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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825화 (1,605/2,000)

< 1825화 > 1825. 광명승천도

13명의 천마가 내 심상으로 들어가며 나 또한 함께 빨려 들어갔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주인 없이 손님만을 맞이할 수는 없으니까.

의식이 심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와중에도 내 몸은 천마신공을 운공하고 있었다.

『사용자의 운기행공을 보조합니다.』

이대로 운기행공을 멈추면 영약의 기운과 음기의 여파가 내 몸을 만싱창이로 만들 것이 분명하기에 천강성 시스템이 보조했다. 몸만 강제로 무아지경에 들어간 상태라고 할까.

수우우우우욱.

의식이 길어지는 느낌과 함께 나는 운동장 위에 서 있었다.

슬쩍 둘러보니 저쪽에 국천대학교가 보인다.

‘이게 원래 내 심상이었나? 저번에 왔을 땐 안 이랬던 것 같은데.’

그래. 나는 예전에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 있다. [이세계 천마]의 천마신공을 흡수할 때일 것이다.

‘그때는 내 심상 세계가 아니었지.’

검은 하늘과 하얀 땅. 그것들밖에 없는 심상이었다. 사람의 심상이라고 하기엔 너무 무미건조했었다. 어떤 의미로는 이곳이야말로 내 심상이라 할 수 있었다. 내가 살아온 기억이 새겨진 마음.

"신기한 곳이구나."

고개를 획 돌렸다. 긴 검은색 머리카락의 청년이 서 있었다. 귀공자처럼 생긴 그는 한 손에 부채를 들고 있었다. 허리춤에는 검 한 자루가 걸려있다.

처음 보는 인물이었다.

이 심상에 처음 보는 인물이 있을 수 있었나?

‘내 심상인데 알 수 없는 놈이 있으면 이상하지.’

그러니 정체는 뻔하다. 관 속에 있던 13명의 천마. 그중에 한 놈일 것이다. 일단 초대천마는 당연히 아니었다. 초대천마는 다른 천마들에 비해 그 형태와 존재가 뚜렷했었다. 긴 하얀 머리카락과 긴 하얀 수염을 가진 노인. 아니, 노인이라 하기엔 얼굴에 주름 하나 없었다.

"너는 누구지?"

내가 경계하며 물었다. 13명의 역대 천마 중 나보다 약한 놈은 한 놈도 없을 것이다. 먹히지 않으려면 긴장해야 한다.

"버릇이 없구나. 천마답다고 해야 할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해야 할지. 나는 천현삭이다. 예를 갖추어 다시 인사 올리거라."

천현삭은 부채를 흔들며 말했다. 기생오라비 같은 그 행동에 짜증이 팍 났다.

"천현삭이라. 몇 대 천마지?"

"…내 이름을 듣고도 모르는 것이냐?"

"어차피 뒈진 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나? 내가 알고 있는 건 초대천마뿐이다. 초대천마가 역대 천마 중에서 제일이니."

초대천마는 후대를 위해 등선을 포기하고 죽어서 관에 들어가기를 선택했다고 한다. 초대천마의 강함은 현 황제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라는 것이 천마신교의 평가다. 실제로 황제보다 강한지는 알 수 없다. 초대천마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황제가 없었으니까.

"초대천마께서 우리 중 제일이란 건 부정할 수 없으나… 말투가 심히 거슬리는구나."

"싸울 거냐?"

나보다 강하다고 해도 여긴 내 심상이었다. 똥개도 자기 집에서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말이 있지 않나. 어떻게든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절하마. 네놈은 비록 천 씨도 아니고, 예의도 없으나 자질 하나는 역대 최고라 할 수 있다. 별의 기운을 타고난 자는 항상 특별하지. 천마에게 가장 중요한 힘. 그걸 손에 넣을 자질이 네게 있다."

"별의 기운을 고평가하는군."

"내 시대에는 별의 기운을 타고난 자들이 많았다. 7명이 활동했고, 천하는 7개로 나뉘었다. 분하게도 그중에 천마신교는 없었다. 나는 별의 기운을 타고나지 못하였기에 약자로 살아야 했다. 허나, 너는 다르다. 별의 기운을 타고난 너는 천하제일인이 될 자격을 갖추었다."

천현삭이 주접을 떨었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 관심이 전혀 없었기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렀다.

중요한 것은 천마신공을 얻는 것이다.

‘이놈을 죽이면 천마신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실패해도 상관없었다. 이놈을 제외하고도 지금 내 심상 어딘가에 있을 천마는 12명이나 되니까.

화련비도가 필요하다. 라고 의식한 순간 내 손에는 화련비도가 들려있었다. 아마도 이곳이 내 심상이기에 가능한 일. 나는 금이 간 부분도 없이 완벽한 상태의 화련비도를 천현삭의 목에 겨누었다.

"천마신공을 내놔라."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다. 천마신공의 전수는 초대천마께서 결정하신다. 초대천마께서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천마신공을 전수할 수 없다."

"즉, 네놈은 쓸모없다는 말이군."

"성급하게 굴지 마라. 심상에 대해 궁금하지 않나? 나는 네가 모르는 것에 대해 답해줄 수 있다."

화련비도를 내렸다. 심상에 대해 모르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심상이란 뭐지?"

"마음이며, 경험이자, 바라는 것이지."

천현삭은 부채를 들어 대학교 건물을 가리켰다. [광명승천도]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형식으로 지어진 구조물.

"이 건물은 지나칠 정도로 구체적이군. 이 건물이 너의 바람이 아니라면, 이 건물은 실제로 현실에 존재하는 것일 테지. 내가 죽어 있는 동안 세상이 변했나?"

그는 세상을 둘러봤다. 대학교 건물 이상의 고층 빌딩들이 주위에 즐비해 있다. 자동차는 움직이고 걸어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이상한 복장이로다. 이상한 마차를 타는 것까지….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과 벗어나 있군. 그러나 질서가 존재한다. 그렇군. 여긴 다른 세상인가. 재미있고 흥미롭구나."

"심상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해라. 기왕이면 이 심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알려줬으면 좋겠군."

"심상이란 곧 너의 정신이기도 하다. 네가 마음먹는다면 심상을 완벽히 조작할 수 있다. 방금 네가 칼을 만들어냈듯이 말이다."

"내가 마음먹으면 내 심상에 있는 너도 없앨 수 있겠군."

"마음먹는다고 이 세상 모든 일이 다 되느냐? 심상 또한 마찬가지다. 심상은 오로지 너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다. 이런 말이 있지. 삼정(三頂)은 심상을 인식하는 경지이며, 조화(造化)는 심상을 펼치는 경지이고, 만상(萬象)은 심상을 투영하는 경지라고 하지. 네가 본격적으로 심상의 힘을 이용하고 싶다면… 조화의 경지에 오르거라."

"…심상을 인식했다. 그럼 이제 나도 삼정경에 오른 건가?"

"그 질문의 답은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오기의 끝자락에 도달한 네겐 경지의 벽이 보일 테지."

"……."

이것만큼은 반문할 수 없었다.

실제로 관조를 조금만 해도 내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이 보였으니까. 이 벽은 심상 속에 있는 지금도 볼 수 있었다.

"흔히들 벽을 넘기 위해선 깨달음이 필요하다고 하지. 그 깨달음이란 뭐지? 한순간에 오는 영감인가? 누구도 확실하게 설명할 수 없네. 벽을 넘기 위한 깨달음은 누구에게나 다른 법이니."

"닥쳐. 내 스승이라도 된 것처럼 지껄이지 마라. 넌 심상에 대해서 말해라."

그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인 뒤에 말했다.

"네 심상이다. 네가 직접 알아내라. 한 가지 충고해주자면… 꺾이지 마라. 정신이 꺾이는 순간 네 심상은 붕괴될 것이다."

"꺾일 일 없으니 걱정 마라. 다른 천마들은 어디에 있는 거지?"

"이 심상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모두 제멋대로인지라… 네 정신을 꺾기 위해 이 심상에서 난동을 부리는 자들도 있을 테지."

"초대천마가 난동인가."

"아니, 그분께서는 아마 네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걸 확인하길 원하는 걸 테지. 천유운에게 그랬던 것처럼."

"천유운의 심상 가장 깊숙한 곳엔 뭐가 있는 거지?"

"그분만이 확인하셨지. 그분의 말씀으로는 하늘을 삼킬 뱀이 있다고 하시며 흡족해하시더군."

"내 심상 밑바닥에는 뭐가 있지?"

"그거야 나보다 네가 더 잘 알 텐데."

"모르니까 묻지. 너 지능이 좀 떨어지나?"

"이런 건방진…. 모르면 직접 가서 확인해라."

그래.

여긴 내 심상이었다. 이참에 직접 움직여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 뒤에 천현삭을 죽인다.

그때였다.

하늘에서 거대한 존재감을 가진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시커먼 기운, 마기(魔氣)를 온몸에 두른 거구의 남자였다.

"흐하하하하하!"

운동장에 크레이터를 만든 남자는 2m가 넘는 거검을 휘두르며 내게 걸어온다. 능공허도. 그 발은 땅에 닿지 않았다.

"이 오만한 놈! 여기에 있었구나!"

"4대 천마, 천배복이다."

천현삭이 말했다.

4대 천마 천배복은 얼굴이 붉고 털보였다. 그래서인지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를 떠올리게 했다.

"물러서라, 11대! 방해는 용납하지 않는다."

천현삭은 당연하다는 듯이 물러섰다. 그는 적당한 나무 아래로 들어가 부채질을 했다.

천배복은 성큼성큼 내게 걸어왔다.

"어린놈! 네놈의 자질이 뛰어난 건 인정하마. 허나 네놈에겐 자격이 없다! 천 씨 혈통이 아닌 천마는 절대 인정할 수 없다! 그분께서 전수를 결심하시기 전에 네놈의 정신을 꺾어 놓겠다. 그럼 그분께서도 옳은 결정을 내리시겠지! 11대! 다시 말한다! 방해하지 마라!"

"방해할 생각 없으니 걱정 마라. 겨우 이 정도에 꺾인다면 천마의 자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이겠지."

나는 어이가 없었다. 이 새끼나 저 새끼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선 눈앞의 천배복을 죽인 뒤에 천현삭도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화련비도를 들어 올리는 순간이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의 정수를 흡수했습니다.』

『완전한 천마신공을 익히기 위해선 보다 많은 정수가 필요합니다.』

『정수를 흡수하십시오.』

천강성 시스템의 알림창이 떠올랐다. 동시에 천마신공의 정보가 들어온다. 내가 익힌 천마신공이 아닌, 새로운 천마신공의 정보가. 다만 이 천마신공의 정보는 군데군데 비어 있었다.

‘천마신공의 정수라.’

무엇을 말하는지 직감적으로 알았다.

눈앞에 있는 천마.

이놈들이 천마신공의 정수가 아니고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이 나왔다. 나는 웃으며 천배복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거대한 참격이 천배복을 향해 날아갔다.

천배복이 깜짝 놀라 다급히 보법을 밟아 옆으로 피했다.

‘생각했던 대로군. 여긴 내 심상. 공격에 보정이 붙는다.’

이 세상에서 내가 질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천마신공을 사용하며 본격적으로 전투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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