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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914화 (1,694/2,000)

< 1914화 > 1914. 다크 문

“마법사. 어제부터 네 토대가 좀 거시기 했는데… 뭘 알고 있는 거냐?”

진이 짐승이 으르렁거리듯 물었다.

따로 이상함을 느낄 반응은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놈은 정말로 자기 직감만 믿고 이상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내가 오른쪽을 좋아해서. 이런 상황이 오면 항상 오른쪽을 고르지. 양보할 생각은 없다.”

“오, 그러셔? 이거 나와 같은 생각이구만. 나도 양보할 생각 없다.”

진은 거검을 쥐고 씩 웃는다. 그의 몸에서 투지가 피어오른다.

“…나는 마법사를 따라가겠다.”

조쉬가 끼어들 듯이 말했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나를 따라오겠다고?”

“나는 이런 쪽으로는 영 젬병이라서… 가장 강한 놈에게 붙는다.”

“…어이, 총잽이. 이놈이 나보다 강하다고 한 거냐?”

“내 감으로는 그렇게 느껴지는군.”

“이런 씨발.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드는 새끼들만 모여서는….”

진이 살의를 일으킨다. 나는 아스트랄을 개방할 준비를 했고, 조쉬는 권총에 손을 올렸다.

“그만하게.”

해밍턴 교수가 끼어들었다.

“자네들의 일은 서로 싸우는 게 아니라 보호하는 게 아닌가. 보아하니 전원이 오른쪽으로 가고 싶은 모양이니… 그렇게 하게.”

시작점이라 할 수 있었던 진이 가장 먼저 살의를 누그러뜨렸다.

“…아까랑 말이 다르시군요.”

“상황이 바뀌었네. 탐사대원 중 15명이 왼쪽을 선택했네.”

“허?”

진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봤다. 왼쪽 입구에 15명가량이 모여 있었다. 반면 오른쪽 입구에는 4명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뉜 겁니까?”

진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징크스 같은 거라네. 여러 고대 유적을 탐사하다 보면 길이 나뉘는 경우는 흔하네. 우리는 그때마다 당황하지 않고 길을 하나씩, 하나씩 탐사하네. 그게 안전하고 확실하니까. 그런데 대부분 왼쪽이 정답이더군. 우연인지 몰라도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탐사대원들에게 징크스로서 각인된 거지. 오른쪽 인원이 한참 부족하니 자네들이 이쪽으로 와줘야겠네.”

“그, 그렇군요.”

진은 왼쪽 길을 힐끔거렸다. 사람이 많은 걸 보니 왼쪽에 마음이 쏠리는 모양이다. 자존심 때문인지 번복하진 못하고 있다.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사람이란 원래 그렇다. 소수보다는 다수를 따르려는 게 본능이다.

“왼쪽으로 가고 싶으면 왼쪽으로 가라. 누구도 널 붙잡지 않는다.”

뜨끔한 진은 잠깐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말했다.

“아니, 난 오른쪽으로 정했다. 내가 오른손잡이니까.”

진은 헛소리를 내뱉으며 자존심을 세웠다.

“결정됐으니 잘 된 거 아닌가. 시간은 금이라고 하네. 출발하겠네.”

노라 해밍턴 교수는 오른쪽을 선택했다. 당연히 왼쪽을 선택할 줄 알았던 탐사대원 일부가 당황했으나, 흐름은 바뀌지 않았다. 그들은 사람이 많은 왼쪽을 택했다.

이윽고 우리는 각각의 방향으로 출발했다.

10분쯤 지났을까.

“꺄아아아아아악!”

“이, 이게 뭐야?! 사, 살려줘!!”

“아아아아악!”

왼쪽 벽을 통해 처절한 비명이 들렸다. 오른쪽 길을 선택한 자들은 전원 침묵했다. 그 무거움 속에서 발걸음은 조금 더 빨라졌다. 등 뒤를 쫓아오는 죄악에서 벗어나기 위해.

물론 나는 죄악이고 뭐고 없었다. 해밍턴 교수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는 고대 유적에서 얻을 보물만이 떠오르고 있겠지.

‘뭐,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가.’

차이점이 있다면 나는 그 보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거겠지.

막힌 길이 나왔다.

해밍턴 교수를 비롯한 탐사대원들이 당황했다. 비석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껏 왔는데 여기가 틀린 길이라면? 뒤로 돌아가야 하나? 근데 왼쪽 길을 선택한 탐사대원들은 죽지 않았나? 그들이 혼란스러워하며 주변을 조사하려 할 때였다.

우우우우웅.

바닥이 떨리더니 천천히 아래로 내려간다. 일종의 엘리베이터였다.

“우린 맞게 찾아왔습니다!”

“이건 룬 마법이 원리인 것 같습니다. 고대에서는 룬 마법이 흔히 사용됐죠.”

“우리가 옳았습니다!”

탐사대원들은 죽은 자들을 애써 무시하고 기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바닥은 계속 내려갔다.

쏴아아아아아아.

시원한 폭포 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렸다. 윗부분과는 전혀 다른 드넓은 공간, 거기에 거대한 인공 폭포가 있었다. 쉬지 않고 떨어지는 폭포수는 지하로 흐른다.

인공 폭포도 세월을 이기지 못했는지 여기저기 파손된 부분이 있었다. 이끼도 많았다. 그러나 더럽지도 않고, 추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세월이란 예술이 추가된 것처럼 어울렸다.

그 주변에도 장식물 같은 것들이 있었다.

“멋지네요. 영상을 찍어서 학계에 제출한다면… 제법 큰 파장이 일어날 거예요.”

“저 조각상… 고대 브리튼의 아서 왕 조각상이에요!”

아서 왕.

네오 런던의 전설적인 인물이자, 네오 런던의 시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었다.

달리 기사의 시초라고 불리는 존재가 아서 왕이었다.

모두가 감탄하며 아서 왕의 조각상을 살펴봤다. 대형 조각상이었다. 크기만 10m가 넘는다. 아쉽게도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온몸을 갑옷으로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갑옷으로도 숨길 수 없는 굴곡진 선이 보인다.

이 세계의 아서 왕은 여자였다. 여러 가지 증거가 아서왕을 여자라고 말한다.

클리프는 조각상을 보며 노골적인 미소를 지었다.

“대박입니다! 교수님 완전 대박입니다! 이 조각상만 네오 런던에 가져갈 수 있어도 우린 평생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네오 런던은 아서 왕 전설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당장 네오 런던의 최고 기관만 해도 이름이 네오 원탁 의회가 아닌가. 이 정도의 아서 왕 조각상을 발견했다? 네오 런던의 영웅이 되기에 충분하다.

“클리프. 진정하게. 엘리베이터는 아직 내려가고 있네. 저 조각상은 이 유적의 일부일 뿐이네. 진짜 보물은 나오지도 않았네.”

그리 말하는 해밍턴 교수의 얼굴도 상기되어 있었다.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기뻐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덜컹!

엘리베이터가 바닥에 도착했다.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저 위에서 떨어지고 있는 폭포수에 의해 기온이 떨어진 것이다.

“오오오!”

탐사대원들이 감탄사를 터트리며 정면을 바라봤다.

커다란 문이 있었다.

조각상과 비슷한 10m짜리 크기의 문. 특이한 점은 작은 문이 그 아래에 있다는 거다. 마치 마트료시카처럼. 총 5개의 문이다. 대충 문안의 문은 2m 간격이다.

“오, 오오! 웅장합니다!”

“이 대형 조각성도 그렇고, 문안에는 아서 왕의 무덤이 있는 게 아닐까요?”

“정말 아서 왕의 무덤이라면 그 가치는….”

탐사대원들은 탐욕을 숨기지 않았다.

‘아서 왕의 무덤인가….’

이 세계에서 아서 왕의 무덤은 특별했다. 달리 아발론이라고도 불렀는데, 아서 왕은 아발론에서 부활한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신과 마법이 존재하는 시대라 네오 런던의 시민들은 대부분이 그 전설을 믿고 있다.

이 세계 전체를 뒤져도 아서 왕의 무덤은 찾지 못할 것이다.

아발론은 환수계, 그것도 아주 깊숙한 곳에 존재하니까.

‘정말로 아서 왕이 부활하지는 나도 모른다. 원작 게임에서도 언급만 됐을 뿐이니까.’

이곳에 비석은 없었다. 대신에 문에 고대어가 적혀 있었다.

-제물을 바쳐라. 제물 하나에 문 하나가 열릴 것이다.

문은 다섯 개.

문을 열려면 총 5명의 제물이 필요했다.

원작에서 해밍턴은 자신을 제외한 5명을 모두 바치려고 했다. 허나 지금 이곳에 모인 건 8명이다.

“자, 일단 여기 주변부터 조사하도록 하지. 나는 저 고대어부터 해석해보겠네. 클리프. 나 좀 도와주게.”

해밍턴 교수는 이어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자네도 이리 와보게. 마법사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네.”

이제 와서 마법사의 의견? 나는 헛웃음을 삼키며 해밍턴 교수에게 다가갔다.

해밍턴 교수가 팔찌를 만지작거린다. 나는 기막이 형성된 걸 느꼈다. 마법은 아니고 마나 조작기다. 은밀한 이야기를 나눌 모양이다.

“자네가 용병 중에 가장 강하다는 말을 들었네.”

“그건 조쉬의 의견일 뿐입니다.”

“조쉬의 남자라는 말은 맞네. 자네는 5급 마법사고, 그 둘은 4급이니까.”

“전투력은 급수로 나뉘지 않습니다. 수많은 변수가 존재합니다.”

“알고 있네. 그래도 힘만 따졌을 경우엔 자네가 더 강하지 않나?”

“그건 맞는 말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내가 제일 강한 건 맞았다.

“저 문에 적혀 있는 고대어를 해석했네. 문을 열기 위해서 제물을 바치라는군. 다섯 개의 문이니 총 다섯 명의 제물이 필요하네.”

“…저기에 있는 자들을 제물로 쓰자는 겁니까.”

“그렇지. 우리 셋이 보물을 나눠 갖는 거네. 탐사대로서 명성은 우리가 갖겠지만… 재산은 자네에게도 나눠주겠네. 재산은 정확히 삼등분할 것을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노라 해밍턴이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당연히 믿지 않는다.

“저들을 처리할 좋은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제물이라면 살아 있는 상태로 바쳐야 하는 거 아닙니까?”

“과정은 상관없네. 중요한 건 결과네. 이곳에서 제물 다섯이 죽었다는 결과.”

“그래서 계획은 뭡니까?”

“클리브. 그거 가지고 왔나?”

“물론이지요, 교수님.”

클리브가 주위를 살피며 가방을 열고 내부에 있는 뭔가를 보여줬다. 주먹 크기의 구체. 기계와 마법진이 어우러져 있는 외형.

폭탄의 존재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놀라는 척을 했다.

“…마도 폭탄이군요. 그것도 꽤 비싼.”

“하하. 역시 5급 썬콜이십니다.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우리는 탐사대와 용병들을 한곳에 모아 이걸 터트려 단번에 놈들을 죽일 걸세. 문제는 조쉬라는 용병일세. 저놈은 아까부터 후방에서 지켜보고만 있네. 가까이 다가올 것 같지 않더군.”

“그러니까 조쉬는 저보고 처리하라는 말입니까?”

“덤으로 우리에게 배리어도 씌워주셔야 합니다. 이게 폭발력이 상당해서 말이죠.”

“배리어도 수준에 따라 캐스팅 시간이 걸립니다.”

“3급 수준이면 됩니다.”

“그 정도라면야….”

나는 그들의 계획에 동참하기로 했다.

물론 이 계획이 끝난 뒤에는 이 연놈들도 죽여버릴 생각이다. 아마 이 연놈들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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