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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854화 (1,634/2,000)

< 1854화 > 1854. 이터널 에덴

나는 기절한 진강구를 깨워서 심문했다. 물론 고문을 동반한 심문이었다. 직접 내 손으로 하는 고문은 오랜만이긴 한데 딱히 어렵지는 않았다. 손톱을 뜯고 발가락을 부순다. 적당한 부위의 피부를 버리고 무기로 쿡쿡 찔렀다.

“끄아악… 말하겠다! 말하겠다고!”

조폭의 의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별거 없었다.

진강구는 고산파 보스의 명령으로 나채영을 생포하러 왔다. 내가 몇 시간 전에 죽인 사채업자와 관계가 있긴 했다. 고산파 보스는 경찰들과 샤바샤바해서 사채업자 사건을 묻어버린 것 같았다.

“보스가 총을 주며 태왕의 보스가 나 박사를 보고 싶어 한다고 내게 나 박사를 데려오라고 했다! 그 외의 명령은 없었다! 나는 보스가 직접 나 박사에게 하식이 형님의 복수를 하려는 건가 싶었다! 겸사겸사 나 박사를 태왕의 보스와 거래하면서!”

하식이. 내가 죽인 사채업자의 이름이었다.

“태왕은 또 뭐야. 조폭이야?”

나채영이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서울의 강남, 서초, 송파, 성동, 동대문, 광진, 용산을 지배하고 있는 조폭이야. 실질적으로 서울의 뒷세계를 지배하고 있지. 그 규모는 이미 조폭 수준을 벗어난 조직이야. 태왕의 보스가 날 만나려는 이유는 뭐야?”

“모른다! 보스는 널 데려오라고만 했다!”

“비스터는? 약은 어디서 얻었어?”

“약은 태왕 쪽 조직원에게서 구입했다. 한 알에 10만 원. 싸울 때 먹으면 흥분되고 고통도 떨어져서 우리 쪽 애들은 필수로 구비하고 있다.”

“…내가 이곳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보스의 명령으로 네 차에 발신기를 붙여뒀다. 네 거처는 기존부터 알고 있었다. 설마 우리가 수상쩍기 그지없는 너와 아무 이유 없이 거래했을까.”

“…그렇네. 내가 너희를 너무 무시했었네.”

그 후로 몇 번 더 심문한 끝에 더 알아낼 정보가 없다고 판단한 나는 강진구의 목을 잡고 감전시켜 죽였다.

“나 박사. 태왕의 보스가 널 찾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해?”

“…내가 테크놀로지스트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일 거야. 태왕의 보스는 이미 플레이어에 대해 알고 있어.”

“어떻게 할 거야? 태왕의 보스를 만나러 갈 거야?”

“그건 자살 행위야.”

“난 그놈들과 싸워도 상관없어.”

“사채업자 건은 고산파가 어떻게든 무마한 모양이지만, 서울 내에서 다른 전투가 벌어지면 경찰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멍청한 짓을 할 이유는 없어.”

나 박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뭐해, 가만히 있지 말고 정리나 도와줘. 여기 위치가 발각된 이상 다른 곳으로 가야 해. 아마 몇 시간 뒤에는 여기로 찾아올 테니까.”

“다른 거처가 있다고?”

“생각해둔 곳이 있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지시에 따라 물건들을 정리해 중고샵 뒤쪽에 숨겨져 있는 트럭에 옮겼다. 옮기기 힘든 물건들은 분해기에 넣었다.

“자동차를 뜯어서 분해기에 넣어. 버려두고 가기엔 자원이 너무 아까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자동차를 뜯는 건 힘들어.”

내 신체 능력은 현실의 반의반도 못 하다. 자동차를 들기는커녕 도구 없이 해체하기도 힘들었다.

“그럼 그냥 버려.”

거의 4시간 동안 물건들을 정리해서 트럭에 챙기고 그곳에서 떠났다. 내가 트럭을 운전했고, 나채영은 조수석에서 태블릿 PC를 두들겼다. 그녀의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힐끗 보니 태블릿 PC에는 계획표가 띄워져 있었다.

“일이 꼬였어. 슬슬 요새화 작업을 시작하려 했는데….”

“지금 가는 곳은 어디야?”

“여기.”

친절하게도 내비게이션 앱을 켜서 보여줬다. 뜻밖의 장소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성악초등학교? 그것도 서울 강서구에 있는?”

“2년 전에 학생 수가 떨어지면서 폐교한 학교야. 서울에 있긴 해도 그 동네 인구수는 적어. 게다가 무덤 위에 지어진 초등학교라는 소문이 돌아서 사람도 가까이 안 와. 원래는 올해 다른 건물로 활용될 예정이었는데… 정치적 문제라도 있는지 차일피일 미뤄졌어.”

“나 박사가 이 학교 주인이야? 돈 많네.”

“그럴 리가 없잖아.”

“…무단점유하겠다고?”

“어차피 30일 뒤에 좀비 사태가 일어나. 우리가 무단점유하더라도 대충 넘어갈 수 있어. 비상 상황이었다고 하면 되니까.”

“정부 쪽은 안 좋아할 것 같은데. 꼭 여기여야 하는 이유라도 있어?”

“서울이니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이유가 되나?

“…이터널 에덴의 이야기인데, 플레이어는 게임 시작 전에 클래스와 시작 지점을 선택할 수 있어. 그럼, 플레이어는 어떤 시작 지점을 선호할까?”

“……강대국?”

“맞아. 그게 유리하니까. 나라에 힘이 있으면 일이 터져도 빠르게 수습할 수 있어. 원래는 대부분이 미국을 선택해. 여러 가지로 이점이 많으니까. 중국을 선택하는 플레이어도 적지 않아. 권력을 잘 잡으면 어떤 의미로 미국보다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으니까.”

“나 박사가 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뭐야?”

“미국이나 중국보다 초반 경쟁이 덜하거든. 게다가 내가 한국인이었다는 것도 이유야.”

“굳이 서울이 아니어도 상관없지 않아?”

“서울은 한국의 중심이야. 서울에 있어야 보다 쉽게 자원을 얻을 수 있고… 인구수가 많아서 좋은 인재도 영입할 수 있으니까.”

듣고 보니 나채영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트럭은 학교 쪽으로 계속 들어갔고, 나는 비교적 한산한 거리를 확인했다. 서울이라고 해서 무조건 최신식 건축물이 있는 건 아니다. 이곳의 건물들은 대부분 낡았다. 빈집도 꽤 많아 보였다.

“성악초등학교에는 뒷문이 있어. 길이 험하긴 해도 사람의 시선을 피하기엔 좋은 곳이야. 그쪽으로 돌아가자.”

“오케이.”

성악초등학교의 뒤쪽은 작은 산이 있었다. 뒷문은 잠겨 있었다. 나채영은 차에서 내려 교문의 자물쇠를 풀어 문을 열고 다시 조수석에 탔다.

“열쇠도 가지고 있었어? 재주도 좋네.”

“저번에 왔을 때 기존 자물쇠를 부수고 새거로 바꿨어.”

그녀는 의외로 행동력이 좋았다.

우리는 도둑처럼 움직였다. 아무리 폐교라고 해도 불빛이 켜지면 사람들이 의심할 수 있었기에 불빛은 최소한으로 하고 트럭에서 가구부터 내렸다.

“가구부터 설치하고 총기를 내리자. 다른 기계들은 내일 아침에 옮기는 게 좋겠어. 급한 건 역시 발전기네.”

천만다행히도 전기는 끊겼지만, 물은 정상적으로 나왔다. 그래도 꺼림직한 게 사실인지라 하기 바로 식수로 사용하기엔 좀 그렇지만.

“지하수야. 먹어도 상관없어.”

“난 생수 아니면 안 마셔.”

“……의외로 입이 고급이네.”

“너무 고급이라 문제지.”

나와 나채영은 둘이서 학교를 돌아봤다.

학교는 총 5층이다. 본관 1개에 별관은 3개나 있었다. 별관 지하에는 만들다 만 수영장까지 있었다. 본관 지하에는 보일러실과 창고가 있었다. 보일러는 재활용할 목적으로 남아 있었지만,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 수 없었다. 창고에는 낡은 책상과 의자 등의 물건밖에 없었다. 대부분 쓰레기라 보면 된다.

기대한 건 양호실이었으나, 약품은 물론이고 침대 하나까지 텅텅 비어있었다. 과학실에는 인체 모형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없다. 음악실도 텅텅 비었다. 까놓고 말해서 보일러를 제외하고 아무것도 없다고 보면 된다.

‘나채영이 이 학교를 선택한 건 담장때문이군.’

성악초등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담장이 5m로 상당히 높았다. 도구 없이 담을 넘기 힘들다. 특히나 지능이 떨어지는 좀비들에겐 더 효과적일 것이다. 사실상 좀비가 들어올 구멍은 정문과 뒷문밖에 없다. 그 두 곳만 잘 막으면 좀비로부터 안전한 곳이 된다는 뜻이다.

‘내일 낮에 개구멍이 없는지 확인해 봐야겠어.’

나와 나채영은 본관 1층 방에 침대를 갖다 놓았다.

“네가 침대를 써.”

“나 박사는 뭐하게?”

“계획을 다시 짜야 해. 거처를 잃었고, 네 힘을 활용할 방법도 생각해야 해. 무엇보다 네가 쓸 칼도 만들어야 하고.”

“일로 와.”

나는 침대에서 옷을 벗어 알몸이 된 상태로 말했다. 나채영은 내 알몸을 보고서도 얼굴을 붉히지 않았다. 그저 눈살을 찌푸릴 뿐이다.

“할 일이 있다고 말했을 텐데.”

“설마 거래 내용을 잊은 거야? 하루에 한 시간. 그 한 시간을 지금 쓸 거야. 아니지, 자정이 지났으니 두 시간을 쓸 수 있나?”

“……정확히 말해. 한 시간을 쓸 거야? 두 시간을 쓸 거야?”

“한 시간. 남은 건 내일 쓰지 뭐.”

“…….”

나채영은 뚜벅뚜벅 걸어와 침대에 앉았다. 그녀는 똑똑하니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 있을 거다. 색정광 특성을 보고 내 성향을 모르면 멍청이다.

“하루에 한 시간, 넌 내 칼이 되기로 했어.”

“대신에 나채영은 하루에 한 시간 내 여자가 되는 거지.”

“…난 시간을 적립할 거야. 보름 정도 모아서 한 번에 사용할 거야.”

“보름이나? 칼을 어디에 쓰려고?”

“강원도에 전쟁 무기 연구소가 있어. 국방부 산하인데, 국방과학 연구소와는 다른 비밀 연구소야. 이름 그대로 온갖 전쟁 무기를 연구하고 실험하는 곳이지. 그곳에 있는 전투 인공지능이 필요해.”

“그건 또 어떻게 아는 거야?”

“이터널 에덴. 내가 한국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이거야. 한국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술 중 하나가 전투 인공지능이거든. 설마 위험하다고 거부하지 않겠지?”

“위험하긴 해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불가능한 일이라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나채영은 내 실력을 보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나채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침대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알람을 설정했다. 정확히 1시간 뒤에 알람이 울릴 것이다.

나는 나채영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음을 확인했다. 낮에부터 시작해서 내내 떨리고 있었다. 오늘 낮에 있었던 일 때문이겠지. 그녀는 난생처음으로 살인을 경험 했으니까.

그녀의 어깨를 잡아 침대로 끌어당겼다. 침대 매트리스가 출렁였다. 침대에 누운 나채영이 무표정한 얼굴로 날 올려다본다. 내게 몸을 내줘도 협조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히죽 웃으며 그녀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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