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0화 > 1890. 이터널 에덴
안기부에서 연락이 왔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CIA 요원이 대놓고 활동하고 있으니까. 오히려 CIA가 활동하고 나서 연락이 왔으니 늦은 편에 속했다.
내가 TV에 나왔을 때도 안기부는 조용했다. 정부 쪽에서 접촉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잊고 지냈다. 안기부든 국가든 딱히 필요 없었으니까.
하지만 CIA가 대놓고 나서니 안기부도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는지 연락이 왔다.
안기부의 4차장. 이름이 이연희라고 했던가? 여자인 것은 꽤 의외였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미녀라는 느낌이 팍 든다. 목소리만으로도 한번 만나보고 싶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근데 지금 바쁜 건 사실이지.’
손에 쥔 작은 칼을 휘둘렀다. 의자에 묶인 데이비드 김의 어깨에 작은 칼날이 파고든다.
“아아악!”
데이비드 김이 질리지도 않고 비명을 질렀다. 나는 작은 칼로 데이비드 김의 몸을 난도질했다. 온몸에서 피가 흐른다. 그 상처 부위에 소금을 뿌려주니 짐승처럼 울부짖는다. 그렇게 죽기 직전에 놈의 몸을 잡아 회복시켰다.
‘죽기 직전에 쓰는 것과 죽은 놈에게 쓰는 건 의외로 차이가 난다 말이지.’
죽기 직전에 회복을 쓰는 게 덜 피곤했으므로 나름의 조절을 하며 데이비드 김을 괴롭히고 있었다.
사실, 데이비드 김에게 들은 건 전부 들었다. CIA의 기밀을 몇 개 있긴 했는데 딱히 중요한 건 아니었다. 중요한 건 놈이 정신계 능력을 사용해 한국 각성자들을 포섭한 것이다. 거기에 내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
“정신 차려, 새끼야. 이제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 정신 놓을래? 정신 놓는다고 해서 놓을 수 있을 것 같아?”
데이비드 김의 머리에 팔팔 끓는 뜨거운 물을 부었다. 놈의 피부가 순식간에 빨갛게 익는다. 머리에 화상을 입은 놈은 정신이 번쩍 드는지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발버둥 쳤다. 목에는 핏대가 잔뜩 섰다. 그 목에 재주껏 작은 칼을 박아줬다.
오로지 고통만을 위한 고문을 이어 나간다. 데이비드 김은 기개 있는 놈이 아니었다.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간 것 같은 얼굴로 내게 애원했다.
“사,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여기서 내보내 주십시오. 어머니가 보고 싶습니다.”
“살려주고 있잖아. 엄마가 보고 싶었어? 어디에 있는지 말해. 여기로 데려와 줄게.”
내가 실실 웃으며 놈의 거시기에 황산을 부었다. 데이비드 김은 산채로 자신의 국부가 녹아내리는 걸 지켜봐야 했다. 보통이라면 그 고통 때문에라도 기절했겠지만, 데이비드 김은 고통에 익숙해지면서 어지간한 고통에는 기절하지 않게 됐다. 기꺼운 방향으로 성장한 것이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악!!”
“넌 특별 관리 대상이다. 절대로 죽을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해도 좋다. 죽어도 다시 되살려주마. 그 빌어먹을 능력으로 내 호의도 사보시지?”
나는 생각나는 대로 놈을 고문했다. 먹이로는 자기 팔다리를 잘라 믹서기로 갈아서 먹였다. 회복을 쓰면 팔다리가 다시 재생한다. 영구동력을 완성해 버린 것이다.
“차, 차라리 그냥 죽여주십시오! 죽이란 말이다!!”
“안 죽여, 안 죽여.”
안타깝게도 하루 종일 고문할 수는 없었다. 내 체력 때문이었다. 놈을 회복시킬수록 내 체력도 줄어드니까. 고문하지 않을 때는 팔다리를 자르고 관속에 집어넣었다.
‘내가 직접 고문하는 것도 피곤하군. 자동 고문 기계가 필요해. 나채영이 만들고 있는 AI에게 고문 기술을 학습시켜야겠어.’
나채영은 100% 질색하겠지만, 내가 만들라고 하는데 어쩌겠는가.
“CIA가! 미국이 이대로 넘어갈거라 생각하나?! CIA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반드시 네놈에게 보복할 거다! 미국은 당하고 가만히 있지 않으니까!”
“개소리를 하는군. 당한 건 나다. 네놈의 좆같은 정신 조작 능력에 내 여자가 당했다고. 내게 절대 정신이 없었다면 나도 네놈에게 뭐든 해주고 싶어 했을지도 모르지. 보복? 그것도 당연히 내 권리다. 미국이고 나발이고 날 건드렸으니 당연히 대가를 치러야지.”
두려움이 가득한 데이비드 김의 눈알을 뽑아내 그 입에 억지로 넣어준다.
“그래도 뭐, 미국 놈들과 협상은 할 거다. 혼자서 미국을 상대하는 건 피곤한 일이니까. 그래도 네가 여기서 벗어날 일은 절대 없으니 희망 같은 건 갖지 마라. 만약, 미국 놈들이 협상을 걷어찬다면…. 히틀러가 천사 같은 놈이었다고 생각하게 되겠지.”
쾅!
그대로 데이비드 김을 관짝에 집어넣은 뒤 밖으로 나가 신선한 공기를 마셨다. 공기가 시원했다. 여름도 거의 끝물이었다.
나채영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유진. CIA가 왔어. 4명. 모두 무장한 채로 초등학교 정문 입구에 있어. 어떻게 할까?
“싸우러 왔나?”
-자기들 말로는 대화로 해결하고 싶대. 데이비드 김의 신병을 넘겨주기를 원하는 모양이야.
“무장해제 시키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
나는 갈치검을 허리에 달고 접견실로 향했다. 테이블 위에 발을 올린 채 소파에 앉아있으니 곧 보안팀이 CIA 요원 4명을 데려왔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자 1명, 나머지는 모두 백인 남자 3명이었다.
“미스터 성. 데이비드 김이 무례하게 군 것을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저희 CIA는 당신의 적이 아닙니다.”
“앉아.”
“…데이비드 김은 무사합니까? 직접 보고 싶군요.”
“앉으라고 했다.”
살기를 담아 말했다. 그제야 놈들은 내 말을 따랐다. 대표자로 보이는 백인 남자는 앉자마자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커피나 홍차 대신에 올라와 있는 내 발을 보고는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저희에게 많이 실망하신 모양이군요.”
“그 새끼, 정신계 능력자였다. 알고 이쪽으로 보냈겠지. 감히 내 정신 조종하려 해놓고는 무례했다? 그 말 한마디로 끝내려고 해?”
“저희는 데이비드 김이 정신계 능력자였다는 걸 몰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우리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아, 그렇구나. 몰랐구나. 몰랐으니 그냥 넘어가야겠네? 내가 이렇게 나올 줄 알았나?”
스르릉.
갈치검을 뽑았다. 은색으로 빛나는 갈치검의 칼날을 본 요원들이 일제히 얼굴을 굳혔다. 그들은 반사적으로 자기 품 안을 만졌으나, 권총은 모두 압수당한 상태다.
“…만족하실만한 보상안을 가져왔습니다. 일단 들어보시고 화를 푸시지요.”
“됐고. 내가 원하는 건 로봇 관련 기술이다. 미국이 연구하고 있는 로봇 제작 기술과 인공지능 기술. 전부 달라고 안 할 테니 최신 기술 중 하나를 내놔. 그럼 내 화가 가라앉을 것 같군.”
“테크놀로지스트를 위해서입니까. 당신이 말한 그 기술들이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아십니까?”
“주기 싫다는 거냐? 협상은 결렬이군.”
자리에서 일어나 놈의 팔을 썰었다.
서걱!
놈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잘린 자신의 팔을 쳐다봤다. 갑자기 일어난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무기가 없는 그들은 내게 반격하기보다는 도망치려고 했다. 누구는 문으로, 누구는 창문으로.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서 한 사람이라도 살 가능성을 높인다.
허나 이 방밖에는 이미 전투 드론이 포위하고 있었다. 전투 드론이 도망치는 놈들에게 총구를 겨눈다.
나는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팔이 잘린 놈은 이를 악문 뒤에 말했다.
“저희가 당신을 잘못 판단했군요. 당신은 히어로가 아니라 빌런이고, 극단적인 테러리스트입니다.”
“이제라도 날 잘 파악해서 다행이군.”
“…미국은 악당과 협상하지 않습니다.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너희는 날 감당할 수 있고?”
나는 그들의 팔다리부터 천천히 베어 죽였다. 비교적 멀쩡한 머리는 장대에 꽂아 입구에 걸어뒀다. 좀 야만적이긴 했지만, 효수만큼 효과적인 건 없었다. 죄목은 성악초등학교를 침입한 강도들.
인터넷에 사진이 찍혀 퍼지더라도 상관없었다. 이미 이 세상은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약탈자들이 들끓고 있다. 그런 놈들이 몇 죽더라도 비난은커녕 오히려 잘 죽었다고 박수를 친다.
“정말로 미국을 적으로 돌리다니….”
나채영은 효수된 머리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날 쳐다봤다.
“괜찮아 이길 수 있어. 여긴 미국이 아니야.”
“그래. 이길 수 있구나. 그 말에 반박해야 정상인데…. 반박할 말이 안 떠오르네.”
***
-아, 그 강도들이 CIA의 요원들이었나요? CIA 요원들은 강도질도 하나 보군요. 몰랐네요.
수화기 너머에서 이연희가 비아냥거렸다.
CIA 한국 지부장 케일 먼슨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우리 요원이 당했소! 지금 그게 할 말이오?!”
-애도를 표하죠. 그런데 왜 제게 연락하신 거죠?
“놈의 신병을 확보해서 우리에게 넘기시오. 성유진. 그놈은 대가를 치러야 하오.”
-하. 대한민국 국민을 당신들에게 팔라는 겁니까?
“범죄자를 인도하라는 거요!”
-못 들은 거로 하죠. 그리고 이 일에는 우리 안기부는 아무 관련도 없습니다. 물론 한국 내에서 이상한 짓을 벌이는 것도 허락할 수 없습니다. 저는 경고했습니다.
뚝.
이연희가 전화를 끊었다.
케일은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어서 전화기가 울었다. CIA 국장이었다.
-한국의 일에 대해선 알았네. 먼저 자네가 제정신인지 궁금하군.
“…국장님. 지금 농담하시는 겁니까?”
케일은 현 CIA 국장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현 국장에게 밀려 한국 지부로 좌천되었기 때문이다.
-각성자를 포섭하라고 했지, 포섭 대상의 정신을 조작하라고 명령했던 적 없네. 이미 각국의 정보기관들은 CIA가 정신계 능력자를 이용한다는 소문이 쫙 퍼졌어. 우리 CIA의 명예가 땅으로 떨어졌지. 이 일은 어떻게 책임질 건가?
“데이비드 김이 정신계 능력자인 건 몰랐습니다.”
-모른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나? 그리고 정말로 몰랐나? 자네 정도 되는 인물이?
“…….”
물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케일 먼슨은 데이비드 김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대상의 호의를 자연스럽게 받아내는 능력.
조심해서 이용하면 이만큼 위력적인 능력은 없으니까. 그러다 문득, 자신 또한 데이비드 김의 능력에 당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빠르게 지웠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성유진을 죽여야 합니다. 놈은 미국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놈입니다. 각성자를 처리하는 부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그들을 보내주십시오. 책임은 모두 제가 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