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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868화 (1,648/2,000)

< 1868화 > 1868. 이터널 에덴

참격이 연구소를 베긴 했지만 연구소 건물은 무너지지 않았다. 참격은 너무 깔끔하게 연구소를 베어냈으니까.

그 후로 나채영과 함께 연구소 밖으로 도망쳤다.

“대체 뭘 어떻게 하면 연구소를 벨 수 있는 거야?!”

나채영은 도망치면서 내게 물었다. 살짝 흥분한 느낌이었다. 야한 짓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녀가 흥분하는 건 무척 드물었다.

“노트북으로 안 봤어? 발전실에도 카메라가 있던데.”

“발전실에서 전기를 이용하는 것까지만 보였어. 바로 카메라가 먹통이 됐거든.”

“어떻게든 했어.”

설명하기 귀찮아. 그리고 엄청 피곤했다.

쿨럭.

목이 답답해서 기침했더니 덤으로 피가 나왔다.

“뭐, 뭐야?! 다쳤어?!”

나채영이 깜짝 놀라 달리기를 멈췄다. 나는 잠깐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피를 토했다. 코에서 피가 나고, 눈과 귀에서도 피가 났다. 몸속의 혈관이 터진 것이다.

“비스터의 부작용이구나…!”

나채영은 내 상태를 바로 알아차렸다.

“조금만 기다려. 그때에 비하면 훨씬 나아.”

기절하고 싶은 기분은 억지로 참았다. 여기서 기절하면 답이 없다. 적어도 차에 타고 기절해야 했다.

‘비스터 I에 내성이 생겨서 그런가. 약효가 줄어든 만큼 부작용도 줄어들었군.’

2분 정도 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우리는 무사히 거처인 성악초등학교에 도착했다. 오면서 몇 번이나 확인했다. 우리 뒤를 쫓는 자는 없었다.

“정말로 성공할 줄이야…!”

나채영은 감격에 찬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피식 웃고는 일단 샤워실부터 들어갔다.

***

“…….”

한국 전쟁 무기 연구소장 정현수는 통제실 책상 아래에서 두 눈을 감고 몸을 떨고 있었다. 통제실에서 유일하게 그만이 살아남았다. 나머지 연구원들은 모두 브레인디바우에게 뇌를 먹혀 죽었다.

운이 좋았다. 브레인디바우가 들어오자마자 연구원들을 밀어 넘기고 책상 아래로 들어가 숨을 죽이고 숨었다. 두 눈을 감고 평소에는 믿지도 않는 신에게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그 기도는 통했다. 브레인디바우는 정현수를 보지 못하고 위로 올라갔다.

살아남은 정현수는 책상 아래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책상 밖으로 나가는 순간 브레인디바우가 그 짧은 촉수로 자신의 몸을 붙잡고 두개골을 열어 뇌를 뽑아 먹을 것 같았다. 두려움에 떨면서 누군가가 구조해 주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삑!

통제실의 문이 열렸다.

부서진 철벽이 아닌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온 것이다. 굳이 문을 통해 들어올 필요가 없는데도.

또각또각.

딱딱한 구두 소리가 여럿 들렸다. 발이 없는 브레인디바우는 절대로 낼 수 없는 발소리.

정현수는 그제야 책상 아래에서 기어 나왔다.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서.

“흐어어…. 무, 물 좀 줄 수 있습니까…?”

그들은 검은 양복을 입은 자들이었다. 그 중심엔 검은 머리의 미녀가 있었다. 그녀의 주위로 양복 입은 남자들이 이리저리 통제실 내부를 돌아다닌다. 상황을 수습한다기보다는 뭔가를 찾는 듯한 움직임이다.

양복.

21세기에선 대부분의 사회원이 입는 옷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분위기가 일반인들과 달랐다. 보고만 있어도 절로 긴장하게 되는 분위기를 내뿜는다. 조폭? 아니다. 그보다 더 위험한 분위기다.

“구, 군대에서 오셨습니까?”

“아뇨.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왔습니다.”

정장을 입은 검은 머리의 미인이 말했다. 청순한 얼굴만큼이나 목소리도 고왔다. 정작 정현수는 두려움을 느꼈다.

국가안전기획부. 통칭 안기부.

안기부에 잡혀 들어간 자는 그냥 나올 수 없다는 악명은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퍼져 있었다. 국민들은 안기부를 폐하라고 몇 번이나 시위를 벌였지만, 시위는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안기부는 지금까지 유지되었다.

20년 전부터 안기부는 조용히 움직였다. 양지에서는 아예 존재감을 지우고 음지에서만 활동했다. 그러나 정현수 되는 권력자는 안다. 안기부는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정현수는 눈앞에 있는 여자에 대한 소문도 들었다. 실력에서부터 출신과 배경까지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여자. 그 몸에는 대한제국 황족의 피가 흐른다.

“안기부 4차장 이연희…! 왜, 왜 당신이 여기에?!”

“국방부는 이 연구소를 포기했어요. 브레인디바우가 죽었으니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거죠. 뒤처리는 저희가 맡게 됐습니다. 각성자와 괴물이 연관되어 있는지라 4차장인 제가 나왔죠.”

정현수는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는 걸 느꼈다. 자칫 잘못하면 안기부로 끌려갈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전기 고문, 물고문을 비롯한 온갖 모진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

“치, 침입자가 있었습니다! 플레이어, 그것도 에스퍼 클래스입니다! 놈이 연구소를 휘젓고 브레인디바우를 풀었습니다! 놈의 목적은 전투 인공지능이었습니다! 놈은 통제실로 브레인디바우를 유인한 뒤에 도망쳤습니다! 저는 여기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게 이번 일의 전부입니다! 아, 브레인디바우의 시체는 남아있습니까? 브레인디바우의 연구를 주도한 건 저였습니다. 시체를 연구하게 해주신다면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브레인디바우의 시체는 반드시 국가에 도움이 될 겁니다!!”

“다 말씀하셨나요?”

이연희가 웃으며 묻는다. 주변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한 그 미소는 이질적이었다. 정현수의 어깨가 떨렸다. 그는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고개를 숙였다.

“사, 살려주십시오….”

“소장님께는 안타까운 소식이 있습니다. 브레인디바우의 시체는 없어요. 지하 1층 발전실에서 그 잔해를 발견하긴 했는데… 깔끔하게 두 동강 난 채로 까맣게 타버렸습니다. 아마 브레인디바우의 심장이겠죠.”

“…두 동강입니까?”

“이런. 책상 아래에 숨어 계시느라 모르셨군요. 연구소는 두 동강 났습니다. 지상에서부터 지하 5층까지. 아주 깔끔하게 두 동강이 났죠. 너무 깔끔해서 건물은 무너질 기미도 안 보이지만요.”

“…….”

“자, 이 연구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처음부터 자세히 말해보세요. 지상에서 발견한 군인들의 액션캠으로 상황을 파악하기에는 정보가 많이 부족 하니까요.”

“말하겠습니다! 전부 말하겠습니다!”

정현수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이연희에게 말했다. 이연희는 그의 말을 들으며 조용히 끄덕였다. 그렇게 20분이 지났을까. 양복쟁이 중 한 명이 이연희에게 다가가 태블릿을 건넸다.

“차장님. 카메라 영상들입니다. 임시로 침입자를 기준으로 시간별로 영상을 이어 붙였습니다.”

이연희가 태블릿을 받았다.

“영상이 부자연스럽네요. 해킹당했나요?”

“네. 근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카메라를 조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조작이 없습니다.”

“통제실이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4층 전투 인공지능이 있는 연구실로 들어갔군요. 음. 신상을 특정할 뭔가는 안 나왔나요?”

“카메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보시다시피 침입자는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전부 가렸습니다.”

“DNA는요?”

“침입자의 DNA만 특정해내는 건 불가능합니다. 여기저기 시체가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연희는 태블릿에 집중했다.

침입자는 브레인디바우를 앞에 두고서도 멀쩡하게 행동했다.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정신 파동을 내뿜는 그 브레인디바우를 앞에서 말이다.

“칼을 쓰는군요.”

“이미 조사를 지시했습니다만, 의미는 없을 겁니다. 사람을 몇 명이나 죽이고도 멀쩡한 칼입니다. 즉, 테크놀로지스트가 만든 무기로 추정됩니다.”

“협력자가 테크놀로지스트일 가능성이 있군요. 음. 당장은 못 찾아내겠네요. 확실히 영상을 보니 에스퍼일 확률이 높겠네요.”

에스퍼와 테크놀로지스트가 손을 잡았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침입자는 통제실로 브레인디바우를 유인하고 지상으로 올라갔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침입자는 연구소에서 도망가지 않고 브레인디바우와 맞서 싸우기로 선택한 것이다.

‘왜?’

이연희가 마음속으로 되물으며 답을 구했다.

‘갑자기 브레인디바우와 싸우고 싶어져서? 브레인디바우의 정신 파동 때문에? 브레인디바우의 위험성을 깨달아서?’

침입자는 브레인디바우와 싸웠다. 호기롭게 덤비더니 죽을 위기에 처했었다. 그러다 브레인디바우를 발전실로 끌어들였다. 발전기의 전기를 이용해 뭔가를 하려는 찰나 영상이 끝났다.

“전기의 영향으로 카메라가 고장 났군요.”

“예. 이후로 침입자가 연구소를 나가는 영상이 있습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파주를 벗어나고도 남았을 겁니다.”

“특징은 전기 능력. 그리고 칼. 흐음. 대놓고 힘을 썼어요. 철저하게 숨길 생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네요. 곧 만나게 될 것 같은 예감이군요.”

“…침입자가 마음에 드시나 봅니다.”

“네. 브레인디바우는 너무 위험해서 제가 죽이려고 했는데… 그가 저를 대신해서 브레인디바우를 죽여줬네요. 전 그가 마음에 드네요. 어떻게 안기부로 데려올 수 있을까요?”

“못 들은 거로 하겠습니다.”

“재미없네요. 아 참, 들으신 분이 또 있네요.”

이연희의 시선이 정현수에게 향했다. 정현수는 창백한 안색으로 말했다.

“저, 저도 못 들은 거로 하겠습니다!”

“…….”

“살려주십시오! 전 국가에 도움이 됩니다! 정말입니다! 알고 있는 것도 많습니다! 연구소의 자료들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모두 드리겠습니다!”

“그거라면 이미 가지고 있어요. 연구소를 플레이어들이 노릴 걸 빤히 알고 있는데 설마 아무 조치를 안 취했을까요. 전투 AI 자료, 브레인디바우 연구와 실험 자료, 차세대 무기 연구 자료… 그것들 전부 가지고 있죠.”

“여, 연구소에 사람을 심으신 겁니까…?”

“네.”

이연희의 옆에 있던 양복쟁이가 한숨을 내쉰다. 이얀희는 그에 깜짝 놀라 입을 벌렸다.

“아! 이것도 기밀인데… 무심코 말해버렸네요. 뭐, 어쩔 수 없죠. 정리하는 수밖에. 정현수 연구소장님. 국가를 위해서입니다. 국가를 위해서입니다. 이해해 주세요.”

“사, 살려…!”

“데려가서 놓친 게 있는지 알아보세요. 자료를 교차검증하는 것도 잊지 말고요.”

이연희의 명령에 따라 검은 양복 두 명이 다가와 정현수를 제압해 데려갔다. 연구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는 0명이 될 것이다.

“차장님. 침입자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명령하신다면 어떻게든 추적은 해보겠습니다. 주변의 카메라, 블랙박스 등을 싹 다 확인하다 보면 꼬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뇨, 그럴 시간은 없어요. 이제 곧 그날이니까요. 해야 할 일이 많아요. 긴팔원숭이가 연구소에서 탈출했다죠?”

“이미 이곳에서 벗어났을 수도 있습니다.”

“동쪽 600m 거리에 모여 있어요. 총 8마리. 군부대와 협력해서 처리하세요. 사체는 군과 반으로 나누고요.”

“군에게 줘도 됩니까? 군은 위험 요소입니다.”

“저희와 군은 적이 아니라 같은 공무원이에요.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죠.”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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