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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874화 (1,654/2,000)

< 1874화 > 1874. 이터널 에덴

거리를 걷는 도중에 시체를 발견했다.

중년 남자의 것이었다. 명치가 붉다. 칼인지 창인지 몰라도 뭔가에 가슴이 뚫린 것이다.

시체만 봐서는 좀비의 것인지, 사람의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나는 힐끔 시체를 보고 지나쳤다. 양수빈은 시체를 보고 움찔 떨었으나 침착했다.

“시체는 익숙하지 않아?”

“…익숙하지 않아요. 환자는 익숙하지만요.”

얼마 안 가 또 시체를 발견했다. 시체는 아줌마였다. 두개골이 움푹 들어가 있었다.

“이건 사람 시체군.”

“…확신하는 이유는요?”

“좀비는 머리 좀 움푹 파인다고 안 죽어. 이미 뇌사상태인데 뇌가 망가져서 죽을 것 같아?”

“…좀비를 살아 있다고 표현하시는군요.”

“판타지 소설 속에 나오는 언데드가 아니니까. 이놈들은 감염돼서 좀비로 변했을 뿐이야. 뇌는 죽었어도 심장은 뛰고 본능적으로 인간을…. 아니, 생물을 공격해서 잡아먹으려 하지. 어쩌다 이놈들에게서 살아남아도 좀비에게 물리면 같은 좀비가 될 뿐이야. 예외는 없어.”

플레이어나 각성자도 예외는 아니다. 좀비에게 물리면 얄짤없이 좀비가 된다. 다만, 특수 백신으로 좀비화를 방지하는 건 가능했다.

“몇 시간 전부터 궁금했는데… 어떻게 당신은 이런 일이 일어날 걸 알고 있었죠?”

“입도 심심하니 말해줄까. 시간이 지나면 알려질 일일 테니까.”

나는 플레이어와 각성자에 대해서 말해줬다. 그녀는 내 말을 쉽게 믿지 못했다. 그리고 완전히 무시하지도 못했다. 나는 굳이 그녀를 납득 시키려 하지 않았다. 결국은 내 말이 맞다는 걸 이해하게 될 테니까.

“좀비가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다행이네요.”

“뭐가?”

“생물은 결국 먹지 못하면 죽어요. 사람들이 건물 속에서 숨어서 기다리기만 한다면… 좀비들은 결국 굶어 죽는 거죠.”

“틀렸어. 이놈들은 극심하게 굶주리면 같은 좀비도 잡아먹어. 그리고 이놈들은 잡아먹는 걸로 끝나지 않아. 생물을 어느 정도 잡아먹다 보면 진화해버리거든. 골치 아픈 건 어떻게 진화할지 알 수 없다는 거야.”

“진화. 그런 걸 쉽게 할 수 있을 리가….”

“외계에서 온 바이러스는 그걸 가능하게 만들지. 운이 좋으면 너도 진화할 수 있을 거야.”

쨍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근처에서 방황하고 있던 좀비들이 소리를 듣고 미친 듯이 뛰어간다. 나는 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봤다. 동네에 하나쯤은 있을 법한 대형 마트였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아니 땐 굴뚝에 소리가 날 리 없다. 마트 내부에서 사람들끼리 싸움이 일어난 것 같았다.

“살려줘!! 아아아아아아아아악!”

“닥쳐! 죽을 거면 혼자 죽으라고! 씨발!! 좀비가 오잖아!!”

대형마트는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나는 멈춰서서 그 광경을 구경했다. 좀비는 내겐 좆밥이었지만, 일반인들에겐 아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무기를 들고 좀비를 공격했으나, 피지컬면에서 좀비가 앞섰다. 좀비와 싸울 거면 머리를 써야 하는데 상황이 너무 혼란해서 그게 힘들었다.

사람들의 비명만 늘어났다.

“…안 도와주시나요?”

“내가 왜?”

“……,”

나채영은 사람들을 데려오라고 했지만, 마트에서 문제를 일으킨 놈들을 굳이 성악초등학교로 데려갈 필요성은 못 느꼈다.

‘데려가면 기세만 등등하지 않겠어? 고생 좀 해 봐야 준비된 거처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지.’

꺄아아아아악!

마트에 있던 젊은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반사적으로 여자의 외모를 살폈다. 목소리만 괜찮은 돼지 년이었다.

“크크. 병신들.”

“…혼란스러운 건 지금뿐일 거예요. 한국에는 예비군들이 많으니까요. 시간이 조금 지나면 정리될 거예요.”

“글쎄.”

마트는 결국 좀비들의 인육 파티로 변했다. 피는 튀어도 내장은 흩뿌려지지 않았다. 내장과 살덩이는 모두 괴물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양수빈을 데리고 마트를 지나치려고 했었다. 짐승처럼 주둥이가 툭 튀어나온 좀비를 보기 전까지는.

“처리하고 가야겠어.”

“…네? 갑자기요?”

“저기 저 주둥이 나온 새끼 좀 봐.”

“…뭐죠, 저건?”

“변종. 진화하기 시작한 거지. 내버려 두면 골치 아파질 것 같으니 없애고 가야겠어.”

삭초제근이라 했다. 몰랐으면 모를까. 코앞에 있으니 치우고 가야겠다. 나는 허리춤에서 칼을 뽑으며 마트 쪽으로 걸어갔다.

***

나는 떨어져 있는 건물을 바라봤다. 주차장을 끼고 있는 건물이었는데 좀비들이 어슬렁거리고 있다.

“박해길한테 연락해.”

“네.”

첫 번째 신호음이 끝나기도 전에 박해길이 전화를 받았다. 나는 빼앗듯이 그녀의 스마트폰을 받았다.

“왔다. 몇 층이라고 했지?”

-3층입니다. 복도에 좀비 다섯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로 실험해본 결과 잠깐 주의를 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주차장입니다. 좀비가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여기서 나가려면 주차장을 나가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불가능합니다. 좀비가 드라마에 나오는 좀비처럼 약했더라면 가능했을 겁니다만…. 그런데 어디에 계십니까?

“주차장 입구. 거기서 안 보이나?”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빌딩 가장 왼쪽에 있어서 시야각이… 아, 보이는군요. 2명?! 설마 2명만 오신 겁니까?!

“2명이면 충분하지.”

여기까지 오면서 일부러 박해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잔소리를 할 게 분명했으니까. 나는 가방에서 수류탄을 꺼내 양수빈에게 건넸다.

“좀비들이 여기까지 올 것 같진 않은데… 위험하면 수류탄 쓰고. 저 담벼락 보이지? 저기 올라가 있어. 좀비들은 멍청해서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으면 안전 하거든.”

“부, 부탁드려요.”

-혼자서, 혼자서 대체 뭘 하시려는 겁니까?!

“닥치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부상자 두 명이라고 했었나?”

-…저희는 총 8명입니다. 1명은 양다리가 골절이고, 한 명은 좀비와 싸우다 벽에 머리를 부딪친 뒤로 의식불명입니다.

“당장 의사가 필요할 정도로 긴급한 건 아니라는 거네. 나갈 준비나 하고 있어. 주차장부터 정리하고 갈 테니.”

-정말로 혼자서 오셨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는.

나는 통화를 끊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내 발소리를 들은 좀비들이 달려든다. 나 또한 앞으로 달려가며 갈치검을 휘둘렀다. 은색으로 빛나는 칼날은 부드럽게 좀비의 상체를 베어냈다.

뚜둑.

몸에 피가 튀었다. 상관없었다. 위험한 건 좀비의 체액이 몸속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회복이 있긴 한데 좀비화까지 막아 준다는 보장은 없어. 최대한 조심해야지.’

감각에 의존해 최대한 내 몸에 피가 안 튀게 칼을 휘두른다. 사람을 많이 죽이면서 자연스레 익힌 요령이었다.

서걱!

좀비의 머리가 날아간다. 그걸 보고 아차 했다. 상체를 벨 생각이었는데 무심코 버릇대로 머리를 베어버렸다. 좀비의 손이 내 어깨를 꽉 붙잡는다. 손가락이 파고 드려다가 멈췄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은 총알도 관통하기 힘든 특수한 옷이었다.

“이게 기술이지.”

목 없는 좀비의 복부를 걷어찼다. 좀비는 뒤로 날아가 철퍼덕 쓰러졌다. 다른 좀비가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온다.

촤아아악!

칼을 휘두르는 방향으로 붉은 피가 시원하게 튀었다. 5분 만에 주차장에 있던 좀비들을 모두 정리한 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1층부터 좀비를 썰며 3층까지 올라갔다.

3층에는 시커먼 남자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중심에 리더의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가 있었다. 박해길이다. 짧은 스포츠머리의 남자였다. 어깨가 떡 벌어진 그는 딱 군인처럼 생겼다.

“성유진 씨. 제가 PS 경호의 사장인 박해길입니다. 주차장의 좀비들을 처리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혹시 검도를 수련하셨습니까? 아니, 그전에 그 칼은 대체 어디서 얻은 겁니까?”

“왜? 탐나나?”

“솔직히 말하면 탐납니다. 그 칼이 있었다면 수월하게 좀비를 해치웠을 테니까요. 하지만 성유진 씨만큼 칼을 휘두를 자신은 없으니 포기하겠습니다.”

“준비는 됐지? 가자.”

“아직 건물 내에 생존자가 남아있을지도 모릅니다. 한 번 둘러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생존자가 있다고 확신해?”

“…모르겠습니다.”

“내가 볼 땐 생존자는 없어.”

몸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창문을 통해 위에서 떨어지는 덩어리가 보였다.

쿵!

나는 급히 창문 쪽으로 다가가 주차장을 내려다봤다.

2m가 넘는 근육 괴물이었다. 헐크처럼 생긴 놈은 주차장에 떨어져 내가 죽인 좀비를 먹고 있었다. 변종이다. 마구잡이로 좀비 시체를 뜯어먹던 놈은 스리슬쩍 고개를 들어 양수빈을 쳐다봤다. 근육 괴물이 씩 웃는다. 양수빈을 먹이로 인식한 것이다.

‘망할.’

창문을 향해 뛰었다. 몸으로 창문을 부수고 갈치검을 꽉 쥔 채로 추락한다. 창문 깨지는 소리 때문일까. 괴물이 고개를 올려 나를 쳐다봤다. 근육 괴물은 커다란 팔을 쥐고 내게 휘두를 자세를 잡는다. 이어 거리가 가까워지자 괴물이 주먹을 내질렀다.

파지직.

전신에서 전류가 튀었다.

뇌천류(雷天流) 비뢰신(飛雷神).

무언가가 잡아끌 듯이 내 몸은 공중에서 옆으로 움직였다. 근육 괴물의 거대한 주먹이 아슬아슬하게 비껴간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놈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베어 가른다.

“그그그그그그극!!”

괴물이 괴성을 지르며 내게 팔을 휘두른다. 나는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

‘심장이 없어?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에 있는 건가?’

심장이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있으니 이상한 건 아니다. 칼을 고쳐지고 다리에 힘을 주어 돌진하려고 할 때였다. 괴물이 근처에 있는 자동차를 잡더니 내게 던졌다.

멈추지 않고 달렸다. 상체를 확 숙이고 칼을 아래로 내렸다.

카카카카카칵!

칼이 아스팔트를 긁으며 불꽃을 일으켰다. 머리 위로 자동차가 날아갔다. 근육 괴물은 나를 향해 양손을 뻗었다.

커다란 손을 피해 괴물의 옆을 지나쳤다. 비뢰신으로 마찰과 관성을 무시하고 방향을 확 꺾어 괴물의 뒤를 점한다. 괴물이 서둘러 몸을 돌리려고 했다. 늦었다. 그 몸이 완전히 돌기도 전에 내 칼은 놈의 어깨에 떨어지고 있었다.

뇌천류(雷天流) 뇌광(雷光).

은빛 검은 푸른 뇌광이 되어 괴물의 상체를 사선으로 베었다. 잘린 놈의 상체가 주르륵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예상대로 심장은 오른쪽 가슴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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