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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884화 (1,664/2,000)

< 1884화 > 1884. 이터널 에덴

“씨발?”

시체의 심장이 멈춘 것에 당황한 나는 급히 시체의 옷을 벗겨 두 눈으로 심장을 확인하려고 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정말 시체를 범하려고?”

나채영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상황을 설명하려다가 다시금 비틀거렸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나마 팔에 힘이 남아 있어서 책상 모서리를 잡고 버텼다.

“그, 그런 게 아니야. 이 시체에 회복을 썼는데 심장이 뛰었어! 진짜야!”

“……시체를 살렸다는 거야?”

나채영은 진지해진 얼굴로 다가왔다. 역시 나채영이다. 내 말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시체로 손을 뻗었다. 그 손이 향하는 곳은 손목. 일단 맥을 짚어 볼 생각인 것 같다.

이젠 심장이 또 안 뛴다고 말하려는 찰나, 목이 턱 막혔다. 힘들어서 말이 안 나온다.

나채영은 손목을 잡은 채로 허공을 보며 놀라고 있었다. 그 눈동자는 시체가 아닌 허공을 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보듯이.

“……진짜 살아났잖아. 아니, 잠깐만. 창이 사라졌어. 죽었어. 잠깐 살아났다가 죽은 거야.”

나채영이 복잡한 눈으로 시체를 쳐다봤다.

플레이어는 각성자와 접촉하면 이름과 능력, 특성을 볼 수 있다. 즉, 시체는 각성자였던 거다. 나는 숨을 몰아쉬면서 몸을 일으켰다. 책상을 잡은 손은 아직도 덜덜 떨린다.

“걔 옷 벗겨서 가슴 좀 확인해 봐.”

“…심장이 꿰뚫려 죽었구나. 썩은 냄새도 사라졌고 명치 쪽에서 피도 나오고 있네.”

나채영이 시체의 상의를 벗겼다. 피로 물든 밋밋한 브래지어 사이로 꿰뚫린 상처가 보인다. 상처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옷에 난 구멍과 비교해보면 상처가 더 작았다.

“상처가 회복된 거야. 네 말대로 심장은 뛰었던 거야. 하지만 곧바로 죽었어. 자세히 봐도 알 수 있어. 심장이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겠지. 종아리에 있던 물린 상처도 절반 이상 회복됐네. 가슴과 심장뿐만이 아니라 전신을 회복시킨 거네.”

나채영이 분석하듯 말했다.

시체에서 심장만 뛰게 만든다고 사람이 살아날 리 없었다. 사람은 아주 복잡한 기계다. 엔진인 심장이 뛰어도 다른 부품이 엉망이면 뛰지 않는다.

“어쩌면 네 회복은 생물뿐만이 아니라 물건 같은 거에도 통할 수 있겠어.”

“…백골이 된 놈도 살릴 수 있고?”

“가능할지도 몰라.”

“후. 역시 나야. 어마어마한 능력을 각성했군.”

“농담조로 가볍게 말할 게 아니야.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은 숨겨야 해. 이 사실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되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전부 다 널 노릴 거야. 미국이든, 중국이든…. 세계 어떤 나라든 널 손에 넣으려 할 테고. 넌 최고의 보험이 될 수 있으니까. 그 힘만 휘두를 수 있다면…. 말하지 않아도 너도 알지?”

“날 이용해 먹는다고? 그 새끼들이?”

내가 입술을 삐죽이며 웃자 나채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대단하다는 건 인정해. 절대 정신이 있으니 정신이 지배당해서 꼭두각시가 될 일은 없겠지만…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널 손에 넣으려고 할 거야. 그게 아니면 어떻게 해서든 죽이려고 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아도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건 숨기는 게 좋아. 일이 귀찮아지는 건 너도 싫잖아?”

“음. 그건 그렇지. 적어도 이 힘은 숨겨야겠지. 그래도 얘는 살릴 거야.”

“…이 시체를 데려온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괜한 소문이 날 것 같아서 몰래 슬쩍해왔지.”

“그건 그나마 좋은 소식이네.”

부들거리는 다리로 근처 의자에 다가가 앉았다. 여전히 몸은 힘들어도 서 있는 것보다 훨씬 편했다.

“그나저나 이거 너무 힘든데.”

“넌 죽은 사람을 살렸어. 막 죽은 사람도 아니고 며칠 전에 죽었던 사람을. 그런 것 치곤 부패가 덜 됐긴 했지만… 거미줄 덕분이겠지. 거미줄에 방부제 효과도 있는 것 같으니까. 넌 절대 정신에 감사해야 해. 절대 정신이 없었으면… 아마 죽었을걸?”

각성자가 능력을 사용할 때 필요한 건 두 가지. 체력과 정신력. 이 정도로 체력이 쫙 빨리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그녀의 말대로 절대 정신이 없었다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시체는 여기에 두자.”

“…뭐?”

“여기 에어컨 빵빵하잖아. 냉장고도 있고.”

“내 탄산수 냉장고야. 시체를 넣어두는 곳이 아니야.”

나채영은 탄산수를 좋아했다. 어느 정도면 연구실 냉장고에 탄산수를 꽉꽉 채워둘 정도다.

“그냥 여기에 두자. 진짜 놔둘 곳이 없어서 그래.”

현재 이 연구실은 나채영의 개인실이었다. 그녀는 밤에는 나랑 같이 자지만, 낮에는 대부분 연구실에서 시간을 보낸다.

“하아. 알았어. 검은색 천이라도 가져와서 덮어 놔야겠네. 하지만 이대로 계속 방치할 수 없다는 건 알지? 아무리 에어컨을 계속 틀어 놓는다고 하더라도 시체는 썩을 거야.”

“매일 회복을 사용할 거야. 썩어서 구더기가 끓는 일은 없을 거야. 그나저나 아까 본 거지? 저 녀석의 이름이랑 능력.”

“그래. 대단한 걸 주워 왔어.”

「개체명: 최혜진

잠재력: ★★★★★

각성 능력: 황금 육체.

특성: 본능, 순수성. 전사.」

나채영의 말해준 시체의 정보였다.

“이름은 최혜진이었나. 잠재력이 5성이면 나랑 같잖아. 어마어마한 걸 주었네.”

“…잠재력은 말 그대로 잠재력이야. 아무리 잠재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처음부터 강하진 않아. 네가 특이한 거지.”

“황금 육체는? 육체를 황금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야?”

“아니, 신체 강화 계열의 최상위 능력이라 할 수 있어. 네 절대 정신처럼 패시브 같은 능력이라 할까. 숨만 쉬어도 시간이 지나면 육체가 조금씩 강해져. 수련하면 더 빨리 강해지지. 가장 큰 장점은 적응력이야.”

“적응력?”

“육체 개조나, 진화, 변이 등을 겪어도 아무 문제 없다는 거야. 최혜진의 경우엔 특성인 순수성 때문에 효율은 절반으로 떨어져 버리겠지만.”

순수성. 나와 같은 특성이었다.

전사 특성은 전투 능력 상승이다.

본능은 희귀했다. 육체 능력의 한계를 올린다. 그 외에도 가끔 특수한 일을 발생시킨다고 한다. 다만 좋은 점만 있는 게 아니다. 본능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분노 조절이야.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사고를 쳐버리는 거지.”

“과연. 종합적으로 평가하자면?”

“게임식으로 보자면 더할 나위 없어.”

“현실적으로 보자면?”

“최혜진의 성격이 어떠냐에 달렸지.”

어쨌든 우리는 연구실 구석에 자리를 만들고 최혜진을 구속했다. 족쇄와 수갑으로 최혜진을 구속한 것이다. 나채영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철창까지 만들었다. 만일을 대비해 그 앞에 포탑 2개까지 달았다. 여차하면 바로 죽일 수 있도록.

“그냥 인간도 아니고 각성자야. 날뛰기라도 하면 곤란해.”

“음. 뭐, 최혜진도 이해하겠지. 근데 최혜진은 좀비에 물렸잖아. 살리면 좀비가 되는 거 아니야?”

“으음. 글쎄. 네 회복 능력은 좀비에게 물리기 전의 상태로 되돌릴 것 같으니 괜찮을 거라 보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 확신할 수는 없어.”

“내 능력이면 좀비도 되돌릴 수 있나?”

“가능하지 않을까? 네 능력은 시간을 돌리는 것처럼 돌리는 게 아니니까. 회복을 늘 쓰고 있는 넌 기억을 잃는 게 아니잖아. 게다가 비스터 I의 내성도 쌓이고 있어. 몸에 해가 되지 않는 건 되돌리지 않는다는 거야.”

“가만히 생각해보니 뭔가 이상하군.”

“이 세상 자체가 이상한데 뭘.”

나채영이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녀는 게임 속으로 들어온 플레이어다. 그녀의 입장에서 이상한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난 창작물 속으로 들어온 놈이고.

***

다음날.

아침 뉴스에 내가 나왔다.

나와 여왕 거미가 싸우는 장면이 찍혀서 인터넷에 퍼진 것이다. 그것도 모자이크 없이 생생하게.

“태왕이 찍은 거 아니야? 영상이 편집되어있잖아.”

나채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TV를 노려봤다.

“아닐걸. 구태희는 그런 짓을 할 여자는 아니야. 편집도 내 위주로 되어있잖아. 보안팀도 안 보이고.”

“……마치 널 영웅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 같은 영상이야.”

푸른색 번개를 줄기차게 뽑으며 거미 여왕과 싸우는 모습은 보는 맛이 있었다. 영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 흥미진진했다.

“매드무비 오지게 잘 뽑혔네.”

감탄이 나왔다. 누가 영상을 편집했는지 몰라도 전문가가 확실했다. 어쩌면 현직 종사자일지도 모른다. 고용하고 싶을 정도다.

“…넌 화나지도 않아? 멋대로 네 얼굴을 사용했는데?”

“날까는 영상이 아니잖아.”

인터넷에 들어가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해봤다. 한국 네티즌들은 당연히 좋아했다. 강력한 힘을 가진 각성자가 나타난 것이다. 대전 토르인가 뭔가 하는 놈과 비교하면서 나를 한껏 치켜세우고 있었다.

서울 제우스.

그게 내 별명이었다. 대전 토르 때문에 이런 별명이 붙은 것 같다. 대전 토르가 뇌제(雷帝)면 나는 뇌신(雷神)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대전 토르보다 내가 더 윗줄에 있는 건 마음에 드는군. 옳게 된 평가지.’

지금 세계는 엉망이었다. 빌어먹을 좀비와 변종 괴물들 때문에 인구수는 팍팍 줄어들고 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영웅이 등장했으니 사람들은 기뻐할 수밖에 없다.

“나 박사. 끝내주는 계획이 떠올랐어.”

“…개소리일 것 같지만, 들어는 줄게.”

“슈퍼 히어로 유진 더 제우스가 돼서 국민들을 구하는 거야. 민심을 끌어모으는 거지. 그리고 그 기반으로 정치에 입문하는 거야. 괜찮은 당에 들어가서 대선에 출마하는 거지. 슈퍼 히어로의 인기를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되는 거야. 그 이후는 대한민국을 내 입맛대로 바꿔서… 영원불멸의 슈퍼 대통령이 되는 거야.”

“헛소리는 잘 들었어. 네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망할 것 같으니, 난 다른 후보에게 표를 줄 거야.”

“이 난세에 나보다 뛰어난 영도자가 어디에 있다고. 네가 모르는 모양인데, 난 세계를 지배했던 경험이 있어. 용한 무당도 내가 대한민국의 황제가 될 팔자라고 했어.”

“아, 네. 그러시겠죠.”

나채영은 귀찮다는 듯이 대답하고는 탄산수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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