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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833화 (1,613/2,000)

< 1833화 > 1833. 광명승천도

주먹이 짜릿짜릿했다.

아프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적당한 쾌감이라고 할까. 삼정의 경지에 오르고 나서 제대로 하는 공격은 예상 이상으로 뛰어났다.

‘용권은 원래 힘을 집중해서 때리는 공격인데… 이 정도의 위력이라니.’

내기의 양이 많아진 것은 물론이고 기운의 질까지 올라갔다. 특히 기운의 발산까지 걸리는 속도와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기운의 총량도 늘어났다. 완력이 상승한 건 당연하고 체력 회복 속도 같은 것도 올랐을 것이다.

‘이러니까 경지를 오르려고 하지.’

히죽 웃으며 방금 일으킨 광경을 다시 눈에 담는다.

대문에서부터 시작되어 본채까지 직경 2m가 넘는 구멍이 일직선으로 만들었다. 물론 본채도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본채 건물은 그것만으로 무너질 정도로 허술하게 지어지진 않았으나, 휘말린 인간들이 있었다.

감히 건방지게 내 앞을 가로막았던 문지기 3명과 본채 내부에 있던 놈들 2명. 총 5명이 대충 내지른 일격에 요단강을 건넌 것이다.

"대가리 박으라고 했을 텐데."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왼팔을 품에 안고 있는 미령이 우아하게 손을 흔들며 문지기들에게 말했다.

"자, 자, 서방님이 자비를 내려주셨잖니. 얼른 바닥에 대가리 박으렴. 아니면 죽고 싶은 거니?"

털썩.

문지기들이 죄다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다행히도 눈치가 전혀 없진 않은 모양이다.

나와 미령은 뻥 뚫린 대문 안으로 걸어갔다. 사방에서 시선이 느껴진다. 그러나 정작 내 앞에 나타나는 인물은 없다.

이쪽은 삼정경 둘. 아무리 오기경의 고수가 10명이라고 해도 절대고수 2명을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다. 지금 나서면 뒤질 것 같으니 간을 보고 있는 것이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천마기가 사방으로 뻗어가며 공간을 장악한다. 나는 단 한 걸음으로 동가(東家)를 제압한 것이다. 숨어 있는 놈들의 위치가 정확하게 느껴진다.

"커억!"

"끅…!"

어느 정도 단련된 이들은 가슴팍을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천마군림보의 위압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이놈들은 그나마 낫다. 무공을 익히지 못한 놈들은 그대로 기절했다. 대부분 잡일을 맡은 하인들이다.

"열을 세겠다. 본좌의 앞으로 나와서 무릎 꿇어라."

"하나~"

내 말이 끝나자마자 미령이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둘~"

장난기 서린 목소리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숨어 있는 놈들이 느끼기엔 어떨까. 아마도 자신들을 향한 조롱으로 느낄 것이다. 그리고 놈들에겐 그에 발끈할 자격도 없었다. 힘이 없으니까.

"셋~"

이변이 일어났다. 숨어 있던 오기경의 고수 중 하나가 도망치기 시작한 것이다. 경공에 자신 있는 듯 제법 빨랐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내 영역 안에 있다. 천마군림보로 공간을 뛰어넘어 단숨에 놈의 모가지를 딸 수 있었다. 내가 나서려는 찰나, 미령이 내 팔을 꽉 쥐었다.

그녀를 보니 왼손으로 엄지와 검지를 붙여 원을 만들었다. 원 안의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도망치는 무인의 뒤통수가 보인다. 미령이 작은 목소리로 웃었다.

"잡아버렸네?"

도망치는 무인의 몸에 시퍼런 불꽃이 일어났다. 푸른 불꽃은 순식간에 무인의 전신으로 번졌다.

"끄아아아아아아악!"

미령의 손가락 사이로 끔찍한 비명이 울린다. 비명은 15초가량 이어지다가 뚝 끊겼다. 죽은 것이다. 미령이 손을 털었다. 희미한 타는 냄새는 불어오는 바람에 섞여 사라졌다.

"넷~"

변화가 있었다. 숨어 있던 놈 중 일부가 압박감을 버티지 못하고 튀어나온 것이다. 놈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걸어와 무릎 꿇고 오체투지를 했다.

"다섯~"

남은 오기의 무인은 9명. 이놈들은 괘씸하게도 나오지 않고 있다.

‘하나 정도는 죽여도 되겠지. 유성검.’

본채 옆에 있던 별채의 상공에 검 한 자루가 나타난다. 검 자체는 투박한 형태를 가졌지만, 천마기가 검을 휘감듯이 두르고 있었다. 내가 턱짓하자 유성검이 별채를 향해 떨어진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별채가 단숨에 무너졌다. 그 파편이 내가 있는 곳까지 튀었다. 미령이 가볍게 손가락을 까딱이자 방어막이 생성되어 파편을 막았다.

유성검이 떨어진 곳에는 무너진 잔해와 유성검에 복부가 꿰뚫린 무인 하나가 죽어 있었다.

"여섯~"

미령의 고운 목소리가 울린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역시 하나만으로는 섭섭하지. 또 누굴 죽일까.

"일곱~ 여덟~ 아홉~"

미령이 연달아 숫자를 셌다.

숨어 있던 오기의 무인들이 튀어나왔다. 경공까지 사용해 달려온 그들은 바로 우리 앞에 넙죽 엎드렸다.

"이렇게 빨리 올 수 있었으면서 내가 마지막 열을 세기 전에 나온 거야? 괘씸하네요~"

미령은 가장 늦게 달려온 오기의 무인을 검지로 가리키며 주문을 중얼거렸다.

콱.

공간이 지끄러지며 무인의 몸을 비튼다. 무릎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무인은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몸이 비틀려 죽었다. 피와 내장에 바닥에 쏟아졌다.

덜덜덜.

무릎 꿇고 고개를 조아린 자 중에서 떨지 않는 자들이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미령은 그들이 보는 앞에서 손가락 하나만으로 오기경의 고수를 끔찍하게 죽였으니까. 술법이란 걸 알고 있는 내가 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미령같은 술법사와 싸운다고 생각한다면… 머리가 아파 온다.

"누가 동가의 가주지?"

"저, 접니다, 어르신."

중년 남자가 조심히 몸을 일으켰다. 살아남은 오기의 고수 7명 중 하나였다. 좀 더 자세히 보니 다른 놈들보다 입고 있는 옷이 고급스러웠다.

"우리가 친히 동가에 놀러 와 주었으니, 동가는 환영회를 열어야 마땅하다. 한 시진 주겠다. 연회를 열어라. 그렇다고 잡것들은 부르지 말고."

"아, 난 선물로 옷이랑 보석을 받고 싶으니까. 그렇게 알고?"

"그, 그건…."

가주가 당황하며 눈동자를 굴린다. 머릿속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딱히 마땅한 방도는 없을 것이다. 삼정의 절대고수 2명. 이런 변방의 도시가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까.

나는 가주에게 쪼인트를 깠다. 그의 종아리 뼈가 골절되는 감각이 느껴졌다. 상관없었다. 내 다리도 아니니까.

가주는 억지로 비명을 참았다. 가주 짬을 그냥 쌓은 건 아닌지 눈치는 있었다. 비명을 질러 절대고수인 내 귀를 더럽혔다면 오른팔을 잘랐을 텐데.

"저기 있는 여인들의 미색이 뛰어나군. 본좌의 은총을 받을 자격이 뛰어나다. 씻고 좋은 옷을 입혀서 본좌에게 보내라. 맛있는 술과 음식을 정성스레 차려야 할 거다. 아, 뛰어난 기녀들도 보내는 걸 잊지 말고."

"아, 이 근처에 결계를 쳐놨으니 우리 허락 없이 밖으로 나갈 수 없을 거야. 이상한 짓거리를 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고. 후후."

나와 미령은 본채의 가장 위층으로 올라갔다. 가주실이라도 되는 듯 상당히 고급스러운 가구들이 들어있었다. 물론 나와 미령은 가구 따위에 관심 없었기에 창밖으로 갖다 버렸다. 그 과정에서 벽이 박살 났지만, 시원한 바닷바람이 솔솔 불어서 나쁘지 않았다.

"오, 서방님. 여기 괜찮은 영약이 있어요."

"뭔데?"

"설삼(雪蔘)이요. 이 정도면 거의 500년급은 되겠는 걸요? 설삼이 얼마나 몸에 좋은 줄 아시죠?"

설삼은 영약 중에서도 최상위다. 비슷한 년수의 영약 중에서도 약효가 뛰어나다. 또한 500년 이상이면 수명까지 늘릴 수 있다.

"네가 먹어."

"…바로 가져갈 줄 알았는데. 웬일로 저한테 주는 거예요?"

"500년 이상 설삼이면 수명이 늘어나잖아. 네가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그거라도 먹어야지."

"아, 진짜! 맞을래요?!"

미령이 주먹을 쥐고 내게 달려온다. 의외로 자세는 태가 나왔다. 술법사라고 해서 무를 익히지 말란 법은 없으니… 기본적인 무공은 익힌 것 같다. 그래봤자 술법사 치고에 불과하지만.

미령의 주먹을 손바닥으로 밀어내고 상체를 숙여 미령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자연스럽게 얼굴을 그녀의 가슴에 묻었다. 옷 위로도 느껴지는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이 얼굴을 통해 느껴진다. 남자의 심장을 건드는 향기는 덤이다.

고수질을 하는 것보다 이 가슴에 얼굴을 묻는 게 100배는 더 기분 좋았다.

"아앙. 지금 여기서 하는 건 좀 그렇지 않아요?"

말과 달리 그녀는 내 뒷머리를 꾸욱 누르고 있다.

그녀에게 취하기 직전, 미령이 내 머리를 살짝 밀었다.

"그건 그렇지."

아쉬움을 숨기며 대답했다. 어차피 밤이 되면 미령은 내 앞에서 헐떡일 것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 여자였다.

"그럼 어디 조금 꾸며볼까요?"

미령이 술법을 사용했다. 부서진 벽을 술법으로 만든 벽으로 막았다. 방안의 공간이 확 늘어난다.

신기해서 원리가 물어봤다. 결계를 중첩시켜 공간축을 뒤틀고 어쩌고 설명했는데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바닥에는 고급 바닥재가 깔리고 천장에는 조명이 달려 번쩍거렸다. 그녀는 방 중심에 커다란 상 하나를 꺼내 놓았다. 나는 대충 상석으로 보이는 곳에 앉았다. 미령은 내 오른편에 앉더니 내게 몸을 기댔다.

잠시 후, 하인들이 음식과 술을 나르기 시작했다.

"아~ 해보세요."

"아~"

미령이 입에 고기를 넣어줬다. 육질을 씹어보니 새끼 돼지구이였다.

"어때요?"

미령은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네가 먹여주니 맛있다. 라는 입바른 소리를 기대하는 건 아닐 테고…. 내 까다로운 입맛을 알고 있으니 술상을 엎어버리기를 원할지도 몰랐다.

"맛있는데?"

"…진짜요?"

굳이 거짓을 말할 이유는 없었다. 정말 맛있었다. 이 도시를 지배하고 있는 가문이니, 주방을 맡은 숙수는 아마 도시 제일일 것이다.

미령은 고기를 한 점 먹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나쁘지 않은 실력이네요. 그럼 술은 어떨까요."

"여아홍이군."

여아홍은 고급술이었다. 미령이 따라준 술을 한 잔 마신다. 나쁘지 않았다.

"근데 여자는 왜 안 올라오는 거지? 설마 튀었나?"

"그건 아니에요. 무단으로 결계 밖으로 나간 사람은 없어요. 그렇게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결계도 아니고요."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여인들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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