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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907화 (1,687/2,000)

< 1907화 > 1907. 다크 문

이 벚나무에 어떤 힘이 있지?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

은은하게 빛나는 벚꽃잎을 보며 호기심이 동했다.

직접 눈으로 보는 지금도 정확히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지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벚나무가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것뿐이다.

파직, 파지직.

은은하게 빛나던 벚꽃이 갑자기 빛을 잃는다. 그 앙상한 몸체에서 피어난 벚꽃잎은 소리 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죽었나?’

생물이 아니라 식물인지라 파악하기 힘들었다.

‘겨우 이 정도로 죽는다면 거기까지겠지.’

떨어진 벚꽃잎을 주웠다. 벚꽃 특유의 파스텔 분홍색이 선명한 꽃잎이었다.

‘꽃잎 자체는 평범한 것 같은데.’

이리저리 둘러보고 마나를 주입하거나 뇌전까지 사용했음에도 벚꽃잎은 반응하지 않았다. 평범한 벚꽃잎이다.

‘모르겠군.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정보가 없어 답답하기보다는 신이 났다. 이 묘목들의 정확한 정체는 몰라도 환수계 나무인 건 확실했다. 내 손으로 연구해서 미지를 파헤칠 보람이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마법적 성취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나는 벚꽃잎을 챙겨 주머니에 넣었다.

***

다음 날, 부동산 중개회사의 과장인 마릭에게 연락해 만났다.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니 어떻게 된 상황인지 대충 파악한 모양이다. 이번 일은 그의 패배다. 마릭은 나와 길리언이 경쟁시켜 공장의 가격을 올리려고 했으나, 우리 둘 다 돈만으로 해결하려는 자들이 아니었다.

“공장은 4억 크레딧에 사겠습니다.”

“으음. 결국 정가에도 못 팔게 됐군요.”

마릭이 계약서를 내밀었다. 계약서를 먼저 받아 든 건 내가 아니라 유리아였다. 그녀가 빠르게 계약서를 훑어봤다.

마릭은 처음 봤을 때보다 의욕이 꺾인 듯한 모습이었다. 그가 의자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길리언 님은 꽤 능력 있는 분이셨습니다. 사람 됨됨이와는 별개로 말입니다.”

“…뭐, 능력 있는 밀수꾼인 것 같긴 하더군요.”

길리언을 죽이고 그 공방에서 얻은 것들이 적지 않았다. 당장 현찰만 해도 몇억이었다. 사업을 하는 것보다 길리언 같은 놈들을 찾아내 죽이는 쪽이 더 이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함부로 죽이며 빼앗았다간 오히려 이쪽이 노려지게 된다. 무엇보다 길리언 같은 놈들은 별로 없지.’

당분간 돈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는 거였다.

“주인님. 계약서에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 이대로 계약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하. 저희는 허그라운드는 이쪽 업계에서 최선두를 달리고 있는 기업입니다. 고객님과의 신용을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지요. 계약서에 장난질하는 삼류가 아닙니다.”

개소리였다.

네오 런던의 대기업은 양심이 없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도는 이유가 뭔가. 고객이라도 이득만 된다면 망설임 없이 등쳐먹는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걸 굳이 따질 이유는 없었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일단 나도 계약서를 한번 훑어봤다. 유리아의 말을 못 믿는 게 아니라, 이대로 유리아의 말만 듣고 사인해버리면 마릭이 날 무시할 게 분명했기에.

계약서에 사인했다. 계약서를 사진 찍고 각각 한 장씩 나눠 가졌다.

볼일을 끝냈으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리아가 사무실 문을 열어준다. 몸을 돌려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이 화려한 도시는 짐승 소굴과도 같습니다.”

마릭이 말했다. 고개만 돌려 그를 바라봤다. 마릭은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오늘 승리한 짐승이, 내일은 일용한 양식이 될지도 모르는 곳이죠.”

“경고입니까?”

“고객님께 드리는 충고입니다. 제가 젊어 보이지만, 나이가 적지 않습니다. 물론 제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고객님께 달렸지요.”

“저는 당신과 다릅니다.”

“알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

공장을 손에 넣었다. 끝난 건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공장에 들여놓을 마도 공학 기계를 구해야 했고, 생산하고 판매할 물건의 설계도를 찾아야 했다.

‘기존에 있는 상품의 모방부터 할까.’

참신한 물건을 출시해 네오 런던의 시장을 휘어잡는다! 라는 건 꿈같은 소리였다. 참신한 물건? 네오 런던의 긴 역사를 생각하면 참신한 물건은 거의 없다.

어떻게 참신한 물건을 만들어도 곤란하다. 대기업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을 테니까. 내가 힘없는 사업가란 걸 알면 어떻게든 빼앗으려 들거다.

‘사소한 마도구를 모방한다. 물론 소송당하지 않도록 개조는 해야겠지.’

상품 생각은 천천히 해도 된다. 길리언의 공방을 털면서 얻은 것들 덕분에 여유가 있으니까.

“주인님. 차를 준비했습니다.”

찻주전자와 찻잔을 들고 왔다. 나는 평소에 먹던 홍차가 아님을 바로 알아차렸다. 그윽한 홍차 냄새가 아닌 달콤한 벚꽃 냄새를 맡았다.

투명한 찾주전자 안에는 벚꽃잎이 들어가 우려져 있었다. 우려 나온 차는 예쁜 분홍색이다.

“주인님이 주신 벚꽃잎으로 차를 우려봤습니다. 품질면에서 굉장히 만족스럽더군요.”

어제 유리아가 벚꽃잎을 조금 달라기에 나눠줬다. 설마 차를 우릴 줄은 몰랐지만.

찻잔을 바라봤다. 벚꽃차는 향기에서부터 색깔까지 빠지지 않았다. 맛보지 않아도 맛있을 거라는 게 느껴진다.

“이거 상품성이 있겠는걸.”

“네. 환수계 벚꽃차라고 한다면 비싸게 팔 수 있을 테죠. 일단 맛부터 확인해 보세요.”

따뜻한 차가 입안에 들어왔다. 향긋한 벚꽃 냄새에 지금이 봄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마음에 들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띵동!

초인종 소리가 울린다. 나와 유리아는 시선을 교차했다.

“오늘 오시기로 한 손님이 있으셨습니까?”

“아니, 없어. 불청객이야.”

초대하지 않은 손님은 반갑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그냥 꺼지라고 하고 싶으나, 그래선 내 평판이 떨어진다.

[디텍션]

감지 마법을 사용했다. 문밖의 손님들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디텍션이 통하지 않았다. 중간에 해제된 것이다. 내 마법을 단숨에 해제할 정도의 실력자가 있다는 뜻이다.

‘초인종을 눌렀으니 손님으로 온 거다. 무슨 목적으로 찾아온 건지 몰라도 적은 아니다.’

한숨을 내쉬며 유리아에게 말했다.

“모셔 와. 벚꽃 차도 새로 준비해주고.”

“네. 주인님.”

곧 손님이 들어왔다. 집사 한 명, 메이드 한 명을 대동한 중년 남성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들을 빠르게 훑었다. 메이드와 집사. 두 명 모두 보통이 아니다. 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 없다.

“유진 마이어. 맞나?”

그 거만한 말투 덕분에 그가 귀족이란 걸 알아차렸다. 문제는 그의 이름을 정확히 모른다는 것. 자존심 높은 귀족은 그마저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다행히 구세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르폰 남작입니다. D 구역과 F 구역에서 대형 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르폰 남작님을 뵙습니다. 이런 누추한 곳에 어쩐 일로 오셨는지요.”

“요새 잘나가는 용병이라지?”

“요식업을 하나 운영하고 있습니다.”

“됐네. 앉아서 이야기나 하지.”

그가 먼저 털썩 주저앉았다. 내게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적대적이지도 않았고. 나는 그의 맞은 편에 앉았다. 그의 까칠한 태도를 보니 아쉬운 소리를 하려 온 건 아니다.

“제게 의뢰하러 오셨습니까? 의뢰는 중개자를 통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게 절차인지라.”

“의뢰? 너 같은 마법사를 어디에 쓴다고?”

“…….”

반박할 수 없었다. 상류층 구역이라 할 수 있는 D구역과 F구역에서 대형 병원을 운영하는 그다. 돈이라면 썩어 넘칠 테고, 남작이란 작위도 가지고 있으니 나보다 뛰어난 용병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다.

유리아가 새롭게 우린 벚꽃 차를 내와 차를 따랐다.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내 찻잔에 먼저 차를 따랐다. 그에 아르폰 남작의 눈썹이 꿈틀거렸으나, 곧 가득 퍼지는 벚꽃향을 맡고는 인상을 풀었다.

“벚꽃 차인가. 향기부터 평범하지 않군.”

티타임은 네오 런던의 대표 문화라 할 수 있다. 상대의 환심을 사기에 좋은 차를 대접하는 것만큼 좋은 건 없다.

“그냥 차가 아닙니다. 환수계에서 자라는 벚나무의 벚꽃잎을 우려낸 차입니다.”

“그렇겠지.”

‘…그렇겠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한다. 그는 벚꽃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귀한 찻잎을 얻어도 무지렁이의 손에 들어가면 싸구려 커피만도 못하지. 허나, 이 차는 찻잎을 완벽하게 우려냈군. 이토록 맛있는 차를 맛보는 건 오랜만이다. 레이디, 대단하군.”

“과찬이십니다.”

짧게 대답한 유리아가 내 뒤로 물러났다.

“길리언은 내 거래 상대였다. 길리언은 내게 환수계 나무 묘목 하나를 판매하기로 했고, 나는 대가를 지불하기로 했지.”

“…길리언은 이제 없습니다.”

“하지만 네가 있지. 길리언의 공방을 찾아가 봤는데 엉망진창이더군. 흔적도 거의 없었어. 너와 길리언이 한 공장을 두고서 마찰을 일으켰다는 정보가 없었다면 여기에 오지도 못했을 거다.”

“길리언은….”

“네가 죽인 거 안다.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이라고. 길리언은 싸가지가 없었지. 이렇게 될 줄 예상하고 있었다. 설마 나와 거래하는 도중에 뒈질 줄은 몰랐지만.”

나는 살짝 긴장을 풀었다. 너무 긴장하는 것도 생각을 굳게 만드니 좋지 않았다. 아르폰 남작은 죽은 길리언 대신에 나와 거래하기 위해 찾아왔다.

3개의 묘목 전부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중에 하나라면 거래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어떤 묘목입니까? 벚나무입니까? 아니면 단풍나무?”

“둘 다 아니다. 라일락 나무. 그걸 원한다.”

“판매하겠습니다.”

“길리언 놈과 같은 조건으로?”

“그건 들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길리언은 남작님에게 무엇을 요구했습니까? 단순히 돈을 요구했을 것 같진 않군요.”

네오 런던에서는 돈 이상으로 중요한 것들이 있었다.

“준남작 작위를 주기로 했다.”

평민이면서도 귀족 사회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

명예 귀족이라 할 수 있는 작위.

“…준남작이라고 해도 작위는 작위. 남작님에게 작위를 부여할 권한이 있으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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