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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823화 (1,603/2,000)

< 1823화 > 1823. 광명승천도

"후."

입 밖으로 나온 한숨은 순식간에 얼어붙어 아래로 떨어졌다.

뇌천류(雷天流) 전자기막(電磁氣幕).

파지직!

내 몸에 달라붙으려는 음기를 전자기막으로 막아낸다. 음기는 좋지 않았다. 내 체온은 빼앗아 가려는 것은 물론이고 내 몸에 침투하려고 한다.

‘평범한 음기가 아니다. 귀기(鬼氣)가 섞인 음기다.’

음기에 몸이 장악당하면 쓸데없는 잡귀들이 내 몸을 노리고 들어올 것이다. 완전회복과 천심이 있다고 해도 내 몸을 감히 잡귀들에게 1초도 건네줄 수는 없다.

‘2시간을 돌아다닌 것 같은데… 천마신공은 어디에 있는 거지?’

백란이 그려준 지도를 다시 꺼내 본다.

조잡한 지도에는 말라비틀어진 커다란 나무와 흐르는 물, 들개처럼 생긴 것이 그려져 있었다.

‘찾아야 할 건 커다란 나무와 들개의 중간에 있는 흐르는 물.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걸어가면 된다고 했는데….’

흐르는 물은커녕 나무와 들개도 찾지 못했다.

‘빌어먹을 안개.’

이 자욱한 게 깔린 안개는 정말 대단한 무언가인지 천안(天眼)을 사용해도 안개를 온전히 꿰뚫어 볼 수 없었다. 기껏해야 볼 수 있는 가시거리가 늘어나는 것 정도다.

‘천마릉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숨겨질 수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겠지.’

백란은 이 안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나를 믿는 건지, 아니면 맥이는 건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전자이면 좋겠다.

‘천마나 천유운은 이 안개를 어떻게 뚫고 들어간 거지?’

모종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천마에게만 전해지는 비밀 길이나 특수한 힘을 가진 기물이 있거나.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계속해서 걸었다. 중간에 답답해서 허공에 손을 휘둘렀다. 강풍이 일어나 안개를 밀어낸다. 잠시뿐이었다. 안개는 다시 밀려와 주변을 가득 채운다. 뇌전을 사용해 안개를 태워도 소용없었다. 이 안개는 무슨 짓을 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컹!

뜬금없이 개소리가 들렸다. 내 얼굴은 활짝 퍼졌다. 이 개소리는 지도에 그려진 들개가 짖는 소리가 틀림없을 테니까.

‘오른쪽 대각선. 1시 방향에서 들렸다.’

기감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안개들이 기감을 방해한다.

크르르르릉.

들개의 기척이 느껴졌다. 5m 내에 놈이 있는 게 확실했으나 안개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기척만 느껴진다면야 뭐.’

으르렁거리는 개는 적대적이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굳이 개와 싸울 이유도 없었다. 날 보고 으르렁거리는 개새끼가 마음에 들진 않긴 해도 이 안개에서 싸우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딴 안개에서 생활하는 개다. 평범한 개는 아니겠지.’

개를 기준으로 지도의 위치를 특정했다. 이젠 근처에 있는 흐르는 물을 찾으면 된다.

‘흐르는 물은 마른 나무와 들개 사이에 있는데… 마른 나무의 위치를 모르겠네.’

어느 방향으로 가야 나무가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일단 움직여서 나무의 위치를 찾아야 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움직이면 또 길을 잃을 것이다.

‘어느 한 방향을 정하고 일직선으로 걸어가자. 운이 좋으면 흐르는 물을 발견할 수 있겠지.’

허리춤에서 화련비도를 뽑았다. 화련비도의 칼끝을 땅에 찔러 넣는다. 그러면서 칼을 질질 끌며 정면으로 걸어갔다. 바닥에 선이 그어진다.

‘잘못된 곳으로 가더라도 이 선을 보고 되돌아올 수 있겠지.’

칼로 땅을 질질 끄는 건 칼을 버리는 것과 다름없는 짓이지만, 화련비도는 바위를 베도 칼날이 상하지 않았다. 용을 상대할 때 살짝 금이 가긴 했어도 그 이후로 칼날이 상한 적 한 번도 없다.

크르르르릉.

개는 무시한다. 그러려고 했는데 뒤쪽에서 개가 불쑥 나타났다. 입을 쩍 벌리더니 내 목을 물려고 했다.

‘뒤쪽에선 개소리가 안 들렸는데. 개소리는 페이크였나.’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11]

찰나를 사용해 주둥이를 피하며 화련비도를 위로 올려 베었다. 개의 머리가 반으로 갈라진다.

털썩.

개는 검은 피를 사방에 뿌리며 쓰러졌다.

‘이거 다리가 없잖아.’

개는 다리와 꼬리가 없었다. 머리와 몸통만이 있다. 크기는 평범한 대형견 수준이다. 내 목을 물 정도로 크지 않았다.

‘공중을 떠다녔다.’

개의 머리에는 눈이 파여있었다.

‘요괴로군.’

컹! 커어엉! 컹컹컹!

이번 개소리는 머리 위에서 들렸다. 고개를 살짝 들고 시선을 위로 올린 순간이었다. 바닥에서 개가 나타나 내 다리를 물려고 한다.

파지직.

계속 사용하고 있던 전자기막이 반응했으나, 아까 내 목을 노리던 개처럼 무시하고 나를 공격한다.

뇌천류(雷天流) 비뢰신(飛雷神).

단전에서 시작된 미세한 뇌기가 전신의 기혈로 내달린다. 내 몸은 누군가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스르륵 옆으로 움직여 개의 공격을 피했다.

공격을 피했으면 바로 반격하는 게 인지상정. 화련비도를 역수로 쥐고 개의 머리를 베었다.

서걱.

제법 손맛이 있었다.

‘응? 아까 뒈진 놈의 시체가 사라졌다.’

놈이 바닥에 흘린 검은 피도 사라졌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귀신?’

방금 목을 베어 죽인 개를 지그시 쳐다본다. 개의 몸이 흐릿하게 변하더니 사라졌다. 바닥을 적신 검은 피와 함께.

‘요괴가 아니라 귀신이었나.’

컹컹컹컹컹!

오른편에서 개소리가 들린다. 나는 이번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러자 오른쪽에서 개가 나타나 나를 노렸다.

서걱!

피할 필요 없이 바로 칼을 휘둘렀다. 습격이 올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나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어느 방향에서 오든 반응할 수 있다.

개를 죽인 뒤에는 화련비도로 땅을 그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성가시군.’

개는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끈질겼다. 죽지 않는 개. 아까부터 끊임없이 공격하고 있었다. 대충 분당 3번 정도 습격한다.

‘설마 24시간 내내…. 아니, 천마릉에 있는 동안 계속 공격하는 건 아니겠지?’

어느 쪽이든 문제였다. 체력과 내공은 무한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난 천마신공까지 익혀야 한다. 천마신공을 익히는 데 귀신개가 방해한다? 아주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그 고민은 나중에 하고 일단 흐르는 물부터 찾자.’

귀신개의 습격에 장점을 억지로 찾는다면, 심심하지 않다는 거였다. 어디서 습격할지 모르니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 기습 대비 수련을 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2시간이 지났다.

말라비틀어진 나무 대신 커다란 암석이 보였다. 꽝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몸을 뒤로 돌렸다. 땅에 그어놓은 선을 보며 귀신개를 만났던 장소로 걸어간다.

컹컹컹컹!

개소리는 지긋지긋했다.

***

천마릉에 들어오고 15시간 경과.

나는 드디어 말라비틀어진 나무를 찾았다. 백란의 말대로 성인 남성 10배에 키를 가진 나무였다.

‘개소리가 사라졌다.’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던 귀신개가 모습을 감췄다. 원인은 아마 눈앞에 있는 나무 때문일 것이다.

‘음산하군. 이게 음기의 원인인 것 같은데?’

나는 함부로 나무에 다가가지 않았다. 귀신개처럼 성가신 나무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귀신 들린 나무일 수도 있고.

‘중요한 건 이 나무의 정체가 아니지.’

나무의 위치를 알았다. 그게 중요했다. 뒤로 돌았다. 바닥에는 여기까지 오며 그어놓은 선이 있었다.

‘이 선 중심쯤에 흐르는 물이 있다는 건데… 여기까지 오면서 못 봤어. 또 개고생을 해야 할 것 같군.’

파지직.

전자기막을 뚫고 무언가가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11]

이상함을 느낀 나는 바로 찰나를 사용해 옆으로 피했다. 마른 나뭇가지가 내가 있던 곳을 지나 땅을 푹 찍었다.

이어서 다른 나뭇가지들이 쭉 늘어나 나를 노린다.

가볍게 바닥을 차며 나뭇가지를 피했다. 나뭇가지는 채찍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송곳이었다. 끝부분이 굉장히 뾰족했고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다가 결정적인 공격 순간에는 항상 찌르기로 나를 노렸다.

‘이유 없이 찌르기만 하는 건 아닐 테지. 나뭇가지 끝에 독이라도 발랐나?’

문득 떠오른 호기심은 꾹 눌러 지하로 처박았다.

‘날 공격했으니 죽여야지.’

나뭇가지 수십 개가 날 향해 빠른 속도로 찔러 들어온다. 귀신 들린 나무일지도 모르겠다. 비뢰신을 사용한다면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다.

‘피하는 걸로는 안 되지.’

[시간 가속을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나뭇가지가 느려진다. 나는 앞으로 뛰어가며 화련비도를 휘둘렀다. 칼날에 붉은 뇌전이 꿈틀거렸다.

세 번의 칼질로 수십 개의 나뭇가지를 베어낸 나는 나무 몸통으로 다가가 화련비도를 찔러넣었다.

[시간 가속이 끝났습니다.]

때마침 시간 가속도 끝났다. 나무 몸통이 꾸물거리는 게 칼자루를 통해 느껴졌다.

‘뇌전.’

파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대량의 붉은 뇌전이 사방으로 뻗었다. 나는 뇌전의 줄기를 컨트롤해 모조리 화련비도의 칼날로 밀어 넣었다. 뇌전은 칼날을 타고 나무로 흘러 들어간다. 나무가 불타기 시작했다.

나무의 꿈틀거림이 더 심해졌다.

‘이걸 버틴다고? 그럼 출력을 높이면 돼.’

붉은 전격으로 주변 일대가 가득 찼다. 나무 타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멈추지 않고 계속 뇌전을 흘려보냈다.

나무가 죽었다. 그런 감각이 칼자루를 통해 느껴졌다. 나는 끝까지 방심하지 않고 칼을 빼냈다. 마르고 새까만 나무의 일부는 재가 되어 흩날리고 있었다.

‘죽었군. 애초에 살아있는 생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에 자욱하게 깔린 안개가 나무에 모여든다. 지독한 음기가 나무를 재생시키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뒤로 물러났다.

‘귀신개처럼 죽을 때까지 물어지겠지? 여기서 빨리 벗어나야겠다.’

지금 중요한 건 천마신공을 얻는 거라는 걸 다시 상기하며 걷는다.

4시간 동안 땅바닥에 시선을 박고 돌아다닌 끝에 바위틈에 숨겨져 있는 흐르는 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흐르는 물이라기에 시냇물 같은 건 줄 알았는데.’

시냇물이라고 하기엔 물줄기가 너무 가늘었다. 평범한 물도 아니었다. 물에서 압축된 음기가 느껴진다. 흐르는 물을 검지로 콕 찔러봤다. 음기가 파고들며 검지가 얼어붙기 시작한다. 파지직. 뇌기를 이용해 음기를 태웠다.

‘엄청난 물이군. 영약으로 이용할 수 있나?’

고개를 저었다. 이 물을 마시는 순간 오장육부가 한순간에 얼어붙을 것이다. 거기에 뇌기는 양기에 속했기에 너무 강력한 음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 물은 나중에 챙기고 일단 물이 흐르는 곳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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