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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873화 (1,653/2,000)

< 1873화 > 1873. 이터널 에덴

“잠깐만요! 잠깐만 멈춰봐요!”

학교 정문으로 향하는데 양수빈이 내 팔을 잡았다. 나는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왜. 한시가 급한 거 아니었어?”

“급하죠. 급한데 저희 둘만 이렇게 갈 수는 없잖아요. 지금 바깥은 지옥이나 다를 바 없으니까요. 다른 사람들은요?”

“다른 사람? 우리뿐이야. 너와 나 합쳐서 전력의 40%라고. 40%가 사람 네 남친 구하러 가는 데 쓰이고 있다고.”

이럴 때는 생색을 내줘야 했다. 그래야 더 고마워할 테니까.

예상과 달리 양수빈은 고마워하기는커녕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우리 둘이 합쳐서 전력의 40%라고요?”

“아니, 정확하게는 90%지. 넌 1% 정도고 내가 89%.”

나머지 10%는 나채영이다. 전쟁 AI를 얻고 나서 그녀 또한 나름 전투를 대비하고 있으니까. 내가 이렇게 잠깐 초등학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나채영을 믿기 때문이다. 나채영이라면 몇 시간 정도는 나 없이 버틸 수 있을 테니까.

“…이 넓은 시설에 그렇게 사람이 없어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거든. 처음부터 사람을 끌어들였다가 좀비라도 되면 귀찮기도 했고. 우리에게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었어. 사람 대신 시설에 투자했지.”

어차피 사람이야 모여들 것이다. 여긴 안전하고 자원이 풍족하니까. 사람이 안전한 곳을 찾는 건 당연하다.

그러다 나는 양수빈과 박해길이 지금까지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성악초등학교. 단둘이서 차지해서 이용하기에는 너무 큰 시설. 이들은 사람이 최소 수십 명을 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는 사람이 너무 적어서 시설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는 수준이었지만.

“그래서 안 갈 거야?”

“…….”

양수빈이 고개를 떨궜다. 박해길을 구하기 위해 내게 몸까지 대주지 않았던가. 이제 와서 가지 않는다는 선택은 도저히 못 하겠지.

“따라오기나 해. 넌 이게 그냥 단순한 좀비 바이러스 사태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실제로는 조금 더 복잡하거든.”

정문과 후문은 두꺼운 철을 때려 박아 대문을 만들어놨다. 철문 윗부분에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문 옆에는 작은 강화 유리창이 있어서 바깥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는 안 돼요.”

“또 뭐가?”

“해길이가 비교적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는 길을 말해줬잖아요.”

“이제 와서 그놈이 말한 길로 가자고? 그쪽으로 가면 빙빙 돌아가게 돼. 너무 느려.”

“당신에게 대책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쪽 의견을 따랐어요. 해길이도 그렇게 하라고 했고요. 하지만 지금 당신은 큰길로 가려 하고 있어요. 미친 짓이에요.”

“나는… 어휴, 됐다. 직접 보여줄 테니 따라와.”

철문 앞에 섰다. 철문은 열 수 있는 수단은 안쪽에 없었다. 전자식 잠금장치라 철문을 열려면 통제자의 허락이 필요하다. 지금 통제자는 나채영이다.

“나 박사. 보고 있지? 문 열어.”

-오후 3시 전까지 돌아와.

왼쪽 귀에 꽂은 소형 무전기에서 나채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점심 전까지 올게. 미슐랭 쓰리스타 주방장의 점심 특식은 못 참지.”

-길 가다가 갈 곳 없는 사람이 있으면 데려와도 돼. 노동력이 필요하니까.

건물이 크다 보니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청소. 그리고 물류 정리 등등이다. 농사도 지을 생각에 흙이나 비료, 종자 같은 것들도 준비해놨다. 비축해둔 음식만으로 버티기엔 불안하니까. 그리고 한쪽에는 닭을 기를 가축장도 만들어뒀다. 그리고 나는 가축관리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알았어.”

철컥!

철문이 열린다.

아스팔트 도로. 그리고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자동차들. 그 사이로 천천히 돌아다니는 좀비가 있었다.

“흡…!”

양수빈이 뒤에서 숨을 삼켰다. 그녀는 두려움 섞인 눈으로 돌아다니는 좀비들을 쳐다봤다.

“생각보다 수가 적네.”

-원래 서울치고 인구수가 적은 동료니까.

좀비는 겉보기에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D 바이러스에 의해 죽을 때 피를 토하기에 몸에 피가 묻어있고 눈이 맛이 갔다면 100% 좀비다.

사람이라면 애초에 저렇게 어기적거리며 돌아다니지 않는다.

‘먹이를 찾는 들개 같군.’

-자동차는 귀중한 자원이야. 철이면 철, 기름이면 기름. 버릴 게 거의 없어. 괜히 부수지 마.

“그 정도는 나도 알아.”

스르릉.

칼집에서 갈치검을 뽑았다. 이미 전력이 축적되어 있었기에 갈치검은 은색으로 빛났다.

칼을 쥐고 가까운 좀비를 향해 달려간다. 타타탓! 일부러 발소리를 내니 근처에 있던 좀비들이 일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냅다 달려들었다. 좀비는 전체적으로 평범한 성인 남성보다 약간 더 강하다.

‘그래봤자 내 상대가 될 리는 없지만.’

행동은 단순했다. 딱 봐도 그냥 접근하려고 한다. 내가 어떤 무기를 가지고 있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좀비는 멧돼지와 같았다.

갈치검을 휘두른다. 뇌전을 사용하지 않고 그저 칼의 날카로움과 내 근력을 이용한 베기.

서걱!

가장 앞에 있는 좀비의 목을 벤다.

서걱! 서걱!

이어서 연달아 달려드는 좀비 두 마리의 목까지 베어냈다. 절단된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럼에도 좀비는 멈추지 않았다.

“왜 안 죽어?”

나는 백 스텝을 밟으며 자동차 위로 올라갔다. 목 없는 좀비는 날 놓치고 양손을 아무렇게나 허우적거리더니 자기들끼리 엉키기 시작했다.

-저번에 말했잖아. 좀비를 확실하게 죽이려면 심장을 노리라고!

“아, 그랬지.”

좀비는 심장이 뛴다. 그러나 뇌는 뇌사한 상태다. 반은 살아있고, 반을 죽어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좀비를 원래의 사람으로 되돌릴 가능성은 0%다.

좀비는 D 바이러스에 의해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이 된 것이다.

머리가 잘린 좀비들은 3분 정도 발악하다가 축 늘어졌다. 죽은 것이다.

-근처 자동차에 좀비가 들어있어. 하는 김에 정리해줘.

“어려운 일은 아니지.”

나는 쿵쿵 소리가 나는 자동차로 걸어갔다. 운전석에 앉은 좀비가 창문과 운전대를 두들기고 있다. 자세히 보니 안전벨트가 놈을 구속하고 있었다. 성인 남성보다 강해졌다곤 해도 맨손으로 자동차를 부술 정도는 아니었다.

은색으로 빛나는 갈치검을 자동차를 향해 내질렀다. 푹! 손쉽게 자동차 장갑을 뚫고 좀비의 심장에 꽂힌다. 좀비의 몸이 축 늘어진다. 즉사했다.

그 외에도 돌아다니는 좀비가 보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서 썰었다.

-웬만하면 가슴을 찔려서 한 번에 죽여. 그게 청소할 때 편해.

“괜찮아. 청소는 다른 놈들이 할 테니까.”

찌르는 것보다 베는 게 손맛이 더 좋았다.

나는 주위에 보이는 좀비들을 모조리 벤 뒤에 양수빈을 쳐다봤다. 양수빈은 경외가 섞인 눈으로 날 쳐다봤다.

“…제가 당신이란 사람을 잘못 판단했군요. 대체 뭐 하시는 분이죠?”

“대학생이었지. 뭐, 한 달 전부터 대학교에 한 번도 안 갔지만.”

나는 앞장서서 당당히 걸었고, 양수빈은 내 뒤를 따라왔다. 잔뜩 긴장해 있던 그녀는 내 힘을 보고는 긴장이 어느 정도 풀린 듯했다.

도로는 걷는 와중 골목길에서 갑자기 좀비가 튀어나왔다.

“꺄아아악!”

양수빈이 반사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근처에 있던 좀비들이 이쪽으로 몰려든다.

우선 튀어나온 좀비를 베어 죽이고 주위를 둘러본다. 상가 도로라서 그런지 30마리가 넘는 좀비가 단번에 튀어나왔다. 그중 절반 이상이 좀비에게 물려 좀비가 된 케이스다.

“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

양수빈이 당장 숨넘어갈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한 대 쥐어박을까 하다가 관뒀다. 저건 정말로 실수다.

조금 고생하면 30마리 좀비를 상대하는 건 어렵지 않다. 문제는 양수빈이었다. 지금 내 힘만으로 그녀를 지키면서 30마리의 좀비를 상대하는 건 힘들었다.

‘가야 할 길이 멀어. 여기서 힘을 뺄 순 없지. 벌써부터 이걸 쓰게 될 줄은 몰랐군.’

주머니에서 수류탄처럼 생긴 걸 꺼내 버튼을 눌렀다. 콰카카카카카카캉! 시끄러운 소리가 울린다. 이쪽으로 달려오는 좀비들이 더 늘어났다. 좀비는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민감하게 소리에 반응한다. 그러니 소리를 이용하면 어그로를 끌 수 있다.

나채영이 만든 소리 수류탄을 멀리 내던진다. 좀비들이 일제히 소리 수류탄을 향해 달려갔다.

‘챙겨온 건 8개. 이젠 7개 남았군.’

그중에 하나를 가방에서 꺼내 주머니에 넣었다. 여차할 땐 또 사용해야 한다.

“됐어. 가자.”

“…죄송해요.”

“뭐, 한 번은 그럴 수 있지. 두 번은 그러지 마. 넌 그런 멍청이가 아니잖아?”

“두 번 다시 멍청하게 소리 지를 일은 없을 거예요.”

실제로 좀비가 느닷없이 튀어나와도 그녀는 소리치지 않았다. 나는 튀어나온 좀비를 무심하게 썰어버릴 뿐이었다.

우리처럼 조심스럽게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급한 자들이다. 집안에 쌓아 놓은 게 없는 자들. 그들은 가까운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물론 가게 주인도 멍청이는 아니다. 셔터를 내리고 어떻게 해서든 막아낸다. 사람들에게 식량을 나눠주는 편의점은 있긴 해도 드물었다.

“저, 저기요.”

한 남자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뭐.”

“머, 먹을 걸 조금만 나눠주세요. 집에 먹을 게 아무것도 없어요. 이대로는 굶어 죽을 것 같아요.”

“바이러스 터지고 12시간도 안 지났어. 굶어 죽기는 지랄. 음식이 구하고 싶으면 편의점이나 슈퍼에나 가.”

“근처 편의점과 슈퍼는 전부 닫혀있어서 갈 수가 없어요! 제발, 조금만! 먹을 걸 조금만 나눠주세요!”

“마지막 경고다. 꺼져.”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남자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며 나를 경계했다.

“그거 진짜 칼은 아니죠? 목검 같은….”

서걱!

대학생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피 냄새가 퍼지자 좀비들이 이쪽으로 몸을 돌린다.

딱딱하게 굳은 양수빈의 손을 잡고 소리를 최대한 죽이기 위해 천천히 달렸다. 몰려든 좀비들은 시체를 파먹기 시작했다.

“주,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잖아요.”

“안 죽일 이유도 없었잖아.”

“…….”

양수빈은 입을 열었다가 닫기를 반복했다. 날 향한 두려움이 더 강해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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