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2화 > 1882. 이터널 에덴
“세스코 왔다, 벌레 새끼들아!”
괴물 거미들을 향해 호기롭게 외쳤다. 빠르게 괴물 거미들의 수는 훑는다. 실제로 보니 더 커다란 여왕 거미를 포함해 20마리 정도.
‘20마리 밖에 없다고? 그럴 리가.’
나머지를 찾을 시간 따윈 없었다.
여왕 거미는 우리를 보고 괴성을 내질렀다.
“기기기기기기기긱!!!”
여왕 거미를 제외한 괴물 거미들이 일제히 돌진해온다.
“갈겨!!”
내가 외치자마자 보안팀과 조폭들이 방아쇠를 당겨 탄환을 쏟아냈다. 전투 드론도 마찬가지다. 순식간에 빌딩 창문에 접근해 총알 세례를 퍼붓는다. 총알에 의해 창문은 박살 나고 유리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유리에 난반사된 빛이 일순간 사방에서 번쩍거리고, 총성이 공간을 채운다.
달려들던 거미들은 총알 벌집이 되어 나자빠졌다. 놈들의 몸에서 회백색 점액질이 질질 흐른다. 수천 개의 탄환이 한순간에 쏟아지니 괴물 거미라도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러나 여왕 거미는 쓰러지지 않았다. 총알이 그 바위처럼 단단한 몸을 뚫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아예 통하지 않은 건 아닌 듯 생채기 수준의 상처는 있었다.
-말도 안 돼. 그 총알 비를 맞고도 저렇게 멀쩡하다니…. 피부가 철판 이상으로 단단하다는 건데….
무전기를 통해 나채영이 놀란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앞으로 걸어갔다.
“어쨌든 여왕 거미 하나만 남았으니 내가 죽여버리면 돼.”
“끼기기기긱!”
여왕 거미가 소리쳤다. 단순한 위협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천장이 들썩거리는 듯하더니 갑자기 무너지고 괴물 거미 수십 마리가 떨어졌다.
“성유진! 엘리베이터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거미 놈들이 튀어나왔다! 엘리베이터 통로 속에서 매복한 거다!”
구태희가 급히 소리쳤다. 엘리베이터 통로 벽에 따다닥 붙어 있었을 괴물 거미를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거미들은 바로 달려들지 않고 대열을 우선시했다.
포위당했다. 앞과 뒤를 괴물 거미들이 점령했다. 놈들은 여왕 거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 박사. 옥상에 놈들이 있었던 거야? 드론에 카메라가 달렸으니 못 봤을 리는 없을 텐데.”
-영상을 돌려서 확인했어. 옥상에 대형 실외기가 있었고…. 실외기 안쪽에 검은색 천이 뒤덮여 있었어. 그림자인 줄 알았는데 천을 뒤집어쓰고 숨어 있었던 거야.
나채영의 목소리가 갈수록 떨렸다. 어떤 기분인지 알겠다.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던 놈이 뒤통수를 쳤을 때의 느낌이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지. 이건 저 새끼가 한 수 위였어. 그래봤자 마지막에 이기는 건 나야.”
“끼기기기기기긱!”
여왕 거미가 외치는 동시에 거미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죽기 싫으면 싸워라!”
보안팀에게 명령한 나는 주머니 속에서 비스터 II를 한 알 꺼내 씹었다.
-이쪽도 지원하겠어.
밖에서 날고 있던 전투 드론이 안으로 쳐들어와 괴물 거미에게 육탄돌격한다. 위험한 사람들을 위주로 허공을 날아다니며 지원하는 거다.
약효는 즉발이었다. 몸이 뜨거워지고 힘이 넘쳐흐른다. 쿵쿵! 심장 뛰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여왕 거미를 향해 달려갔다.
괴물 거미 몇 마리가 여왕 거미를 지키듯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파직. 갈치검이 은색으로 빛났다.
“비켜라!”
뇌천류(雷天流) 뇌광(雷光).
위에서 아래로 선을 긋는다. 양단된 괴물 거미의 몸이 반으로 쪼개진다. 그 사이로 새로운 괴물 거리가 튀어나와 날카로운 다리를 들이밀었다. 정확히 내 두 눈을 노린다. 그러나 놈보다 내가 더 빠르다.
서걱!
칼을 올려베며 놈의 다리와 목을 한 번에 자르고, 무너지는 그 시체를 발판 삼아 위로 뛰었다.
양옆에서 괴물 거미 2마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든다. 나는 몸의 무게 중심을 돌려 천장에 발을 맞댔다.
뇌천류(雷天流) 질풍신뢰(疾風迅雷).
뇌전을 몸에 깃들게 해 육체를 일시적으로 강화시킨다.
뇌천류(雷天流) 비뢰신(飛雷神).
천장을 박차며 놈들을 향해 뛰었다. 비뢰신을 사용하면 좁은 통로든, 뻥 뚫린 공중이든 제한 없이 고속 기동할 수 있었다.
양쪽에서 달려드는 놈들을 무시하고 지나친다. 단숨에 여왕 거미의 앞으로 다가온 나는 놈의 머리를 베기 위해 칼을 휘둘렀다.
놈이 입을 벌린다. 나를 물기 위해서? 아니었다. 그러기엔 거리가 있었다. 놈의 흉측한 입 속에서 빛이 번쩍였다. 붉은색의 빛은 불꽃이었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아!
붉은 화염이 쏟아진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놈의 초능력에 피할 수도 없었다. 급히 칼을 휘둘러 놈의 머리를 베려고 하나, 놈이 다리 하나를 희생해 내 칼을 쳐냈다. 놈은 다리 하나, 그리고 나는 온몸으로 화염을 맞닥뜨렸다.
왼쪽 어깨를 앞으로 내밀며 몸을 비스듬히 세우면서 백스텝을 밟아 거리를 벌렸다. 화염은 사정거리가 길지 않았다. 대충 1.5m. 입에서 나오는 것을 감안한다면 옆이나 뒤를 노리면 된다.
‘연속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건가?’
여왕 거미가 다가온다.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왼팔과 왼 다리가 엉망이었다. 왼팔은 새까맣게 타서 움직이지 않고, 다리는 그보다는 덜하나 당장 움직이는 건 힘들었다. 워낙 순식간에 왼팔과 왼 다리가 타버려서 그런지 통각을 비롯한 감각 자체가 느껴지지 않았다.
‘회복해라!’
왼 다리에 정신을 집중한다. 효과가 있는지 감각이 조금씩 느껴진다. 하지만 늦다. 여왕 거미는 끝장을 내기 위해 내게 다가오고 있다.
파지지지지직.
칼날을 타고 뇌전이 치솟는다. 왼팔과 왼 다리가 움직이지 않더라도 뇌전은 사용할 수 있다.
‘놈이 공격할 때를 노린다.’
최적의 카운터를 날리기 위해 각을 재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서 철퇴가 날아와 여왕 거미의 머리를 가격했다. 여왕 거미가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져 꿈틀거렸다. 철퇴를 날아온 쪽을 보니 구태희였다. 잔뜩 흥분한 구태희는 맨손으로 괴물 거미의 머리를 잡아 뜯어내고 있었다.
‘터프하군. 비스터 II를 먹었나.’
여왕 거미가 몸을 일으킨다.
나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태희 덕분에 왼 다리가 재생했다. 자세를 잡고 번개가 꿈틀거리는 칼을 휘두른다.
뇌천류(雷天流) 뇌섬(雷閃).
번개의 검기가 날아가 여왕 거미의 몸을 베어 가른다. 생각만큼 깊숙이 들어가지 못했다. 여왕 거미의 피부가 더 단단했다. 어쩌면 철퇴가 더 효과적일 지도 모르겠다.
“키아아아아아아악!”
여왕 거미가 배 끝을 내 쪽으로 향하더니 거미줄을 쏘아냈다.
‘느리군.’
정면에서 뻔히 날아온다. 피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간단히 거미줄을 피하고 움직이게 된 왼손으로 바지 주머니에서 하얀 배터리를 꺼냈다. 나채영이 만들어 준 특수 배터리였다. 특수 배터리를 꽉 쥐자 은색으로 빛난다. 파지직. 배터리에서 전기가 튀었다.
“기기기긱!”
거미 여왕이 외쳤다. 다른 사람들과 싸우던 괴물 거미들이 허겁지겁 달려와 내 앞을 가로막는다. 여왕 거미는 뻥 뚫린 창문 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괴물 거미들을 미끼로 자기만 도망치는 것이다.
“쯧.”
혀를 차며 앞으로 나아갔다. 괴물 거미들을 베어 가르며 창문 쪽으로 도달했다. 여왕 거미는 빌딩 벽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거미는 거미라는 거냐.’
나는 은빛으로 빛나는 칼을 들어 올렸다. [사격] 특성은 없다. 하지만 과녁은 컸고,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았다. 고작해야 7~8m. 아래로 쭉 내려가고 있는 놈을 맞추는 건 아무리 나라도 가능하다.
칼을 던졌다. 못 맞추면 뛰어내려 끝장을 볼 생각이었다. 다행히 칼은 여왕 거미의 커다란 배에 파고들었다.
여왕 거미는 움찔대더니 그대로 지상을 향해 뛰었다. 놈은 무리해서라도 어떻게든 도망칠 작정이다.
파지직.
왼손에 움켜쥔 배터리로부터 끌어낸 전기를 오른손에 쥐고 뭉친다. 배터리에서 완전히 뽑아낸 전기와 체력을 대가로 만들어낸 뇌전에 특성을 부여한다. 특성은 하나. 물리력.
나는 번개 뭉치를 놈에게 던지기 위해 가볍게 팔꿈치를 굽혔다. 명중은 걱정하지 않았다. 갈치검이 놈의 배에 박혀 있으니까. 갈치검은 주변의 전기를 흡수하고 끌어당기는 성질이 있다. 다시 말해 전기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
팔꿈치를 피며 뇌전을 던진다.
처음 빌딩 밖에서 여왕 거미를 노렸을 때처럼, 뇌전은 푸른 광선 같은 궤적을 허공에 그리며 지상에 떨어졌다.
콰아아아아앙!
충격파와 함께 지상에서 폭음이 터진다. 여왕 거미가 바닥에 드러누웠다. 박혀 있던 커다란 배는 터져나가고 머리가슴만 남았다. 3개밖에 안 남은 다리를 애처롭게 꿈틀거리던 놈은 이내 목숨이 다한 듯 정지했다.
폭음 때문인지 주위에 모여있던 좀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좀비들은 여왕 거미의 시체를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이런. 좀비만 포식하게 생겼군.’
나채영이 가져오라고 한 건 여왕 거미의 거미줄이니 상관없을 듯싶었다.
“으아아아악!”
비명에 고개를 돌린다. 아직 괴물 거미들은 남아서 항전하고 있었다. 여왕 거미는 죽었으나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나는 구태희가 던진 철퇴를 손에 들고 괴물 거미들을 쳐 죽이러 아비규환 속으로 몸을 던졌다. 철퇴의 손맛은 썩 나쁘지 않았다.
***
보안팀에서 4명이 죽었다. 나머지 12명은 상처를 입었으나 살아 있었다. 14명은 지쳤으나 멀쩡했다. 멀쩡한 놈중에는 박해길이 껴있었다. 짬밥은 어디 안 가는 모양이다.
구태희의 부하 중 1명도 죽었다. 중상자는 없었다. 구태희는 비스터 II의 후유증으로 바닥에 쓰러져 구역질을 했다. 나는 회복 덕분에 약효가 끝나도 멀쩡했다. 문제는 내성이 쌓인다는 점이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나채영에게 줄 여왕 거미의 거미줄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전투 장소에 있는 것들은 대부분 엉망인지라 비교적 멀쩡한 걸 찾기 위해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여왕 거미의 저장고를 발견했다.
먹이를 거미줄로 감싸서 고치로 만들어 천장에 달아둔 것이다.
‘거미 놈들이 납치한 사람들이겠지. 꽤 많군. 30명은 되겠어.’
전부 죽었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여왕 거미의 거미줄인가? 그건 방열성이 뛰어나다고 하니 라이터로 지져보면 알겠지.’
거미줄은 전부 챙길 생각이었기에 유리 조각을 손에 쥐고 거미줄을 찢었다. 연구 샘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이걸 개이득이라고 하나.’
하나씩 거미줄 고치를 찢던 나는 멈칫했다. 거미줄 속에서 뜻하지 않은 미녀가 튀어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