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5화 > 1845. 광명승천도
“지금의 나는…. 천마를 넘어선 천마. 초천마(超天魔)다.”
귀수라 귀저가 주춤거렸다. 초천마? 이해하지 못할 단어 때문이 아니다.
눈앞에 있는 인간이 사용한 건 일종의 마술이었다. 자신의 혼을 파괴하는 대가로 일시적으로 힘을 얻는 마술.
귀수라가 이해할 수 없는 건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파혼(破魂)까지 하는 증오. 자신이 뭘 했다고 영혼의 소멸까지 선택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수라족이 전투에 미친 종족이긴 하지만, 영혼을 갈면서까지 전투에 임하지 않는다. 그래야 다음에도 싸울 수 있으니까. 하지만 눈앞에 있는 놈은 뭔가 달랐다.
두 번째는 힘이었다. 아무리 영혼을 부순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가지는 건 이상했다.
영혼을 파괴하고 불태워봤자 결국은 인간의 영혼에 불과했다. 고작 인간 영혼 따위가 저 정도 가치가 있는 건 말도 안 된다.
‘영혼의 격이란 곧 업의 가치. 저 정도 힘을 발휘한다는 건 어마어마한 업을 쌓아야 가능하다.’
업이란 단순히 사람을 죽였다고 쌓이는 게 아니고, 영혼의 격도 사람을 죽였다는 올라가는 게 아니다. 자신이 살아온 삶, 그리고 자신이 남에게 끼치는 영향력. 그것이 업이며, 그것이 영혼의 격을 끌어올린다.
인간에겐 한계가 있었다. 이 정도로 영혼의 격을 끌어올릴 수 있는 건 황제 정도뿐이리라. 근데 눈앞에 황제에 버금가는 인간이 있었다.
황제도 아닌데 어떻게 이 정도의 격을 가지는 게 가능하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미지는 꺼림칙했다. 귀수라는 아주 약간 겁을 먹었다.
‘온다…!’
귀수라는 제3의 눈을 통해 짧은 미래를 볼 수 있다. 고작해야 1~2초. 컨디션이 좋을 때는 5초 이상.
지금 그에겐 3초 뒤의 미래가 보였다. 성유진에게 맞아 곤죽이 된 자신의 미래가.
자신의 머리로 날아오는 주먹을 이를 악물고 피했다. 주먹이 귀수라의 관자놀이를 지나간다. 발생한 권풍(拳風)에 귀수라의 뒤편에 있던 작은 언덕이 날아갔다.
‘보였다!’
자신의 복부를 때리는 놈의 주먹이.
귀수라는 회피에 집중했다. 놈의 힘을 보아 한 대라도 맞으면 치명상이 될 것이다. 파혼에 의한 힘은 일시적이다. 오래가지 않는다. 영혼이 전부 불탈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다행히도 자신의 제3의 눈은 공격을 피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 어디로 올지 뻔히 아는데 못 피할까.
퍼어억!
피하지 못했다. 성유진의 주먹이 귀수라의 복부에 꽂혔다. 아는데도 못피할 만큼 빨랐다. 현재와 미래의 차이가 너무 짧았던 것이다. 성유진의 공격을 온전히 피하려면 최소 2초 이상의 미래여야 한다.
‘젠장…!’
귀수라의 몸이 하늘로 날아갔다. 땅이 아니라 하늘. 오히려 잘 됐다. 이대로 벗어나는 거다. 놈이 자신의 힘을 완전히 소모할 때까지.
지상에 있는 성유진은 고개를 들어 올려 구름 위까지 올라가는 귀수라를 천천히 지켜봤다. 홈런을 치고, 그 타구를 가만히 서서 지켜보는 것과 같았다.
귀수라가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될 즘, 성유진이 움직였다. 그가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몸이 사라졌다. 직후, 귀수라의 등 뒤에 나타나 망치 휘두르듯 귀수라의 머리를 후려쳤다.
콰아아아아앙!
그 충격파에 주변 구름이 단숨에 사방으로 흩어지고, 귀수라는 유성처럼 지상으로 떨어져 땅바닥에 처박혔다.
유성검.
하늘에서 300m가 넘는 거대한 검이 귀수라를 향해 떨어진다.
제3의 눈을 통해 알고 있었던 귀수라는 4개의 검을 각각의 손에 쥐고 유성검을 쳐냈다. 유성검이 튕겨 나가 산에 처박혔다.
귀수라의 몸이 덜덜 떨렸다.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귀저!
귀수라의 머릿속에 정신을 잃었어야 할 천유운의 목소리가 울린다. 귀수라가 약해졌다는 증거였다.
-저건 천마신공의 파천황이다. 기껏해야 3분이 한계다!
‘시끄럽다. 정신 사나우니 닥쳐라. 저 괴물을 상대로 버티는 게 쉬울 줄 아나? 그리고 3분이 뭐냐.’
-네가 저놈을 단숨에 죽였다면 이런 일도 없었다…!
천유운의 말이 맞았다. 괜히 놈과 놀아보겠다고 전투를 끌었더니 이 꼴이 났다.
‘…잠깐. 파천황. 그거 너도 쓸 수 있냐?’
-못 쓴다. 그게 간단한 기술인지 아나? 삼정의 경지에 오르더라도 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파천황을 쓴 저놈이 이상한 거다. 하지만 너라면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지금 넌 내 기억 일부를 볼 수 있을 테니.
‘나보고 희생하라고? 내가 그딴 미친 짓을 할 것 같냐.’
-어차피 다른 수는 없지 않냐. 게다가 명인은 죽으면 윤회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네게 있어 죽음과 영혼의 소멸은 같지 않나?
‘멍청하긴! 같지 않다! 명인이 죽으면 그 영혼은 윤회하지 않으나, 명계와 하나가 되어 진정한 안식을 맞이한다! 파천황? 영혼의 소멸은 개죽음일 뿐이다!’
-수라를 비롯한 몇몇 종족은 명계에서 태어난다고 들었다. 네가 말하는 그것은 또 다른 윤회이자 질서가 아닌가? 명계만의 윤회. …그렇군. 명계는….
성유진이 바로 앞에 나타났다. 그가 칼을 휘두른다. 기술 따윈 없이 그저 힘만이 담긴 무식한 일격. 미래시 덕분에 어떻게든 피했다.
-죽겠군. 그 전투광인 수라족도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별수 없나.
천유운이 이죽거렸다. 일부러 도발하고 있다. 그 의도는 명확했다. 귀수라가 파천황을 쓰게 만들려고 한다.
‘큭큭. 난 전투에서 죽는 건 수라의 영광이다. 네놈은 죽어서 명게로 떨어지겠지. 인간은 지옥에서 추해지지. 어떻게든 고통만큼은 피하고 싶어 하거든. 네놈이 얼마나 추해질지 궁금하군.’
-…….
‘뭐, 그래도 난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저놈은 지금 힘에 취해있다. 그 강력한 힘을 무식하게 휘두를 뿐이다. 나는 기술로서 놈을 이기겠다.’
마음속으로 여유롭게 말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성유진이 계속해서 공격했기 때문이다. 주먹과 다리로 쥐어팬다. 가끔 칼을 휘두른다. 미래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빠름과 힘을 완벽히 막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서걱.
왼팔 2개가 잘리고 피가 쏟아진다. 귀수라의 집중력은 더 올라갔다.
‘일부러 날 죽이지 않고 있다. 가지고 노는 거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놈이 멈췄다. 자기가 만든 작품을 감상하듯이 귀수라를 쳐다본다.
‘그 오만함이 네 목을 앗아갈 것이다.’
귀검령(鬼劍靈).
귀수라는 자신의 안에 있는 귀신들을 꺼냈다. 귀신들이 주변을 귀기로 물들이고, 다시 자신에게 달려든다. 귀수라는 귀신들에게 몸을 맡겼다. 그는 귀신의 검이 되었다. 귀검령은 완벽했다. 놈이 무슨 짓을 하든 피할 수 없다. 미래는 확정됐다.
검이 된 귀수라가 놈에게 날아가려는 순간이었다. 본능이 죽음을 경고했다.
“……!”
본능이 죽음을? 말도 안 된다. 자신이 누구인가. 명계에서도 한 손에 꼽히는 종족인 수라족이다! 인간에게 본능적인 죽음을 겪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팟.
제3의 눈이 발동하며 1초 뒤의 미래가 보였다. 자신이 죽는 미래였다.
그에 귀수라의 머릿속에 대상이 그 누구든 본능적인 죽음의 공포를 새기는 존재가 스치고 지나갔다.
‘…천살성(天殺星).’
성유진이 칼을 내리그었다. 그 압도적인 힘에 귀령검이 버티지 못하고 파괴된다. 항거할 수 없는 죽음이 귀수라를 덮쳤다. 자신의 안에 있던 244마리의 귀신이 전원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며 소거되었다. 진정한 의미로 윤회에서 소멸한 것이다.
‘빌어먹을….’
그리고 귀수라 또한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
귀수라가 죽자 그 몸은 원래의 천유운으로 돌아왔다.
천유운은 바닥에 주저앉아 몸을 덜덜 떨며 성유진을 올려다봤다.
“천살성…! 별의 힘을 가진 놈이 왜 이딴 짓을 벌이는 거냐? 너라면 굳이 천마가 되지 않아도 더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을 텐데!”
“내가 천마이기 때문이다.”
서걱!
천유운의 목이 베였다.
천유운의 영혼이 명계로 가는 일은 없다. 그 또한 천살성의 힘에 의해 완전한 죽음을 맞이했으니까.
성유진은 가만히 섰다. 천마신교 쪽에서 누군가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마음 같아선 눈 깔라고 소리치고 싶다.
‘한계다.’
파천황에 의한 마기가 흩어지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고 있다. 완전 회복이 통하려나? 조금 쫄린다. 완전 회복이 통하지 않으면 죽게 될 테니까. 아니, 영혼이 완전히 소멸되면 유희 생활 어플도 사용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시간도 되돌리는 유희생활 어플이다. 소멸된 영혼하나 되돌리지 못할까.’
성유진은 남아 있는 모든 마기를 하늘로 올려보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힘이라 딱히 쓸데가 없었다.
마기는 검은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 일시적으로 주변을 검게 물드고는 사라졌다. 마기를 전부 사용한 성유진은 바닥에 쓰러졌다.
[죽음 저항이 발동했습니다. 앞으로 15초간 죽지 않습니다.]
[완전 회복을 사용합니다.]
새하얗던 그의 머리카락이 다시 새까맣게 변한다. 성유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소멸한 영혼이 완전 회복에 의해 완벽히 돌아왔다. 컨디션은 최상이다.
‘역시 완전 회복. 날 배신하지 않는군.’
천마신교로 향하는 성유진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당당했다.
‘소천마 성유진이라. 나쁘지 않은 어감이군.’
***
‘성공하려나?’
백란은 딱딱한 의자에 앉아 창밖의 하늘을 쳐다봤다.
계획은 완벽하지 않다.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成事在天)이라 한다. 아무리 계획을 잘 짜더라도 실패할 가능성은 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은 언제나 존재하지. 예를 들면 갑자기 날씨가 좋지 않아져 폭우가 내리거나.’
회귀 전, 살수로 활동할 때 많이 느꼈다. 갑자기 폭우가 내리거나, 폭설이 내리며 계획이 어그러지는 경우. 그때는 임기응변으로 일을 완수했으나, 실패했던 적도 제법 있었다.
‘그는 천마릉에서 천마신공을 얻는 동시에 삼정의 경지에 올라섰다.’
별의 기운을 타고났다곤 해도 이렇게 빠르게 성장할 줄은 몰랐다. 복수대상이라면 경계해야 할 일이지만… 성유진은 그녀의 복수대상이 아니었다. 회귀 전에는 본 적 없는, 이 세사의 변수 덩어리.
‘삼정에 올랐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커진다. 천마신교에 남아 있는 팔장로만 어떻게 한다면… 문제없이 계획에 성공하겠군.’
만약, 자신이 성유진의 일을 하게 된다면 조용히 행동했을 것이다. 천유운을 암살하고 다른 장로들과 거래를 통해 지지를 끌어냈겠지.
‘나는 천유운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숨겨 놓은 무언가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모든 문제가 끝나도 가장 큰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다.
천마.
주화입마에 빠져 궁에 틀어박힌 천마는 나서지 않을 것이다. 그게 그녀의 계산이고 확신이지만, 변수란 건 언제나 확신을 깨부수는 법. 천마가 나서서 천유운을 보호하고 성유진을 어떻게든 죽이려 한다면 계획은 실패할 것이다.
‘부디 이전처럼 얌전히 있어라, 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