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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909화 (1,689/2,000)

< 1909화 > 1909. 다크 문

입학식이 끝나고 손님들이 모두 메이드 아카데미에서 빠져나갔다. 허나 입학생들은 여전히 아카데미 입학식장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차갑다. 입학식의 열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유리아는 허리를 펴고 반듯하게 앉아 있었다. 조용히 주위를 살폈다. 그녀처럼 반듯하게 앉아 있는 인물들이 제법 있었다. 고용인으로서 어느 정도 교육받은 이들이었다.

다소 불량한 자세를 취하는 메이드도 있었다. 그들은 거칠었다. 예의는 알아도 직접 실행할 생각이 없는 자들. 그들의 출신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용병 출신일 것이다. 반면에 군인 출신으로 보이는 메이드들도 몇몇 보였다. 그리고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표정의 메이드들까지 있었다. 그녀들은 지나칠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입학생들의 목표는 딱 하나였다.

메이드 자격증.

시니어, 더블, 트리플, 플라워, 슈페리어, 로열, 프라임.

총 일곱 개로 나뉘어진 자격 등급. 메이드 아카데미에서 낙제하지 않고 졸업만 해도 시니어 등급의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이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취업 걱정은 하나도 없어진다. 웬만한 회사에는 모두 취업할 수 있으니까. 네오 런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른 나라와 도시에도 메이드 자격증은 그 자체만으로 스펙으로 통한다. 그 때문인지 외국인들도 제법 있었다.

트리플 급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로 취급받는다. 그 이상의 등급은 말할 것도 없다.

유리아의 목표는 로열 혹은 프라임이었다. 고용인인 자신의 등급이 높을수록, 그 주인의 격도 올라가니까. 다만, 유리아도 프라임 등급을 확신할 수 없었다. 지난 몇 년간 프라임 등급에 오른 메이드는 한 명도 없었으니까. 어쩌면 프라임에는 다른 조건이 숨어 있을지도 몰랐다.

콕콕.

옆자리에 앉은 연갈색 머리의 여인이 유리아의 어깨를 검지로 조심스럽게 찔렀다.

“무슨 일이시죠?”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인사나 하자. 난 줄리엣이야. 구역 밖에서 왔어.”

“유리아 그레이스입니다. 네오 런던 출신입니다.”

유리아가 사근히 대답했다. 줄리엣에 대해 아무 관심도 없었으나, 사교 항목도 평가에 포함될지도 모른다. 유리아가 만약 메이드 아카데미의 학장이었다면 그것도 평가 항목에 넣을 것이다.

“내가 네오 런던에 올라와서 그런데… 원래 이렇게 분위기가 살벌해?”

“글쎄요…. 메이드 아카데미는 저도 처음 인자라 잘 모르겠네요.”

“그래? 존댓말 할 필요는 없어. 우리 같은 동기잖아.”

“전 이게 편하답니다.”

“응. 그럴 수도 있지. 메이드 아카데미에서 퇴학당하지 않고 졸업까지 잘 지내보자. 근데 혹시 입학식 이후에 뭘 하는지 아니?”

“그건 아마도….”

“조용!”

교관 한 명이 크게 외쳤다. 긴장해 있던 입학생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교관 쪽을 쳐다봤다. 유리아와 줄리엣도 마찬가지였다.

조용해진 입학식장에서 학장이 입을 열었다.

“아카데미에서는 예의 점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예의를 평가하는 항목이죠. 기본 10점이고, 비속어를 쓰거나 경박한 태도를 보이면 감점됩니다. 0점이 되면 퇴학이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예의 점수 또한 성적에 포함됩니다.”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비속어를 쓰며 대화하던 입학생들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렀다. 주로 용병 출신들이었다.

“오늘 일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2시간 내로 교과서와 교복 지급, 기숙사 배정을 끝내고 식사 예절 교육을 진행하겠습니다. 저녁에는 식사 예절 평가 시험을 진행하겠습니다. 물론 이 평가 또한 종합 성적에 영향을 끼칩니다.”

“……!!”

대부분의 메이드가 경악했다. 설마 입학 첫날부터 교육받고 시험까지 치르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유리아 또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허나 일은 이미 엎질러졌다. 항의한다고 해서 일정을 변경할 것 같지 않다. 유리아는 네오 런던의 식사 예절을 떠올리며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했다.

“오늘은 디바인 프랑스의 부활절 식사 예절을 교육하고 평가하겠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왜 디바인 프랑스의 식사 예절을 메이드가 배워야 하는가 싶겠죠. 메이드는 주인님이 없을 때 대신 손님을 응대해야 합니다. 그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교육하는 겁니다. 메이드는 완벽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메이드 아카데미의 학장인 마리아 힐턴은 단상에서 내려와 입학식장을 떠났다. 유리아는 무심코 그녀의 걸음걸이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잡을 곳 없이 완벽했다.

“하아. 디바인 프랑스의 부활절 식사 예절? 왜 그런 걸 배워야 하는 거야…?”

줄리엣이 울상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디바인 프랑스는 네오 런던과 거리가 가까우니 식사 예절도 많이 차이 나지 않을 거예요.”

“유리아는 여유롭네. 혹시 디바인 프랑스의 부활절 식사 예절을 이미 알고 있어?”

“곧 배울 테니 알게 되겠죠.”

“하아. 그 여유로운 성격이 부러워.”

곧 그녀들은 교관으로부터 교과서와 교복을 받았다.

줄리엣은 당장 눈물을 흘릴 것 같은 눈이었다. 입학생이 받은 교과서는 무려 30개가 넘어서 들기조차 버거웠고, 교복은 모두 메이드복이었는데 종류가 7개에 달했다. 외출용, 오전용, 오후용, 운동용, 조리용, 청소용, 작업용.

교관은 옷들을 지급하며 말했다.

“복장 관리도 평가 대상입니다. 옷의 일부가 찢어져 있거나, 청결하지 못하면 감점이니 주의하시길.”

“자, 잠깐만요. 이거 사이즈가 조금 안 맞는 것 같은데요?!”

“여러분이 해결해야 할 첫 번째 일입니다. 여기 바느질 세트를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딱 한 번 수선하는 방법을 알려드릴 테니, 오후용 메이드복을 수선하고 강의실로 모이시길 바랍니다.”

메이드들은 반사적으로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여유 시간은 1시간 이상 있었다. 그래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다. 바느질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요즘 시대에 바느질이라니….’

‘후후. 이미 졸업한 선배들의 말을 듣고 연습해왔지.’

‘아, 씨발. 벌써 그만두고 싶다. 자격증만 따면 되는데 왜 바느질 같은걸….’

모두가 제각각 다른 생각을 하며 반짇고리를 받았다.

이어서 기숙사 방을 배정받았다.

방은 좁았다. 3평. 침대, 옷장, 책상과 의자가 전부인 방이었다. 유리아는 우선 짐부터 풀고 수선 작업을 시작했다. 오후용 메이드복뿐만이 아니라 지급받은 메이드복 7개를 전부 수선하기까지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똑똑똑.

“네.”

유리아가 문을 열었다. 줄리엣이 오후용 메이드복을 손에 쥐고 울상을 짓고 있었다.

“줄리엣 양. 어쩐 일이시죠?”

“저, 저기. 바쁘지 않으면 도와줄 수 있어? 바느질은 처음이라… 잘 안돼.”

“도와드리겠습니다. 천천히 해보면 어렵지 않아요.”

“정말? 고마워! 근데 너도 해야 하지 않아? 내가 방해한 거면 미안해….”

“괜찮습니다. 제 작업은 끝났으니까요.”

유리아는 마냥 줄리엣의 일을 대신 해주지 않고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녀 외에도 곤란해하는 메이드가 보이면 도와줬다. 선의에 의한 행동이 아니었다. 이건 알게 모르게 빚이 될 것이다. 그녀가 곤란할 때 도움이 되어줄 테지.

그 후, 유리아는 디바인 프랑스 부활절 식사 예절에서 만점을 받고 통과했다.

***

메이드 아카데미 94기가 입학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학장과 교관들은 회의실에 모였다. 매주 있는 정기 회의.

“퇴학생은 총 몇 명입니까?”

학장인 마리아가 차분히 물었다.

“35명입니다.”

“평균적이군요.”

메이드 아카데미에서 가장 많은 퇴학자가 발생하는 시기는 처음 일주일이었다. 다른 곳보다 규율이 엄하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주로 자유롭게 활동하던 용병 출신이 많았다.

“눈에 띄는 인물은 몇몇이 있습니까? 이건 기수에서 슈페리어 이상의 메이드가 나올 것 같습니까?”

“어쩌면 로열 이상의 메이드가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리아는 눈을 빛냈다. 아직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교관이 이렇게 말한다? 보통이 아닌 인재가 들어왔다는 뜻이다. 짐작 가는 인물이 있었다.

“백작가 여식이 입학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아이입니까?”

메이드 아카데미에는 귀족 자제도 들어온다. 메이드 아카데미를 졸업했다고 반드시 메이드가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일종의 스펙용으로 메이드 자격증을 취득하려는 것이다.

“아니요. 그 아이도 뛰어나긴 하지만… 아직 잠재력을 판단하기엔 이릅니다.”

“그럼 누구죠?”

“유리아 그레이스라는 아이입니다. 기사 수련원 출신인데, 전투뿐만이 아니라, 의료 지식, 교양, 예절, 요리, 외모, 전투력까지… 어디하나 빠지는 게 없습니다. 동기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으며 지금까지 치른 4개의 시험 모두 만점입니다. 이토록 뛰어난 입학생은 역대 처음입니다.”

“기사 수련원 출신이면 신분에 특이점이 없다는 거군요. 왕실 메이드가 될 재목입니까?”

“거기까지 판단하기에는 섣부릅니다만, 저희가 생각하기엔 그 이상의 인재가 될지도 모릅니다. 유리아 그레이스는 아직 한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유리아의 정보가 담긴 서류를 천천히 읽어봤다. 문제 될 건 하나도 없었다. 유진 마이어라는 최근 준남작이 된 자의 후원을 받고 있는 건 문제도 아니다.

“왕실은 뛰어난 메이드를 원합니다. 인재가 필요하죠. 그녀가 이대로만 성적을 유지해준다면… 왕실 메이드가 되기엔 충분할 것 같군요. 그녀를 포섭할 수 있겠습니까?”

“…….”

교관들은 확신하지 못했다.

“유리아 그레이스가 원하는 걸 알 수 없습니다. 몇 번 상담을 진행했으나, 자기 속내를 내비치지 않더군요.”

“제가 보기엔 장래 희망은 딱히 없는 것 같습니다. 일단은 메이드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트리플 이상의 자격증을 얻는 게 목표라고 자기 입으로 말했습니다.”

“왕실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최고의 커리어이자, 귀족이 될 기회도 얻을 수 있는데 거부하겠습니까?”

“모든 메이드가 왕실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건 아니지요.”

“그건 교관님께서 왕실에서 일한 적 없어서 모르는 거죠.”

“…왕실이 대단한 건 인정합니다만, 실무 쪽으로는 대기업이 더 낫습니다.”

마리아가 기세를 흘렸다. 목소리를 높이던 교관들이 입을 다물었다.

“아직 시간은 많습니다. 지금은 지켜보기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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