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0화 > 1910. 다크 문
환수계 단풍나무 묘목을 아르폰 남작에게 판매하고 얻은 낡은 저택.
나는 이 낡은 저택이 마음에 들었다. 다른 저택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고풍스러움이 저택에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낡았다. 다시 말해 오래되었다는 전통과 역사를 의미한다. 네오 런던에서 그 가치는 높았다.
저택에는 여러 메이드와 집사가 일했다. 유리아가 메이드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에 직접 뽑은 자들이다. 총 5명. 이 낡은 저택을 관리하기엔 충분한 인원들이었다.
“일어나셨습니까, 주인님. 곧 아침 식사를 준비하겠습니다.”
“아니, 식욕이 나지 않는군. 아침은 됐고 점심은 밖에서 먹겠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환수계 벚나무를 심은 정원으로 향했다. 요즘 매일 아침 하는 일은 벚나무를 확인하고 가꾸는 일이었다.
작은 벚나무가 있는 정원 중심으로 향했다. 그 크기는 처음 봤을 때보다 3배 이상 커졌다. 그리고 지금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나무와는 성장 속도부터 궤를 달리했다. 그리고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도 평범한 나무와는 달랐다.
‘고기를 주니 좋아하는 나무라….’
꾸준히 벚나무에게 짐승을 잡아 주고 있었다. 먹이도 먹이지만, 더 중요한 것도 있었다.
정신 교감.
정신 교감을 꾸준히 해주지 않으면 벚나무는 금방 시들어 버린다. 최소 일주일에 2~3번 이상은 해줘야 한다. 어떤 매커니즘인지 몰라도 이 벚나무에는 정신 교감이 큰 영향을 끼친다.
나는 벚나무에 다가가 손을 뻗었다.
파지직.
마나와 함께 전류가 튀었다.
겨울나무처럼 잎 하나 없던 나무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연분홍색 벚꽃잎은 불어오는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일하던 고용인들이 잠깐 멈춰서서 이쪽을 멍하니 바라본다. 아직은 작은 나무지만, 그 아름다움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엔 충분했다.
정신 교감.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당황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내 방식대로 이 녀석과 교감하고 있다.
마법사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아스트랄을 개방한다.
나와 벚나무는 서로 이어졌다. 정신이 하나로 합쳐지는 느낌이다.
‘나무가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게 신기하군.’
인간이나 동물처럼 뚜렷한 정신은 아니었다. 그 정신은 안개처럼 흐릿했다. 허나 분명 존재했다. 감정도 미약하나 느껴진다.
‘오늘도 슬퍼하고 있군.’
슬픔의 원인은 유리아였다. 벚나무는 유리아의 손길을 그리워하고 있다. 유리아가 평소에 벚나무를 잘 관리해왔다는 뜻이기도 했다.
‘네 주인은 나다. 잊지 마라.’
파지직.
벚꽃잎 사이로 스파크가 튀었다. 알고 있다고 자신의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원하는 게 있나?’
선명한 이미지가 하나 떠오른다.
물.
얼음이 둥둥 떠 있는 물.
‘얼음물인가. 그래. 부어주마.’
손가락을 튕긴다. 마법으로 만든 얼음물이 벚나무를 흠뻑 적신다. 벚나무가 가지를 떨었다.
‘너무 차갑다고? 네가 원한 거다. 버텨라.’
유리아와 비교해 세심함이 부족하다고 타박한다. 나는 피식 웃었다.
드루이드의 말에 의하면 정신 교감 때 역으로 먹힐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하던데, 그 정도로 위험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벚나무는 조금 까탈스럽긴 해도 나를 인정하고 있다.
‘성장을 더 빨리할 수는 없나?’
벚나무의 의지가 전해진다. 때가 될 테면 성장할 테니 기다리란다.
‘그래. 기다려주마. 하지만 기억해라.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내가 너를 키워주는 대신 너는 내게 협력해야 한다. 그게 계약이다.’
처음 정신 교감을 했을 때 했던 계약을 다시금 되새긴다. 벚나무는 귀찮다는 의지를 비쳤다. 어제도, 그제도 했던 말이기 때문이다.
나도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벚나무는 나무였다. 기억력이 어느 정도일지 감이 안 잡힌다. 그러니 매일 새겨놔야지. 나중에 딴말할 수 없도록.
‘내가 너의 주인이다. 내가 너의 주인이다. 내가 너의 주인이다. 너는 나를 믿고 따라야 한다.’
거의 세뇌하듯이 반복적으로 말하며 정신 교감을 끝냈다.
이어 옷을 갖춰 입고 공장으로 갔다. 유유 치킨의 경우 대리인을 고용했기에 보고만 받고 있다.
공장 안으로 들어온다. 마도 공학 기계가 몇 개 있긴 했으나 아직 조정되지 않았다. 공장이 가동하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공장 한쪽 테이블 앞에 앉았다. 어제 연구하던 마도 공학 물건을 들었다. 사람의 손이었다. 손목까지 있는 마도 공학 손.
마도 공학은 온갖 곳에 적용할 수 있다. 그건 사람의 신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돈만 있으면 손이나 눈, 발, 내장 기관까지 모두 마도 공학 기계로 대체할 수 있다.
나약한 인간의 신체를 바꿔 끼우는 것으로 간단히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주로 용병이나 군인이 마도 공학 신체를 원하지만, 요즘에는 마도 공학 신체를 하나쯤은 몸에 단다. 그게 트렌드다.
파지직.
미약하게 뇌전을 일으켜 마도 공학 손과 연결한다.
‘생체 신호 수준의 전류에 바로 반응하는군. 요즘 잘 나가는 모델이라 그런지 막힘이 없군.’
마도 공학 손은 내 뜻대로 손가락을 다리처럼 이용해 책상 위를 기어 다녔다. 나중에 익숙해지자 묘기까지 부릴 수 있었다.
‘인간의 손보다 훨씬 튼튼한 건 말할 것도 없고… 마법진과 재질만 손보면 수백 kg의 악력도 낼 수 있겠군.’
감각도 사람의 손과 같았다. 무언가 손에 쥐면 손에 쥐는 감각이 그대로 느껴진다. 뇌전과 마법으로 인공 신경을 형성했기에 그 감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응?’
마도 공학 손이 약간 버벅거린다. 조금 거칠게 가지고 놀았을 뿐인데 신경계에 부하가 걸린 것이다.
‘전투용의 프리미엄 제품이 아니긴 한데 벌써 부하가 걸린다고? 이 정도면 거친 운동은 10분도 못 하겠군.’
나는 마도 공학 손을 분해했다. 여러 기계 부품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조심히 부품을 떼어 낸다. 부품은 각각 제조사가 달랐다.
‘부품 하나, 하나에 죄다 보안 마법을 걸어뒀군.’
보안 마법을 해제했다. 번거로울 뿐이지 어려운 건 아니니까. 부품에 정교하게 새겨진 특수 마법진들이 보인다. 이것들 하나, 하나가 모두 기술이다. 특허로 분류된다. 함부로 사용했다가 특허 소송에 휘말리겠지.
‘신경계 쪽 마법은… 생각보다 더 조악하군. 이해는 가. 의학에서도 인간의 신경은 복잡하기 짝이 없으니까.’
신경 쪽 부품을 확인하던 나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개선할 여지가 있겠는데?’
물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프리미엄 급으로 고급할 생각이 없다. 지금 이 부품보다 조금만 더 좋아지면 된다. 그럼 성공적으로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기존에 있던 신경 부품 제조사? 알게 뭔가. 원래 시장은 경쟁이다. 뒤떨어지면 도태되는 곳.
‘공장의 첫 번째 제조품은 이거로 정했다.’
나는 연구를 시작했다.
***
연구도 연구지만, 계속 사업에 매달려 있을 수는 없었다.
내겐 돈을 버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바로 강해지는 것. 강해져야 내 것을 지킬 수 있고, 복수도 할 수 있었다.
강해지는 방법은 크게 3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수련, 하나는 영약, 다른 하나는 아티팩트 및 도구.
‘내겐 남들에겐 없는 게임 지식이 있다. 이 지식을 적극 이용해야지.’
오랜만에 중개업자인 로즈를 만났다. 로즈가 나를 부른 것이다.
“준귀족이 됐다며? 축하해.”
“고맙군. 조언이라도 해준다면 더 고마울 것 같군.”
“내 조언을 받고 싶다고?”
로즈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날 쳐다본다. 진짜 그녀의 신분은 자작이니까. 그것도 역사가 제법 있는 귀족 가문.
“너는 정보에 민감하지 않나. 그런 만큼 귀족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많겠지. 적어도 이방인인 나보다는 말이지.”
“그건 그렇지. 귀족에게 조언이라…. 그래. 이게 좋겠네. 나대지 마.”
“어?”
“시비 거는 게 아니야. 나대지 마. 귀족이 된 기념으로 파티를 열겠다고 설치지 말라고. 가뜩이나 넌 거래로 준귀족이 된 케이스잖아. 진짜 귀족들은 널 같은 귀족으로 취급 안 해.”
“파티를 열어야 인맥을 쌓을 수 있지 않나.”
“귀족 사회에 아무것도 모르는 네가 파티를 열어봤자 귀족들이 좋아할 것 같아? 옆집이 파티를 연다고 해도 초대장을 받기 전까지 막무가내로 찾아가지 마. 그건 진짜 최악의 행동이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후견인이 있으면 편해. 널 준남작으로 만들어 준 귀족에게 사교 데뷔를 도와달라고 하던가.”
“…그건 이미 끝난 거래다. 아르폰 남작과는 따로 연락해서 그런 부탁을 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도 아니다.”
“그럼 내실을 다지는 것에 집중해. 열심히 하고 있으면 귀족들이 널 부를 거야.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너의 가치를 판단하는 거지.”
“5급 마법사라는 스펙은 아무 도움도 안 되나?”
“귀족 사회에서 5급 마법사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어.”
“…….”
내가 입을 다물자, 로즈는 내 눈치를 살짝 살폈다. 그녀와 알게 된 지도 벌써 1년이다. 어느 정도 정이 쌓였다고 할 수 있었다.
“그냥 내 생각을 말한 거야. 마음에 담아 둘 필요는 없어.”
“아니, 네 말이 옳다. 귀족이래 봤자 준귀족. 운이 좋아 얻은 신분일 뿐이지. 네 말대로 아직은 내실을 더 다질때 인 것 같군.”
“넌 빠르게 평판이 오르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어. 네가 용병 일만 적극적으로 했다면, 귀족들은 이미 네 이름을 듣고 있을걸?”
“용병일 이상으로 사업이 중요한지라.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지. 내가 원하는 의뢰가 들어왔다고 들었다.”
“맞아. 고대 유적 탐사 의뢰. 시외구역 에든버러의 고대 유적을 탐사하는 의뢰야. 넌 어떻게 이 의뢰가 나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거야?”
“고대 유적하면 에든버러가 아닌가. 흥미가 있어서 주시하고 있었다. 언젠가 이런 의뢰가 나올거라고 생각했지.”
사실은 원작 지식을 이용한 거다. 원작 게임에서는 편의성을 위한 필수 퀘스트로 취급되니까.
“의뢰주는 해밍턴 교수야. 해밍턴 탐사대라고 해서 미스캐토닉 대학에서 직접 밀어주는 탐사대지. 해밍턴 교수가 미스캐토닉 대학에 속해 있거든.”
“미스캐토닉…. 유명한 대학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