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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903화 (1,683/2,000)

< 1903화 > 1903. 다크 문

이름도 붙여지지 않은 네오 런던 외곽 구역에 도착했다. 은밀함을 위해 도중부터는 걸어왔었다.

시각은 이미 깊은 밤이었다. 들리는 거라곤 바람을 스치는 풀 소리와 살짝 거슬리기 시작하는 벌레 소리뿐이었다.

띡! 띡띡띡!

경쾌하게 울리는 소리가 있었다. 나와 유리아에게 달려드는 해충들이 감전되어 죽는 소리였다. 마법을 쓴 건 아니다. 그저 뇌전으로 전자기장으로 몸을 감쌌을 뿐이다. 나는 마법이 아니어도 뇌전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일종의 이능(異能)이었다.

“주인님. 저쪽입니다.”

유리아가 있어서 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녀가 없었다면 꽤 길을 헤맸으리라. 나는 처음 오는 곳에서 자주 길을 잃어버리는 편이니까.

숲을 나서서 도착한 곳은 폐허가 된 마을이었다. 멀쩡한 건물은 1~2개 있을까 말까 한 마을 폐허. 사람의 발길이 뚝 끊기고, 공무원들도 돈이 되지 않는 곳임을 알고는 정리는커녕 방치해버린 곳. 밀수꾼이 거처로 삼기 딱 좋은 곳이었다.

‘불빛이 나오는 곳은 없군. 마법으로 숨기고 있나? 아니면 지하 쪽에 자지를 틀었나?’

당장 길리언이 머무는 집을 파악할 수는 없었다. 거기까지 디테일한 정보는 없었으니까. 직접 찾아야 했다.

‘탐색 마법은 쓸 수 없어. 놈도 마법사니까. 놈에게 습격하러 왔다는 걸 알려주기만 할 뿐이다.’

여긴 놈의 거처, 마법사의 공방이었다. 마법사가 공방에 있을 때 최소 30% 이상 더 강하다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러니 마법사의 공방을 쳐들어갈 때 유효한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마법사를 어떻게든 공방 밖으로 유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강력한 화력으로 공방 자체를 공격하는 것이다. 나는 후자를 노리고 있었다.

지금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최대의 전격계 공격 마법인 썬더 브레이크를 놈의 공방에 내리꽂고 전투를 시작할 계획이었다. 공방이 박살 나는 건 확정이고 운이 좋으면 놈이 즉사할 확률도 있으니까.

‘마나를 사용하면 들키니 눈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군. 어디 보자… 내가 놈이라면 어디에 공방을 차릴까.’

일단 마을 중심은 아니다. 저건 너무 뻔하고 사방이 뚫려있다.

‘나라면 마을 끝부분에 공방을 차릴 거다. 하지만 마법을 보조해주는 특별한 뭔가가 공방에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우선 마을 바깥쪽부터 천천히 확인해 볼까.’

그러나 계획은 틀어졌다. 부서진 담벼락에 눈알이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박혀있는 눈알은 정확히 나와 유리아를 주시하고 있었다.

-요즘 번개처럼 과격한 전격계 마법사가 주가를 올리고 있다더니…. 설마 바로 찾아올 줄이야. 혹시나 해서 준비해두길 잘했군.

길리언의 목소리가 마을 전체에서 울린다.

‘설마 이 마을 전체가 놈의 공방인가?’

공방이 클수록 마법사가 공방에서 얻는 힘이 강해지는 건 당연한 이치다. 잠깐 착각한 것 같다. 단순히 밀수를 편하게 하려고 이곳에 공방을 차린 게 아니다. 어느 정도 규모 이상의 공방을 차리면 의회에서 제재가 들어온다. 그 제재를 피하기 위해 이곳에 차린 거다.

“유리아. 전투 준비해. 어디서 적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네. 주인님.”

유리아는 챙겨온 검을 손에 쥐었다. 그녀가 검을 쥐는 모습은 처음 보지만, 기사 자격증도 가지고 있으니 우려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들켰다면, 탐지 마법을 쓴다.’

[일렉트릭 디텍션]

2급 탐색 마법인 디텍션을 내 입맛에 맞게 개조 강화한 마법이다. 전자파를 사방에 흩뿌리며 적을 탐색하는 마법. 지금 나는 반경 300m까지 탐색할 수 있다.

전자파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주변에 있는 것들을 훑고 지나간다. 막대한 정보들이 머릿속에 다이렉트로 들어왔다.

“…….”

“주인님?”

내 표정이 심각하자 유리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어왔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감지되는 생명 반응은 300이 넘어. 디코이를 뿌렸다고 해도 말도 안 되는 숫자지. 이미 놈은 준비 만반이야. 오늘 밤은 고생할 것 같아.”

말이 끝나자마자 유독 높은 폐건물 위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길쭉한 창을 한 손에 쥔 용병 출신의 메이드, 바바라였다.

“낮에 보고 또 보네. 운이 좋아. 사실 너희 둘은 볼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거든. 특히 너, 그래 은발의 메이드. 자기만 고고하다고 생각하는 그 상판 짝을 찢어버리고 싶었다고!”

순식간에 자세를 취한 뒤에 투창. 창은 정확히 유리아에게 날아온다.

“괜찮습니다.”

내가 마법을 사용하는 것보다 빠르게, 유리아는 앞으로 나서며 검을 휘둘렀다.

깡!

깔끔한 검격과 부딪친 창이 그대로 하늘 위로 빙글빙글 돌더니 바닥에 꽂힌다. 바바라는 주머니에서 손바닥보다 작은 꼬챙이를 꺼냈다. 꼬챙이는 쑥쑥 커지더니 창이 되었다.

‘마법창이군. 창이 저런 식으로 커질 수 있다면… 전투 중에도 길어질 수 있겠어.’

군대에 있을 때 버릇이었다. 상대방의 무기를 보면 일단 분석부터 했다. 그럼 전투 중에 발생하는 변수를 줄일 수 있으니까.

크르르르르.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짐승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코요태, 늑대, 부엉이, 독수리, 다람쥐, 토끼 등등 종류도 다양했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이놈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건 이미 감지했었으니까.

‘평범한 짐승은 당연히 아니다. 길리언은 키메라 제작도 할 수 있는 마법사. 겉으로는 평범해 보여도 내부는 싹 다 바뀌어 있겠지. 예를 들어 근육이라던가.’

키메라는 합성 생물. 전부 살아 있다. 작은 짐승에 불과하더라도 300마리를 동시에 제어하고 있는 길리언의 능력은 인정해줄 만하다.

“저년은 내가 죽일 거야! 알아들었어?!”

-저쪽 메이드는 기사수련원 출신이라던데?

“어쩌라고. 그래봤자 정식 기사가 되지 못한 반푼이 아니야? 상식적으로 기사가 될 길이 열렸는데, 메이드 노릇을 하겠냐고.”

네오 런던에서 메이드는 우대받는 엘리트 직업은 맞았다. 그러나 기사 정도는 아니었다. 기사는 네오 런던의 무력을 상징하는 자들이었다.

-그래. 마법사는 내가 처리하지. 저놈이 마음에 안 드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니.

나와 유리아를 노려보던 짐승들이 고개를 획 돌려 나만 노려본다.

“유리아. 부탁해도 될까?”

“네. 저 여자가 주인님을 방해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마법사로서 성가신 건 뛰어난 전위였다. 하물며 그 뒤에 마법사가 있다? 전투는 배로 성가셔진다. 유리아가 바바라를 맡아주는 것만으로 일은 몇 배나 편해진다.

나는 마법사의 정신, 아스트랄을 개방했다. 아스트랄과 이어진 52개의 마나 로드에 마나가 들어찬다. 마나 로드를 질주하는 마나를 술식으로 가공해 마법을 시전한다.

[일렉트릭 디텍션]

아까와 다르다. 이번에는 마법에 깊이를 더했다. 전자파는 좀 더 찐득하게 사방을 훑는다. 모습을 드러낸 짐승들을 제외하고 생명체 반응을 유심히 살핀다.

이 마을의 중심.

길리언으로 추정되는 존재가 느껴진다.

염력을 사용해 몸을 공중에 띄우고 중심으로 날아갔다. 300마리가 넘는 짐승들이 내 뒤를 바짝 뒤쫓는다. 나는 짐승들을 무시했다. 당장 죽여야할 정도로 위험한 짐승은 없었다.

‘이런 짐승들은 유인해서 한 번에 처리하는 게 편하지. 그게 아니면 조종하는 마법사를 죽이거나.’

마을 중심에 음산한 건물이 있었다. 다 낡아빠져서는 귀신이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건물. 그 지하에서 길리언의 기척이 느껴진다.

‘자, 그럼. 인사나 한 번 해볼까.’

허공에 손을 뻗는다.

사람 몸보다 큰 바위 하나가 허공에 나타난다.

[그래비티]

증폭된 중력이 거대한 바위를 지상으로 끌어당겼다.

***

바바라가 유리아에게 창을 던졌다. 유리아는 이번에도 어렵지 않게 받아 쳐냈다. 투창은 의미가 없다. 그걸 알면서도 바바라는 창을 계속해서 던졌다.

까앙! 깡! 까앙!

유리아의 주위로 창이 널브러진다. 땅에 박히는 것도 있었고, 멀리 튕겨 나가 바닥을 구르는 것도 있었다. 30개에 달하는 창들이 모두 지상에 떨어진 순간, 바바라는 도약해 유리아의 앞에 착지했다. 그녀의 손에는 긴 창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용병의 전투 방식이 뭔지, 곱게 자란 아가씨에게 가르쳐줄게.”

“험하게 자랐다는 게 좋은 의미는 아닐 텐데 말이죠.”

“그래. 이 상황에서도 입은 살았다 그거지? 팔이 썰리고도 그따위로 지껄일 수 있나 궁금해지는걸.”

바바라가 가볍게 창을 휘둘렀다. 간을 보는 듯한 가벼운 일격. 유리아는 살짝 뒤로 물러나며 피했다.

쾅!

충격파가 유리아의 후두부를 강타한다. 그에 앞으로 몸을 비틀거렸고, 정면에서 창이 찔러 들어 온다. 유리아는 넘어지는 몸을 옆으로 돌리며 창날을 피한 뒤 멀쩡하게 섰다. 주르륵. 그녀의 이마에서 피가 흐른다.

“어, 뭐야. 당황 안 했네? 당한 걸 보면 예상한 건 아닌 모양인데. 실전 경험은 있는 모양이야?”

바바라가 실실 웃었다. 유리아는 차분한 눈동자로 주위를 한 번 훑었다. 갑자기 후두부를 강타한 충격파가 아무 이유없이 발생할 리 없었다.

“…제 뒤쪽에 있던 창 하나가 없군요. 충격파로 변한 겁니까?”

“어, 맞아. 내 주인님이 만들어 준 건데, 창을 바치는 대신에 충격파를 소환하는 술식이다. 라는 모양이야. 솔직히 반도 못 알아듣겠지만, 의외로 쓸만하다고?”

“소환 마법의 요체는 계약이니 대가를 치르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아마 충격파만 소환할 수 있는 건 아니겠죠.”

“이야, 머리 좋네. 근데 전장에선 머리 좋은 놈들이 오래 살아남는게 아니야.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모르는 건 모르거든. 설령 알아차렸다고 해도 이미 늦었어. 너 대가리 존나 아프지? 피가 철철나고 있다고?”

유리아는 천재다. 바바라의 전투 방식도 한 번 보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은 그녀가 모르는 것 투성이다. 그녀가 쌓아온 상식과 지식은 기본적으로 다른 세계의 것인지라 무용지물이다.

모르면 맞아야지. 그건 유리아에게도 통용되는 말이었다.

“제 걱정이라도 해주시는 겁니까?”

“이러면 너무 쉽잖아. 응급처치라도 하지 그래? 기다려줄게.”

바바라의 말은 100% 거짓말이다. 유리아는 뒷머리를 만졌다. 손에 피가 묻었다. 거슬리긴 해도 당장 목숨이 위험할 정도는 아니다. 사고도 무리없이 이어지니 뇌도 멀쩡하다는 뜻. 응급 처치따윈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싸울 수 있었다.

유리아는 검을 쥐고 영천류의 자세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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