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4화 > 1824. 광명승천도
백란이 말했던 대로 졸졸 흐르는 물을 따라갔다.
천마신공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생각에 몸이 흥분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깨어나 보니 천마가 되어 있었다.]의 내용과 상당히 달라졌어. 뭐, 어쩔 수 없지.’
빙의 천마의 원작은 배경은 무협이었다. 그런데 이 세상의 배경은 선협이다. 그것부터가 차이 났다.
‘선협 버프라도 받았는지 천유운의 성격은 더 음흉해진 것 같고.’
그리고 천마신공.
천마신공은 원작보다 더 강해졌을 것이다.
어느새 졸졸 흐르던 물이 멈췄다. 오래 걷지 않았다. 걸음으로 따지면 40걸음 정도. 나는 땅바닥을 자세히 쳐다봤다.
흐르는 물은 바닥에 있는 작은 구멍에 들어가고 있었다.
[천안(天眼)을 개안합니다.]
땅을 투시해서 아래를 살펴본다. 당연하다는 듯이 공간이 있었다. 물은 지하로 계속 흐르고 있었다.
‘이건 인위적으로 지어진 통로군.’
인위적인 지하 시설. 여기야말로 진짜 천마릉이다. 나는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교묘하게 숨겨져 있는 문이 있군. 문은 힘으로 열면 되니까 괜찮은데… 물이 너무 많아.’
그냥 물도 아니다. 음기가 웅축된 물이 지하 통로에서 계속 흐르고 있었다. 잠깐 방심했다가는 온몸이 얼어붙어 죽을 수도 있었다.
‘천마신공을 얻는데 이 정도 위험쯤이야.’
움푹 파인 바닥에 손가락을 집어넣는다. 기를 밀어 넣어 손가락 힘을 강화시켜 30cm 넘는 두께의 문을 들어 올렸다. 지하는 어두컴컴했다. 천안을 이용하면 계속 꿰뚫어 볼 수 있으나, 지속해서 기운이 소모된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손전등을 꺼내 들고 아래로 내려갔다. 흐르는 물에 닿지 않도록 주의하며 바닥에 발을 디뎠다.
쩌엉! 파지지직! 쩌엉!
전자기막과 음기가 부딪힌다. 뇌기가 얼어붙었기에 전자기막의 출력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나름 버틸 수 있는 수준이 됐다.
‘기운 소모가 몇 배는 더 커졌다. 머뭇거렸다간 얼어 죽는다.’
옷을 껴입어도 의미 없다. 이 음기는 옷 따윈 아무렇지 않게 침투하니까. 내가 걸치고 있는 흑호포(黑虎袍)로도 이 지독한 음기를 막지 못한다.
흐르는 물을 따라 통로 안쪽으로 걸어갔다.
콰직!
손전등이 박살 났다. 음기가 손전등에까지 침범한 것이다. 손전등은 나처럼 단단한 육체를 가진 게 아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천안(天眼)을 개안합니다.]
새 손전등을 꺼내봤자 또 박살 날 것이 분명하기에 그냥 천안을 사용하기로 했다. 걸음 속도를 약간 올렸다.
석실이 나왔다. 상당히 넓은 석실이었다. 석실의 중심에는 동그란 바닥이 있었고, 그 주위로 흐르는 물이 회전하고 있었다.
‘물이 안쪽 어딘가로 빠져나가서 다시 이쪽으로 흐르는 건가? 그나저나 엄청나게 물이 많군. 저 중심으로 가야 할 것 같은데… 음기가 너무 심해. 아무리 나라도 1시간 이상 버틸 자신이 없다.’
일단 중심에는 가지 않고 주위를 둘러본다. 벽면에 관이 서 있었다. 관은 거무튀튀했는데 낡은 부적 같은 것들이 관에 아무렇게나 붙어 있었다.
관은 총 13개. 관의 표면에는 각각 숫자가 적혀 있었다. 다만, 일(一) 대신에 초(初)라고 적혀 있었다.
그 의미는 뻔하다. 초대 천마의 시신이 저 관에 안치된 것이리라.
‘역대 천마의 수는 고작 13명이 아닐 텐데. 지금 천마가 21대다. 20개의 관이 있어야 정상이다.’
숫자를 보니 쭉 이어지지 않고 군데군데 몇 개가 빠져 있었다.
‘회수하지 못한 천마의 시신이 일곱 구나 되나. 생각보다 많다고 해야 할지….’
목적지에 도착했다. 근데 아무리 주위를 두리번거려도 무공비급으로 보이는 책은 보이지 않는다.
‘저 관들을 보면 부적으로 봉인되어 있다. 관안에 천마신공이 있을 확률은 적어.’
애초에 단순히 천마신공을 관안에 넣을 거면 굳이 천마신공을 얻기 위해 이런 곳을 올 필요가 있나.
중앙에 있는 딱 앉기 좋은 둥근 바닥. 그를 에워싸듯이 벽에 붙어 있는 관들. 눈치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수가 없었다.
나는 흐르는 물의 중심으로 걸어갔다.
파지직, 파직, 파지지지직!
예상했던 대로 다른 곳에 비해 음기가 어마어마하게 강했다. 중심으로 걸어가는 것뿐인데 전자기막이 흔들리고 있다.
지그시 이를 악물었다.
‘오기경인 내가 오래 버티기 힘들 정도인데… 천유운은 나보다 약할 때 들어와서 천마신공을 손에 넣었다. 어떻게?’
나와 천유운의 차이.
천유운은 21대 천마, 현 천마의 직계 혈통이라는 점이다. 금수저 중의 금수저.
‘천유운은 원작에서도 금수저라 온갖 영약을 지원받았지.’
전자기막이 음기를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 강렬한 음기가 내 몸 안으로 파고든다. 뇌기를 최대한 운용해 음기에 저항해도 부족하다. 느껴지는 차가움에 몸이 덜덜 떨렸다. 중심에 도착하자마자 가부좌를 틀고 뇌천결을 외웠다.
‘이건 임시방편이야. 천유운은 아마 양기가 담긴 영약을 먹었겠지. 그럼 나도 양기담긴 영약을 복용하면 돼. 내가 영약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래야 이 빌어먹을 음기에서 안전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간함에서 그동안 모은 영약을 꺼낸다.
질이 안 좋은 것들이 대부분이긴 한데 영약만 200개가 넘는다. 그중에 만뢰신단(萬雷神丹)이 있었으나 목록에서 뺐다. 지금 복용하기엔 너무 아깝다.
‘…이참에 도박 한 번 해볼까.’
모든 영약을 삼키는 것이다. 이 음기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이용하면 삼정의 경지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실패하면 주화입마로 죽겠지만… 완전 회복이 있으니까.’
가장 최근에 얻었던 수귀정(水貴晶)을 먼저 복용했다. 물의 기운을 가진 영단인 이것은 대량의 영기로부터 조금이나마 내 몸을 보호해줄 것이다.
우적우적.
입안에 영약을 때려 넣고 씹고 삼키기를 반복한다. 영약만 200개가 넘다 보니 이것도 일이었다. 어찌어찌 영약을 모두 먹으니 기운이 폭발하듯이 강해졌다. 그 지독한 음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내 몸은 영약을 먹기 전부터 포화상태였다. 이건 일시적인 현상이야. 음기가 균형을 잡아주고 있으나, 조금만 실수해도 내 몸은 기운을 버티지 못하고 풍선처럼 뻥 터질 것이다.’
호흡을 진정시키고 뇌천결을….
‘아니, 잠깐만. 난 뇌천류를 수련하려고 여기 온 게 아니야.’
천마신공을 얻으러 왔다. 여기까지 했는데도 저 관들은 반응하지 않고 있다. 저것들을 자극하려면 한 방법밖에 없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온몸을 타고 흐르던 뇌기를 단전 깊숙이 밀어 넣고 잠들어 있는 마기를 꺼낸다. 마기는 뇌기보다 더 거칠었다. 뇌기처럼 빠르지는 않으나, 뇌기보다 더 힘이 좋았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내 몸에서 시커먼 기운이 슬금슬금 새어 나왔다. 마기는 음기를 밀어내고 관에도 닿았다.
덜커덩덜컹!
벽면에 세워져 있던 관들이 일제히 흔들린다. 마기에 호응하듯 관에서도 마기가 흘러나온다. 내가 가진 마기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마기였다.
-질 좋은 마기가 느껴지는군….
-22대째가 될 놈이 다녀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23대가 왔다고?
-신교에 변고가 생긴 건가?!
-설마 황제가 천마신교를?!
-조용하라. 천마로서 위엄을 보여라.
관에서 나온 마기는 제각각 사람의 형상을 취했다. 총 13명의 역대 천마들이 허공에 나타나 나를 내려다봤다. 그들 중 시선을 끄는 자는 중심에 있는 남자였다. 깔끔하게 정리한 백발에 하얀 수염을 기른 남자. 늙은 것이 분명한데도 얼굴에는 주름 하나 없는 남자였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가 초대 천마였다.
-초대시여, 이놈은 이상합니다.
-이 아해는 천(天)씨가 아니군….
-천마가 천씨여야 한다는 법은 없다. 자질만 있다면 그 씨가 무에 중요하겠느냐!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
-닥쳐라! 천가의 피야말로 가장 귀하다! 이놈에겐 천마신공을 익힐 자격은 없다.
-조용히 하시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이 자가 천마신공의 자질이 있는가요.
-자질은 충분하지 않나? 이놈은 이미 마의 길을 걷고 있다. 어떤 마공을 익혔는지 몰라도 천마신공에 버금가는 마공을 익혔다.
-천마신공에 버금가? 미쳤냐?
-나는 찬성이오. 이놈은 천마가 될 자격이 있소. 마도의 길을 걷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별의 기운까지 느껴지오. 어떤 별인지 알 수 없으나… 절대 약하지 않은 별의 기운이오. 어쩌면 초대와 같은….
-…….
초대라는 말이 나오자 시끄럽게 떠들던 천마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들 모두가 초대를 존중했다. 천마신교의 시작이자, 가장 위대한 천마.
-초대시여. 이 자에겐 자질이 있을지 모르나, 자격이 없습니다. 애초에 천유운이 천마신공을 받고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이 자에겐 천마옥(天魔玉)이 없습니다. 멋대로 우리의 무덤에 침범한 도굴꾼이 아닐지.
-초대님, 자질 하나만 보면 역대급입니다. 저 사나운 마기를 완벽히 다루고 있는 모습을 보십시오. 천마신공의 마성을 이겨낼 정신력과 별의 기운까지. 초대님에 버금가는 자질입니다. 그 건방진 황제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혈통이 아닌 자질을 봐야 합니다. 천마가 최고여야 하고, 이 녀석이라면 온 세상을 지배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안 됩니다. 그 씨도 모르는 자에게 천마신공을 전수해선 안 됩니다!
그들 간의 토론이 또다시 격해지려는 순간, 초대천마가 왼손을 들었다.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네게 묻겠다.
과거의 마존이 내게 질문했다.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천마신공을 운공하고 있는 나는 당장 입을 열기 힘들었다. 지금 억지로 입을 열어 대답하면 십중팔구 내상을 입을 것이다. 어쩌면 죽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입을 다물고 있으면 이놈들은 내게 천마신공을 전수하지 않을 것이란 직감이 들었다.
억지로 입을 열었다.
"천마."
-호오?
"오직, 나만이, 천마다!"
-이런 건방진 것!
-지금 감히 우리를 부정하겠다는 것이냐?!
-오만하구나, 오만해!
-역시 이놈은 자격이….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모두가 눈살을 찌푸리는 와중에 초대천마만이 광소를 터트렸다. 매우 즐겁다는 듯이 웃은 그는 이내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너의 심상을 봐야겠다. 너의 포부가 거짓이라면, 그 대가를 치르리라.
나는 그를 거부하지 않았다.
13명의 천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