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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827화 (1,607/2,000)

< 1827화 > 1827. 광명승천도

초대천마를 비롯한 6명의 천마는 시작부터 성유진의 심상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모두 생전에 최소 조화경(造化境)에 이른 자들로 심상에 익숙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7명은 보이지 않는군."

긴 머리카락을 머리 뒤로 넘기고 뱀처럼 생긴 얼굴을 한 남자가 말했다. 2대 천마 유허군이었다. 그는 천씨가 아니지만 초대천마가 죽기 전 직접 지목하여 천마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다.

"그놈들은 같은 천마라고도 부끄러운 어중이떠중이 아니었소? 같이 있어도 방해만 될 뿐이니 오히려 잘 됐소."

짧은 머리에 흉터 가득한 몸을 가진 남자가 말했다. 3대 천마인 천고신이다.

콰르르르르릉!

새파란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울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천둥이 치려면 먹구름이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이곳은 심상이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깨끗한 창천에 뇌성이 울린다? 그거 자체가 이 심상 주인의 특별한 무언가일 수 있었다.

"애송이 주제에 심상이 넓다. 공기와 습기의 감촉, 불어오는 바람과 단단한 땅…. 심상의 재현도가 상당하다. 거기에 별의 기운까지…. 완벽한 자질과 재능이다. 초대시여, 이 녀석은 천마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18대 천마 천운라가 말했다. 그녀는 얼굴 절반이 녹아내린 화상 자국이 있는 짧은 머리카락의 여성이었다. 눈빛이 날카로워서 여성이라기보다는 한 마리의 굶주린 맹수와 같은 인상이었다. 그녀는 현 황제의 전성기 때 활동했었던 천마였다.

콰콰콰콰콰쾅!

하늘에서 거대한 벼락이 떨어졌다. 작은 언덕 정도는 단번에 소멸시켜버릴 듯한 벼락.

초대천마가 마기를 담은 주먹을 휘둘러 벼락을 쳐냈다. 벼락은 저 멀리 있는 산에 날아가 처박혔다. 산의 일부가 사라졌다.

소년의 모습을 한 7대 천마 천팔비가 그 광경을 웃으며 바라봤다.

"흥미롭군요. 심상은 그 주인의 마음 상태를 비추는 법이니 불청객인 저희를 공격하는 건 이상하지 않습니다만, 저 정도로 강력한 번개가 우리를 공격하는 건 재밌습니다. 어지간한 놈들은 저 공격을 버티지도 못하고 소멸했겠지요."

그들의 가장 끝에 희미한 기척의 남자가 있었다. 검은 붕대로 얼굴과 몸을 가린 살수 출신의 천마, 13대 천마 적살이었다. 과묵한 그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가장 밑바닥에 뭐가 있을지 궁금하군."

초대천마 천갈손은 조용히 주위를 둘러봤다. 한때 등선의 경지에까지 오를 뻔했던 그의 눈에는 어디로 가야 할지 보였다.

"따라오너라. 이 끝에 있는 무언가를 확인하고 결정을 내리겠노라."

그는 길고 하얀 수염을 매만지며 걸어갔다. 그는 결코 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콰콰쾅! 콰콰콰콰쾅!

번개가 쉬지 않고 내리쳤다. 천마들은 가볍게 대응했다. 쳐내거나, 흡수하거나, 막아내거나, 피하거나. 한때 천하제일인이었거나, 천하제일인에 가까운 자들이라 불렸던 그들에게 있어 쉴 새 없이 떨어지는 거대한 벼락 공격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리를 이렇게나 적대한다니… 건방지군요. 유일한 천마가 되겠다는 그 포부는 거짓이 아니었나 봅니다."

7대 천마가 웃으며 말했다. 웃음에는 영혼이 없었다. 그 눈동자에는 희미한 짜증이 스치고 지나갔다.

3대 천마 천고신은 다른 곳에 흥미를 뒀다. 조금 더 멀리 있는 곳. 현대적인 도시와 서양 중세 시대의 저택과 성들이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특이한 형태의 건물들이 많군. 내가 살아있을 때만 해도 못 보던 건물들이오만…."

마음 같아서는 한 번 들어가 둘러보고 싶었다. 그러나 초대천마는 전혀 관심 없다는 듯이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18대 천마, 천운라는 이상함을 눈치챘다.

"제법 걸었는데 시체가 한 구도 보이지 않는다."

그에 몇몇 천마들이 눈을 치떴다.

심상이란 마음이었다. 마음이란 곧 기억과 경험이었다. 어떤 심상이든 정리하지 않은 단계에서 시체는 있다. 처음으로 살생을 저질렀을 때의 기억은 죽을 때까지 남는 법이니까.

그리고 무도한 자들을 죽인 경험이 있고, 죽음과 가까운 마도인들에게 있어 시체는 떼놓으려야 떼놓을 수 없었다.

"그놈은 아직 삼정에도 이르지 못한 애송이이니… 결론은 두 가지겠구나."

초대천마가 무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자기가 죽인 자들에게 아예 관심조차 없거나, 모종의 방법으로 심상을 정리했거나."

전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심상을 정리한다는 건 최소 삼정 상단은 되어야 가능하니까.

"……."

천마들은 모두 침묵하며 제각각 성유진에 대해 생각했다. 누군가는 혐오와 불쾌감을, 누군가는 긍정을, 또 누군가는 흥미를 느꼈다.

앞서 걸어가던 초대천마의 발이 멈췄다. 공간이 획 바뀌어버렸기 때문이다.

"음."

초대천마가 작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와 동시에 그를 비롯한 천마들은 천마신공을 사용했다. 천마신공의 마기로 몸을 감싼다. 얕은 호신강기로 몸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이 공간은 뇌기로 가득 차 있었다. 하늘은 물론이고 땅에도 흐르는 물처럼 전류가 흐른다. 공기에도 미세한 뇌기가 담겨 있어 몸에 파고들려고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뇌기는 독이었다. 뇌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모를까. 뇌기는 다른 속성에 비해서 굉장히 희귀한 속성이었다. 설령 뇌기를 타고난 사람이 있더라도 이 심상의 주인이 아니니 다룰 수 없을지도 모른다.

7대 천마가 하늘을 수 천개의 번개로 가득 차 있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단순한 현상이 아닙니다. 저 하늘 위에 무언가가 있습니다. 강대한 존재감이 느껴지는군요."

2대 천마도 하늘을 힐끗 봤다가 다시 시선을 내렸다.

"적대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굳이 확인해볼 필요가 있나? 무시하지. 여긴 심상의 밑바닥이 아니다."

모두가 초대천마를 바라봤다. 결국 결정을 내리는 건 초대천마였다.

초대천마는 흥미를 느꼈다. 존재감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저 하늘 위에 있는 존재는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라고. 동시에 이질적인 존재라고.

‘인간은 아니고 신선인가?’

초대천마는 신선을 마주한 적 있었다.

신선은 기본적으로 강하긴 했으나 못 이길 정도의 존재는 아니었다. 신선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강한 것만은 아닌 것이다. 신선의 가장 큰 특징은 이질점에 있었다. 인간과 근본적으로 다른 듯한 느낌. 오히려 살아 있는 자연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심상의 존재는 심상의 주인이 인상 깊게 느낀 존재가 간접적으로 나타난다. 이 정도로 넓고 뚜렷한 심상이니 거의 완벽에 가깝게 구현되어있겠지.’

다시 말해 심상의 주인은 신선을 만난 적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마 하늘과 번개와 관련된 신선.

‘하늘과 번개라. 심상치 않은 것을 대변하는 신선이군. 절대 격이 낮지 않다. 한번 확인해보고 싶구나.’

초대천마가 손을 들었다. 그 신호를 보고 살수 출신의 13대 천마 적살이 앞으로 나섰다.

"예. 초대님."

그는 초대천마를 제외하고 경공이 가장 뛰어났다. 또한 은밀했다.

"하늘 위의 존재를 확인하라."

"예."

13대 천마의 대답은 짧고 간결했다. 그의 무릎이 살짝 북혀졌다가 퍼졌다. 그의 몸이 위로 솟구친다. 그들에게 있어 하늘을 날거나, 달리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감히 허락 없이 신을 눈에 담으려 하는가.

은은한 분노가 느껴지는 중후한 목소리가 하늘에 울렸다.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던 번개의 움직임이 거칠어진다.

13대 천마는 더욱 철저하게 몸을 보호하면서 날아오는 번개를 피했다. 그는 구름 위에 있을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허공을 달렸다. 이 번개, 평범한 번개가 아니다. 이런 걸 계속 맞으면서 달리는 건 아무리 그라고 힘들다.

‘최대한 빨리 목적만 달성한다.’

구름을 뚫는다.

그 존재는 구름 위 왕좌에 앉아 있었다.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인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번개였다.

-허락 없이 하늘에 오르다니…. 불경에도 정도가 있다. 대가로 생명을 내놓아라.

그것이 손에 번개를 쥐고 내던졌다.

13대 천마는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회(回).

13대 천마의 천마군림보는 다른 천마들과 달랐다. 그의 심상을 천마군림보에 담았기 때문이다. 그의 천마군림보는 한순간 존재를 없앴다가 돌아온다. 존재를 없앤 그 순간은 그 어떠한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이 세상은 누군가의 심상 속 세계라는 것이다. 존재가 사라졌다가 돌아온다? 그딴 같잖은 잔재주는 통하지 않는다.

번개가 그의 몸을 꿰뚫고 지나갔다. 마기를 이용해 온몸을 강화했어도 그가 직접 던진 번개를 막을 수 없었다. 그는 의식은 점점 사라지며 자신의 존재가 어딘가로 빨려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대가가 부족하다.

그 존재의 시선이 지상으로 향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5명의 천마 중 한 명에게 번개를 던진다.

18대 천마 천운라가 그 표적이었다. 그녀는 양손을 움직인다. 검을 쓰는 다른 천마들과 달리 수공(手功)을 익혔다. 심지어 무당파의 무공을 이용해 개인 절기까지 만들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태극마인(太極魔引).

그녀의 양손이 크게 태극을 그린다. 그녀의 머리를 노리던 번개의 방향이 바뀌었다. 태극의 중심으로 번개가 빨려 들어간다. 그대로 번개와 함께 태극이 사라져야 정상이지만, 번개는 태극마저 꿰뚫으며 그녀의 심장을 파괴했다.

경악으로 일그러지는 얼굴을 마지막으로 그녀의 존재가 사라졌다.

"……."

천마들은 침묵했다. 이후 그들의 눈빛이 사나워진다.

"천마 체면 다 구기는군요."

"보통 놈이 아닌 건 확실하다."

"놈을 죽이고 가는 게 어떻소?"

초대천마는 고개를 저었다.

"놈은 심상의 존재. 의미 없다는 걸 너희도 알고 있을 것이다."

"…초대님. 이대로 저희가 물러나면 놈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다."

"나중에 그 죄를 물으면 된다. 본좌는 이 밑바닥에 있는 무언가를 당장 확인해야겠다."

초대천마는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2대, 3대, 7대 천마는 서로 눈짓을 교환하다가 그 뒤를 따랐다. 솔직히 말해 초대천마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구름 위의 존재와 싸워 이길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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