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5화 > 1905. 다크 문
[일렉트릭 필드]
공격이 아닌 지원을 위해 일렉트릭 필드를 사용했다. 공격용이 아니다. 전격계 마법을 좀 더 쉽고 강력하게 사용하기 위해 판을 까는 것이다.
바닥을 타고 새파란 전류가 주위로 퍼진다. 허나 중간에 막혀 사라졌다. 길리언이 소환한 단풍나무의 열기가 전류를 제압해 흩트린 것이다. 그 열기는 실시간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동물형 소환수처럼 직접적으로 생각하고 공격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떡 하니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영향을 끼치니 굉장히 성가시군.’
가장 큰 문제는 저 단풍나무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애초에 환수계에 나무가 있는지도 몰랐다. 처음부터 소환 쪽에 관심 없었기도 했고.
“흐하하! 파이어볼! 파이어볼! 파이어볼!!”
길리언이 웃으며 화염구를 던진다.
나는 염력으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화염구를 피했다. 펑! 펑! 펑! 화염구가 내 근처에서 폭발해 충격파가 배리어를 두들긴다. 직격했다면 모를까. 겨우 이 정도 충격파로는 내 배리어를 깰 수 없다.
‘이건 마법이면서도 이능이군.’
파이어볼은 술식으로만 이루어진 마법이 아니다. 저 단풍나무는 단순히 소환사에게 화염계 마법 적성을 부여해주는 게 아니군.‘
원소계 이능과 마법의 조화. 그게 얼마나 효율적인지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뇌전이라는 이능으로 전격계 마법을 사용하고 있으니까.
“그 단풍나무에 대해서는 도저히 모르겠군.”
“무식한 놈들이 그렇지. 뭐, 이해는 한다. 이놈은 환수계에서도 아주 희귀한 놈이거든.”
자만하고 있기에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자세히 말해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다른 건 몰라도 불과 관련된 나무라는 건 알겠다. 그럼 정석대로 가야지.”
[워터]
허공에 물이 생성된다. 단지 그뿐인 1급 마법이다. 허나 마법을 사용하는 나는 5급이었다. 1급 마법이어도 마법사의 적성과 실력, 급에 따라 위력이 천차만별이다.
원래라면 양동이를 채울 정도의 물만 생성되는 마법이 지금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효과는 있다. 적어도 주변의 열기가 조금은 가라앉았으니까.
“아무리 5급이라지만 그 정도 물을 쉴 새 없이 만들어낸다고? 너 물에도 적성이 있었나?”
“타고 나서 말이다. 누구처럼 꼼수를 쓰지 않고도 다른 속성의 마법을 쓸 수 있지.”
“말은 잘도 지껄이는군.”
그의 등 뒤로 단풍나무가 흔들린다. 빨간 단풍잎은 더욱 화려하게 빛났다. 단풍잎 하나, 하나가 불꽃처럼 느껴졌다.
치이이이익!
땅바닥에 떨어져 퍼지던 물이 증발한다. 수증기가 피어오르며 시야를 일부 가린다. 그러나 물을 쏟아내는 걸 멈출 수는 없었다. 대상이 화염 마법사인 이상 조금이라도 열기를 식혀야 내가 이길 가능성이 커지니까.
“아까 전화할 때 날 바싹 튀겨준다고 말했었나? 그럼 나는 네놈을 속까지 구워주마. 역시 고기는 웰던이지.”
지상에서 불길이 치솟더니 소용돌이친다. 떨어져 있는데도 뜨거움이 느껴졌다. 염력으로 고도를 높였다. 불꽃의 소용돌이는 내 뒤를 뒤쫓아온다.
쏟아지는 물을 소용돌이에 끼얹었다. 치이이이이익!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물은 조금도 소용돌이를 식히지 못했다. 오히려 수증기로 인해 사방의 열기가 더 올라가고 있었다.
’이건 답이 아니군.‘
워터를 해제한다.
’접근 방식이 잘못됐어. 좀 더 근본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그 전에 나를 태우려는 불꽃 소용돌이를 어떻게 해야 한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11]
세상이 느려진다.
정상적인 속도를 가진 건 내 정신, 아스트랄 뿐이었다. 불꽃 소용돌이를 보며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들을 떠올리며 술식을 계산한다.
마나를 움직인 순간 찰나의 순간이 끝났다. 52개의 마나 로드가 일제히 마나를 술식으로 가공한다. 살짝 과부하된 것 같긴 하지만, 이 정도는 괜찮다. 그 한계선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파이어 토네이도]
내 발아래로 붉은 마법진이 그려지고, 그곳에서부터 파이어 토네이도가 생성된다. 손바닥만 한 소용돌이는 주변의 열기와 산소를 집어 먹고 순식간에 크기를 키워 길리언의 불꽃 소용돌이와 부딪친다.
길리언의 표정이 확 구겨진 건 당연했다.
“이 오만한 개자식이! 그따위로 해서 이길 수 있을 것 같나? 네놈이 전격계 마법사라는 걸 안다!”
“화염계 마법은 내 주력이 아니긴 하다만, 반푼이 화염계 마법사 정도는 이길 것 같다만?”
“건방진 새끼가!”
두 개의 파이어 토네이도가 부딪힌다.
불꽃과 불꽃. 본래라면 부딪치는 일 없이 합쳐질 것이다. 그게 자연스러우니까. 그러나 저 화염들은 평범한 화염이 아닌 마법으로 만들어진 화염이다. 마법사의 의지가 담긴 화염.
콰콰콰콰콰!
두 개의 파이어 토네이도는 섞이지 않고 부딪친다. 서로의 불꽃을 갉아 먹으며 점점 크기가 줄어든다. 마치 두 개의 팽이가 싸우는 것처럼 보였다.
길리언의 파이어 토네이도의 회전력이 줄어든다. 그 크기가 급속도로 줄어들다가 사라졌다. 반면에 내 파이어 토네이도는 살아남았다. 주변의 열기를 빨아들이며 줄어들었던 크기를 점점 키운다.
“씨발.”
길리언의 얼굴은 더 없을 정도로 구겨져 있었다.
전격계 마법사에게 똑같은 화염계 마법에서 졌다. 안 그래도 자존심 높은 게 마법사란 족속이다. 길리언은 지금 느낀 굴욕을 죽는 순간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검지를 뻗어 길리언을 가리켰다. 파이어 토네이도가 크기를 키우며 접근한다.
길리언은 무반응이었다.
’포기했을 리가 없다. 뭐가 있나?‘
길리언을 태우기 위해 접근하던 파이어 토네이도는 갑자기 그 크기가 줄어들었다. 열기와 불꽃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간다. 길리언의 뒤에 있는 단풍나무였다. 정확하게는 단풍잎들이 불을 흡수하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씨발. 원소계 마법사처럼 싸우려고 했던 내가 잘못한 거지.”
길리언은 빠득 이를 갈며 나를 노려봤다. 그가 살의 가득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놀이는 끝이다. 진심으로 간다. 소환사의 방식으로 쳐 죽여주마.”
“새로운 환수라도 소환할 건가?”
“이미 소환했다.”
바스락바스락.
단풍잎들이 움직인다. 단풍잎 자체가 움직이는 게 아니다. 단풍잎 속에 무언가가 있었다. 곧 그것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참새?”
붉은 털을 가진 참새들이었다. 그 수는 무려 수백 마리였지만, 그 작고 귀여운 외모 때문에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
“소환사가 스승에게 가장 먼저 듣는 말이 먼 줄 아나?”
“…글쎄. 함부로 소환하지 마라?”
“외모만 보고 판단하지 마라. 다. 환수계의 생물들은 작고 하찮은 외모여도 죄다 이상한 특성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예를 들어, 이 플레임 버드들은….”
참새들은 단풍잎을 쪼아 먹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쪼아먹은 참새들의 몸이 부풀어 오른다. 10cm도 되지 않을 것 같던 참새가 순식간에 3m 가까지 커진다. 어처구니없는 건 참새의 외형이 아니라는 거다. 인간처럼 다리와 팔이 생겼다. 그 몸은 근육질 남성의 것인 반면에 대가리는 순진무구한 참새의 것이라 이질감이 느껴졌다.
“불을 먹으면 일시적으로 몸이 커지지.”
수백 마리의 참새는 수백 명의 전사가 되었다. 그들이 등에 붙은 날개를 파닥이기 전에 먼저 움직였다.
’근처에 있던 짐승들의 수가 아까부터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제물이 점점 줄어드는 이유야 뻔하지. 소환을 유지하는 것에 소모하고 있는 거다.‘
[염력]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돌멩이들을 모조리 허공으로 띄운다.
[강철 연금]
돌멩이를 일시적으로 강철로 바꾼다.
[형태 변환]
강철을 날카로운 칼로 연금해 염력으로 날렸다. 흩어져 숨어 있는 짐승들을 죽이기 위해.
“역시 눈치 하나는 빠르군. 근데 그게 쉽게 될 것 같냐?”
길리언이 비웃는다. 슬쩍 뒤를 확인해보니 수백 마리의 근육질 참새 괴물들이 나를 뒤쫓고 있었다. 나는 아래로 하강했다. 바닥에 서 있는 편이 더 낫다. 적어도 아래쪽에서 놈들이 오진 않을 테니까.
[스모크]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며 놈들의 시야를 가린다.
짹짹?! 짹짹짹!
내 뒤를 쫓던 참새들이 당황한다. 나는 그 틈을 노려 숨어 있는 짐승들을 노렸다.
보통 짐승이 아닌지라 위치를 파악하더라도 어느 정도 집중해서 염력을 활용해 죽여야 했다.
짹짹!
참새 괴물들이 나를 포위한다.
[스모크]
펑!
이번에도 연막을 터트리며 벗어난다.
“이 멍청한 새대가리들아! 날개는 폼이냐? 연기를 날려버려!!”
길리언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참새들이 날갯짓하며 연기를 날린다. 허나 나는 이미 놈들의 포위에서 벗어났다.
푹!
염력으로 조종하는 강철 칼이 마지막 짐승의 머리를 꿰뚫는다.
“아무래도 내가 이긴 것 같군.”
나는 씩 웃으며 길리언을 쳐다봤다.
“이기긴 지랄. 그놈들은 어디까지나 편리하게 개조한 제물일 뿐이다. 진짜 이놈이 원하는 건….”
화르륵.
길리언의 오른쪽 눈에 불길이 일어난다. 내가 모르는 마법인가 경계했지만, 곧 그게 아니란 걸 알았다. 길리언의 눈은 질척하게 녹고 있었다.
’소환수에게 바칠 제물이 없으니 자기 눈을 신체를 바치는 거군.‘
입가에 그려지는 미소를 황급히 지웠다.
짐승들을 처리한 보람이 있었다.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치기 시작했다는 건 밑천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니까.
기온이 뜨거워진다. 사방 곳곳에서 불기둥이 치솟는다. 급한 건 길리언이다. 제물이 되어 죽기 전에 어떻게든 나를 죽여서 전투 상황을 끝내고 싶을 테니까.
’도망만 치는 건 내 성미에 안 맞지.‘
길리언의 밑천을 본 순간부터 전투의 방향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내가 승리한다. 확신했다.
파지지지직!
뇌전을 터트리며 공중으로 날았다. 번쩍이는 전류가 내 주위에 둥글게 모여 배리어가 되었다.
참새들은 내 주위를 포위했음에도 함부로 뛰어들지 못했다. 감전되어 죽을 게 뻔하니까.
“이 멍청이들이!”
길리언의 오른쪽 눈이 모두 녹아내렸다. 이어서 그의 왼팔이 타오른다. 단풍나무가 흔들리고 불타는 단풍잎들이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단풍잎 대부분이 참새 괴물들에게 흡수되었다. 참새 괴물들은 몸집을 더욱 커졌다.
“최근 신비한 일을 겪은 적 있지.”
파지지지직.
손아귀에 뇌전을 일으킨다. 이어서 뇌전에 술식을 부여하며 뇌전과 마법을 조립한다.
“뭐해, 새대가리들아! 덮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