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1화 > 1891. 이터널 에덴
“성유진을 죽여야 합니다. 놈은 미국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놈입니다. 각성자를 처리하는 부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그들을 보내주십시오. 책임은 모두 제가 지겠습니다.”
미국은 D 바이러스가 터지기 전에 여러 가지를 준비했다. 비단 좀비에 대한 것뿐만이 아니다.
각성자. 영화 속 히어로처럼 특수한 능력을 각성한 자들. 하지만 능력을 가졌다고 해서 무조건 히어로가 되는 건 아니다. 그중에는 힘에 취해 빌런이 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아니, 빌런이 되는 자들이 더 많을 것이다. D 바이러스에 의해 세상은 정상이 아니니까.
그렇기에 미국은 각성자를 전문으로 처리하기 위한 부대를 만들었다. 그들은 달리 헌터라고도 불릴 정도였다. 그들은 현재 가장 활약하고 있는 특수 부대 중 하나였다. 당연히 그 존재는 기밀이다.
-알고는 있겠지만, 안기부가 활동하고 있네. 소문을 퍼뜨려 CIA의 명예를 떨어뜨린 것도 안기부의 짓이지.
“그깟 놈들이 결국 일을 치르는군요.”
-안기부를 무시하지 말게. 적어도 한국에서는 갑일세. 특히 4차장 이연희는 자네보다 훨씬 유능하지.
“…….”
-정보부에서는 성유진을 높이 판단하고 있네. 전기를 다루는 능력은 여러 가지로 사용할 곳이 많으니 말일세.
“안기부가 놈의 요구사항을 전했습니다. 이미 들으셨지 않습니까. 로봇과 AI의 최신 기술 중 하나를 넘기라는 헛소리였습니다. 그 기술들은 우리 미국의 피와 황금으로 쌓아 올린 기수들입니다. 그걸 사과의 뜻으로 받겠다고 한 겁니다!”
-정보부는 그 이상의 가치가 성유진에게 있다고 판단했네.
“책상물림 하는 놈들이 현장의 일을 어떻게 완벽히 파악합니까. 성유진은 저희 요원의 머리를 잘라 입구에 전시했습니다. 저희를 향한 도발이자 선전포고입니다! 동료가 그딴 식으로 죽었는데 가만히 있을 겁니까?!”
-정보부도 우리의 동료일세. 그리고 그들이 죽은 건 자네의 멍청한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지 않나?
“저는 제가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대로 놈과 협상한다면 다른 CIA 요원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 같습니까?! 자신의 동료들을 죽인 놈과의 협상? 당연히 사기가 떨어질 겁니다! CIA에 의문을 품는 요원들도 있을 겁니다!”
-…….
“성유진을 죽여야 합니다! 놈은 대화를 위해 찾아간 CIA 요원들을 죽였습니다! 살려서 내보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도라는 오명과 함께 머리를 효수했습니다! 놈은 극단주의 테러리스트와 다를 바 없습니다! 언제부터 미국이 테러리스트와 협상하게 된 겁니까?!”
-모든 일의 시발점이 이렇게 역정을 내니 어이가 없군. 하지만… 자네 말도 맞는 말이야. 성유진은 극단적이지. 우리가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이곳에서도 성유진을 죽여서 보복해야 한다는 말이 적지 않아. 문제는 그곳이 한국이라는 거지. 먼슨, 정말로 모든 책임을 자네가 지겠나?
“이곳에는 결자해지라는 말이 있더군요. 몇 번째 말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저도 CIA에서 수십 년 동안 일했습니다. CIA에 제 생명을 바치기로 맹세했고, 그 맹세는 지금도 여전합니다.”
=준비가 필요하네. 대각성자부대는 지금도 미국을 위해 임무를 수행 중이지. 그들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네. 아무 일 없다면 보름 뒤에 잠수함으로 한국에 밀입국할 걸세. 때를 맞춰서 안기부를 교란해야 하네. 이 일은 극비로 진행되어야 하니까.
“지금 이곳의 전력으로는 힘듭니다. 아시다시피 요원들이 순직한지라 인원이 모자랍니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일본 요원들의 정보를 넘기시죠. 이연희라면 어떻게든 처리하려고 할 겁니다.”
-나쁘지 않군. 잘 준비해보게. 이게 마지막이란 거 잊지 말고.
“누구보다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
연구실로 들어갔다.
나채영은 컴퓨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AI를 연구 중인데 잘 안 풀리는 모양이다. 구속되고 입에 재갈을 문 최혜진은 그런 나채영을 으르렁거리며 노려봤다.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둘 사이의 관계를 좋아지지 않는다. 나채영은 기본적으로 최혜진을 무시했다. 그나마 있는 접전도 최혜진에게 밥을 주는 것 정도다.
그 뒤처리는 AI가 조종하는 드론이 한다. 전투가 아닌 청소를 학습시킨 거다. 전투 목적인 AI라고 해서 다른 건 하지 못하는 건 아니니까. AI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헥, 헥헥!”
최혜진은 나를 보자마자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허벅지를 벌리고 양손을 머리 옆으로 올렸다. 교육한 보람이 있었다. 폭력과 쾌락이 그 본능에 새겨진 것이다.
“일어서.”
최혜진이 일어선다.
“앉아.”
최혜찐이 앉았다.
“손. 발. 가슴. 보지.”
내가 말할 때마다 자신의 신체 부위를 내밀었다. 보지를 쭉 내밀 때는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손바닥 위에 올라온 보지를 보며 확인한다. 폭력의 힘은 위대했다. 최혜진은 무려 사흘 동안 처녀막을 유지하고 있었다.
“잘했어.”
최혜진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최혜진은 더 이상 내게 적의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 본능에 나라는 존재가 각인된 것이다.
“나 박사. 오늘 최혜진은 원래대로 돌릴 거야.”
“…일단 폭탄 목걸이부터 채워. 내가 봤을 때 원래대로 돌아와서 날뛸 가능성이 90% 이상이야. 최혜진이 수배자라는 건 너도 알고 있잖아.”
안기부에 연락이 닿았기에 최혜진의 신상 정보를 알아달라고 부탁했다. 1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최혜진의 정보를 보내줬다.
최혜진은 은퇴한 야구 선수의 딸이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죽자 고향인 대전에서 서울로 무작정 올라왔다. 당시에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말도 없이 그냥 서울로 올라갔다고 한다.
서울로 올라와서는 가출팸으로 들어갔다. 좀 의외였다. 그 예쁘장한 외모가 있으니 알바든 모델이든 할 수 있을 테니까. 지금 시대에서는 뛰어난 외모 자체가 스펙이자 능력이었다.
가출팸으로 들어가서 뭘 했나? 범죄였다. 도둑질은 물론이고 강도질까지 했다. 최혜진은 사람 머리에 거침없이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년이었다.
가출팸의 리더가 되고 나서는 딱히 뭘 하지 않았다. 평소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갈 뿐이었다. 범죄자로 수배되고도 개의치 않았다. 몇 번 경찰들의 추적을 받긴 했으나, 워낙 달리기가 빨라서 붙잡지 못했다. 한 마디로 최혜진은 또라이였다. 그것도 조기 각성자로 추정되는.
“아니, 폭탄 목걸이가 아니라 개 목걸이지. 그게 더 어울려.”
최혜진이 날뛰어도 제압할 자신은 차고 넘쳤다.
개 목걸이는 바로 채우지 않았다. 이성이 돌아왔을 때 채워야 재밌는 법이다.
“지금 상태의 일을 기억 못 하나?”
“뇌사 상태긴 해도 지금도 널 기억하잖아. 아마 기억할걸?”
나채영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그 가라앉은 눈은 흥미로 반짝인다. 정말 최혜진이 완벽히 부활하지 궁금한 모양이다.
똑바로 선 최혜진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회복을 사용한다. 익숙한 감각과 함께 체력이 쭉 빠진다. 다행히 많은 체력이 빠지는 건 아니었다. 최혜진은 뇌와 D 바이러스에 걸린 것을 제외하면 멀쩡하니까. 부패가 진행된 시체를 살리는 것보다 훨씬 수월했다.
회복은 성공적으로 사용됐다. 손을 떼고 최혜진의 반응을 살폈다.
“……!”
야성으로 가득하던 눈동자에 지성의 빛이 깃든다. 그 눈동자는 나를 보고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다리를 비틀거렸다. 이어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더니 주먹을 움켜쥔다.
그 반응을 보며 확신할 수 있었다. 최혜진은 교육의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뭐, 내 능력으로 인해 완전히 좀비라고 하기에도 뭣한 상태였으니까.
“한 대 치게?”
“너, 이…!”
최혜진이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내가 싸늘하게 쳐다보자 몸을 움찔거리더니 내지르지 못했다. 살짝이지만 나를 향한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내 능력을 알고 있다면 당연한 반응이라고 할까.
“팔 내려.”
획.
최혜진이 빠르게 팔을 내렸다. 그러다 깜짝 놀란다.
“……헛?”
자기도 모르게 내 명령을 따른 모양이었다. 나는 낄낄 웃으며 최혜진의 목에 개 목걸이를 채웠다.
“넌 이제 내 거야. 내 애완동물이라고. 알았어?”
“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보자 보자? 보지 보지겠지.”
“씨발놈이!”
최혜진의 주먹이 얼굴로 날아온다. 이건 시선을 끌기 위한 페이크다. 진짜는 남자의 국부를 노리는 오른 다리. 짐승일 때와 달리 지성을 갖춰서 그런지 나름의 머리를 쓴 공격이었다. 이 정도면 개싸움에 익숙하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상대가 나였다. 겨우 주먹질 하나에 시선이 전부 팔리겠는가? 전투를 할 땐 상대의 움직임 전체를 봐야 했다.
양손으로 각각 주먹과 다리를 막는다. 최혜진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녀는 입을 벌리더니 그대로 머리를 내밀어 내 코를 물어뜯으려 했다.
퍼억!
그 전에 그 복부에 니킥을 찔러 넣는다. 최혜진은 호흡을 멈추며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많이 힘줘서 때리긴 했다. 일반인이었다면 그대로 내장이 파열되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최혜진은 각성자니 버틸 수 있을 거다.
“으, 으으으….”
쓰러져서 복부를 움켜쥐며 고통에 떨고 있는 최혜진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녀의 머리를 잡아 강제로 눈을 마주치게 하고 웃는다.
“혜진아. 네 주인은 누구지?”
“끄윽….”
“널 되살리고, 네 보지를 만져주고, 네 똥오줌을 치워준 사람이 누구냐고.”
“…….”
“아니면 이대로 죽고 싶은 거야? 되살려준 게 그렇게 아니꼬웠나? 정 그렇게 죽고 싶으면 죽여주고.”
최혜진은 이를 악물었다. 원래 죽은 상태였다고 해도 다시 살아났는데 목숨을 버리고 싶진 않을 것이다. 그녀는 쥐어짜 내듯이 말했다.
“내, 내 주인은 너야…!”
“그래 맞아. 그 사실을 잊지 말도록.”
나는 그녀에게 회복을 걸어줬다. 그러자 그녀의 안색이 편해진다. 표정은 더 없을 정도로 구겨져 있었지만.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보다 약한데. 나는 최혜진의 머리와 가슴, 보지를 쓰다듬어줬다. 보지는 젖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