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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870화 (1,650/2,000)

< 1870화 > 1870. 이터널 에덴

D-1.

오후 2시.

나는 봉고차에 탄 채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내일 좀비 바이러스가 발병하고, 세게는 좀비 아포칼립스로 진입한다. 뭐, 아포칼립스라고 해서 멸망하지는 않는다. 국가들은 이미 준비되어 있으니까. 다만 수습에는 몇 개월이 걸릴 것이다. 어쩌면 1년 이상 걸릴지도 모르고.

나 또한 준비는 끝났다. 테크놀로지스트인 나채영은 나를 따르기로 했고, 태왕과의 거래로 거처인 성악초등학교에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들을 모두 창고에 모아놓았다. 500명이 1년 이상 아무 걱정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양이다. 사실상 모든 대비가 끝났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내 목적은 생존이 아니었다.

혼란이 찾아올 한국에서 내 세력을 키워 한국을 먹는 것. 한국의 왕이 되는 것이 내 목적이다. 상황이 수습될 때까지 거처에 틀어박혀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근데 어떻게 해야 한국의 왕이 되지? 충성을 강요해도 거부할 놈들이 태산일 텐데… 칼 들고 협박해야 하나?’

미래를 생각한다.

떠오르는게 하나도 없었다.

‘아, 오늘은 나채영에게 간호사 플레이나 해달라고 할까.’

간호사복을 입은 나채영이 무표정한 얼굴로 내 위에 올라타 다리를 벌리는 걸 떠올린다. 타이트한 간호사 치마 안에는 노팬티 보지가 투명한 액체에 젖어 있을 것이다.

쿵쿵.

누군가가 운전석 문을 두들겼다. 입에 흐르는 침을 손 등으로 닦고 고개를 돌리니 허리가 굽은 노인이었다.

일단 운전석 창문을 내렸다.

“영감. 그냥 가쇼.”

순간적으로 노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이 싸가지 없는 놈! 여긴 주차 금지야! 저기 적혀 있는 거 안 보여?!”

노인이 담장을 가리켰다. 확실히 주차금지라고 적혀 있었다. 코가 가려워서 코를 후볐다. 커다란 코딱지가 손톱에 끼였다. 속이 시원하다.

“조금 있으면 알아서 갈 테니 그냥 가쇼.”

툭.

무심코 던진 코딱지는 노인의 이마에 정중했다.

“오.”

“이, 이놈! 이놈! 이 싸가지 없는 놈! 애미애비가 그렇게 가르치디?!”

쿵쿵쿵! 운전석 문을 두들긴다. 그에 봉고차가 조금씩 흔들렸다.

“아, 씨발.”

짜증 나서 휘두른 주먹이 노인의 죽빵을 후려갈겼다.

퍽!

노인이 그대로 피를 흘리며 뒤로 넘어진다. 코뼈는 확실하게 박살 났다.

쿵! 머리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나는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바닥에 쓰러진 노인을 바라봤다.

뒈진 게 확실해 보였다.

“살살 쳤는데 죽네.”

운동을 많이 하긴 했었다.

‘아니지. 살아 있을지도 몰라.’

일단 운전석에서 내려 노인의 맥을 짚어봤다.

“…호상이네.”

내일 어쩌면 이 늙은이는 D 바이러스에 의해 좀비가 될지도 모른다. 그럴 바엔 내 주먹에 뒤진 건 호상이었다.

‘내일 좀비 사태가 일어나지만 이대로 시체를 길바닥에 내버려 두면 경찰이 쫓겠지.’

그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본다. 오후 2시라서 그런지 돌아다니는 사람은 안 보였다.

양손으로 시체를 잡아 담장 위로 던져 시체를 처리했다.

다시 운전석에 올라가 멍하니 앉았다.

‘섹스….’

오랜만에 주인님 소리가 듣고 싶었다. 나채영은 메이드 코스프레를 시켜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고 오후 3시.

나는 봉고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골목 끝으로 향하니 기왓집이 보였다. 卍신암보살卍 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무속인 집이었다.

‘…씨발. 왜 이렇게 조용하지? 오후 3시에 여기서 드라마 촬영한다며.’

D-1.

나는 여배우를 납치하러 왔다. 유은하라는 배우다. 서른도 되지 않는 나이에 인지도는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악역 전문 여배우. 연기 실력도 연기 실력이지만 스캔들이 많은 여배우였다. 잊을 만하면 스캔들이 터져서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고나 할까.

외모는 예쁜 여배우 중에서도 탑티어다. 몸매도 끝내준다. 그래서 드라마 촬영장인 이곳에서 적당히 사람들의 시선이 없을 때 납치할 생각이었다. 집으로 찾아가 납치하는 게 편하고 좋지만, 나는 유은하가 어디에 사는지 모른다.

‘어제 여기서 드라마 촬영한다고 팬카페에서 적혀 있었잖아. 왜 한 명도 안 보여?’

卍신암보살卍 간판을 지나 무당집으로 들어갔다. 향냄새가 진하게 났다. 그리고 무당집 아니랄까 봐 형형색색의 천 같은 걸 걸어뒀다.

휘적휘적 걸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손님인가?”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빨간 무복을 입고 앉아 있었다. 무당이었다. 강렬한 분위기를 풍기고 싶어서인지 몰라도 두 눈으로 날 노려보고 있다. 눈빛이 너무 좆같아서 하마터면 달려가 싸커킥을 날릴 뻔했다.

무당의 앞에는 작은 상이 있었다. 상 위에는 향이 타오르고 있었다.

“뭐 좀 물어보자. 여기 드라마 촬영한다며? 왜 아무도 없어?”

“드라마 촬영을 구경하러 오셨나. 오늘 아침에 촬영이 취소됐네. 이유는 말 안 해주더군.”

“…그래?”

뭔가 석연찮은 느낌이 있었다.

‘시간만 버렸잖아. 유은하를 찾는 건… 당장은 힘들겠군.’

한숨을 내쉰다.

“고민이 있어 보이는군. 이래 보여도 용하다고 유명한게 나, 신암보살일세. 뭐든 물어보게. 평소에 품고 있던 고민이 있지 않나. 내가 답해 주겠네!”

“오. 마침 궁금한 게 있긴 했지.”

무당에게 다가가 그녀를 내려다봤다. 턱을 올린 무당과 눈이 마주쳤다. 무당의 표정이 싹 굳어졌다. 그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린다.

“내가 왕이 될 팔자인가?”

무당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겁을 먹었다. 눈 좀 마주쳤다고 겁을 먹나? 이해할 수 없었다.

“대답해.”

뒤쪽, 열어둔 문에서 바람이 불어와 타오르던 향을 그대로 꺼버렸다.

무당은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이마, 양 팔꿈치, 양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오체투지였다.

“화,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왕이 될 팔자는 아니었나. 뭐, 어쩔 수 없지.”

나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내 한국에 사이비는 용납할 수 없기에 개소리를 지껄이면 죽일 생각이었는데, 좀 용한 것 같았다.

***

밤 10시.

봉고차를 몰고 간 곳은 영신정이라는 한식 전문점 가게였다. 이미 영업은 끝났으나, 영신정의 주방은 불이 켜져 있었다. 높으신 분들이 자주 찾는 가게답게 한옥으로 멋들어지게 지어진 건물이었다.

며칠 전에 이곳을 찾았는데 이 세계에서 먹어 본 요리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유리아의 요리에 비할 바는 아니긴 하지만.

담을 넘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에 고풍스러운 연못까지 있었다. 분위기는 끝내주게 잘 잡았다.

주방의 문을 벌컥 들어갔다. 두 명의 여인이 있었다. 한 명은 중년 여인이고 한 명은 젊은 여인이었다. 둘 다 미인이었다. 김현숙과 신하정. 김현숙은 영신정의 주인이자 주방장이고, 신하정은 그녀의 딸이자 직원이었다.

“누, 누구시죠? 여긴 관계자 외 출입이 금지된 곳입니다만….”

“귀찮으니 설명은 나중에 할게.”

나는 그녀들에게 달려들어 목을 붙잡았다. 파지직! 스턴건 수준으로 출력을 낮춘 뇌전으로 그녀들을 기절시켰다. 양손으로 그녀들의 허리를 잡으며 봉고차로 옮길 준비를 한다.

‘음. 맛있는 냄새가 나는군. 내일 나갈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나? 아, 김치나 된장 같은 건 가져가는 쪽이 좋겠지.’

몇 개 챙기다 보니 봉고차가 가득 찼다. 나는 그녀들을 데리고 성악초등학교로 들어갔다.

유감스럽게도 일은 그게 끝이 아니었기에 다시 봉고차 운전대를 잡았다.

‘나채영은 의사가 있어야 한다고 했지.’

회복 능력을 가진 나와 달리 나채영은 한 번 다치면 끝이라 할 수 있었다. 거기에 거처에 사람도 많이 모일 테니 의사는 반드시 납치해야 한다. 모이는 사람 중에 의사가 있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물론 의사도 조사해놨다. 기왕이면 미녀 의사가 좋으니까. 마포구로 향했다.

새벽 2시.

나는 목적했던 종합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을 올려다본다. 불은 대부분 꺼져 있었으나, 일부는 켜져 있었다. 응급실은 당연히 켜져 있다. 삐용삐용. 구급차가 병원 밖으로 나가는 게 보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한산해 보였다. 눈이 죽어 있는 간호사에게 다가가 물었다.

“양수빈 선생님은 어디 계십니까?”

“양 선생님은 지금… 잠깐, 누구시죠? 응급 환자는 아니신 것 같은….”

간호사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동시의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내 팔을 봤기 때문이다. 내 왼팔에서는 대량의 피가 줄줄 흘러내고 있었다. 일부러 간호사를 만나기 전에 칼로 왼팔을 그은 보람이 있었다.

“이, 이쪽으로 오세요!!”

외과 의사 양수빈을 만날 수 있었다.

뒤로 질끈 묶은 머리카락에 깔끔한 얼굴.

양수빈은 미녀 의사로 유명한 여자였다. 최근에 TV에서 방영한 의료 관련 프로그램을 보면 그녀는 빠지지 않고 출현했다.

“이리 오세요. 일단 지혈부터….”

양수빈은 내 팔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회복에 의해 이미 피는 흐르지 않았고, 상처는 눈에 보일 정도로 아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양 선생. 나랑 같이 갑시다.”

“……당신 누구죠?”

“길게 설명할 시간은 없어. 당신은 꽤 냉정한 것 같으니 선택지를 줄게. 그냥 갈래? 기절해서 갈래?”

뒷걸음질치는 양수빈의 어깨를 잡았다. 그녀가 조용히 메스를 손에 쥐는 게 보였다.

파지지지직!

기절해 쓰러지는 그녀의 몸을 잡았다.

‘약품도 가져가는 편이 좋겠지? 일단 보이는 건 전부 챙기자.’

도중에 간호사가 들어왔기에 간호사도 똑같이 기절시켰다. 남자였으면 죽였을 거다.

나는 한껏 무거워진 봉고차를 운전해 성악초등학교로 향했다.

‘슬슬 시작될 텐데.’

라디오를 켜고 주파수를 조절한다.

-지금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128번째 운석입니다! 나사가 발표했던 대로 지금껏 떨어진 운석 중에서 가장 큰 운석입니다! 지금 막 전 세계에서 운석을 막기 위해 핵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수천 발의 핵미사일이 우주를 향해 날아갑니다! 모든 국가는 지구와 인류를 위해 모든 핵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한국에서도 핵미사일이 발사됩니다!

밤하늘이 빛난다. 강원도 쪽에서 발사된 수십 발의 핵미사일이 우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모든 핵미사일이라.’

원작 [이터널 게임]에서는 정말로 모든 핵미사일을 쏘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계는 플레이어로 인해 원작 배경과 달라졌다. 정말로 모든 핵미사일을 쏟아부었을까? 그럴 리가.

성악초등학교에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128번째 운석이 파괴되었습니다!

아나운서가 기뻐하며 외쳤다.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부서진 운석 조각들이 지상으로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지구는 안전합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이 디데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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