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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871화 (1,651/2,000)

< 1871화 > 1871. 이터널 에덴

D-Day.

아침 7시.

나는 감금실로 향했다. 성악초등학교에 있는 운동부 기숙사를 개조해서 만든 곳이다. 썩 좋은 곳은 아니었다. 오로지 감금에만 충실한 곳인지라 유치장과 비슷했다. 개인실은 꿈에도 꾸지 못한다. 대신에 수갑과 족쇄는 확실하게 만들어 뒀다. 육체 능력자로 각성하더라도 수갑과 족쇄는 쉽게 풀진 못할 것이다.

제 1 감금실의 철창안으로 들어갔다. 수갑과 족쇄를 차고 있는 3명의 여인은 두려움 섞인 눈으로 날 쳐다봤다. 나는 철창 밖에 있던 나무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돈이라면 모아둔 게 있어요.”

양수빈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외과 의사인 그녀는 머리를 질끈 묶은 늘씬한 미녀였다. 하얀 가운만 입지 않았다면 모델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가슴은 B컵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야. 너희가 가진 능력을 원하지. 근데 억지로 시킨다고 해서 제대로 한다는 보장은 없잖아. 기왕이면 협력 관계를 형성하는 게 너희도 좋고, 나도 좋지.”

두 명은 내 밥을 책임져 줘야 하고, 다른 한 명은 의료를 책임져야 한다. 억지로 시켜서 될 일은 아니었다. 나채영도 고급인력은 최대한 대우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을 납치해놓고 협력을 바란다니…. 제정신인가요?”

양수빈이 표독스럽게 말했다. 자신의 가치를 알아서 그런가. 조금이지만 두려움이 사라졌다.

“납치는 맞긴 한데 결과적으로 난 너희를 구한 거야.”

“헛소리는 집어치우시죠. 병원에 대놓고 들어와 저를 납치했죠. 경찰들은 이미 수사를 진행하고 있을 거예요. 늦어도 오후에는 경찰이 들이닥치겠죠.”

“경찰은 안 와. 아니, 못 와. 수사는 시작도 하지 못했을 걸? 그럴 여유가 아예 없었을 테니까.”

“…무슨 뜻이죠?”

“뭣하면 스마트폰도 줄 수 있어. 정 싫다면 밖으로 내보내 줄게. 단, 이걸 보고 난 뒤에.”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대신 의자 위에 노트북을 올리고 열었다. 동영상 사이트에 들어가서 실시간 뉴스를 보여준다. 시청자 수는 수백만이 넘었다.

영상 속에는 어둡기 짝이 없는 표정의 남자 아나운서가 있었다.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아나운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국민 여러분! 전 세계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졌습니다! 좀비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습격하고 있습니다! 좀비에게 물리면 좀비가 됩니다! 부디 집에 계십시오! 미국은 이 좀비 바이러스를 D 바이러스라 명명했습니다! 또한 바이러스의 원인으로 128번째 운석을 지목했습니다! 살아계신 분들은 집밖으로 나오시면 안 됩니다! 구조를, 최대한 구조를 기다려주십시오!

영상은 도로를 비추었다. 높은 빌딩 사이에 있는 도로는 엉망진창이었다. 자동차가 무질서하게 서 있고 좀비가 돌아다닌다. 도로가 개판이니 자동차가 움직일 수 없었다.

자동차 운전석에서 한 남성이 나왔다. 남성은 주변을 살폈다. 좀비는 남성을 그리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좀비 중 하나가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는 남자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기.

미국 영화나 다르마 속에 나오는 좀비처럼 느릿하게 걷지 않고 달렸다. 그것도 꽤 빠른 속도였다. 좀비 한 마리가 달리자, 곧 근처에 있던 좀비들도 따라서 달리며 남자를 뒤쫓는다. 순식간에 수십 마리의 좀비에게 쫓기게 된 남자는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며 느려졌다.

좀비들은 남자는 산채로 잡아 먹었다.

-이 좀비들은 뛰어다닙니다! 힘도 성인 남성보다 조금 더 강합니다! 시력은 거의 없고 소리에 민감합니다! 그리고 냄새도 맡습니다! 만약, 좀비와 싸워야 되는 상황이 온다면 머리가 아닌 심장을 노리십시오!

“거짓말…. 조, 조작한 영상이죠? 좀비 같은게 진짜 있을리 없잖아요!”

영신정의 주방장, 김현숙의 딸이 외쳤다. 애처로울 정도로 떨고 있었다.

“조작인지 아닌지는 직접 확인해 봐.”

나는 그녀들에게 스마트폰을 돌려줬다. 그녀들은 서둘러 스마트폰을 만지며 제각각의 방법으로 상황을 확인했다.

신하정은 SNS를 확인했고, 양수빈은 인터넷 기사를, 김현숙은 지인에게 연락했다.

3분도 안 되어서 그녀들은 좀비 상황이 사실이란 걸 받아들였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그녀들은 침묵했다.

침묵 속에서 유일하게 떠드는 것은 노트북 영상 속 아나운서뿐이다. 아나운서는 반복해서 좀비의 정보를 말했다. 구조를 기다리라는 말은 덤이다.

“경찰에 신고해도 돼.”

“…이미 했어요. 119도, 122도 전부 침착하게 대기하라는 안내 음성밖에 없어요.”

김현숙이 말했다. 높으신 분들을 많이 상대해봐서 그런 걸까. 그녀는 상당히 침착했다.

“당신은 누구죠? 지인의 말로는 새벽 5시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졌다고 했어요. 당신은 그 전날에 우리를 납치했죠. 어떻게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는 걸 알았죠?”

“그 정보를 아는 건 나뿐만이 아니야. 정부도 알고 있어.”

“…아. 그래서 의원들이 저번에 그런 말을…. 알고 있었다면 대체 왜….”

“그건 모르겠고 정부는 한동안 못 움직여.”

“군대가 있으면 얼마든지 빠르게 제압할 수 있어요.”

“바이러스가 군대는 피해 가나? 바이러스에 가장 심각한 곳이 군대야.”

“…….”

김현숙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군대를 믿고 있었던 모양이다. 군대가 나서서 이 상황을 정리해줄 거라 막연히 믿었겠지. 한국군 군사력은 전 세계 10위 안에 드니까.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올게. 15분 뒤에 올테니 마음대로 노트북을 만져도 상관없어.”

그녀들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은 필요하겠지. 뭐, 선택은 불보 듯 뻔하지만.

‘중요한 건 선택지를 준다는 거지.’

감금실 건물 밖으로 나왔다. 아침 햇살은 어제와 같이 눈부셨다.

쾅!

담벼락 너머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가스라도 터진 것 같았다.

‘D 바이러스가 터지는 시간대가 안 좋았어.’

한국 시간으로 새벽 5시. 자는 도중에 D 바이러스 퍼진 것이다. 좀비로 변했다면 가까이 있는 가족을 노렸을 것이다. 집 안에 있는 문은 나무 문일 테고, 좀비의 근력은 사람보다 조금 더 뛰어나다. 즉, 나무문 정도는 쉽게 부술 수 있다는 것.

-상황은 어때? 잘 될 것 같아?

무전기에서 나채영이 물어왔다. 기지국은 당장 작살나도 이상하지 않기에 스마트폰 대신 무전기로 대화하기로 정했었다.

“잘 될 거야. 객관적으로 봐도 우리 쪽에 붙을 수밖에 없잖아. 밖으로 나가서 죽기 싫다면 말이야.”

-사람 마음은 모를 일이야. 그리고 가족이라는 변수도 있어.

나는 입아프게 말하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결과가 나올 것이다.

‘덥네.’

여름이었다.

15분 동안 밖에 있다가 감금실로 들어갔다. 분위기는 아까보다 더 우울해졌다.

“어쩔 거야?”

먼저 입을 연 건 김현숙이었다.

“저희는 이곳에 남겠어요. 여긴 어디고, 저희는 뭘 하면 되는 거죠?”

“요리사를 데려온 이유가 뭐겠어. 밥해달라고 데려온 거지. 여긴 강서구에 있는 폐초등학교를 개조해서 만들었어. 아예 냉동고까지 만들어 뒀으니 식재료는 마음대로 써도 돼.”

“……여긴 정말 안전한가요?”

“담벼락은 높고 정문과 후문은 개조 끝났어. 좀비는 학교 안으로 못 들어와. 안심하고 지내.”

나는 열쇠로 김현숙과 신하정 모녀의 구속구를 풀어줬다. 신하정에게 은근히 시선을 보냈는데, 그녀는 멘탈이 반쯤 나가 있어서 눈치채지 못했다.

이건 기회이기도 했다. 조금만 잘 꼬시면 넘어올 것이다. 흔들다리 효과를 이용하는 거다. 그녀들이 감금실 밖으로 나갔다.

의사인 양수빈에게 시선을 돌렸다.

“…난 나가야겠어요.”

“뭐?”

예상하지 못한 말에 당황했다. 양수빈은 눈을 똑바로 뜨며 내게 스마트폰을 건넸다. 스마트폰은 통화 중이었다.

“남자친구가 있어요. 전 그와 만나고 싶어요. 당신과 대화하고 싶다고 하니… 한 번 대화해 보시죠.”

일단 스마트폰을 받아들였다.

-이야기는 대충 들었습니다. 이 사태를 미리 알고 있었고 수빈이를 납치했다면서요. 의사가 필요했다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납치하는 일은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분노를 억누른 듯한 목소리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를 비웃었다.

“그래. 네 여친은 보내줄 테니 알아서 잘해봐. 뭐, 좀비가 득실거리는 상황에서 얼마나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강서구의 성악초등학교라 하셨죠? 전 구로구에 있습니다.

“어쩌라고? 아, 데리러 오겠다고? 올 거면 빨리 오는 게 좋을 거야. 동료도 아닌 사람에게 식량을 나눠줄 생각은 추호도 없거든.”

-도와주십시오. 저희는 현재 고립된 상태입니다. 도와주신다면 저희는 그쪽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저희 회사는 PS경호입니다. 직원들 경호 경력은 5년 이상이고, 특수부대 복무자도 여럿 있습니다.

“그렇게 대단하신 분들이 도움을 청하나? 이 여자는 알아서 데려가. 시간은 오후 6시다. 오후 6시까지 오지 않으면 이 여자는 추방하겠어.”

-…이 통화는 녹음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은 아직 인터넷이 끊기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내용이 퍼져도 되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성악초등학교로 찾아갈 겁니다. 좋지 않은 의도를 가진 자들까지도요. 어쩌면 정부도 찾아가겠죠. 그 악명 높은 안기부가 움직일지도 모릅니다.

“존나 심플한 협박이군. 오랜만에 머리에 열이 치솟는 것 같지만… 냉정하게 대처해야겠지. 그래. 구하러 갈게. 어디야, 씹새끼야?”

-…혹시 군인 출신이십니까? 목소리에서 살기가 느껴지시는군요.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는 당신과 협력하고 싶습니다. 저희는 모두 전투 경험이 있는 전문 경호원입니다. 반드시 당신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좆까.”

그대로 스마트폰을 껐다.

눈에 살기를 담아 양수빈을 노려봤다. 양수빈은 흠칫 놀라 비틀거린다.

‘의사고 나발이고 특수 감금실에 집어넣고 오나홀로 이용할까. 그, 뭐냐. 가스라이팅? 그런 걸 한 번 시도해보는 거지.’

부르르르.

스마트폰이 떨린다. 그놈이 다시 연락을 건 거다. 별 고민 없이 바로 다시 연락하는 걸 보니 똥줄이 많이 타는 모양이다.

스마트폰을 내던지고 무시했다. 액정이 깨진 스마트폰은 여전히 진동했다.

털썩!

양수빈이 무릎 끓었다. 그녀는 애원하듯이 두 손을 맞잡고는 날 올려보며 말했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신다면 전폭적으로 협력할게요. 제발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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