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작물 속으로-1895화 (1,675/2,000)

< 1895화 > 1895. 이터널 에덴

CIA의 국장 하워드 리차즈는 부하 직원의 보고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각성자부대는 전멸했다. 인공위성을 통해 전투 장면은 포착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정보에 한계가 있었다. 현장을 알 수 있는 자세한 영상이나 녹음된 음성이 있었으면 좋으려만, 그런 기록은 하나도 없었다.

성유진은 안기부 요원을 통해 화단을 보냈다. 처음에는 성유진 나름의 화해의 제스처인가 했다. 화단 안에 갈려 있는 대각성자부대원들의 시체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하워드는 이 사실을 개인권한으로 은폐했다. 이 사실을 다른 곳에 알려진다? 미국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지금도 군대에서 복수를 하겠다고 소리치고 있는데 명분까지 쥐여줄 순 없었다.

‘전쟁? 지금 이 시기에 그딴 걸 할 여유는 없다. 하물며 태평양 너머에 있는 대한민국과? 절대로 해선 안 된다. 대한민국은 약하지 않다. 아니, 그 이전에 미국의 동맹이다.’

무엇보다 명분에서도 밀린다.

이번 일의 시발점은 CIA이었다. 정신계 능력자 요원을 이용해 한국의 각성자를 포섭하려 했다. 그 사실은 이미 각국의 정보기관이 알고 있었다. 여기서 더 물고 늘어지면 정말로 외교적인 문제가 터질 것이다.

‘안기부도 적당한 보상만 요구하고 있다. 미국을 적으로 돌리기엔 부담스러운 거지. 기본적으로 방관하고 있긴 하나….’

왜인지 한국의 안기부가 얄밉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화단은 내가 처리하고 성유진에 관해서는 전면적으로 손을 뗀다. 대신 주시는 해야겠지.’

그나마 다행인 점은 현재 미대통령은 외국으로 시선을 돌릴 여유가 없다는 거다. D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연방이 흔들리고 있었다.

주 정부를 장악해 독립을 외치는 플레이어, 이번에 무슨 짓을 해서라도 한몫 단단히 잡아 미국 최고가 되려는 기업, 각성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폭동 무리. 미국 내의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너무 잦았다.

‘그렇다고 이 일을 완전히 넘어가선 안 된다. 여력이 되면 성유진을 죽여야 한다. 내버려 두면 위험해질 거다.’

하워드는 성유진을 어떻게 죽여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미사일로 폭격하는 것 말고는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악당을 상대하는 건 언제나 영웅의 몫이지. 영웅이 필요하다.’

미국의 각성자. 그중에서도 슈퍼 히어로라 불리는 이들을 떠올렸다. 당장 그들의 힘은 미약했다. 성유진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그중 몇몇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슈퍼 히어로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시간은 우리 미국의 편이다.’

시간은 공평해서 성유진도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애써 떠올리지 않았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에는 엄청나게 큰 영토와 한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많은 국민들이 있었다.

***

박해길은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봤다.

진화 혈청을 맞은 뒤로 그의 양손은 흉측한 곤충의 손이 되었다. 박해길은 진화 혈청을 맞은 것을 후회한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밥을 먹을 때마다, 근무를 설 때도. 무엇보다 여자친구인 양수빈을 만날 때가 가장 괴롭다.

자신의 양손을 본 양수빈의 얼굴은 단번에 굳어졌다. 바로 표정을 관리하긴 했으나, 그 표정은 지금도 생생히 떠올랐다. 어떨 때는 꿈에서도 나왔다. 잠에서 깨고 나니 등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악몽이었다.

나채영 박사는 자신의 양손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곤충에게 손을 물린 적 있다고 했지? 진화 방향이 이쪽으로 결정된 건 그것 때문인 것 같네.

괴물 벌레에게 손을 물린 일. 지금도 똑똑히 기억한다. 성유진의 명령을 무시하고 벌레들에게서 사람을 구하려고 했었다. 그게 당연한 일이니까. 하지만 사람은 구하지 못했고, 그 일은 자신의 인생까지 영향을 끼쳤다.

-괴물이라니. 그런 소리 하지 마. 자기는 괴물이 아니야.

양수빈이 말했다. 허나 자신의 손을 볼 때마다 흔들리는 눈빛에, 함께 있어도 점점 줄어드는 목소리.

한번은 용기 내 그녀의 어깨를 이 흉측한 손으로 터치한 적 있었다. 그때 소스라치게 놀랐던 그녀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그 눈에 떠오른 감정은 분명한 혐오감이었다.

양수빈을 탓할 수는 없었다. 이 손은 자신이 봐도 혐오스러우니까. 그녀에게 혐오스러워하지 말라고 강요할 수 없다.

‘문제는 양손으로 끝나지 않는다.’

벌레로 변한 양손은 시작이었다. 박해길의 몸은 서서히 변화하고 있었다. 나채영의 말로는 진화라고 하지만, 박해길의 입장에선 퇴화고 변이였다. 벌써 팔목까지 곤충의 그것으로 변했고, 다리 쪽 피부도 점점 딱딱 해지고 있었다. 다리도 언제 곤충처럼 변할지 모른다.

‘변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빨라지고 있어….’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가진 것들을 모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바이오닉스. 비스터 II와 진화 혈청을 만든 사람이라면 해결법이 있을지도 몰라.’

몇 번이나 생각했던 해결방안. 하지만 바이오닉스가 누군지도 모르고, 생체 실험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뤄두기만 했던 방법이었다.

이제 더 이상 미뤄둘 수 없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별로 없으니까.

‘수빈이와 대화해봐야겠어.’

본관 1층 의료실로 향한다. 성악초등학교에 오고 나서부터 양수빈과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서로 근무하는 곳이 다르기도 했지만, 양수빈이 본관에서 생활했기 때문이다. 보안팀이라고 하더라도 본관에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나마 박해길은 진화 현상을 핑계로 1층 의료실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다. 양수빈의 애인인 것도 도움이 됐다.

“으응.”

의료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교태가 가득 담긴 여자의 신음. 그 목소리는 친숙했다. 박해길은 불안감을 느꼈다.

‘…알고 있었다. 알고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할 기회가 불쑥 찾아왔다. 원하지 않는 기회였다. 여기서 발걸음을 돌리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그러나 생각과 다르게 그의 다리는 앞으로 향했다.

고양이처럼 기척을 죽이면서,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그는 문에 달린 창문을 통해 의료실 내부를 훔쳐봤다.

“아앙! 앙! 흐윽! 좋아요…! 더 세게 찔려줘요!”

침대에 누워 양다리를 벌린 양수빈이 소리친다. 교성과 신음으로 범벅이 된 그 소리는 야동에서나 들을 법한 목소리였다. 성유진은 자신보다 2배 이상 굵은 물건으로 양수빈의 가슴과 골반을 붙잡고 그 음부를 거칠게 쑤셔 박고 있었다.

그 움직임에 양수빈을 향한 배려 따윈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쾌락을 위해 양수빈을 범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양수빈은 기뻐하고 있었다. 입에서는 미처 삼키지 못한 침을 질질 흘리면서, 한 손으로는 성유진의 탄탄한 어깨를 움켜쥐며.

“아아아앙!”

“좋냐?”

“좋아요, 안이 가득 차서… 학읏!”

“마이클이란 미국 놈이랑 비교하면 어때? 그 새끼 좆보다 좋아?”

“마이클의 것도 크긴 컸는데… 당신만큼 딱딱하진 않았어요. 아, 진짜. 똑같은 걸 몇 번이나 물어봐요? 하아으…! 간다아앗!”

양수빈의 고개를 획 젖혔다. 후두부로 베개를 꾹 누르면서 허공을 향해 혀를 쭉 내밀었다. 부들부들 몸을 떨던 그녀가 보지에서 애액 줄기를 쏘아냈다. 박해길이 양수빈과 섹스할 땐 볼 수 없었던 절정 장면이었다.

박해길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마이클? 그게 누구지? 미국에서 생활할 때 만난 남자친구인가? 그런 소리는 못 들었는데?

박해길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성유진은 그 와중에도 양수빈의 한쪽 다리를 강제로 잡아 벌리고는 허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악, 아악! 갔어, 갔다니까요! 하악!”

“나도 이제 곧 갈 거야.”

곧이어 성유진은 보지 깊숙이 자지를 찔러 넣고는 사정했다.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질내사정. 양수빈은 유독 질내사정을 싫어했었다. 보지에서 정액이 흐르는 느낌이 최악이라고 했던가. 그런데 지금은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다.

성유진이 뒤로 물러난다. 자지가 빠지고 한껏 벌어진 보지가 보였다. 빨갛게 달아오른 보지에서는 새하얀 좆물이 아래로 흐른다. 양수빈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흐르는 정액을 손가락에 묻히고는 보지에 비볐다. 특히 클리토리스를 집중해서 문지른다.

“하으으….”

“너도나도 부족하잖아. 이어서 하자고.”

성유진이 침대에 누워 양수빈에게 손짓했다. 양수빈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성유진의 위에 걸터앉았다. 지쳐서 그런 걸까. 양수빈은 격렬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에 찐득하게 움직였다.

새하얀 나신이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땀이다. 땀이 흐르면서 그녀의 피부가 촉촉해지며 광택이 돌았다. 그 상태에서 하반신을 누르듯이 움직이며 관능적으로 엉덩이를 움직인다. 보지에 들어간 굵은 자지를 이리저리 돌리며 맛보는 것처럼.

“하아, 하아, 앙…!”

관능적이면서도 음탕한 양수빈의 모습은 박해길이 모두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와 섹스를 할 때는 양수빈은 수동적이다 못해 아예 흥미 자체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보이는 양수빈의 본성은 충격적이었다.

‘이런… 여자였나?’

양수빈과 성유진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저 둘은 자신의 존재를 뻔히 알고 있음에도 붙어먹고 있었다.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음에도 직접 보니 더 화가 났다. 박해길은 참지 못하고 앞으로 손을 뻗었다.

곤충의 것이 된 자신의 손을 보고 멈칫한다.

저들에 대한 분노보다 자신에 대한 혐오감과 자괴감이 더 강렬하게 밀려왔다.

지금 저기로 들어가서 분노를 터트리면? 성유진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무엇보다 양수빈의 반응이 무섭다. 양수빈이 성유진의 편을 든다면…. 자신 같은 괴물은 이제 꼴도 보기 싫다고 말한다면….

곤충의 것으로 변한 자신의 손을 본 박해길은 이를 악물고 몸을 돌렸다.

이곳은 안전한 곳이다. 허나 자신이 있을 곳은 아니었다. 어쩌면 이 세상 어디에도 자신이 있을 곳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차라리….

계획 따윈 없다. 박해길은 무작정 달려서 성악초등학교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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