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8화 > 1838. 광명승천도
"꺄아아아아아악!"
별채에서 여자의 비명이 들렸다. 별채에는 미령이 있다. 상식적으로 미령이 비명을 지르는 건 말이 안 되니 시녀들의 것이리라.
‘미령이 시녀들을 죽이기로 했나. 방금 미령이 보낸 문자 메시지도 그렇고… 일이 틀어졌군.’
나는 혀를 차며 허리를 빠르게 움직였다. 가주의 딸의 보지에 내 자지가 엄청난 속도를 들락거렸다. 이어서 그녀의 보지 안에 사정했다.
자지를 빼고 허공에 털었다. 자지에 묻은 애액과 정액이 사방으로 튀었다. 깨끗한 천으로 자지를 닦아내고 옷을 입었다. 챙길 건 챙긴 뒤에 창문을 열고 밖으로 뛰었다. 본채보다 조금 작은 별채의 창문을 박살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미령과 목이 터져 죽은 남자와 불에 타 죽은 시녀들이 보였다. 비명은 시녀들이 지른 모양이다. 대충 어떻게 된 건지 알 것 같다. 이 남자는 미령이 부른 게 아니라, 가주가 이간질하기 위해 부른 것이리라.
"아직 이틀이나 남았잖아. 벌써 끝내자고?"
"서방님. 얘들은 선을 넘었어요. 그리고 이미 즐길 건 즐기고, 챙길 건 전부 챙겼잖아요? 슬슬 정리하죠."
즐길 건 다 즐겼지만…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인구수의 200만의 도시. 그중 미모 상위 1%만 해도 2만이다. 이 절반이 여자라고 하면 1만 명의 미녀가 있다. 일주일 만에 1만 명의 미녀를 따먹는 건 역시 불가능해도 될 수 있는 한 따먹고 싶다.
하지만 미령은 화가 나 있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나도 화가 났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나와 미령 사이에서 이간질을 계획하다니.
"일단 가주부터 죽일까."
"네. 그리고 동가(東家)는 확실하게 불태우고 떠나죠. 없는 편이 더 좋으니까요."
"가주의 아내와 딸은 살려둔다. 내 아이를 임신했거든."
"혹시 정이라도 붙였어요?"
"그런 건 아니고. 나중에 와서 또 따먹을지도 모르잖아. 미녀기도 하고."
"…아이를 낳을 것 같진 않은데요. 낳더라도 제대로 키울 것 같지도 않고."
"뭐, 외가 쪽도 있을 테니 알아서 하지 않겠어? 어차피 동가가 멸망하면 복수 따윈 꿈에도 못 꿀 테고. 네 얼굴이랑 내 얼굴도 모르잖아."
"으음…. 서방님의 뜻대로 하세요."
"아까도 말했듯이 일단 가주부터…. 가주는 어디에 있지? 형제랑 아들들을 죽이라고 했는데."
"아직 결계 안에 있어요. 지금 결계 밖으로 나간 건 심부름꾼 3명이에요."
그때였다. 귀에 매우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쇠로 쇠를 긁는 듯한, 듣기만 해도 기분 나빠지는 소리였다. 소리는 가문 밖에서 들렸다.
"어떤 놈이 있단 소리를."
듣기 싫은 쇳소리에 짜증이 확 올라왔다. 나는 힐끔 미령을 바라봤다. 여우라서 그런지 그녀는 소리에도 민감했다. 그녀도 나 이상으로 짜증이 났을 게 분명할 것이다.
내 예상은 빗나갔다. 그녀는 짜증 어린 표정 대신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정색하고 있었다.
"이건 주술이네요."
"이 쇳소리가?"
"소리에 저주를 담는 거죠. 듣는 이의 움직임을 제약하거나, 듣는 이의 정신을 제어하거나. 소리 자체에 물리적인 힘을 부여하는 술법도 있긴 한데, 이건 아니에요."
"나와 너의 정신을 장악해서 제어하려는 건가?"
"아뇨. 고작 이런 주술로 저와 서방님의 정신을 장악할 수 있을 리 없어요. 아마 주술의 대상은 저희가 아닐 거예요."
"――――――――"
쇳소리가 또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소리가 나는 방향을 알 수 있었다.
[천안(天眼)을 개안합니다.]
천안을 이용해 소리의 근원지를 확인했다. 노파가 있었다. 검은색 피리를 입에 물고 연주하고 있다. 딱 보기에도 기분 나쁜 생김새의 노파였다.
나는 노파를 보며 오른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후우우우우웅.
뇌기가 내 몸에서 빠져나가 하늘로 올라갔다. 직후, 낙뢰가 노파에게 떨어졌다. 노파는 자신에게 떨어지는 낙뢰를 피하지 못하고 맞아 감전당해 죽었다.
"피리 부는 노파는 죽었어."
"다행이네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준비는 이미 끝난 뒤였나봐요."
미령이 한 말의 뜻을 조금 지나 알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무기를 든 도시 시민들이 튀어나와 동가(東家)로 진격하고 있었다. 죄다 머리가 돌아버렸는지 화가 잔뜩 난 얼굴이다.
"일반인들을 주술로 제어한 건가."
"네. 주술 수준으로 봐서는 일시적이겠지만요. 아마 저들은 자기 목숨을 도외시하면서까지 저희를 죽이려 할 거예요. 어떻게 할까요?"
선택지는 여러 가지다. 가장 쉬운 건 도망가면 된다. 미령이 전이술을 쓰면 이 도시에서 벗어나는 건 일도 아니다. 전이술이 완성되기까지 시간을 좀 끌어야겠지만, 어렵지 않다.
"마음에 안 드는군."
이간질을 한 가주 놈이나, 주술에 걸려 우릴 죽이려고 하는 놈들이나. 전부 마음에 안 든다.
"결계가 있으니 막을 수 있지 않아?"
"힘들어요. 그렇게 견고한 결계는 아니라서요. 거기다… 봐요. 동가의 무인들이 결계를 때리고 있어요."
시선을 내리니 오기경의 고수들이 전력을 다해 공격하고 있었다. 지나칠 정도로 상황 판단이 빠르다. 저건 일반인들의 진격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즉, 이간질과 더불어 이것도 동가의 계획인 것이다.
"으음. 못해도 50만은 될 것 같네요. 이거… 위험한데요. 50만은 너무 많아요. 후딱 가주만 죽이고 도망가죠."
"아니, 가주도 죽이고 저 새끼들도 죽인다. 난 걸어온 싸움은 피하지 않아."
인벤토리에서 화련비도를 손에 넣었다. 화련비도를 허공에 몇 번 휘두르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좆밥들이 모여봤자 좆밥이지."
"어…. 진짜 하려고요?"
"그래. 이번에 얻은 천마신공도 확인해볼 겸."
"…하아. 어쩔 수 없네요. 제가 뒤에서 도와드릴게요.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나는 천안을 사용한 상태로 동가 내부를 둘러봤다.
가주를 찾았다. 놈은 벽의 그늘 속에 숨어서 일반인들이 들이닥치길 기다리고 있었다. 일반인들을 이용해 내 힘을 빼놓을 속셈인 것 같다.
‘그렇게는 안 되지.’
가주를 죽이려 뛰려다가 멈췄다. 지금 가주를 죽이면 너무 쉽게 죽이는 거 아닐까. 나는 가주가 고통받았으면 좋겠다.
‘가주의 식솔들부터 죽이자. 그럼 가주가 괴로워하겠지.’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다가 창고 쪽에 숨어 있는 가주의 막내아들이 보였다. 미령의 결계가 깨지자마자 뒤쪽으로 도망칠 생각인 게 확실했다.
나는 가볍게 바닥을 차며 창고를 향해 뛰었다.
‘거리가 좀 모자라나.’
뇌천류(雷天流) 허도(虛道).
허공을 밟고 앞으로 나아간 나는 곧 창고를 향해 떨어졌다.
지붕을 뚫고 내려가며 무인 둘을 베어 죽였다. 가주의 막내아들은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치다가 이를 악물며 검을 들어 내게 겨눴다.
"이, 이, 마두놈!!"
"이런 벼르장머리 없는 자식을 봤나."
"절대로, 절대로 네놈만큼은 용서하지 못한다!!"
소년이 내게 달려든다. 무가의 자식이라 그런지 그럭저럭 자세는 나왔다. 물론 그래봤자 좆밥은 좆밥이었다.
천마신검(天魔神劍) 격섬(擊閃).
허공에 마기를 두른 칼을 휘두른다. 마기는 참격이 되어 소년에게 날아가 어깨에서부터 허리까지 사선으로 베었다.
바닥에 쓰러진 소년의 머리를 잡고 하늘을 향해 던졌다.
"으아아아아아아악!"
자기 아들의 시체를 봤는지 가주가 괴성을 터트렸다. 나는 낄낄 웃으며 창고 밖으로 나왔다.
‘가주는 마지막에 죽인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놈들부터 죽이기로 했다. 나는 천안을 이용해 숨어 있는 하인과 무인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천마신검(天魔神劍) 격섬(擊閃).
오기경의 무인을 향해 검은 참격을 날린다. 무인은 두 눈을 부릅뜨며 내가 날린 참격에 검을 휘둘렀다. 푸른색 참격이 날아온다. 참격에 참격으로 맞선 것이다. 허나 격섬은 너무도 가볍게 적의 참격을 부수며 무인을 베어 죽였다.
‘이건 참격의 차이다.’
뇌천류에는 뇌섬(雷閃)이라는 비슷한 참격 기술이 있다. 기운의 양을 동일하게 사용한 격섬과 뇌섬이 부딪치면 어떻게 될까? 격섬이 뇌섬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대신 뇌섬은 격섬 이상으로 빠르다. 힘의 차이라기보다는 특성의 차이다.
‘이번에 얻은 천마신공은 힘에 치중되어 있다. 특히 검술에 치중된 게 많아. 따로 천마신검이라 부를 정도로.’
이번에 얻은 천마신공은 힘이었다. 오직 힘. 다른 것 따윈 아무래도 좋다는 느낌.
‘그리고 영혼과 관련된 기술이 몇 있다.’
그중에는 절대 사용할 수 없는 기술이 있다. 어떻게 이런 기술이 만들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는 기술이.
-서방님. 결계가 깨졌어요.
미령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전음이 아니다. 일종의 텔레파시였다.
그녀의 말대로 동가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벽이 무너지는 게 느껴졌다.
"저기 있다!"
"놈을 죽여! 죽여라!"
"저놈을 죽여야 해! 왜냐면… 죽여야 하니까!"
일반인들이 나를 향해 살의를 내뿜으며 다가온다. 분노와 증오. 그리고 광기가 느껴졌다. 그들이 쥐고 있는 건 제대로 된 무기가 아니었다. 어떤 놈은 농기구, 어떤 놈은 식칼, 어떤 놈은 웍을 들고 있었다. 어처구니없게도 나무 빗자루를 든 놈도 있었다.
"버러지들이. 너희들이 모이면 뭘 할 수 있을 것 같나?"
나는 칼을 움켜쥐었다. 화련비도의 붉은 날에 새까만 마기를 담는다. 그 모습은 검은 물이 허공에 나타나 칼에 흡수되는 듯한 광경이었다.
천마신검(天魔神劍) 마겁(魔劫).
반쪽짜리였다. 진짜 마겁은 자신의 존재와 심상을 담아야 했다. 나는 그저 흉내 내듯이 마기만 검에 담았을 뿐이다.
‘이래서야 평범한 검강이나 다를 바 없군.’
하지만 이것만으로 놈들을 죽이기 충분하다 못해 넘쳐흐른다. 소 잡는 칼로 버러지를 베는 격이다.
‘뭐, 이건 연습이니까.’
그러니 좀 제대로 할 생각이었다.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13명의 천마를 흡수할 때, 내 안으로 들어온 건 그들이 가진 천마신공뿐만이 아니다. 일부지만 그들의 기억까지 내게 들어왔다. 뭐, 그들의 기억 따윈 내겐 어떤 감흥도 주지 못했지만.
하지만 참고할만한 기억은 제법 있었다. 대표적으로 초대 천마의 기억.
지암성(地暗星)의 기운을 타고난 초대천마는 별의 힘을 뜻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암성의 힘은 질량이었다. 초대천마는 검이 아니라 기운의 질량을 조절했다.
나는 놈들을 향해 크게 화련비도를 휘둘렀다.
『천강성의 빛을 사용합니다.』
『지암성(地暗星).』
천강성의 빛은 일시적으로 다른 별의 힘을 사용하게 해주는 힘이었다. 휘두르는 도중에 갑자기 늘어난 기운의 질량은 그 자체로 힘이 되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충격파가 터지며 내게 달려들던 일반인들을 휩쓸었다. 가장 가까이 있는 놈들은 뼈와 살이 그대로 분쇄되었고, 그 여파는 뒤로 쭉쭉 뻗어갔다. 충격파에 닿은 놈들은 예외 없이 몸이 파괴되어 날아갔다.
족히 500m. 충격파가 뻗어나간 거리였다. 내 앞에는 피의 흔적만이 있을 뿐이다. 대충 5,000명 이상은 이 일격에 죽은 것 같다.
뿌듯함을 느끼는 사이였다.
빠직.
화련비도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떨리는 눈동자로 화련비도의 칼날을 쳐다본다.
원래 있던 금이 3배 이상 커졌다. 나는 경악해 비통한 음성으로 외쳤다.
"화련비도오오오오오오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