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0화 > 1880. 이터널 에덴
거미 소굴이 된 빌딩에 들어오자마자 반긴 역겨운 냄새였다. 꿉꿉한 냄새라고 해야 할까. 기관지에 찐득하게 달라붙는 듯한 냄새였다. 다행히 독연기 같은 건 아닌 듯하지만 이런 냄새를 오래 맡고 있으면 두통이 찾아올 것이다.
“훈련했던 대로 해라. 대열을 유지해라.”
구태희는 부하들을 향해 무감정하게 명령했다. 부하들을 그 명령을 받아들이며 대열에 신경 썼다. 판금 갑옷을 입은 놈들이 붙어서 서 있으니 장벽처럼 단단해 보였다.
반면에 보안팀을 본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열이고 나발이고 없었다. 총 든 머저리들로 보였다. 그나마 PS 경호 출신의 박해길과 그 부하들은 자리를 잘 잡았다. 돌격 소총을 들고 상체를 살짝 숙인 뒤 사주 경계 자세를 취했다. 특수부대 경력은 폼이 아닌 것이다.
“선두에는 누가 설 거지?”
구태희가 내게 물었다. 그 눈빛을 보니 내가 선두에 서기를 원하고 있었다. 총구가 내 뒤통수를 겨눈다는 건 영 마음에 안 들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앞에 서는 쪽이 합리적이긴 했으니까.
“내가 선다. 보안팀은 바로 내 뒤를 따라와라. 태왕. 너희는 후방이다.”
태왕을 뒤로 뺀 건 보안팀의 전력 확인을 위해서였다. 장비는 아낌없이 지원해줬다. 특별히 어느 정도의 특권도 허락해줬다. 특권을 유지하고 싶으면 밥값을 해야지.
“유진 씨. 작전 같은 건 따로 없습니까?”
박해길이 내게 물었다. 오른손을 다쳐 왼손에 총을 들었는데, 우습게도 보안팀 중에서 가장 믿을만한 놈은 박해길이었다.
“벌레 죽이는데 작전은 무슨. 보이면 쏴. 거미들의 약점은… 뭐, 대가리가 벌집이 되면 어떻게 살겠어? 이놈들은 좀비가 아니야.”
“알겠습니다. 머리를 우선적으로 노리겠습니다. 다들 들었지?”
보안 팀원들이 긴장한 채로 고개를 끄덕인다. 방검복에 방탄 헬멧까지 쓴 놈들이 쫄기는. 나는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1층 로비에는 이상한 점액과 거미줄 등으로 엉망이었으나 정작 괴물 거미는 보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버튼을 누른다.
“…지금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시겠다고요?”
박해길이 살짝 어이가 없다는 듯 묻는다.
“계단으로 가면 다리 아프고 힘들잖아. 엘리베이터가 편하지. 아니, 씨발. 근데 왜 먹통인 거야?!”
“그, 당연히 먹통이 아니겠습니까. 이 건물 상황이 이렇게 개판인데….”
“엘리베이터가 움직일 수도 있는 거지. 뭐든 당연히 여기는 건 안 좋은 버릇이야.”
드르르륵.
난데없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모습을 드러낸 건 거미였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내 손은 칼을 뽑고 있었다. 의식한 건 아니었다. 몸에 새겨져 있는 반사적 행동이다.
갈치검이 은색으로 빛난다. 괴물 거미가 창처럼 끝이 날카롭고 쭉 뻗은 다리를 완전히 열리지 않은 다리 사이로 밀어 넣어 나를 노린다.
그러나 갈치검이 그것들을 베어냈다. 그 다리에선 붉은 피 대신에 회백색의 점액질을 뿜어댔다.
다리가 잘린 거미가 주춤거리며 다른 다리로 반격한다. 나는 여유롭게 그 다리도 베어냈다. 괴물을 한두 번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겨우 이 정도도 못할까.
“뭐해, 병신들아. 방아쇠 당겨.”
투다다다다다다!
박해길을 비롯한 보안팀원들의 돌격소총이 불을 뿜는다. 수십 발의 총알을 머리로 맞이한 괴물은 그대로 즉사했다. 쿵! 괴물 거미의 몸이 엘리베이터 통로 아래로 떨어졌다.
“봤지? 별거 아니야. 머리나 노려.”
“…별거 아니라곤 하기엔 거미가 지나치게 크군요. 안 그래도 거미를 싫어했는데… 더 싫어졌습니다.”
박해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는 다른 보안팀원들의 반응을 살폈다. 대부분 잔뜩 긴장했으나, 겁에 질려 주저앉거나 패닉에 빠지는 놈들은 없었다. 좀비 사태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유진 씨. 조를 짜야겠습니다. 방금은 낭비되는 총알이 많았습니다. 보안팀은 총 30명이니 3명씩… 아니, 안전을 위해서라도 5명씩 6개 조로 짜는 게 낫겠습니다.”
“그렇게 해.”
박해길은 그 자리에서 간단히 조를 묶어 주로 경계해야 할 방향을 나눴다.
“거미가 보이면 바로 쏴라. 아까 봤듯이 좀비와 달리 머리가 약점이다. 머리를 엉망으로 만들면 즉사한다.”
“예. 팀장님.”
기본적인 체계는 잡힌 것 같았다. 나는 계단 쪽으로 향했고 보안팀이 그 뒤를 쫓았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과 위로 올라가는 계단.
‘지하에도 있을 게 확실한 데…. 아까 거미 새끼가 엘리베이터에서 매복하고 있었던 걸 보면 함정을 짤 정도의 지능이 있다는 거야.’
현실의 몬스터 중에도 함정을 파는 놈들이 있었다. 지능이 있어서 함정을 파는 놈들이 아니다. 본능에 따라 성가신 짓거리를 하는 놈들이다. 그 왜, 개미지옥이란 놈들도 있지 않나. 일종의 습성이 함정인 놈들. 알면서도 상대하기 성가신 놈들.
‘이 새끼들은 습성이 아니야. 적어도 여왕 거미는 머리를 쓸 줄 알아. 지하로 내려가면 출입구를 막고 무슨 짓을 할지 몰라.’
판단을 내린 나는 위로 향했다.
“바로 여왕 거미를 죽이러 가려는 건가?”
구태희가 물어왔다. 나는 뒤로 돌아 그녀를 쳐다봤다. 한 손에는 철퇴, 한 손에는 권총을 들고 하나밖에 없는 오른쪽 눈을 표표히 빛낸다.
“대가리부터 죽이는 게 일이 편해지잖아.”
“내가 여왕이라면 부하들에게 매복을 명령하고 네가 올라오기를 기다릴 거다.”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차근차근 정리하면서 올라가면 된다. 놈이 여차할 때 기용할 수 있는 지원군을 없애는 거지. 퇴로를 확보할 수도 있을 거다.”
“지하에 있는 놈들은 어쩌고? 지하부터 내려가자는 말은 아니겠지?”
“챙겨온 것들이 있다. 크레모아다. 이걸 지하 계단에 설치할 거다. 거미 놈들은 올라올 때 지옥을 맛보겠지. 건물이 무너뜨릴 정도의 화력은 아니니 뒷일은 무시해도 된다.”
“지뢰 몇 개로 지하에 있는 놈들을 정리하겠다는 건 아니지? 그럼 좀 실망인데.”
“독가스도 있다. 낮게 깔리는 특수 가스니 위로 올라올 일은 없을 거다. 굴러다니는 가구로 대충 입구를 막아두면 되겠지.”
“그런 건 어떻게 손에 넣은 거냐?”
“…….”
구태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채영이 아닌 다른 테크놀로지스트가 만든 물건인가? 아니, 그 가능성은 지웠다. 크레모아도 독가스도 현대 기술력으로 충분히 만들고 남을 것들이다.
‘군대겠지. 이 세계 한국은 다른 세계 한국보다 군사력을 더 갖추고 있는 것 같으니까. 아니, 한국이 핵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에서부터 말 다 했지.’
“오래 걸려?”
“10분이면 된다.”
“빨리 해.”
구태희와 그 부하들이 작업을 시작했다. 신속하게 움직이는 그들의 작업은 보고만 있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이제 보니 모두 군인 출신들이었군요.”
“대한민국은 징병제니까. 군인 출신 조폭이야 흔하지.”
“징집병의 숙련도가 아닙니다. 최소 특수부대. 그것도 실전을 겪은 자들입니다. 어디서 저런 자들을 끌어모았는지… 태왕은 볼수록 대단하군요.”
구태희의 실력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구태희 뒤에 있는 고위공직자가 힘을 쏟아준 것 같았다.
‘정치깡패 같은 건가?’
10분 뒤, 일은 끝났다.
펑!
지하 안쪽에서 독가스탄이 터진다. 우리는 계단 위에서 가구로 막은 지하를 바라봤다.
“독가스. 진짜 안 올라오는 거 맞지?”
“이미 검증이 끝난 물건이다. 4시간 정도 지나면 유독 성분은 사라지고 잔여물이 남는다더군.”
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긱!
지하에서 괴상한 소리가 들렸다. 한두 개가 아니다. 나는 그게 괴물 거미들의 발작 소리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구태희는 짧게 혀를 찼다.
“생각보다 더 많군. 지하에 매복해둔 건가….”
나는 보안팀에게 턱짓했다.
“뭐 해. 많다잖아. 올라올지도 모르니 총 겨누고 있어. 올라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갈겨.”
쾅쾅쾅!
설치해둔 크레모아가 연속적으로 터진다. 그리고 크레모아가 미처 죽이지 못한 괴물 거미들이 막아둔 지하 입구를 거칠게 두들긴다. 보안팀원들이 움찔거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입구를 향해 총알을 갈기고 싶은 모양이다.
“총알 낭비하지 마라. 대가리가 보이면 쏴.”
가구로 막아둔 입구가 무너지고 상처투성이의 괴물 거미의 머리가 드러났다. 팀원들은 그대로 총알을 갈겼다. 거미는 그대로 즉사했다. 이후에도 거미 몇 마리가 올라왔으나 대가리에 총알이 박혀 죽을 뿐이었다.
곧 올라오는 거미는 없어지고 잠잠해졌다. 우리는 다른 가구로 입구를 막아 두고는 위로 올라가기로 했다.
2층에서 보안팀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반면에 나는 휘적휘적 걸으며 나아갔다. 천장에 붙은 거미 하나가 내려온다. 보안팀이 반응하기도 전에 먼저 칼을 휘둘러 거미를 반으로 갈라 죽였다. 죽은 괴물 거미에게서 고약한 냄새가 났다.
“딱 보니 이 새끼들 어두운 곳에만 숨어 있네. 어두운 곳은 조심해라.”
나는 보안팀들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뭐 해. 가서 수색하고 거미 새끼들 죽여. 설마 내가 계속 앞에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냐? 너흰 보안 팀이다. 장비는 충분하니 밥값은 해야지. 밥값 못하는 놈들은 보안팀에서 해고하겠다. 움직여.”
“저, 저희끼리만 말입니까?”
“말귀를 못 알아들은 거냐? 못 알아들은 척하는 거냐?”
“아닙니다.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박해길이 대답했다. 그는 능숙하게 보안팀에게 해야 할 지시를 했다. 명령은 짧고 간결하고 직관적이었다.
잠시 뒤, 탕탕탕 하는 총성이 울린다.
나는 복도에서 그들이 정리를 끝마치기를 기다렸다.
“아아아아아악!”
보안팀 중 비명을 지르는 놈이 있었다. 거미에게 당한 모양이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근처에 있던 다른 조가 지원하러 갔다. 비명을 지른 놈은 거미에게 당했는지 허벅지에서 피가 나오고 있었다.
‘방어구 착용에 총까지 들고 5명이 움직이는데 거미에게 당한다고? 저놈은 탈락이다.’
구태희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지켜만 볼 건가?”
“괴물 거미는 아무것도 아니잖아. 좀비보단 성가시긴 해도 그래봤자 벌레. 이럴 때 실전 경험을 쌓아둬야지. 난 체력을 최대한 보전해야 해. 네가 날 고용한 건 여왕 거미 때문이잖아.”
“…맞다. 여왕 거미가 가장 성가시지. 여왕 거미의 정보가 거의 없다는 건 유의해라.”
계속 이어지던 총성은 곧 멈췄다.
“다음 층으로 올라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