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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911화 (1,691/2,000)

< 1911화 > 1911. 다크 문

“맞아. 네 말대로 미스캐토닉 대학은 유명해. 네오 런던에서 명문으로 손꼽히는 곳이기도 하고. 그래서 더 이상해.”

“이상하다?”

“해밍턴 탐사대의 후원자가 미스캐토닉 대학이잖아. 미스캐토닉의 탐사대라고 보면 돼. 그런 거대 세력이 외부 용병을 고용하려 한다?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야. 대기업이나 대학교는 인력 수급도 자기들 인맥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까. 원하는 용병의 급이 달라지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넌 아직 5급이잖아.”

역시 로즈였다. 정확한 정보는 아직 풀리지 않았음에도 탐사대의 이상함을 감지했다. 감이 뛰어났다.

“미스캐토닉 대학이 더 이상 해밍턴 탐사대를 후원하지 않는다면?”

“……미스캐토닉 대학이 탐사대를 버렸다?”

“반대일 수도 있다. 해밍턴 교수가 미스캐토닉 대학을 나온 거지.”

“과연. 그거라면 용병을 구하는 이유도 말이 돼. 하지만 그게 더 문제야. 대학의 후원이 붙지 않은 고대 유적 탐사대라니…. 구린 냄새가 진동하잖아.”

구린 거 맞다. 좋은 의도로 용병을 구하는 건 아니니까.

해밍턴 교수는 이번 일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생각이다. 네오 런던을 떠나 함부르크 이노베이션으로 망명할 준비를 이미 끝내놨다.

“의뢰할 거야? 그쪽에선 되도록 마법사를 원한다고 하니… 너 정도면 신청하자마자 바로 고용될 거야.”

“탐탁치 않아 보이는군.”

“원래 이런 냄새나는 의뢰는 거르는 게 정석이야. 그래도 보상이 좋아서 미련이 생기면 철저하게 조사하지만… 이번엔 조사할 시간도 없어. 탐사대 일정이 급해서 여유 시간이 사흘이 전부니까. 정말 급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런가. 어쨌든 나는 한다. 에든버러의 고대 유적은 예전부터 흥미 있었으니까.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지.”

“…보수는 3천만 크레딧이 전부야. 고대 유적에서 발견된 물건들은 모두 탐사대에게 귀속되지. 다른 비슷한 의뢰에 비하면 보수가 싼 편이야. 그나마 명성은 어느 정도 얻을 수 있겠지. 그런데도 이 의뢰를 하겠다고?”

“나는 한다면 하는 남자, 유진 마이어다. 줄여서 한남 유진.”

“왠지 별론데 그거. 어쨌든 알아서. 신청해볼 테니 기다려. 저쪽도 급한 것 같으니 답은 곧 올 거야.”

15분 정도 기다렸다. 로즈가 서류 한 장을 건넸다.

“자, 의뢰 확인서야. 이거 가지고 모레까지 해밍턴 탐사대로 가면 돼.”

“고맙다.”

“무보수로 하는 것도 아닌데 고맙기는. 무사히 돌아와. 그래야 수수료 받으니까.”

로즈와 인사하고 밖으로 나섰다.

나는 원작 게임 퀘스트를 통해 해밍턴 교수의 목적과 에든버러 고대 유적의 기믹도 전부 알고 있다.

원작 게임 속 내용이 뒤죽박죽인듯하면서도 일어날 일은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그러니 이득을 취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다.

‘게임 하면서도 해밍턴 교수는 마음에 안 들었지. 퀘스트라곤 해도 플레이어는 같잖은 심부름으로 부려 먹고 뒤통수까지 치니.’

게임에서는 알고 있어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실이 된 지금은 다르다. 내가 원하는 대로 상황을 끌고 갈 수 있다.

‘고대 유적에서 얻는 것들은 모두 내가 갖는다.’

그러기 위해선 나를 제외한 탐사대 전원이 죽어야 했다.

***

“일이 생겨 저택을 비우게 됐다.”

저녁 식사가 끝난 후, 고용인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저택을 오래 비우십니까?”

“일주일 정도? 그 이상 걸릴 수도 있고.”

“저희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평소처럼 해라. 벚나무에 꾸준히 물과 고기를 주는 거 잊지 말고.”

나는 고용인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들을 고용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다. 아직 그들의 성격도 파악하지 못했는데 신뢰할 것 같나. 내가 신뢰하는 건 그들이 작성한 계약서였다. 그리고 저택이 있는 여기 G 구역의 치안이다.

저택을 나서기 전에 정원 중심에 있는 벚나무를 쳐다봤다. 환수계 벚나무. 저택에서 가장 값나가는 보물은 바로 이놈일 것이다.

벚나무에 손을 뻗어 정신 교감을 시작한다. 벚나무의 정신이 깨어난다. 벚나무는 기본적으로 잠들어 있었다. 그 미약한 정신이 깨어나는 건 나와 정신 교감을 할 때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

왜 깨었냐.

벚나무는 귀찮다는 듯이 투정을 부렸다. 성격이 지랄 같았다. 쓸모가 없었다면 환수계 나무고 뭐고 태워버렸을지도 모른다.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됐다. 얌전히 지내라.”

알겠다는 뜻이 전해온다. 귀찮으니 빨리 가라고 한다.

“네 주인은 나다. 잊지 마라.”

몇 번 더 당부한 뒤에 저택을 나섰다. 그대로 열차를 타고 에든버러로 향한다. 유감스럽게도 에든버러로 바로 도착하는 열차 편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에든버러는 네오 런던에 버금가는 도시였으나, 1100년 전에 멸망한 도시였으니까. 이곳에서 에든버러는 멸망한 그레이트 코리아나 언빌리버블 재팬과 비슷한 고리타분한 옛 문명 같은 느낌이었다.

‘중요한 건 네오 런던에 버금가는 도시였다는 사실이지. 지금 네오 런던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도시다.’

다시 말해 에든버러에는 찬란한 문명의 유산이 잠들어 있었다. 내 목표가 그것이기도 했고.

열차에서 내린 나는 걸어서 에든버러로 이동했다.

“크르르르….”

맹수와 몬스터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덮쳐왔다. 시외 구역. 그것도 인적이 드문 곳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썬더 볼트.”

천공에서 떨어지는 번개 한 방이면 맹수와 몬스터는 몸에서 연기를 뿜으며 절명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에든버러.

한때 찬란한 문명의 도시였던 에든버러는 지금 와선 그 흔적만 간신히 남은 유적지가 되어 있었다. 찬란한 문명?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딱딱하고 검은 땅과 다 부서져 바스러질 것 같은 벽이 남아 있었다.

‘익숙하군.’

이곳에 온 건 처음이었으나, 게임을 통해 몇 번이나 와봤던 곳이라 그런지 익숙하게 느껴졌다.

‘저기 캠프가 있군.’

천막을 둘러 만든 임시 캠프. 해밍턴 탐사대의 캠프다.

나는 캠프로 바로 가지 않고 주위를 돌아다녔다. 부서진 벽돌들이 모여 있는 곳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 염력으로 벽돌을 치웠다.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손을 바닥에 댄다. 마나를 흘리자 반응이 왔다.

룬문자가 은은히 빛나며 바닥에 나타난 것이다.

드르륵.

바닥이 열리고 작은 공간이 나타났다. 공간 안에는 물통과 황금 팔찌가 들어있었다.

‘공간 마법이 걸려있어서 1,100년이 지났어도 상태가 멀쩡하군.’

금고는 아니었다. 금고라 하기엔 너무 허술하니까. 그냥 중산층이 값진 걸 넣던 특수 보관소라고 보면 된다.

파직!

룬 마법이 해체되며 사라진다. 오래된 탓이다. 그리 좋은 품질도 아닌데 1,100년이나 버텼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황금 팔찌를 착용했다. 몸이 약간 편해졌다. 착용자의 컨디션을 조정해주는 효과때문이었다.

‘진짜 효과는 이게 아니지.’

황금 팔찌는 5급 아티팩트로서 7급 회복 마법인 [리커버리]를 단 한 번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일회용 아티팩트다. 일회용만 아니었어도 7급 아티팩트로서 최소 10억 크레딧은 했을 것이다.

‘리커버리는 치명상까지 회복해주는 강력한 회복마법. 이 팔찌 자체가 여분의 목숨이다.’

회복 마법은 귀하면서도 까다로운 마법이다. 특별한 재능이 없으면 아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마법. 국가에서 직접 관리하는 마법인지라 다른 마법들보다 술식을 알아내기가 훨씬 어렵다.

나는 물병을 들었다. 이건 일종의 도핑용 포션이었다.

이름은 황금의 선물. 모든 능력치가 3분간 50% 상승하는 도핑용 물약이다. 고대 시대에는 흔했던 물건이지만, 지금 시대에서는 고대 유적에서만 간간이 발견되는 귀한 거다.

‘효과도 준수하지만, 가장 큰 장점은 도피 후의 부작용이 없이 깔끔하다는 거지.’

두 가지를 모두 챙긴 나는 해밍턴 탐사대 캠프를 보고 피식 웃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고대 유산이 있는데도 놈들은 못 찾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길거리 돌무더기 속에 이런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못했으니까.

‘뭐, 나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닌가. 나도 이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알았으니까.’

임시 캠프로 향했다. 대충 2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의 기척이 캠프 곳곳에서 느껴진다.

“오늘 오시기로 한 유진 마이어 씨입니까?”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나는 품에서 의뢰 확인서를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다.

“네. 유진 마이어입니다.”

“전격계 마법사시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 해밍턴 부대장인 클리브 가너라고 합니다. 교수님을 보좌하는… 대학원생이죠.”

그의 이름과 정체는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흠칫 놀랐다.

대학원생은 이 세계에서도 대우가 안 좋기로 유명했다. 그런데 클리브는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데도 대학원생이다. 그 말은 무슨 뜻인가. 해밍턴 교수가 그를 일부러 졸업시켜주지 않고 부려 먹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불쌍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놈과 해밍턴 교수는 서로 붙어먹는 사이니가.

“고생이 많으시군요.”

“하하…. 예, 뭐. 일을 설명하기에 앞서서 특기인 마법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절 고용할 때 이미 확인하시지 않았습니까?”

“전격계 마법 말고 말입니다. 혹시 다른 마법은 사용하시지 못하십니까?”

마법사 중에는 타고난 속성 마법을 제외한 다른 속성을 마법을 잘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했다. 나는 예외다. 모든 속성 마법에 재능이 있다. 굳이 이놈에게 밝힐 이유는 아니었다.

“빙결계 마법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초전도 현상을 확인하고 빙결계 마법도 사용하고 있었다.

“전격이랑 빙결이라…. 재능을 많이 타는 속성들인데 대단하시군요. 따라오시죠. 교수님께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캠프에서 가장 큰 천막으로 향했다. 그는 천막의 문을 열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밍턴 교수님! 용병 마법사 마이어 씨가 도착했습니다! 썬콜이랍니다!”

‘……썬콜.’

어쩐지 익숙한 단어에 기분이 묘해졌다.

“드디어 오셨군. 들어와!”

천막 안에선 당당한 여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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