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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821화 (1,601/2,000)

< 1821화 > 1821. 광명승천도

이 세상에는 수많은 문파가 존재한다.

일인문파에서부터 시작해 총원 30명도 되지 않는 작은 문파, 마을 하나를 지배하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문파,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아는 대문파까지.

문파를 창설하는 건 어렵지 않다. 무공. 하찮은 무공이라도 무공이 있으면 문파를 창설할 수 있다. 시정잡배끼리도 문파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천마신교에도 문파가 존재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천마신교는 문파 출신의 마인들이 모여 세력을 이룬 것이다. 무림맹과 비슷한 문파 연합체라 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천마신교 영역 내에도 온갖 중소 문파들이 존재한다는 거다.

그리고 그 문파들 사이에서 전투는 심심찮게 일어난다. 전투의 이유는 다양하다. 자존심을 건드려서, 영약이나 법기 등을 얻기 위해서, 오래된 원한을 갚기 위해 등등. 이중 가장 흔한 이유는 영약과 법기다.

열도문(熱刀門)과 묵검문(?劍門)의 전투가 그러했다.

본래 열도문과 묵검문은 같은 지방의 작은 문파로서 친분을 유지했다. 세력이 작으니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것보다 구역을 나눠 지배하며, 손을 잡고 외척에 대항하는 것이 더 이득이었으니까.

허나 그 친분도 요괴가 나타나고 사라졌다. 오기경(五氣境)의 요괴가 나타났고 열도문과 묵검문은 힘을 합쳐 그 요괴를 토벌했다. 그대로 일이 끝났으면 좋았으려만, 반쯤 영물이었던 요괴는 수귀정(水貴晶)이란 내단을 남겼다.

요괴를 토벌한 세력은 둘. 요괴가 남긴 보물은 하나.

어느 한 세력이 친절하게 양보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었다. 그들은 욕심은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서로에게 무기를 겨눴다.

열도문은 뜨겁게 타오르는 칼을, 묵검문은 무거우면서도 고요하게 뻗은 검을.

"요괴를 죽인 건 우리다! 수귀정 또한 우리의 것이다!"

"웃기는 소리! 우리 묵검문의 제자들이 목숨을 바쳐 만든 천재일우의 기회를 네놈들을 얌체처럼 낚아채지 않았느냐! 수귀정은 우리 제자들의 목숨값이다!"

"누가 보면 그쪽 제자만 죽은 것 같군! 우리 열도문의 제자들의 희생을 무시할 것이냐?"

"요괴의 시체를 준다고 하지 않았느냐!"

"수귀정의 반의반도 못 하는 값어치의 시체 따위 너희들이 가져라!"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 감히!"

"처음부터 네놈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 여기서 끝장을 보자!"

열도문과 묵검문의 문주들은 고래고래 소리치며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의 뒤로 살기등등한 문파원들이 칼과 검을 휘두른다.

채앵! 캉! 챙챙챙!

뜨거운 칼과 무거운 검이 교차한다. 뜨거운 칼은 검이 맞닿자마자 바로 뗐다. 묵검문의 검과 힘겨루기를 하는 건 자살행위였다. 칼은 빈틈을 노리고 검은 우직하게 정면으로 나아갔다.

결착은 쉽게 나지 않았다.

그들의 실력은 비등했다. 열도문의 제자가 묵검문의 제자를 죽이면, 묵검문 제자가 열도문의 제자를 죽였다. 전투가 일어날수록 제자들이 죽어갔다. 그럼에도 승기는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았다.

‘젠장. 이러다 다 죽는 거 아니야?’

‘너무 성급하게 움직였나…?’

두 문주가 후회했으나, 이미 피는 흐르고 있었다. 손해가 쌓이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반드시 죽이고 수귀정을 얻어야 한다!’

그들은 이를 악물며 무기를 휘둘렀다.

까아아아앙!

칼과 검이 부딪히며 충격파가 일었다. 그들은 충격파를 버티기 위해 뒤로 물러났다. 쉬지 않고 움직였던 그들은 잠깐의 달콤한 휴식을 맛보면서 적을 노려봤다.

‘이대로는 안 된다. 특단의 결정이 필요하다.’

‘제자들을 희생시키자. 제자 2명을 돌격시켜 빈틈을 만들어 찌르는 거다.’

‘문파가 해준 것이 있으니 기꺼이 희생하겠지.’

‘제자는 다시 받으면 된다. 내가 수귀정을 먹고 강해져야 문파가 더 강해진다.’

두 문주는 똑같은 생각을 했다. 상대 문주를 어떻게든 먼저 죽이면 승리는 확정이다. 수귀정을 복용해 경지를 올리고 새로운 제자를 받아들인다. 완벽한 계획을 세운 그들은 입술을 달싹거리며 희생할 제자에게 전음을 보내려 할 때였다.

"하늘에 뭔가 있다!"

"벼락인가? 벼락은 떨어져야 정상인데 왜 날고 있는 거지?"

"문주님! 벼락이 이쪽으로 날아옵니다!"

문주들은 고개를 획 돌렸다. 제자들의 말대로 번개가 날아오고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빠르다. 제자들보다 경지가 높은 문주들은 벼락 속에 사람이 있음을 발견했다.

"…벼락이 아니다."

"사람. 뛰어난 술법사들은 번개와 불꽃으로 변한다더니…."

두 문주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무인이 아니라 술법사라 하더라도 저 정도 술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자라면 최소 오기경에 닿았다고 봐야한다. 어쩌면 삼정의 절대고수일지도 모른다.

좋지 않은 미래를 직감한 그들은 서로에게 전음을 보냈다.

묵검문주가 먼저 말문을 틀었다.

-고수의 등장이다. 이대로면 놈이 수귀정을 빼앗을 것이 자명한 일…. 우리끼리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다.

-흩어져서 도망치는 게 어떠냐? 수귀정은 내가 가져가마.

-이놈이 어디서 개수작을!

-수귀정을 가지고 도망간다는 건 위험을 무릅쓴다는 거다.

-그럼 내가 너를 위해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겠다.

-…….

-…….

잠깐의 침묵이 흘렸다. 벼락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시간이 없었다. 허나 누구도 탐욕을 버리지 못했다. 이번엔 열도문주가 먼저 말문을 틀었다.

-놈은 오기경의 고수다.

-그게 느껴진다고?

-다른 건 몰라도 기감은 자신 있다. 우린 오기경을 앞두고 있지. 오기경의 요괴도 합공해서 죽이지 않았느냐.

-그렇지. 일단 저 고수를 함께 죽이자는 거냐?

-그 외의 방법이 있나? 설마 그대로 수귀정을 저놈에게 넘겨주자는 뜻은 아니겠지?

-…그럴 수는 없지. 협공이다. 네가 먼저 기습해라.

-내가 의견을 냈으니 네가 먼저 기습해라.

-기습은 너희들 열도문의 특기가 아닌가. 잘하는 자가 해야지.

-음흉한 건 너희 묵검문이지.

하늘을 날던 벼락이 드넓은 호수를 가로지르며 땅으로 떨어졌다. 그의 몸은 전광(電光)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지면에 떨어지고도 관성을 이기지 못해 그 몸은 주르륵 밀려났다. 그는 천근추로 관성을 이겨냈다.

‘천근추의 사용이 자연스럽다. 고수다.’

‘저 태연한 표정에 정돈되었으나 압도적인 기세…. 요괴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수다.’

성유진의 눈이 좌중을 훑는다. 무인들은 온몸의 털이 곤두선다. 무인이기에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각이었다. 죽음을 앞둔 감각. 여기서 조금이라도 실수하는 순간 목숨이 사라질 것이다.

"내 영역에서 싸움질이라니…. 간도 크군. 너희는 뭐지?"

"대, 대협! 저희는 묵검문의 무인으로서 요괴를 토벌하러 나왔습니다! 이곳이 대협의 영역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저희는 열도문의 무인입니다! 대협께 인사 올립니다! 저희도 이곳이 대협의 영역인지 몰랐습니다!"

성유진이 피식 웃으며 기세를 끌어올렸다. 무인들은 다리를 주춤거렸다. 공기가 무겁다. 당장 여기서 엎어져서 굴복하고 싶었다.

성유진은 뒤쪽에 있는 요괴의 시체를 뒤늦게 발견했다. 거기서 막대한 기운을 품은 내단의 존재가 느껴졌다.

‘이건 단순히 요괴가 품을 수 있는 기운이 아니다. 반쯤 영물인 요괴군. 오기경의 기운이면… 삼정의 벽을 뚫는데 도움이 되겠는데?’

성유진이 씩 웃었다. 그가 시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기운이 움직였다. 시체 속에 있던 내단이 위로 떠 올렸다. 수귀정. 작은 수정처럼 생겼다. 수(水)의 기운이 느껴진다.

‘수기는 다른 기운에 잘 융화되지.’

허공섭물로 수귀정을 챙기려는 순간이었다.

"안 돼!"

"수귀정은 내 것이다!"

문주 두 명이 달려들었다. 성유진은 허공섭물로 바로 취소했다. 일부러 찰나를 쓰지 않고 뇌기를 움직였다.

뇌천류(雷天流) 비뢰신(飛雷神).

뇌기로부터 일어난 미세한 전류가 그의 전신에 흐른다. 이 미세한 전류를 이용해 몸을 조작한다. 이것이 비뢰신의 요체다.

좌우에서 허리와 목을 노리고 날아오는 칼과 검. 단순히 움직여서는 피할 수 없다. 칼을 뽑아 막는 게 제일이다.

허나 비뢰신이 있으면 이야기는 다르다. 성유진은 가볍게 땅을 박찼다. 몸이 위로 떠 오른다.

‘단순히 뛰어서 피하려는 게 아니야.’

파지직.

전류가 그의 몸을 잡아끌었다. 전류에 의해 강제로 눕혀진 몸이 칼과 검 사이를 쏙 들어갔다.

"말도 안 되는…. 이건 신법?!"

"아무리 신법이라도 이런 움직임이 가능할 리가!"

바닥에 안전하게 착지한 성유진이 씩 웃었다. 비뢰신은 만족스러웠다.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 비뢰신을 이용하면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비뢰신은 빠르다는 것에 집중되었기에 힘을 싣는 건 힘들었다. 애초에 공격용으로 만든 것도 아니었고.

‘이걸로는 부족하지. 좀 더 실전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은 실험에 딱이었다. 성유진은 두 문주들을 지나쳐 그 제자들에게 다가갔다.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

성유진의 기세에 억눌렀음에도 완전히 굴복하지 않고 기회를 보는 눈. 싹수가 노란 놈이었다. 성유진은 일부러 느릿하게 화련비도를 뽑아 들었다.

적은 이를 악물며 칼을 위로 올린다. 칼날은 열기로 새빨갛게 달궈져 있었다.

뇌천류(雷天流) 비뢰신(飛雷神).

남자가 두 눈을 부릅뜨고 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어떤 준비 동작 없이 성유진의 몸이 이동했기 때문이다. 그게 너무 빨라서 짧은 거리를 공간 이동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획!

뜨거운 칼날은 허공만 갈랐다.

이어지는 건 상대의 조소와 붉은 번개를 품은 붉은 칼날.

"카아아아아악!"

붉은 칼날에 몸이 베이는 순간 붉은 전류가 흘러들어와 감전시킨다. 온몸이 찢어지는 감각과 함께 의식이 날아간다. 날아간 의식은 두 번 다시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자, 다음은 누굴 죽여줄까?"

성유진의 조롱 섞인 말이 그들을 자극했다. 성유진은 자비를 베풀 생각이 없다는 걸 무인들 전원이 알아차렸다.

"싸워라!!"

"죽이지 못하면 우리가 죽는다!!"

문주들이 고함지르며 투지를 터트렸다. 무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두려움을 뒤로하고 성유진에게 달려들었다.

성유진은 사방에서 무인들이 달려들어도 여유로웠다.

‘이제야 원하는 상황이 됐군.’

찰나를 쓰지 않아도 20명 전원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느껴진다면 피하지 못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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