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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856화 (1,636/2,000)

< 1856화 > 1856. 이터널 에덴

“감금실을 만들자.”

“갑자기 왜?”

나채영이 나를 돌아보며 되물었다. 중요한 순간이었다. 여기서 그녀를 설득해야 된다는 걸 직감했다.

“좀비 영화나 드라마를 봐봐. 사건을 일어나는 걸 보면 대부분 인간관계에서 시작돼. 기숙사를 개조해서 인간들을 관리하는 거지. 그리고 능력 있는 놈들을 좀비 바이러스가 터지기 전에 납치해서 감금하는 거야. 좀비 바이러스가 터지고 세상이 개판이 된 걸 보면 오히려 고마워할걸?”

“…마냥 나쁜 생각은 아니야. 고급 기술을 가진 노동자는 있으면 좋으니까. 세계가 멸망한다고 찾아가서 설득하기도 힘드니…. 하지만 그들이 모두 이해하고 협조한다는 보장은 없어. 폭동이라도 일으키면 어쩌려고?”

“그 자식들에게도 적당히 권력의 맛을 보여주는 거지. 어차피 바이러스가 터지면 우리 쪽으로 사람들이 몰릴 거 아니야? 그놈들을 깔개로 줘버리자. 권력의 맛을 맛보면 잘 하지 않겠어? 정 쓸모없는 놈들은 처형하면 돼.”

“…….”

나채영은 혐오도, 경멸도 하지 않고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효율이었다. 가성비라고 보면 된다.

“모두가 함께 잘살아 볼 생각은 없어? 권력 지향적인 세력은 까딱 잘못해도 붕괴하기 쉬워.”

“모두가 대등한 세력은 멀쩡하고? 딱히 야만의 시대로 회귀하자는 게 아니야. 효율적으로 가자고. 효율적으로.”

“감금실 계획은 좋아. 하지만 세력을 운영하는 방식은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자.”

“그래.”

밤이 되었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알몸이 되어 나채영을 불렀다. 나채영은 한숨을 쉬며 느릿하게 다가왔다.

어제처럼 직접 그녀의 옷을 벗기고 마사지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마사지 20분. 키스 그리고 애무 시간이 40분이다.

“흐으으읏…!”

나채영은 쾌락을 이겨내려는 듯이 내 품 안에서 입술을 깨물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물론 그녀의 보지는 축축하게 젖어서는 조수를 퓻퓻 내뿜었다. 그녀는 이번에도 내 품 안에서 잠들었다.

***

D-24.

나와 나채영은 트럭을 타고 서울을 돌아다녔다. 중고 거래를 위해서였다. 싼 가격에 가전제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 지나가다가 불법 투기한 고장 난 가전제품이 보이면 트럭에 담았다. 이것들은 분해기에 넣으면 꽤 많은 자원이 된다.

트럭을 운전하면서 넌지시 입을 열었다.

“연예인 중 한 명 납치해도 되지?”

“…연예인을? 왜?”

“성노예. 내가 색정광인 건 알잖아.”

“창녀로 만족해. 뒷감당을 생각하며 연예인은 안 좋아.”

“창녀는 재미없어. 뭐, 나 박사가 보지를 대주면 연예인도 필요 없겠지만.”

“그렇게 좆질을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지 그래? 어차피 난 네게 저항하지 못하니까.”

나는 히죽 웃을 뿐이었다.

서울 외곽 도로를 운전하는데 검은색 세단 하나가 왼쪽으로 나와서 우리 옆에 붙기 시작했다. 이상함을 감지한 나채영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세단의 조수석 창문이 내려가고 험악한 얼굴의 남자가 소리쳤다. 놈이 은근슬쩍 권총을 내비친다. 같잖은 협박이었다.

“나 박사! 트럭 멈춰! 우리 대화나 하자고! 큰형님이 나 박사를 아주 보고 싶어 해!”

“지랄하네.”

나도 창문을 내렸다. 조폭 놈이 험악한 얼굴로 날 쳐다본다. 왼손으로 권총을 빼 들어 그대로 놈에게 갈겼다.

타타타타타타탕!

아무리 사격을 못해도 이렇게 가까우면 못 맞출 수가 없었다. 조수석에 탄 놈이 벌집이 돼서 뒤지고, 당황한 운전자가 핸들을 확 꺾었다.

끼이이이익!

세단이 괴성을 지르며 급브레이크를 밟더니 그대로 전봇대에 박았다.

“나 박사. 수류탄 하나 까자.”

“…없어.”

“이런 아쉽구만.”

트럭을 유턴했다. 마음 같아선 그대로 세단에 들이받아 봉고 트럭의 위대함을 알려주고 싶지만, 옆자리엔 나채영이 있었다.

“잠깐! 도로에서 일을 벌일 셈이야?!”

“어차피 고속도로가 아니라서 괜찮아. 이런 놈들을 봐주면 계속 기어오른단 말이야. 그리고 난 성악초등학교가 마음에 들었거든. 거점이 들키기 전에 끊어내야 해.”

조수석에 죽은 놈을 제외하고 운전자 포함 3명이 있었다. 전봇대에 박아서 그런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길래 대가리에 총알을 박아뒀다.

시체는 뭐, 조폭들이 알아서 처리하겠지. 사채업 사무실처럼.

트럭으로 돌아와서 운전대를 잡았다.

“…….”

나채영은 가라앉은 눈동자로 산과 논밖에 없는 창문 밖을 쳐다봤다.

2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놈이 학교 정문으로 찾아왔다. 철문을 뛰어넘어 안으로 들어온다. 나채영의 옆에서 운동하고 있던 나는 인상을 확 찌푸렸다.

“씨발. 들켰네. 미행존나 잘하네. 역시 고산파인가 뭔가 하는 것들을 싹 다 죽여야 하나.”

칼은 아직 제작 중이었기에 맨손으로 일어났다. 한 놈이라면 맨손으로 충분히 죽일 수 있다.

“기다려. 저 남자는 우리와 싸우러 온 게 아니야. 아마 전령이겠지.”

“저놈과 대화를 하자고? 이미 뒈진 놈들만 20명이 넘는데 이야기하려 할까? 개소리만 지껄인다에 내 손모가지를 건다!”

“고산파가 아니라 태왕일 수도 있어.”

놈은 본관 앞에서 우뚝 멈췄다. 놈은 입구에 걸린 카메라를 보며 우리를 기다렸다. 새까만 정장, 왁스를 덕지덕지 발라 가르마를 탄 머리, 날카로운 눈. 나름 직장인처럼 보이게 꾸몄지만, 폭력의 냄새를 완전히 숨기지 못했다.

나채영은 마이크에 입을 갖다 대고 스위치를 누르며 말했다.

“누구야. 어떤 목적으로 찾아온 거야?”

-아, 여기에 마이크와 스피커가 있었군요. 나 박사님. 저는 태왕에서 왔습니다. 보스의 전언을 가지고 왔죠. 오해하지 마십시오, 싸울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이름은 오성상이라고 합니다.

오성상이 정중한 척 말했다. 그는 품에서 편지 봉투를 꺼냈다.

-여기 보스께서 주신 초대장도 있습니다. 당장 만나자는 게 아닙니다. 나 박사님도 그건 부담스럽겠지요. 내일 밤, 인천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글쎄. 난 만나고 싶은 마음이 없어.”

-물론 나 박사님이 불안감을 느끼는 것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잘 생각하십시오. 제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은 보스 또한 박사님의 거처를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나름 방어하기 좋은 곳을 골랐습니다만, 수백 명이 넘는 조직원들이 일시에 들이닥치면 어떻겠습니까? 1시간 이상 버틸 수 있으십니까?

당연하다는 듯이 협박을 해온다. 그리고 아무리 나라도 수백 명의 조폭이 덤벼오면 답이 없었다. 일반인이면 학교 내부에서 싸워 어찌어찌 될지 모르지만, 무장한 조폭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 당연한 상식에 나채영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우리가 이곳에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

-하하. 바로 알아낸 건 아닙니다. 우리 쪽 애들이 고생 좀 했죠. 덤으로 공권력의 힘도 살짝 들어갔고요. 전 박사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잠적하고 싶었다면 서울에서 버티지 말고 지방으로 내려가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산간벽지로 가셨다면 아무리 우리라도 이렇게 빨리 찾지 못했을 겁니다. 뭐, 서울에서 벗어나는 건 대세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으니 플레이어로서 선택하긴 힘들죠.

“…내가 플레이어란 걸 확신하고 왔구나.”

“예. 그것도 테크놀로지스트지요? 보스께서 당신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아, 참고로 저도 박사님과 같은 플레이어입니다. 같은 플레이어로서 충고 하나 드리지요. 여긴 이터널 에덴이 아닙니다. 컴퓨터 앞에서 마우스와 키보드로 간단히 생존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권력이 있는 자에게 붙으십시오. 그게 생존을 위한 최적의 방법입니다. 그리고 저희 보스는 유능한 자에게 관대합니다.

”저놈 떠드는 꼴이 마음에 안 드네. 잡자. 플레이어라면 잡을 가치가 충분해.“

”…잡은 뒤에는?“

”태왕의 보스와 협상한다던가?“

”태왕의 보스는 잔혹하기로 유명해. 최악의 경우 부하를 버릴 수도 있어. 협상을 하려면 내일 태왕의 초대에 응해야 해. 인질극을 하는 순간 관계만 악화할 뿐이야.“

”저 자식이 플레이어라면 바이오닉스잖아. 바이오닉스는 잡아서 이용해 먹는 편이 좋지 않아?“

고사판 조폭들이 가지고 있던 약. 그건 바이오닉스가 만든 약이 확실하다.

”안 돼.“

나채영은 협상할 생각이 가득해 보였다. 나는 뒤로 물러났다. 저 플레이어가 미녀였다면 어떻게든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겠지만, 말 많은 남자 새끼 아닌가. 아무래도 좋았다.

‘태왕의 보스가 여자라지? 한번 보고 싶긴 해.’

나채영이 마이크 스위치를 켰다.

”초대에 응할 테니 그만 가봐.“

-현명한 선택입니다. 초대장은 여기에 두고 가겠습니다.

오성상이 떠난 걸 확인하고 내가 본관 입구로 가서 바닥에 떨어진 초대장을 회수해왔다.

초대장에는 딱 한 줄만 적혀 있었다.

밤 10시, 인천 폐공사장.

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초대장에 적혀 있는 주소를 검색해보니 1년 전에 자금 비리 문제로 공사가 중단된 건설현장이었다. 이건 함정이었다. 정말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면 보다 안전한 장소가 있었을 것이다. 밤 10시. 그것도 폐공사장? 사람 묻기 딱 좋은 시간대와 장소가 아닌가.

”함정이야. 그런데 여기로 가겠다고?“

”…가지 않으면? 조폭 수백 명이 쳐들어오는 걸 지켜보기만 할까? 아무리 너라도 수백 명을 동시에 상대할 수 없어. 가서 협상해야 해. 태왕의 보스가 원하는 건 테크놀로지스트의 협력이야. 무기를 원하는 거지.“

”설마 태왕의 아래로 들어가겠다는 건 아니지?“

”…그것도 필요하다면.“

”스스로 목줄을 차고 싶어 하는 줄 몰랐는데.“

”나도 노예처럼 부려지고 싶진 않아! 하지만 방법이 없잖아! 방법이! 아니면 가서 싸우다 죽자는 거야?!“

”이대로 가면 대등한 협상은 없어. 놈들에게 질질 끌려다닐 뿐이지.“

”…협상은 하기 나름이야. 내가 약간의 이득을 포기한다면…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거야.“

의견이 갈렸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나채영은 아직 세상의 잔혹함을 모른다. 이참에 한 번 당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내 칼은?“

”내일 오전 중으로 제작이 완료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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