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6화 > 1846. 광명승천도
“천마시여! 소천마가 습격받았습니다!”
당대 천마의 친위부대인 마척대 소속의 무인이 천마 천성진 앞에 무릎 꿇었다.
옥좌에 앉아 있는 천마는 공허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봤다. 지금도 심마가 그를 좀먹고 있었다. 특수한 법기라 할 수 있는 천마성좌(天魔聖座)가 없었다면, 진즉에 심마에 잡아 먹혀 날뛰다 죽었으리라.
“…….”
소천마. 그 이름이 아득해지는 천마의 의지를 미약하게나마 빛나게 했다. 허나 그뿐이다. 천마는 여전히 천마성좌에 앉아 있었다. 심마는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그의 정신을 갉아먹는다.
천마는 산 채로 죽어 가고 있었다. 심마는 병이었으며, 저주였다. 이 심마의 근원은 황제다. 황제를 보는 순간 오랫동안 묵혀둔 진실을 마주한 것처럼 깨달았다.
자신의 평생을 걸더라도, 천마신교의 모든 것을 바치더라도 결코 황제에게 닿을 수 없다는 것을.
그 절망이 심마가 되어 천마를 좀먹고 있다.
“…팔장로 청수색마 권만옥이 섬전도 염구석에세 사망했습니다. 지금 나서지 않는다면 소천마가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입니다.”
“…….”
이곳에는 수십 명의 강자가 있었다. 천마의 친위대인 마척대는 신교 내에서도 정예 중의 정예로 꼽히는 고수들이다. 그리고 천마의 왼팔과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우호법과 좌호법은 장로들 이상으로 강하다.
그들의 특징은 천마의 허락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오직 천마의 명령만이 그들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게 설령 천마의 아들인 소천마가 죽는 일이라 하더라도.
“…팔장로가 죽어?”
천마가 쩍쩍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눈동자는 여전히 공허했으나, 그 안쪽에서 작은 빛이 반짝였다.
“예. 죽음을 확인했습니다.”
“소천마도 죽었나?”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허나 지금의 소천마로선 섬전도 염구석을 막을 수 없습니다. 섬전도 염구석은 소천마의 자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의 뒤에는 일급금위 백란이 있습니다. 어쩌면 황실의 수작일지도 모릅니다.”
“황실….”
천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소천마가 위험하다는 사실보다 황실이란 단어에 더 격렬히 반응했다.
“봐야겠다.”
“지금 당장 모시….”
마척대 무인이 갑작스레 입을 다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질적이고 강력한 기운이 소천마궁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직후, 소천마궁 지붕을 뚫고 섬전도 염구석이 솟구쳤다.
어느새 천마가 움직였다. 그의 천마성좌가 움직여 창문 쪽으로 간 것이다. 천마신교 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그였기에 창문을 통해 밖을 볼 수 있었다.
“수라로군.”
천마의 공허함이 사라졌다. 당장 억지로라도 심마를 억눌러야 할 만큼 충격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명계의 존재가 갑자기 왜 나타나는가. 그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소천마 천유운이 명계에 손을 댄 것이다.
이게 황제의 귀에 들어간다면? 천마신교는 그 즉시 끝장이었다. 천마신교가 멸문을 피하려면 천유운을 죽여야 한다. 황제를 납득시키는 것도 해야할 과제다. 일급금위 백란이라고 했던가? 그와 입을 맞춰야 한다.
소천마와 천마신교. 버리라고 한다면 당연히 소천마 쪽이다. 천마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저와 좌호법을 보내주십시오. 당장 수라와 섬전도 염구석을 붙잡아 오겠습니다.”
우호법이 말했다.
“기다려라. 둘이 격렬히 싸우고 있다. 이 전투가 끝난 뒤에 제압해도 늦지 않다. 아마도 저 귀수라가 이길 것 같군.”
천마의 눈빛이 다시 가라앉기 시작한다. 귀수라. 인외의 존재. 허나 황제의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자신보다 약한데 당연히 황제에게 비비지 못한다. 그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황제가 왜 이계의 존재를 경계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생각이 황제에 향하자 심마가 다시 머리를 치켜든다. 천마의 눈빛이 다시 죽어가기 시작했다.
이변이 일어난 건 그때였다. 다 죽어 가던 섬전도 염구석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천마신공의 사용자인 천마는 저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파천황을 사용했군. 미친놈이군.’
스스로의 영혼을 파괴하고 불태우는 기술. 천마신공에 왜 있는지 모를 기술이었다.
‘…이 힘은 뭐지? 귀수라의 힘을 순식간에 뛰어넘었다. 아무리 파천황을 썼다고 해도 이 정도의 격차가 생기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그러나 그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 현실이었다.
귀수라를 압도한다. 가지고 놀고 있었다.
“나설 필요가 없어졌군.”
귀수라는 죽을 것이다. 파천황을 사용한 섬전도 염구석 또한 죽을 것이다. 서로 피 터지게 싸우다가 공멸한다. 시시한 결말이었다.
그때였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천마, 호법, 마척대 할 것 없이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것은 본능에 의한 공포였다. 천마는 두 눈을 부릅떴다. 들어본 적 있다.
‘죽음의 공포를 강제로 끌어내는 이것은 천살성의 힘이다!’
천살성이 무엇인가.
황제의 자미성에 대응하는 힘이라 할 수 있었다. 황제의 자미성이 정확히 어떤 힘을 가졌는지는 천마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자미성의 상극이 천살성이란 것뿐!
‘천살성이… 천살성이 바로 근처에 있었다니!’
황제를 대적할 수 있는 인재! 그러나 이미 늦었다. 천살성은 파천황을 사용해 자신의 영혼을 부쉈다.
전투는 끝났다.
천살성이 귀수라를 죽이고 소천마 천유운까지 죽었다. 천살성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운을 하늘로 올려보냈다. 천마신공의 짙은 마기가 하늘에서 퍼졌다. 마척대의 무인 일부가 저도 모르게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천마신공이지만 천마신공과 조금 달랐다. 모든 마를 굴복시키는 힘이 느껴졌다. 마척대가 이 정도이니 마교내에 있을 마인들은 무릎을 꿇고 벌벌 떨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천살성임을 깨달았을 때 반짝거리던 천마의 눈은 다시금 공허하게 변한다.
그때였다.
섬전도 염구석이 몸을 일으켰다.
그 기운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파천황을 사용했는데도 죽지 않았다. 천살성의 기운은 없어졌으나, 그는 확실히 살아있었다.
천마는 천마성좌에서 벌떡 일어났다. 심마 대신에 기이한 열망이 피어오른다.
아들은 죽인 원수? 저 녀석 또한 천마신공을 익혔으니 상관없었다. 자신의 아들은 약해서 죽은 거다. 새로운 후계자가 소천마의 자리를 제힘으로 꿰찼을 뿐이다.
‘저놈이라면…! 저놈이라면 황제와 대적할 수 있다! 황제를 죽이는, 진정한 천마가 내 후계자가 되는 것이다!’
천마신교는 영원해야 하고, 천마는 천하제일이어야 한다.
“들어라. 천마의 이름으로 섬전도 염구석을 소천마로 임명한다. 반론을 허락하지 않는다.”
“천마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그를 소천마로서 대접하고 모셔라. 그가 나의 정통 후계자다. 나는… 이 빌어먹을 심마부터 어떻게 해야겠군. 폐관에 들어가야겠다.”
우호법과 좌호법을 비롯한 마척대의 무인들은 감격했다.
‘드디어 천마께서 심마를 이겨낼 준비가 되셨다! 심마를 이겨낸 천마께선 더 강해질 것이다!’
***
걸어서 천마신교로 돌아왔다. 천마신교로 들어오자마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가라앉았다고 해야 하나. 일반인들이 긴장하며 나를 보는 게 느껴졌다.
‘내 옷 때문인가?’
전투로 인해 옷이 엉망이었다. 흑호포(黑虎袍)는 걸레짝인 데 비해 내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완전 회복은 물건을 수리해주지 않으니까.
타다다다다닷!
무장한 무인들이 급하게 뛰어왔다. 천마신교에 속한 마인들이다. 수준은 낮으나 오기경의 고수가 몇몇 섞여 있었다. 조장급의 해당하는 인물이다. 보아하니 소속 부대도 제각각 달랐다.
‘…소천마를 죽인 나를 구속하려고 왔나.’
백란이 말했던 대로다. 소천마를 죽였으니 일단 구속당할 것이다.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것은 천마신공을 내보여서 그들이 함부로 날 대할 수 없게 한다. 소천마가 죽었으니 후계자는 나밖에 없을 터.
‘장로들과 마가의 가주들이 올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마가의 가주들은 나를 지지할 테니까.’
여긴 보는 눈이 많았다.
딱 좋았다. 여기서 천마신공을 보이는 거다. 그럼 내가 천마신공을 익혔다는 사실이 천마신교 전체로 소문나겠지.
천마신공을 사용하려는 찰나, 달려온 무인들은 내게 포권을 취했다.
“소천마를 뵙습니다!”
“소천마를 뵙습니다!!!!”
그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도시 전체로 울려 퍼졌다.
“…….”
내가 소천마를 죽이고 30분도 지나지 않았다. 아무리 강자존의 법칙을 따르는 천마신교라 하더라도 이토록 빨리 나를 소천마로 대우할 수 있는 건가?
‘불가능하다. 이놈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멋대로 날 소천마로 인정할 리가 없다.’
장로가 이들에게 명령을 내렸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그리고 명령을 내릴 장로는 현재 천마신교애 없다. 이들에게 명령을 내린 자는 더 높은 위치에 앉은 자. 그 누구도 이견을 갖지 않고 인정할 정도의 위치.
‘천마가 나를 소천마로 인정한 건가.’
백란은 이걸 예상했을까? 아니, 예상했다면 말했겠지. 그녀는 현 천마에 대해 말을 아꼈다. 그건 정보를 숨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뭐, 좋다. 일이 더 편해졌으니 나쁘지 않다.’
씩 웃었다.
내게 포권지례를 한 천마신교의 무인들에게 말했다. 천유운을 죽였으니 염구석인 척해야 할 이유는 없다.
“나는 소천마 성유진이다. 이전 소천마는 내 손에 죽었지. 나는 힘으로서 자격을 증명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포스(天魔 Force).
천마의 기운을 흩뿌리며 사람들을 옥죈다. 요괴나 마공을 익힌 놈들에게 특히나 효과가 좋았다. 포권을 했던 무인들은 고개를 푹 숙이며 땀을 뚝뚝 흘렸다.
“비켜라. 천마께 인사 올려야겠다.”
홍해가 갈라지듯 사람들이 옆으로 비켜섰다. 나는 그 길을 천천히 걸었다. 그들에게 새로운 소천마가 누군지 각인시켜야 했으므로 천마포스를 걸으면서 계속 내뿜었다.
마침내 천마신교의 중심, 천마가 기거하는 천마궁의 앞에 당도했을 때였다.
‘그냥 인사만 하고 나오자. 소천마로서 날 인정했으니 해하지는 않겠지.’
천마궁의 문지기들은 나를 보자마자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소천마님. 현재 천마께선 폐관에 드셨기에 누구와도 만날 수 없습니다.
전음이 들렸다.
폐관이라. 원래 그런 소문이 돌긴 했었다. 하지만 나를 소천마로 인정한 건 천마다. 갑자기 폐관에 들었다는 말을 한 건 날 피하려는 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는 새로운 소천마로서 인정받으러 왔다.”
-천마께서 소천마님을 소천마로 인정하고 정식으로 임명하셨습니다. 소천마궁은 소천마님의 것입니다.
“…그래?”
나는 몸을 돌렸다. 날 만나기 싫다는 데 억지로 만날 필요는 없었다. 얻어야 할 건 얻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