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7화 > 1817. 광명승천도
"천마신공이 있는 정확한 장소를 알고 있네."
내가 백란이었다면 일단 천마신공을 손에 넣었을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천마신공을 남에게 주기엔 아까우니까.
그녀는 지금 그 천마신공을 남에게 넘기려 하고 있다. 물론 그냥 넘기는 건 아니다. 천마신공이란 보물에 걸맞는 대가를 가져갈 것이다.
어떤 세상이든 공짜는 없다. 그리고 이 세상은 유독 손익에 민감하다. 나는 뒤통수를 만지작거렸다.
"내가 천마가 되려면 천마신공을 익히는 건 기본이다. 가장 큰 문제는 확고한 후계자인 소천마 천유운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지."
그 이후도 문제긴 한데 당장 천유운이 버티고 있으면 답이 없다.
"자네가 천유운을 죽여야 하네."
천마신교는 강자존. 강자가 우대받는 세력이다. 하지만 그게 뭐든지 허용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미쳤나? 대놓고 천유운을 죽이면 다른 놈들이 가만히 있을 거라고 보나? 놈의 아비이자, 현 천마가 날 죽일 거다."
"명분 없이 죽이면 그렇지. 명분만 충분하다면 천유운을 죽여도 되네."
"명분이 있더라도 천마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괜찮네. 천마로부터 내가 자네를 보호할 테니."
나는 의심 가득한 눈으로 백란을 쳐다봤다. 내가 천유운을 죽이면 입을 싹 닫아 버리면? 내가 뭘 할 수 있나?
백란이 눈웃음을 살살 쳤다. 경계심이 조금씩 풀린다.
"어떻게 보호하겠다는 거지? 설마 물리적으로 보호한다는 뜻은 아닐 테지."
"내 신분을 잊었는가? 나는 일급금위일세. 제국의 황실을 제외한 모든 것에 감찰권을 행사할 수 있지."
"여긴 천마신교다. 천마가 고분고분히 따를 것 같나? 막말로 천마가 쥐도 새도 모르게 널 죽여버리면?"
백란은 천마와 장로들을 상대할 정도로 강하지 않았다.
"그놈들을 그러지 못하네."
"왜 그렇게 확신하지?"
"천마가 틀어박힌 이유가 황제 때문일세. 황제에게 어마어마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장로들도 마찬가지일세. 그놈들은 예전에 황제를 알현한 적 있으니…. 황제의 눈과 귀라 할 수 있는 나를 죽인다? 그날로 천마신교가 끝장나는 날이라 인식하고 있겠지."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천마가 대외활동을 꺼리는 이유는 병에 걸렸기 때문이 아닌가?"
"병? 좀 다르네. 주화입마가 병처럼 좀 먹고 있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천마의 최측근밖에 없을 텐데…. 역시 자네는 범상치 않군."
백란이 감탄했다. 그 감탄에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깨어나 보니 천마가 되어 있었다.]의 원작과 달라졌다는 뜻이니까.
"주화입마의 원인도 황제 때문인가?"
"거대한 상대. 결코 닿을 수 없는 걸 본 여파라 할 수 있지. 이번 대 천마는 소인배에 가깝네. 천마의 그릇이 아닐세."
"됐고. 자세한 계획은 뭐지?"
백란을 쳐다봤다. 그녀는 단순히 복수심에 미친 복수귀가 아니었다. 복수를 위해 인내할 줄 안다. 그런 그녀가 복수를 입에 담았다는 건 성공 가능성 높은 계획이 있다는 것이다.
"시작은 묵지련과 역마신공일세."
회귀자라서 그런 걸까. 그녀는 천유운이 묵지련과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행히 내가 묵지련주와 관련된 건 모르고 있다. 아니면 모른 척하고 있거나.
"그건 왜?"
"황제는 순리를 원하네. 인간은 인간답게, 요괴는 요괴답게. 역마신공은 순리를 파괴하는 무공이지. 묵지련과 역마신공을 천유운과 묶을 걸세."
"증거는 있고?"
"애석하게도 없네. 워낙 주도면밀한 놈이라 증거를 남기지 않더군. 허나 의혹만으로 천유운을 압박하기엔 충분하네. 그 후에는 마가를 이용할 걸세."
"마가라…. 유운상회를 빌미로 마가를 움직일 건가?"
"그렇네. 마가는 천마의 혈통이라 할 수 있는 천가를 제외한 다섯 가문은 영세하고 있네. 이 와중에 윤가가 유운상회와 손잡고 대역죄를 저질렀네. 나는 그들을 압박해 천유운을 압박하게 할 것이네. 천가의 위세를 막고 싶어 할 테니 마가는 적극적으로 협력할 테지."
"설마 마가의 다섯 가문을 부추겨 반란을 일으키려는 건 아니지?"
"반란에 가까워 보이도록 해야지. 그래야 천마신교의 전력을 뺄 수 있을 테니. 역마신공을 들먹이면 천유운은 최대한 이 소동을 빠르게 진압하려 할 것이네. 천마의 시선은 내가 묶을 테니, 자네는 천마신공을 내보이며 대역죄인 천유운을 죽이게. 다섯 마가가 자네를 지지할 걸세."
"대역죄인 천유운…."
"음. 인간을 요괴로 변화시키는 역마신공은 황제가 가장 혐오하는 종류의 힘일세. 우리가 성공하면 천유운은 대역죄인으로써 죽게 될 걸세."
"아니. 대역죄인 천유운이란 말이 어감이 좋아서 말이야."
"후후. 나도 그리 생각한다네. 이 계획에 명심해야 할 게 있네. 속전속결. 천마신교가. 현 천마가 대응하기 전에 일을 끝내야 하네. 알겠나?"
"그래야지."
"그리고 천유운을 조심하게. 워낙 음흉한 놈이니… 숨겨둔 수가 있을 것이네."
나는 백란과 대화를 나누며 계획을 좀 더 다듬었다.
그러다 문득 홍 씨 부자의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이놈들을 죽인 것에 아무 감정도 없나?"
"저들을 죽인 건 자네일세. 뒤늦게 죄책감이라도 느끼나? 그건 조금 실망이군."
"죄책감은 무슨. 저 자식이랑 친하게 지내는 것 같아서 물어본 것뿐이다."
죽은 홍제유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는 무감정한 눈으로 홍제유의 시체를 바라봤다.
"자네가 죽이지 않았다면, 내가 죽였을 것이네."
"원한은 아닌 것 같고. 입막음을 위해서인가."
"입막음이 가장 큰 이유지만, 나는 저런 부류의 인간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네."
백란은 홍제유로부터 시선을 뗐다.
"그만 움직이지. 중간에 있는 저 건물을 박살 내면 결계를 없앨 수 있을 걸세."
백란이 삿갓을 쓰며 말했다.
"우리 구면이지?"
그녀가 나를 바라본다. 입꼬리가 올라가며 미소를 그린다.
"그 동굴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강해졌더군. 덕분에 많이 놀랐다네."
"일부러 내게 접근했었나?"
"내 입장에서 자네는 변수라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변수,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변수지. 그러니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네."
"…직접 확인한 소감은?"
"비밀일세."
"거참 비밀 많은 여자군."
우리는 밖으로 나가기 전에 챙길 건 챙기기 시작했다. 천옥, 영약, 법기, 무공 등등 챙길 것들이 많았다. 둘이서 나눠 가져도 공간함을 가득 채울 정도로.
나는 어딘가 나사 하나 빠져 있는 듯한 법기들을 검은색 천, 광력포로 감쌌다. 법기들이 광력포에 흡수되어 사라진다.
"아까 그 폭발을 일으킨 법기인가."
"영기를 소모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 이상으로 괜찮은 위력을 가지고 있다. 최대로 충전한다면 아마 삼정의 절대고수도 없애버릴 수 있을 테지."
"이건 내 거다."
"필요 없네. 내가 볼 땐 이 법기는 위력이 좋아도 효율이 안좋네. 이런 비슷한 법기를 몇 번 본 적 있는데… 너무 많은 영기를 축적하면 버티지 못하고 박살 날 걸세. 주의해서 사용하게."
"그러지."
대충 대답한 나는 계속해서 싸구려 법기를 광력포에 흡수시켰다. 지켜보고 있던 백란이 자신 몫의 법기들을 내게 건넸다.
"이것들도 흡수시키게. 특별히 자네에게 주겠네. 원래는 녹여서 새로운 법기를 만들 수 있는데 호의로 자네에게 주는 거라네."
"공간함이 가득 차서 다 넣을 수 없는 거 뻔히 아는데 생색은."
"크흠."
어쨌든 그녀 덕분에 광력포를 잔뜩 충전시킬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충전시킨 건지 몰라도 밀어 넣은 싸구려 법기만 400개가 넘는다. 최소 천옥 100개 분량의 영기는 될 것이다.
‘이건 죽창이다. 절대고수도 죽일 수 있는 확실한 한 방. 크크.’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정산은 그게 끝이었다.
무공은 나중에 천천히 읽으면 되고, 영약은 위유에게 줘서 영단으로 만들면 된다. 중요한 것은 천옥.
시체들의 품을 싹싹 뒤진 결과, 내가 가진 천옥은 774개로 늘어났다. 목표로했던 700개를 훌쩍 넘은 것이다.
"백란. 운기행공 좀 하자. 호법 좀 서줘."
"지금은 빠르게 행동할수록 좋다만…. 내상이 심한가?"
"잠깐이면 돼."
"알겠네. 지켜줄 테니 운기행공을 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백란은 내 뒤에 있었기에 인벤토리에서 천옥을 꺼내도 내 몸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700개의 천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천옥 700 개를 이용해 VIP 레벨을 올립니다.』
『VIP 3을 달성합니다.』
『VIP 레벨을 올리기 위해선 1,000개의 천옥이 필요합니다.』
『VIP 3을 달성 특전이 주어집니다.』
『무공의 위력이 100% 상승합니다.』
『성장률이 80% 상승합니다.』
『영약의 효과가 50% 상승합니다.』
『출석 보상이 좀 더 좋아집니다.』
『체력 및 내기 회복률이 70% 상승합니다.』
『공간 전이 시스템이 활성화됩니다. 활성화 가능한 공간 전이 지점은 5개입니다.』
『별의 조각 2개를 획득합니다.』
『천강성의 빛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수치들이 올랐군. 별의 조각은 이걸로 3개고…. 천강성의 빛은 또 뭐야?’
모르는 것은 직접 사용해보는 게 최고다. 하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내 등 뒤에는 백란이 있었으니까.
백란이 미녀인 것과 별개로 완전히 신뢰하냐는 또 다른 문제였다. 내 밑천을 그녀에게 전부 보여줄 이유는 없었다.
‘일단 보류한다.’
백란이 계속 붙어 있을 것도 아니니 나중에 틈날 때 사용하면 된다.
뇌천결(雷天結)의 구결을 외우며 운기행공을 시작했다.
내가 기대하는 것은 무공의 위력과 성장률이 올랐다는 점이다. VIP레벨이 오른 지금이라면 삼정의 벽을 넘어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안의 기운들이 요동친다. 뇌기(雷氣)가 전신을 돌고, 꼭꼭 숨겨뒀던 마기가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벽이 보였다.
높은 벽. 지금의 나로서는 무슨 짓을 해서도 넘어설 수 없는 벽. 삼정의 벽이었다.
나는 주먹으로 벽을 쳤다. 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몸을 들이받아도 벽은 흔들리지 않는다. 부서질 기미가 전혀 없었다.
‘VIP 레벨을 올렸는데도 벽을 넘을 수 없다고? 빌어먹을….’
포기하지 않고 벽을 두들겼다. 그러나 벽은 여전히 멀쩡했다.
‘뭐가 필요한 거지? 깨달음… 은 지랄. 아직 힘이 부족한가.’
나는 벽을 올려다봤다. 기분 탓일까. 처음 봤을 때보다는 벽이 작아진 느낌이었다. 그래도 굳건하다는 것은 같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