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9화 > 1879. 이터널 에덴
나채영에게 메시지가 왔다.
반란자. 아니, 폭동을 일으킨 자들 모두 제압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병신들이군.’
폭동이 일어날 건 에상하고 있었다. 이런 일을 겪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니까. 가진 능력에 따라 대우를 했을 뿐인데, 그걸 차별로 받아들이는 놈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권력을 손에 넣고 싶은 놈들.
‘특히 기득권이었던 놈들은 잘 못 참지. 권력을 원래 자기 거라고 생각하는 놈들이니까.’
이곳이 현대 대한민국이란 점도 한몫할 것이다. 이미 자유의 맛을 아니까. 억압한다면 시위든 뭐든 일어나겠지.
‘아직 인터넷이나 전화가 끊긴 건 아니야. 몇몇 구역은 전기가 끊겼지만 그건 일부일 뿐이고… 함부로 처형할 수는 없겠어.’
반란 분자들을 조용하게 만드는 데는 처형이 직방이다. 그랬다간 전국의 시선이 성악초등학교로 몰리는 게 문제다.
‘특수 감금실에서 조용히 타일러줘야겠군.’
달리 특별 수감실이라도 불리는 곳. 멍청한 병신 새끼들은 그곳에서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감금실에서 벗어날 때는 시체가 된 상태로 벗어나겠지.
우우웅.
이어서 나채영의 메시지가 왔다. 아까보다 상황이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보고서에 가까웠다.
‘무장도 하지 않고 본관으로 들어오려 했다고?’
놈들에게 붙잡혀 구타당한 기술자들의 말에 따르면 본관 2층에 있는 무기고부터 점거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무기를 들면 뭐 바뀌나? 무기를 든다고 해도 일반인이잖아.’
나채영이 있는 본관의 무력 수준을 떠올린다.
우선 전투 드론. 기동성이 뛰어나고 강철 장갑을 두른 것들이다. 갈치늄으로 인해 배터리의 성능도 좋고 장갑도 두꺼워서 총알은 통하지 않는다. 날개가 부서지면 기동성을 잃지만, 마찬가지로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전투 드론에는 전투 AI가 들어가 있어서 나채영이 직접 조종할 필요도 없다.
나채영은 그저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된다. 그럼 전투 AI는 설정된 모드에 따라 전투를 실시한다. 이번에는 살상 모드가 아닌 제압 모드를 사용한 것이다.
‘살상 모드를 했으면 다 뒈졌겠지.’
어떻게 전투 드론을 뚫고 들어오면 본관 곳곳에 숨겨져 있는 포탑을 상대해야 한다. 기관총 포탑, 화염 포탑, 폭발 지뢰 등등 본관은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서 완벽히 무장되어 있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건 본관에서 생활하거나, 일하는 자들뿐이다.
‘기술자들은 이걸 알고 있기에 폭동 무리에게 협력하지 않은 거지.’
이걸 사람들에게 미리 알렸다면 폭동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전력은 숨기는 편이 낫다. 귀한 게 있다는 소문이 나면 괜히 벌레들이 꼬이니까. 테크놀로지스트 나채영의 존재는 최대한 숨기고 싶다.
“일이라도 터졌나?”
나와 마찬가지로 자전거 패달을 밟던 구태희가 내게 물었다.
“별일 아니야. 폭동이 좀 일어나긴 했는데 잘 해결됐으니까.”
“폭동…. 그게 별일 아니라고?”
“나 박사가 있으니까.”
“생각 보다 유능한가 보군.”
“생각보다가 아니라 엄청 유능하지.”
구태희는 나채영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내가 봤을 때 지금 구태희보다 나채영이 더 강할 것이다. 물론 나채영이 전투 드론을 비롯해 무기들을 무장했을 때의 이야기다.
“진화 혈청은 네가 직접 사용할 건가?”
“왜 내가 사용할 거라 생각해?”
“네가 사용한다면 더 강해질 수 있을 테니까.”
“부작용은 알고 하는 말이지?”
“…비스터 I의 부작용도 이겨낸 네가 진화 혈청의 부작용에 죽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는다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온몸의 혈관 터졌는데도 나는 회복 덕분에 살아 있었다. 50%의 확률로 진화에 실패하더라도 죽을 것 같진 않다.
“진화 혈청을 내가 사용할 생각은 없어.”
진화에 성공하더라도 내게 득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건 내가 가진 두 개의 특성 때문이다.
둔재. 학습 능력이 떨어지고 새로운 걸 배우기 힘들어지는 특성. 성공적으로 진화하더라도 그걸 제대로 활용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그리고 순수성. 육체 진화 시 효율이 절반으로 뚝 떨어진다. 이 두 개가 시너지를 일으키니 진화해봤자 도리어 손해가 될 수 있었다.
힘이 필요하다? 내 경우엔 꾸준한 육체 단련이 답이다. 특성 순수성은 육체 단련 효율이 50% 상승효과도 있으니까.
“하긴. 쓰지 않아도 넌 강하지. 쓸 생각이 없다면 내게 팔아라. 비싼 값에 쳐주지.”
“언젠가 쓸 곳이 생길지도 모르지.”
진화 혈청은 귀한 물건이었다. 쉽게 팔아넘길 만 한 물건은 아니었다.
“너는 진화 혈청을 사용해보지 않았나?”
“…내 부하 5명이 사용했다. 그중의 진화에 성공한 건 1명뿐이다. 절반의 성공 확률이란 것도 거짓말이 아닌가 싶다.”
“너는?”
“나는 목숨을 건 도박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그럴 것 같긴 했다.
절반의 확률로 진화해서 강해질 수 있다. 하지만 절반의 확률로 실패하면 죽는다. 평범한 사람들은 대부분 진화 혈청을 거부할 것이다. 진화한다고 해서 무적 초인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
‘진화하지 않더라도 좋은 무기를 구하면 강해질 수 있지.’
굳이 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었다.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나는 입을 다물려다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진화 혈청을 최소 6개 이상 구한 건가? 어떻게 구한 거지?”
“저번에 말하지 않았었나? 정부 쪽에 바이오닉스가 있다고.”
“고위공직자를 통해 받은 거라고?”
구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위공직자, 내 생각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는 인물인 것 같았다.
“거의 도착했군. 준비해라.”
구태희가 말했다. 앞서 나가던 구태희의 부하들이 먼저 멈췄다. 그들은 자전거에서 내려 짐을 풀기 시작했다. 몸을 보호하는 방어구들이었다. 다소 투박해서 중세 시대 판금 갑옷처럼 보였다. 하지만 좀비들의 공격을 막기엔 효과적이었다. 좀비의 이빨이라도 강철판을 뚫진 못하니까.
일사불란한 움직임에 감탄이 나온다. 조폭이라기보다는 군대 같은 느낌이었다.
“뭐해. 너희도 준비해.”
나는 보안팀에게 말했다. 보안팀원들은 숨을 헐떡이며 자전거에서 내렸다. 그게 못마땅했다. 조폭들은 호흡이 안정되어있었는데 명색의 보안팀이란 것들은 몇몇을 빼고는 헐떡이고 있다. 대체 뭐가 힘들다고.
보안팀은 방검복을 입고 돌격소총으로 무장했다. 반면 조폭들은 권총에 철퇴를 들었다.
“철퇴라고?”
“좀비를 처리할 땐 총보다 둔기가 더 효과적이다. 괴물 거미들도 총알은 어느 정도 버틴다. 정보가 부족해서 확신할 수는 없다만.”
좀비의 경우 머리가 잘려도 심장이 뛰면 움직이는 놈이다. 괴물 거미는 그 정도는 아니어도 총알에 꿰뚫리는 것 정도는 무리 없이 버틴다는 말이었다.
‘총기로 무장한 보안팀은… 뭐, 잘하겠지.’
못하면 뒈질 뿐이다. 내가 뒈지는 것도 아니니 상관없었다. 보안팀에 공백이 생겨도 또 뽑으면 될 일이다. 성악초등학교에는 보안원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
무장을 끝낸 우리는 자전거를 버려두고 천천히 움직였다.
“멈춰.”
내가 말했다. 그러자 구태희가 멈췄다. 이어서 조폭들과 보안팀이 멈춘다. 그들이 의아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나는 대답 대신 빌딩 하나를 노려봤다.
빌딩의 가장 위층, 그 창문에 괴물 거미가 보인다. 사람보다 더 큰 거미가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저게 여왕 거미일 것이다.
파지지지지지직!
오른손에 뇌전을 일으켰다. 푸른 전격이 오른손에 모여든다. 반대로 체력이 급격하게 빠져나간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날 쳐다봤으나 무시했다.
나는 뭉쳐진 뇌전을 빌딩 위층에서 쳐다보는 여왕 거미를 향해 내던졌다.
뇌전은 푸른 광선을 그리며 일직선으로 날아가 여왕 거미 바로 앞에서 착탄 했다. 유리를 박살 내면서 방전한다. 푸른 전류가 건물 윗부분 전체로 퍼져나갔다가 사라졌다.
그대로 여왕 거미가 감전당해 죽었다면 일이 편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여왕 거미는 멀쩡했다. 멀쩡하게 움직이며 그 흉악한 얼굴을 부서진 창문 밖으로 내밀고는 고양이가 하악질을 하듯 위협한다.
“체력의 절반 이상을 쓴 건데 안 죽다니…. 튼튼한 놈이군. 전격에 내성이라도 있는 건가?”
반사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려다가 귀에 무전기를 끼고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
“나 박사. 보고 있지?”
-보고 있어. 네 어깨에 있는 카메라는 폼이 아니니까.
“선물 하나 주고 와.”
나는 박해길에게 손짓했다. 박해길은 등에 메고 있던 커다란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드론 하나가 있었다. 성악초등학교에 있는 전투 드론에 비하면 크기는 작지만, 위험한 드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폭발물이 내장된 드론이니까. 일명 자폭 드론이다.
삑!
자폭 드론에 불이 들어온다. 이곳에 없는 나채영이 자폭 드론의 제어를 시작한 것이다.
두두두두두두!
자폭 드론의 날개가 회전하며 그 몸이 공중에 떠오른다.
드론을 조종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나채영에겐 상관없는 이야기다. 드론을 세밀하게 조작하는 건 전투 AI고 나채영은 AI에게 명령을 입력하고 방향을 이끄는 일을 할 뿐이니까.
드론은 여왕 거미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아까 공격으로 박살 난 창문으로 쏙 들어간 것이다.
콰아아아앙!
폭발이 일어났다.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그러나 나는 혀를 찼다.
“실패했군.”
성공했더라면 저 정도 폭발력이 아니었을 것이다. 층 전체가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자폭 드론을 통해 보인 영상에 따르면… 폭발하기 전에 여왕 거미가 실을 뿜어냈어. 폭발력이 떨어진 건 그 때문이야. 저 여왕 거미의 거미줄은 방열성이 뛰어난 것 같아. 될 수 있으면 저 여왕 거미의 거미줄은 가져와 줘. 연구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아.
“거미줄의 방열성은 거미 괴물의 특징이야?”
-그건 아니야. 저 개체의 특징일 거야. 사람 중에도 너처럼 각성자가 있듯이, 다른 생물 중에서도 특별한 개체가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아.
아까 그 뇌전 공격으로 체력을 반이나 소모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조금 피곤하다고 돌아갈 순 없으니까. 저 여왕 거미도 완전히 멀쩡하지는 않을 거다.
“들어가자.”
주머니에 들어있는 비스터 II를 확인하며 말했다. 오늘 비스터 II의 약효가 얼마나 뛰어난지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