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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816화 (1,596/2,000)

< 1816화 > 1816. 광명승천도

어둡던 주위가 다시 밝아졌다.

바닥에는 사복의 토막 난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백란이 잠깐 비틀거렸다. 그녀는 검을 바닥에 꽂으며 균형을 잡았다. 그녀가 한 손을 펼치자 비녀가 날아왔다. 비녀를 잡은 그녀는 천천히 바람에 날리는 하얀 머리카락을 정리한다.

물어볼 것이 많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급한 것이 있었다.

나는 백란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홍제유를 향해 내달렸다.

뇌천류(雷天流) 뇌음보(雷音步).

천둥소리와 함께 홍제유의 앞에 나타났다.

"허억!"

깜짝 놀란 홍제유가 숨을 삼키며 뒤로 물러났다. 나는 홍제유의 머리를 밟으며 오른쪽 어깨에 칼을 찔러넣었다.

"아아악!"

"제유야!!"

홍강후가 벌떡 일어났다.

"염구석! 이게 무슨 짓이냐?!! 은을 원으로 갚을 셈이냐? 당장 내 아들로부터 물러서라!"

"은을 원으로? 내가 언제 네게 은혜를 받은 적 있나?"

"방금까지 너희를 도와 사복을 상대했다! 방금 있었던 일도 잊은 것이냐?!"

홍강후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처음엔 드물게 정상적인 놈인 줄 알았다만… 결국은 자기 아들 관리도 못 하는 놈일 뿐이었군."

칼을 휘둘렀다. 홍제유의 오른쪽 어깨를 베었다. 피가 쏟아져 나온다.

‘과다출혈로 죽게 할 순 없지.’

점혈을 짚어 출혈을 지혈했다.

"이 배은망덕한 놈…!!"

"그러니까 네놈에게서 은혜를 입은 적 없다니까. 애초에 이 빌어먹을 유운상회란 덫에 끌고 온 건 네놈들이지. 여기서 네놈들은 우리 통수를 친 거다. 두 번째. 우리와 함께 사복을 상대했다? 네놈은 일이 틀어지자 내 힘을 이용해 회주를 죽이려고 했잖냐. 아, 이 새끼가 폭발을 일으킨 건 잊어선 안 되지. 그땐 정말 까딱 잘못했으면 죽을 뻔했다."

완전 회복이 없었다면 외팔이로 살아갔어야 할 거다. 외팔이 검사? 말이야 쉽지. 그건 어지간한 재능이 없으면 못 한다. 진짜 완전회복이 없었으면 끔찍했다.

"사복을 죽일 수 있었던 건 내 덕이 컸다!"

"전투 도중에 쓰러진 놈이 무슨."

"그건 내상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다른 건 바라지 않는다!"

"네가 없었어도 사복은 죽였을 거다."

홍강후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입술에서 붉은 피가 흐른다.

"…내 아들만! 아들만이라도 살려다오!"

"아, 아버지…!"

홍제유가 감동한 눈으로 제 아비를 쳐다본다. 이 새끼는 제 아비가 내상을 입은 이유를 모르는 게 확실했다.

"홍강후. 아들을 위해 죽을 수 있나?"

"아들을 살려준다면… 기꺼이 이 목숨을 바치겠다!"

홍강후의 눈은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홍제유를 위해 죽을 각오를 했다.

‘이해할 수 없군.’

여자에 눈이 멀어 패륜을 저지른 아들을 끝까지 감싼다? 목숨까지 바치며? 아무리 부정애가 넘친다고 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홍제유는 아비가 자신을 위해 죽겠다는데 감동한 눈빛만 보일 뿐이다. 전혀 말리지 않는다.

‘골 때리는 부자네.’

이놈들은 이상했다.

‘일부러 신파를 보여주는 건가? 동정심 유발 작전?’

무엇을 하든 내 결정을 변하지 않는다. 극적인 상황에서 통수를 치는 건 아니라 조금 아쉽긴 해도, 통수를 치기로 했으니까.

‘내 통수를 치고도 살아남을 줄 알았나. 둘 다 죽는다.’

화련비도가 움직인다. 서걱서걱. 홍제유의 사지를 잘라냈다. 몸통만 남은 홍제유는 절망섞인 비명을 내지르며 꿈틀거렸다. 벌레 같았다.

"제유야!! 이 노오오오오옴!!"

홍강후가 노성을 터트리며 달려온다.

너무 이른 분노다. 홍제유는 아직 살아있고, 화련비도의 칼날은 사지를 썰었음에도 무뎌지지 않았다.

칼끝이 홍제유의 목을 겨누자, 달리던 홍강후의 다리가 멈췄다.

"그, 그만…!"

홍강후가 울먹이며 애원했다.

"오른팔을 잘라라. 그럼 아들을 살려주지."

"자, 자르겠네!"

홍강후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오른팔을 잘랐다. 5초도 망설이지 않은 그 결단에 잠깐 감탄사가 나왔다.

화련비도는 홍제유의 가슴팍에 살짝 들어갔다.

"아아아아아아악!"

"팔을 잘랐지 않나! 멈춰! 멈추라고!!"

홍강후가 남은 왼손으로 검을 쥐었다. 그러나 내 눈치를 보며 달려들지 못하고 있었다. 홍제유는 아직 죽지 않았으니까.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백 소저! 백 소저! 날 구해주시오! 우리 함께 하기로 하지 않았소?!!"

홍제유가 제 아비가 아닌 백란을 불렀다. 나는 백란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천으로 검을 닦고 있었다.

"아까 일다경 정도 함께 걷지 않았나. 약속은 지켰네."

"미래를! 우리는 미래를 함께해야하지 않소?! 사랑하오, 백 소저! 나를 좀 구해주시오!"

"사랑 고백은 몇 번을 들어도 지긋지긋하군. 그래도 고백했으니 답해줘야겠지. 나는 그대를 사랑하지 않네. 사랑은 독일세. 사랑을 하면 인간은 약해지지."

백란의 말에 내가 흠칫 놀랐다. 그녀는 사랑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냉소적이었다.

‘천마복수전의 주인공이 확실하군. 원작 주인공도 기본적으로 무공(武功)에 미친놈이었으니까.’

그 경향이 너무 심해서 배신당하고 죽었다. 그리고 회귀했다. 회귀 후에는 그 경향이 줄어들긴 했어도 복수심이 자리 잡은 이상 사랑이고 연애고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푹.

칼날이 깊숙이 들어간다.

"백 소저!!!"

절규와 같은 목소리. 그녀는 무덤덤했다.

"아, 참. 나는 소저라는 말을 싫어하네. 주의해줬으면 좋겠군. 뭐, 그 꼴을 보니 의미 없겠네만."

"아, 안 돼! 살려, 살려주십시오! 제발!"

홍제유는 마지막으로 내게 목숨을 구걸했다. 웃긴 놈이었다. 목숨을 구걸할 거라면 처음부터 내게 했어야지.

나는 웃으며 그에게 답했다.

"싫다."

칼날은 놈의 심장에 닿았다. 그냥 편하게 죽일 수는 없지. 나를 칼자루를 비틀었다. 격통을 느낀 홍제유가 눈을 부릅뜬다.

‘부족하지. 뇌전.’

새빨간 전류가 그의 몸통을 타고 흐른다. 전류가 그의 몸을 몇 번이나 질주한다. 홍제유는 온몸이 세포 단위로 찢겨나가는 듯한 고통과 함께 절명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홍강후는 피를 토하면서 달려든다. 분노한 상태에서 억지로 내기를 운용해 내상이 커진 것이다. 그의 검에 씌인 강기는 미약했고, 다리는 비틀거렸다.

뇌천류(雷天流) 뇌광(雷光).

붉은 빛줄기가 홍강후의 목을 지나갔다. 머리통이 물로켓처럼 위로 올라갔다가 힘없이 바닥에 떨어진다.

‘원래는 좀 더 고통을 줬겠지만….’

백란의 눈치가 보였다. 아직 그녀를 파악하지 못한 이상 적당히 할 필요가 있었다. 너무 심하면 비호감을 살 테니까.

나는 화련비도를 털고 홍 씨 부자의 품을 뒤졌다.

홍강후에게서 천옥 21개와 잡동사니들을 발견했다. 가장 쓸만한 건 그가 끝까지 쥐고 있던 검이었다. 일종의 법기인 것 같은데 정확히 무슨 효과인지 모르겠다.

홍제유가 가진 건 하나뿐이었다. 검은색의 천이었는데 신비함이 느껴졌다. 나는 이게 광력포(光力包)라는 법기임을 알았다.

나는 백란의 눈치를 봤다. 이 법기를 달라고 하는 건 아닐까? 그녀는 어느새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행공을 하고 있었다.

‘내 앞에서 대놓고 운기행공? 나를 믿고 있는 건가? 아니면 다른 뭔가가 있나?’

홍 씨 부자에게 관심 없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광력포는 어떻게 사용하는 거지?’

잠깐 생각에 잠겼다.

‘포(包)라는 게 무언가를 감싼다는 뜻이니까….’

천을 펼치고 그 안에 천옥을 넣고 감쌌다. 그러자 천이 빛났다. 다시 천을 푸니 천옥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천은 계속해서 빛나고 있었다.

‘아하. 이런 식으로 충전하는 거군. 사용은 어떻게 하는 거지?’

나는 호신강기로 몸을 감싸며 광력포를 이리저리 만졌다. 폭발은 그리 걱정되지 않는다. 천옥 1개를 사용했을 뿐이니 내 호신강기를 뚫지 못할 것이다.

여기저기 만지다가 사용법을 발견했다. 천을 김밥 싸듯이 말았다. 그러자 검은색 천이 원통으로 변했다. 무언가를 쏘기 딱 좋은 원통으로.

원통의 뒷부분을 손바닥으로 때렸다. 앞부분에서 빛이 쏘아져 바닥을 때렸다.

쾅!

폭발이 일어났다. 아까 있었던 폭발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수준의 폭발이다.

‘사용법을 알았으니 됐어.’

빛을 쏘아낸 원통은 다시 검은색 천으로 변했다.

‘천옥 30개 정도 쓰면 삼정의 고수도 죽일 수 있으려나?’

나는 백란의 눈치를 봤다. 방금은 내가 너무 조심성이 없었다. 운기행공은 집중력이 중요했다. 잘못하다가 주화입마에 들 수 있으니까. 다행히도 백란의 집중력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겨우 이 정도로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회귀천마라는 이름이 아깝지.’

그녀는 오기경의 고수다.

‘아니, 잠깐만.’

그녀의 머리 위로 세 개의 무언가가 보인다. 눈에 힘을 주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하지만… 기운 덩어리가 존재했다.

삼정(三頂).

‘삼정경의 절대고수였다고?!’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기로 이루어진 세 개의 꽃이 희미하고 형태도 제대로 안 잡힌 것으로 보아 최근에 삼정의 경지에 오른 모양이다.

내가 놀라고 있을 때, 그녀가 눈을 떴다.

"후. 이제야 좀 낫군. 답답함이 가셨네. 날 지켜줘서 고맙네."

"…지켜주긴. 내가 묻고 싶은 게 많은 건 아나?"

"음. 물어보게."

"정체가 뭐지?"

"일급금위 백란. 그 두 가지에 거짓은 없네."

"요즘 금위는 마공도 쓰나?"

"금위에게 무공 제한은 없네. 마공을 익히고 싶으면 익히는 걸세. 중요한 건 익힌 무공의 종류가 아니라, 가진 힘이니."

나는 그녀에게 깊이 파고들려다가 관뒀다.

백란은 회귀했다는 사실을 끝까지 말하지 않을 것이다. 회귀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에서 대부분이 그랬으니까. 나라도 회귀했다는 사실은 숨길 것이다. 알려지면 여러 가지로 귀찮아질 테니.

그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면 스스로 밝히기 전까지는 모른 척하는 게 제일이다.

"소천마 천유운과는 어떤 원한 관계를 맺고 있는 거지?"

"일방적인 깊은 원한… 이라기보다는 오래되어 케케묵은 원한이라 할 수 있겠군."

혹시 회귀 사실을 숨길 생각이 없는 건가?

"천유운을 죽인다고 내가 천마의 후계자가 되는 건 아니다."

"천마의 자격이 무엇인지 아나?"

"천마신공."

"맞네. 천마신공을 익힌 자가 천마일세. 혈통이 아니라 천마신공으로 천마가 결정되는 거지. 그러나 천마신공을 익힌 자는 적네. 왜 인 줄 아나?"

"왜지?"

"천마신공은 평범한 마공이 아니니까. 천마신공을 익히려면 특별한 재능이 필요하네. 천가(天家)는 그 재능을 피로서 타고나네."

"……."

"심각한 얼굴 하지 말게. 자네는 괜찮네. 자네는 천마신공을 익힐 수 있네. 그렇지 않았다면 천마가 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말은 하지도 않았을 걸세."

"그렇게까지 확신하는 이유는?"

백란이 웃는다.

"자네는 별의 기운을 타고났으니까. 예로부터 별의 선택을 받은 자들은 특별한 생을 살지. 영웅(英雄) 혹은 대악(大惡). 어느 쪽이든 그들은 천마신공 이상으로 특별하네."

"네가 마기를 사용하는 걸 봤다. 혹시 천마신공인가?"

"음. 나는 천마신공이라고 부르고 있네만, 자네가 알고 있는 천마신공과는 좀 다르네."

"잘 됐군. 내게 천마신공을 가르쳐줘라."

"…불가능하네. 내가 가진 천마신공은 이미 변질됐네."

날먹은 실패했다.

"천마가 되려면 천마신공이 필요하다."

"천마신공이 있는 정확한 장소를 알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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