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작물 속으로-1900화 (1,680/2,000)

< 1900화 > 1900. 다크 문

연금술사들이 돌아가고 나와 하승희 둘만 남았다.

“이번에 유진 선배가 가져온 것들은 꽝이었네요. HB-1처럼 대단한 물건일거라고는 기대도 안 했지만요.”

“꽝이라. 글쎄. 비스터 I과 비스터 II는 온김에 확인해 본 것뿐이야. 진짜는 따로 있지.”

내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하얀색 금속이었다. 앞서 꺼낸 것들은 간보기고, 진짜는 이거였다.

“…무슨 금속이죠?”

하승희의 목소리는 대번에 진지해졌다. 내가 괜한 금속이 가져오지 않았으리라 짐작한 거다.

“갈치늄.”

“갈치늄?”

“내가 발견해서 내가 이름 붙인 금속이지. 이게 재밌는 게 활성화되면 은색으로 빛나거든. 갈치처럼 말이야.”

파지직.

살짝 전류를 일으켜 갈치늄을 자극했다. 그러자 갈치늄이 영롱한 은빛으로 변한다.

“재밌는 금속이네요.”

“재밌기만 할까. 이놈 강도가 티타늄과 비슷해. 전기를 축적하고, 전기를 이용해서 형상을 복구하는 성질도 있어.”

“…형상을 고정해야 사용할 수 있어요. 기껏 가공해도 원래 형상으로 돌아간다면 무용지물이니까요.”

“고온의 불꽃으로 형상을 고정할 수 있어.”

이건 나채영이 알아낸 정보였다.

“축전할 수 있다고 했죠? 어느 정도로 축전할 수 있죠?”

“같은 크기의 배터리와 비교하면 최소 12배 이상? 가공만 잘하면 20배 이상의 효율은 나올걸.”

“……!!”

하승희의 눈이 커진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표정을 숨기며 냉정을 유지했다.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만큼은 숨기지 못했지만.

“…대단한 물건이었네요.”

“EMP도 안 통해.”

이미 실전에서 확인했다. 갈치늄이 전자파를 흡수해버린다.

다만, 내가 지껄인 스펙들은 모두 [이터널 에덴]에서의 스펙들이다. 현실에 가져온 이상 갈치늄의 스펙은 떨어진 것이 확실했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래. 어쩌면 절반의 효과도 안 나올지도 몰라.”

“그것만으로도 배터리 계에는 이미 혁명을 일으키고도 남아요. 뭘 원하시죠?”

하승희는 갈치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렇게 탐을 내니 연금술사들을 내보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괜히 연금술사에게 먼저 보여줬다가 유출이라도 되면 큰일이니까.

“글쎄. 내가 뭘 원할까?”

“…….”

돈이 많아도 쓸 곳이 없다고 말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았다.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관심 없다.

하승희는 고민하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고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역시 하승희는 똑똑한 여자였다. 내가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당분간 하승희를 개처럼 따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갈치늄을 준다고는 안 했지만.’

집으로 돌아간 뒤에는 오랜만에 다크 문 세계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거긴 페널티가 강해서 포인트도 많이 벌 수 있을 거다. 무엇보다 뇌전의 특성을 좀 더 잘 다룰 수 있는 환경이 구성되어 있으니까.

‘마법사의 경험이 뇌전을 다룰 때 많은 도움이 되겠지.’

***

네오 런던의 아침 공기는 오늘도 텁텁했다. 매연이 공기에 스며들다 못해 찌들어 있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사람들은 담배보다 네오 런던의 공기가 더 좋지 않다고 말한다. 그 말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들은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 기관지에 질환이 생겨도 마법과 과학의 힘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으니까.

“주인님.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유리아가 다가와 내 복장을 정리해준다. 그녀가 다가오자 네오 런던의 더러운 공기도 향긋한 꽃향기로 변모했다. 그녀는 하얀 손으로 내 정장을 정리했다. 신사의 복장은 신경 쓸 게 많아서 도와주는 그녀에게 항상 감사할 따름이다.

“유리아. 오늘은 저번에 말했던 대로 사업을 확장할 거야.”

유유 치킨은 대박이 났다. 한국식 치킨에 맛 들린 네오 런던의 시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치킨을 찾아왔다. 치킨을 맛보기 위해 찾아오는 외국인도 있을 정도다. 유유 치킨을 따라하는 치킨 가게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결국 원조라는 타이틀은 유유 치킨이 거머쥘 것이다.

중요한 건 유유 치킨을 통해 자본금을 마련했다는 거다.

‘치킨 가게 하나로 귀족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

한국식 치킨이 새롭긴 하나, 그뿐이었다. 요식 업계 전체를 주도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사업 확장. 정확하게 말하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거다.

마도구 사업.

마도 공학에는 제법 자신 있었기에 이쪽으로 나아갈 생각이다.

‘관련 시장은 모조리 레드 오션이지만… 어쩔 수 없지. 위로 올라가려면 치킨 사업 가지고는 안 되니까.’

정확히 무엇을 만들어 팔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우선 적당한 공장부터 인수하고 기반을 마련할 생각이다. 최소 몇 개월은 걸리는 일이니 지금부터 기반을 준비해 놓아야 한다. 기계를 하나, 하나 개조 할 필요도 있었다.

“그러시군요. 그럼 저도 따르겠습니다.”

“네가 나설 필요까지는 없어.”

“공장 인수에 피룡한 지식은 제가 알고 있기에 주인님께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혼자 가시면 무시당하기 일쑤입니다. 네오 런던에서 신사가 고용인 한 명 데리고 다니지 않으면 무시 받습니다.”

유리아의 말은 틀릴 것 하나 없었다.

네오 런던에서 집사와 메이드는 고급 인력이다. 경호는 물론이고 비서일까지 하는 인력이 집사와 메이드다. 뛰어난 고용인을 데리고 다니면 그 자체로도 선망을 받을 수 있다.

“무시받을 수는 없지. 같이 가자.”

“10분만 기다려 주십시오. 준비하고 오겠습니다.”

나는 유리아를 기다릴 겸 소파에 앉아 신문을 펼쳤다. 네오 런던은 TV나 라디오, 인터넷 보다 신문의 정보가 훨씬 정확하고 신뢰성이 높았다.

신문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닌지라, 대충 흥미 있는 기사를 위주로 빠르게 읽어봤다. 대부분 마법이나, 마도 공학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불법 마법 강화 시술이 기승을 부리니 주의가 필요 하다라….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마법 강화 시술에는 돈이 많이 필요하니까.’

마법 강화 시술. 몸에 반영구 마법진을 새기는 것. 버프 효과 있는 문신이라 보면 된다. 보통 돈 있는 용병들이 마법 강화 시술을 원한다. 부작용은 딱히 없으니까.

‘정치 쪽에도 재밌는 기사가 있군.’

디바인 프랑스의 집정관과 네오 런던의 귀족이 특수구역 협력 회의 도중에 주먹다짐했다는 기사였다. 기자는 귀족을 욕했다. 집정관에게 먼저 주먹을 휘둘렀다는 이유가 아니라, 집정관에게 졌다는 이유였다.

“주인님. 준비 끝났습니다.”

유리아가 현관 입구에서 말했다. 외출용 메이드복을 입은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갑자기 성욕이 고개를 치켜든다. 무심코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나는 급히 생각을 지웠다.

유리아와 시선이 마주쳤다. 유리아가 파란 눈을 반짝이며 웃는다. 마음 한구석이 찔린 나는 걸음을 재촉하며 현관을 나섰다.

현관 앞에는 마차 한 대가 대기 중이었다. 미리 불러놓은 마차다. 마부는 나를 보며 정중히 인사한다.

“오늘 마이어 님을 모시게 된 유니콘 사의 일급 마부 알렉스라고 합니다.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부탁하지.”

유리아와 함께 마차 위로 올라탔다.

마차에 올라탔다. 과연 유니콘 사의 마차라고 할까. 들어오자마자 곳곳에 새겨진 마법이 느껴진다.

“출발하겠습니다.”

진동 하나 없이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간다. 말이 끄는 마차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안정적이다.

‘바퀴 쪽에 충격 완화 마법을 걸었나? 창문과 벽에는 보호 마법이 걸려있군. 어지간한 총으로는 흠집도 못 내겠어. 돈값은 하네.’

일반 시민 반년 월급이 이 마차 하나에 빠졌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네오 런던은 겉으로 보이는 건 생각 이상으로 중요했다. 작위를 가진 귀족이라도 가진 게 없으면 일반 시민에게 무시당하고, 일반 시민이라도 가진 게 많으면 귀족 이상의 대우를 받는다. 어쩔 수 없다. 네오 런던은 계급 사회를 표방하는 냉혹한 자본주의 도시니까.

마차는 곧 T 구역으로 들어섰다. 공장구역이다. 유유 치킨 공장도 이곳에 있다. 정작 마차가 가는 곳은 유유 치킨 공장의 반대쪽이었지만.

그렇게 도착한 곳은 유유 치킨 공장보다 2배 이상 큰 폐공장이었다. 말이 폐공장이지 겉모습은 별반 다를 거 없었다.

마부가 마차 문을 열었다. 유리아가 먼저 내렸고, 내가 이어서 마차에서 내렸다.

“마이어 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허그라운드에서 온 마릭 과장입니다.”

허그라운드는 네오 런던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였다. 값이 나가는 고급 빌딩이나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공장은 허그라운드가 관리하고 있다.

마릭 과장은 건장한 체격에 8대2 가르마를 탄 남자였다. 나이는 30대로 보이는데, 그에게서 느껴지는 힘이 보통이 아니란 걸 생각하면 진짜 나이는 알 수 없다. 어쩌면 50대 이상일지도 모른다.

“유진 마이어입니다.”

그와 악수를 했다.

“유유 치킨의 사장님이시죠?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 자식들이 거기 치킨을 어찌나 좋아하던지. 한국식 치킨이라고 했던가요? 저도 먹어봤는데 엄청 맛있더군요. 맥주를 곁들이면 이게 또….”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로 공장을 둘러보고 싶습니다만.”

“아.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사실 이곳으로 오기로 하신 분이 더 있습니다.”

“…한 명 더 있다? 듣지 못했습니다만.”

“제가 말하는 걸 까먹었군요.”

마릭이 웃으며 말했다. 제대로 된 사과도 없다. 두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꼬우면 꺼지던가.

나는 무언가가 울컥 올라오는 것을 느꼈으나 필사적으로 참았다. 머릿속으로는 마릭을 몰래 죽일 방법들이 떠오른다.

‘…이런. 내가 왜 이러지? 진정해라. 네오 런던에서 이런 일은 흔한 건 이미 알고 있었잖나. 나는 아직 대우를 받을 정도의 위치는 아니니까.’

어깨에 들어간 힘을 풀었다. 뒤에 유리아도 있는데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순 없다.

“마침 저기 오는군요.”

저 멀리서 기계말이 끄는 마차 한 대가 다가온다. 나는 기계말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전투용 기계말이군.’

오늘 하루는 험난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