒤로 물러섰다. 도망갈 타이밍을 재고 있는 게 보였다. 역시 이 새끼들도 믿을 수 없었다.

"홍강후."

백란이 홍강후를 불렀다. 도망칠 준비를 하던 홍강후가 멈칫했다.

"…왜 불렀는가?"

"자네도 좀 도와주게."

"내상이 적지 않네. 내가 나서면 자네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 분명하네."

"사복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네. 원래부터 분노를 잘 조절하지 못하는 놈이었지. 이대로는 땅이 독으로 물들 것이고, 공기가 독에 오염될 것이네. 무엇보다 사복이 자네들의 얼굴을 봤다는 것을 잊지 말게. 저 집요한 놈이 도망친 자네들을 가만히 두겠나?"

"…빌어먹을."

낯게 욕설을 지껄인 홍강후가 검을 쥐고 투기를 끌어 올렸다.

"호신강기로 전신을 보호하게. 호신강기면 저 독 연기 속에서도 버틸 수 있을 것이네."

"…아까 말했듯이 내상을 입었다. 오래 버틸 수 없다."

"그러니 빨리 끝내야지."

홍강후의 말에 내가 답했다. 홍강후는 작게 한숨을 쉬면서 호신강기로 몸을 감쌌다. 나 또한 강기를 일으켜 전신을 감싼다.

"내가 앞에 서겠네."

백란은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 앞에 섰다. 그 늠름함에 또다시 확신한다. 그녀는 회귀천마가 맞았다.

쿵.

백란이 진각을 밟았다.

사방으로 퍼지던 독 연기가 단숨에 짓눌러 제압당한다. 나는 조용히 침을 삼켰다. 이 느낌, 익숙하다.

‘천마군림보.’

독 연기가 제압당하자 당황한 사복이 양팔을 휘저었다. 그게 신호라도 된 듯 백란이 놈을 향해 뛰었다.

나와 홍강후 또한 그녀의 뒤를 따라간다. 홍강후와 나는 자연스럽게 사복의 좌우를 노렸다. 내가 오른쪽 홍강후가 왼쪽. 정면은 당연히 백란이다.

"이것들이 감히…!"

사복이 4마리의 뱀과 양팔을 휘두른다. 그냥 휘두르는 게 아니다. 무리(武理)가 담겨 있다.

‘뱀으로 권법을 하는 건가?’

어처구니가 없다. 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위협적이다.

‘그러고 보니 뱀의 움직임을 형상화한 사권(蛇拳)이란 게 있다지.’

사복은 6개의 주먹을 가진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칼을 휘두른다. 뱀머리는 교묘하게 내 칼을 피하며 찔러 들어온다. 뒤로 물러나 반격하려고 하니 뱀이 입을 쩍 벌리더니 독액을 내뱉는다. 호신강기를 믿고 반격했다. 아쉽게도 칼은 뱀머리를 스쳤다.

치이이이익!

독액은 호신강기를 뚫고 내 옷을 태운다. 놀란 나는 다급히 옷을 털어 독액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내 목을 노리던 뱀 머리가 멈칫한다.

‘백란이 뭔가 했나. 뭐가 됐든 빈틈이다. 놓칠 수 없지.’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3]

뱀 머리를 베어내기 위해 칼날이 움직인다. 다른 뱀이 끼어들더니 화련비도를 콱 물었다.

‘이럴 땐 뇌전을.’

뇌전을 일으키기 전에 칼날이 뱉어낸다. 뱀 머리 세 개가 동시에 입을 벌리며 내게 독액을 뱉는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2]

‘이런 씨발. 세 마리?!’

홍강후는 뭐 하고 있는 거냐.

찰나를 이용해 다급히 독액을 회피하며 홍강후를 살폈다. 홍강후는 뒤로 물러나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의 왼쪽 어깨가 녹고 있었다. 독액에 당한 모양이다.

‘이 새끼는….’

욕설이 치밀어 올랐다. 홍강후는 예상했던 것보다 도움이 되지 않았다. 셋 중에 하나가 저 모양이니 나머지 둘이 고생해야 했다.

슬쩍, 백란을 바라봤다. 그녀의 몸에서 아까 본 마기가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었다. 마기를 숨기지 않는다. 그녀는 결착을 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백란은 자신의 하얀 머리카락을 고정하고 있던 비녀를 뽑았다. 비녀에 마기가 모이더니 형태가 바뀌었다. 심장의 형태다. 심장은 펄떡펄떡 뛰었다. 지독한 마기가 느껴졌다. 그녀가 검은 심장을 사복의 뒤쪽에 던졌다. 검은 심장은 새까만 인간의 형태가 되었다.

본 적 있었다. 저번에 나와 싸웠던 그것. 역시 백란은 회귀천마였다.

‘어쩌면 내게 접촉한 이유가….’

잡념을 털어낸다. 백란의 분신이 늘어나며 아군이 우세해졌다. 그러나 좀처럼 승기를 잡을 수 없었다. 사복의 독때문이었다.

"네놈들은 독에 녹아내릴 것이다!"

"지랄."

아까 백란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틈을 만들어 달라고? 만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지.’

파지지지직!

뇌천류(雷天流) 악뢰(惡雷).

왼손에 군청색 뇌전이 모인다. 뇌전인데 무겁다. 다른 뇌전들보다 빠르지 않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위력적이고 악랄하다.

"새애애애애애액!"

뱀 머리 2개가 피를 흘리며 나를 경계했다. 나는 히죽 웃으며 사복의 발치에 악뢰를 던졌다. 군청색 뇌전은 독액과 독연을 짓누르며 사복의 몸을 침식하려 했다.

"겨우 이딴 것에 당할 것 같으냐?"

4마리의 뱀이 동시에 주둥이를 벌리더니 악뢰를 향해 독연을 내뿜었다. 모닥불처럼 타오르던 군청색 번개의 기세가 점점 사그라들었다.

상관없었다. 내 목표는 달성했으니까.

백란의 분신이 터졌다. 새까만 마기가 주변을 뒤덮는다. 마치 밤이온 것마냥 주변이 어두워졌다. 이 안에서 하얗게 빛나는 것이 있었다. 백란이었다. 정확하게는 그녀의 검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하얀 마기? 마기는 마기인데… 정확히 뭔지 모르겠군. 저건 뭐지?’

사복의 얼굴이 보였다. 아까의 자신감은 어디에 갔는지 두려움으로 가득 찬 표정이 꽤 볼만했다.

"아, 안 돼…!"

사색이 된 놈의 무릎이 아래로 내려간다.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빌려는 것처럼. 그러나 그 무릎이 바닥이 닿기 전에 하얀 검이 심판을 내렸다.

한 번의 참격은 열 번의 참격이 되어 사복을 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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