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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863화 (1,643/2,000)

< 1863화 > 1863. 이터널 에덴

“카메라 장악은 어디까지 됐어? 카메라 무시하고 움직여도 되겠어?”

나는 복도 천장에 달린 카메라를 곁눈질로 힐끗거리며 물었다. 아무리 나라도 감시 카메라의 사각지대만 골라 움직일 수 없었다. 애초에 적들도 바보도 아니고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에는 카메라가 달려 있다. 따라서 임무를 속행하려면 나채영의 카메라 장악이 필수였다.

나채영은 카메라 장악을 호언장담하긴 했지만, 계획과 실행은 다른 법이니까.

-장악했어. 움직여도 돼. 감시자 모니터엔 평소와 같은 화면이 보일 테니까. 그래도 빠르게 움직여. 작업이 길어지면 꼬리가 잡힐 거야. 우리 목적은 전투 인공지능 자료라는 걸 잊지 마.

“알고 있어. 최대한 들키지 않고, 싸우지 않는 게 베스트지.”

이 연구소에는 무장한 군병력이 지키고 있다. 그것도 훈련이 잘된 특수부대다. 또 연구소 안에 뭐가 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채영이 말한 괴물이 하나만 있으리란 법도 없다. 정면 돌파는 불가능하다.

-…위험하면 도망쳐.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

“말만이라도 고마워.”

무전기를 통해 한숨 소리가 들렸다. 나는 대놓고 복도로 나갔다. 감시 카메라는 나채영이 장악했으니 돌아다니는 사람만 조심하면 된다.

감각은 평소보다 날카롭다. 원인은 안다. 어제 나채영과의 섹스 덕분이다. 특성인 색정광의 효과로 섹스 후 24시간 동안 능력치가 30% 상승한다. 비단 신체 능력만 상승하는 게 아닌 것이다.

-잠깐. 왼쪽 계단에 연구원 한 명. 복도 쪽으로 가고 있어.

걸음이 멈췄다. 복도 끝까지 20m. 지금 달리더라도 연구원을 조용히 처리할 수 없다. 나는 근처에 있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깔끔한 기숙사. 지금은 대낮인지라 사람은 없다.

복도 끝에서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밤이었다면 이런 일도 없지 않았을까.

‘…의미 없는 가정이지. 나채영의 말에 따르면 여긴 밤이 되면 폐쇄되는 모양이니까.’

카드키가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낮에는 꺼놓는 보안 기계들이 밤에는 작동한다. 따라서 연구원들이 일하는 낮이 더 안전했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연구원은 내가 있는 쪽으로 오기 전에 방 안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가서 죽일까.’

잠깐 고민하다가 아래로 내려가기로 했다. 전투원도 아닌 연구원을 죽인다고 내가 더 안전해지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병사를 죽인 이상 시간은 별로 없었다. 병사들이 내 존재를 알아차리기까지 기껏해야 10분인 것이다. 경우에 따라선 더 짧거나 길 수도 있다.

-지하까지 아무도 없어. 내려가.

나채영의 말을 믿고 빠르게 행동했다. 어떻게 보면 나 이상으로 그녀의 역할이 중요했다.

지하실 입구까지 누구도 마주치지 않고 지하로 내려오는 데 성공했다.

커다란 철문이 나를 막아섰다. 문 위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감시 카메라가 있었다. 카메라는 나를 찍고 있었으나, 어떠한 대응도 없었다. 나채영의 카메라 장악은 완벽했다.

“들어가도 되지?”

-들어가. 문 앞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거기서부터는 진짜 조심히 움직여.

삑!

먼저 카드키를 찍고 잘라 온 엄지를 지문 인식기에 꾹 눌렀다. 철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하얀색의 통로가 보였다. 뭐라고 해야 할까? 소독 냄새? 연구소 같은 냄새가 났다.

‘하얀 복도까지. 판에 박은 듯한 연구소 모습이군.’

-왼쪽으로 가.

왼쪽으로 갔다.

-잠깐 대기. 이런… 연구원들이 오고 있어. 옆방으로 가서 숨어 있어.

숨을 죽이고 연구원들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지하로 더 내려가야 해.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있어도 엘리베이터는 계단보다 변수가 많은지라 탑승할 수 없었을 테지만.

계단을 내려가 지하 2층으로 내려가기 전이었다.

“캬아아아아아악!”

괴성이 들렸다. 인간의 목소리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야성적이고 날카로운 목소리.

“동물인가.”

-아니, 괴물이야. 동물이라 하기엔 이미 너무 많이 변했을 테니까.

“전쟁 무기 연구소에서 웬 생체 실험이야.”

-당연히 생체 병기를 만들기 위해서지.

“생체 병기라 하니 얼마나 끔찍하게 생겼는지 궁금해지네. 한번 보고 가면 안 될까?”

-헛소리 말고 지하로 내려가. 우리 목적지는 4층이야.

“여기 지하 5층까지 있다며. 지하 5층에 보스가 있는 거지?”

-…맞아. 그 괴물이 있어. 상대할 생각은 하지 마. 그 괴물은 너 혼자서 상대하는 건 불가능해. 전투 AI 자료에만 집중해.

“그냥 어떤 괴물이 있는지 궁금해서 말이야.”

-정확히는 알 수 없어. 괴물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니까. 확실한 건 어떤 괴물이라도 혼자서 상대할만한 괴물은 아니라는 거야. 잠깐, 병사들이 올라가고 있어. 숨어!

숨으라고? 갑자기 그렇게 말하면 곤란하다. 여긴 계단이고 딱히 숨을 곳이 없으니까.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지하 3층 통로와 이어진 문 뒤쪽으로 숨었다. 병사들이 지하 3층으로 온다면 들킬 것이다. 그때는 싸울 수밖에 없다. 허리에 맨 티타늄 칼에 손을 얹었다.

병사들은 천천히 올라왔다. 발소리는 힘이 없고 느릿했다. 거기에 그들의 호흡은 흐트러져 있었다. 명백히 지쳐 있다.

“씨발. 대장님, 저희 언제까지 여기서 근무해야 합니까?!”

“일주일만 버티면 교대할 수 있다.”

“전 지금 당장 관두고 싶습니다. 어젯밤에 그 괴물 새끼가 또 나대는 바람에 3소대 전원이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저희도 언제 그 꼴이 날지 모릅니다!”

“어쩔 수 없다. 우리는 군인이고 명령에 따라야 한다.”

“…씨발. 제대 신청하면 바로 받아줍니까?”

“받아 줄 테지. 대신 위에 알려줄까?”

“후. 그냥 해본 말입니다. 지금 제대하기엔… 제가 알고 있는 게 너무 많습니다. 이대로 실종 당할 수는 없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너무 본 것 같군.”

“정말로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장담하실 수 있으십니까?”

“…….”

“씨발.”

그들이 지하 2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피 냄새를 맡으며 다시 계단으로 이동했다. 계단 바닥을 보니 피로 찍힌 신발 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병사들의 피는 아닐 것이다. 그들은 지치긴 했으나 그 정도로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괴물의 피인가. 발자국을 보면 최소 인간 서너 명 크기겠군.’

피 냄새에 눈살을 찌푸리며 지하 4층으로 내려갔다. 피 발자국투성인 계단과 달리 4층 복도는 깔끔했다.

‘4층 전체가 전투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실험하는 곳이라지.’

인공지능을 실험하는 것에 뭐가 있겠는가. 복잡해 보이는 첨단 기계와 슈퍼컴퓨터밖에 없었다.

‘슈퍼컴퓨터는 가져가면 도움이 될 텐데.’

너무 커서 가져갈 방법이 없었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어. 걸어가.

걸어갔다. 복도 벽에는 유리가 있어서 안쪽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 기계였다.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있어도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기 바빴다. 복도 쪽을 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연구실에도 감시 카메라가 있군. 연구원이 아니라 죄수라 해도 믿겠어.’

갇혀서 일만 하는 죄수.

그들을 힐끗 본 나는 복도 안쪽으로 들어갔다. 얼마 안 가 복도 끝이 나왔다. 다른 방과 달리 창문이 없어서 안쪽을 볼 수 없었다. 문은 닫혀 있었으나, 카드키가 있으니 열 수 있다.

“나 박사.”

-안에 연구원들이 있어. 다섯 명이야. 실험을 진행 중인 것 같아.

“무슨 실험인데?”

-글쎄. 여기서는 안 보여. 전투 AI니까 전투 기계에 AI를 연동시키는 실험이겠지. 아마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걸 거야.

나는 카드키를 꺼내 문에 갖다 댔다.

삑!

문이 열린다.

갑작스러운 불청객에 연구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내 손에는 이미 티타늄 칼이 뽑혀 있었다.

뇌천류(雷天流) 뇌광(雷光).

그들이 입을 열기 전에, 팔과 다리를 움직이기 전에 내 다리는 앞으로 향하며 칼이 휘둘러졌다.

푸른빛의 섬광이 그들의 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뒤따라 붉은 액체가 튀며 강박적일 정도로 새하얀 연구실과 기계를 더럽혔다.

“으아아아악!”

뒤에 있어서 칼에 맞지 않은 놈이 비명을 지른다. 2명은 목이 베여 죽었고, 1명은 주저앉았고, 다른 한 명은 손에 쥐고 있던 태블릿을 내게 던진다.

가장 먼저 태블릿을 던진 놈을 죽였다. 먼저 죽인 이유는 침착했기 때문이다. 이후로 비명을 지르는 놈, 주저앉은 놈을 순서대로 썰었다. 5초도 걸리지 않았다.

“한 놈이 비명을 지르긴 했는데… 문제없지?”

-없어. 경보도 정상이고 지하 2층 통제실도 평소대로야. 데이터 칩 있지? 저기 오른쪽 남색 기계에 있는 포트에 끼워.

나는 이런 거에 잘 모르고, 흥미도 없었기에 나채영이 시키는 대로 했다. 데이터 칩은 노랗게 빛나며 점멸을 반복했다.

“이제 기다리면 돼?”

-원래 목적대로 전투 인공지능 자료를 가져가야지.

“데이터 칩을 꽂았잖아.”

-그건 다른 거야. 일종의 데이터 신호 칩. 연구 실험 결과와 무기 자료를 실시간으로 내 노트북으로 전송 중이야. 일이 잘 풀렸으니 이 정도는 가져가도 돼.

하나도 이해 못 하겠다.

“그래서 뭘 하면 돼?”

-계획대로 해.

“사실 원래 그럴 생각이었어.”

칼을 역수로 쥐고 기계에 쑤셔 넣었다. 파지지지직! 불똥과 함께 전류가 튀었다. 대부분은 칼날을 타고 내 안으로 흘러들어온다. 물론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흘려들어 온 전기를 제어한다. 뭐랄까. 충전기가 된 느낌이라고 할까.

끼이이이이익!

흘러들어온 전기로 칼날을 강화하며 기계를 썬다. 그렇게 몇 번 썰다 보니 안쪽에 있는 인공지능 핵이 보였다. 나는 계속해서 칼을 휘저으며 인공지능 핵을 꺼냈다. 직경 5cm의 구체. 말이 핵이지 그냥 자료 집합체였다.

-설마 기계를 칼로 벨 줄이야…. 아니, 그건 둘째치고 그렇게 무식한 방법으로 인공지능을 꺼내면 어떡해?! 자료에 손상이 가면 책임 질 거야?!

“이게 빠르잖아. 그나저나 데이터 전송은? 빨리 내빼고 싶은데.”

-쓸데없는 자료는 모두 제외하고 쓸모 있는 것들만 복사하고 있어. 1분만 기다려.

“1분 정도야.”

나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기계 못지않게 고급이라 그런지 상당히 편했다. 의자에 앉아서 티타늄 칼을 바라본다. 뇌천류 방식으로 칼날을 강화해서 휘둘렀음에도 칼날이 살짝 나갔다.

‘인간을 죽일 때는 괜찮았어. 기계를 썰 때 감각이 조금 이상하긴 했는데 날이 살짝 갔군.’

티타늄이라고 해서 칼날이 상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위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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